[내글내생각] 이게 다 무어냐 차라리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상병 김무준 2009-01-17 14:48:51, 조회: 172, 추천:0
아침 일곱 시 기상. 조깅을 하러 나간다. 누구는 아침 공기에는 밤사이 탁한 공기가 낮게 깔려있어 몸에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래도 달린다. 약간은 습하고 시원한 아침 공기가 좋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뒤꿈치가 다 닳아가고 낡게 헤졌지만 새것을 사지는 않았다. 돈이 드니까.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한다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람들은 참 바쁘게 산다. 일곱 시면 약간은 이른 시간이다. 직장인들은 막히는 도로를 뚫고 출근길에 오른다. 학생들은 제 몸통만한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부지런한 동네 상가 주인들은 문을 열고 하루의 장사를 준비하고, 나는 인도 위를 달린다. 바람이 귓가를 넘어간다. 머리는 항상 짧게 자르고 다닌다. 머리가 길면 샴푸도 많이 들고 그만큼 관리도 해줘야한다. 아껴야 잘산다. 땅 파봐라. 돈 나오나.
기분 좋게 뛰고 나면 산뜻하게 샤워를 한다. 물 값도 아껴야하지 않냐고? 사실이다. 물도 아껴야하지만 돈을 아낀다고 내 스스로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건 자신에 대한 모독이다. 하루에 한 번 하는 샤워지만, 정말 바쁠 때가 아니면 꼭 씻는다. 몸이 청결하고 마음가짐이 깨끗해야 돈도 굴러온다. 돈은 벌기 위해 준비된 자에게 들어오는 거다.
아침을 꼭 챙겨먹는다. 집에는 내 아침밥을 차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가족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고 있지는 않겠지.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아, 택시를 몰아 그의 빚을 갚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자신의 삶을 살러 간지 오래다. 아버지는 저녁 늦게 들어오고 아침 일찍 나간다. 열심히 살아가는데 아들이란 작자가 게으르게 사는 건 효가 아니다. 효도를 해드리고 싶을 정도로 부모님을 사랑하나?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가난이란 독한 놈을 물려줬지만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냥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있으니까, 그걸 허물 수는 없으니까 살아가는 거다. 나는 열심히 내 인생을 살고, 부모님은 부모님 인생을 사는 거다.
속이 든든해야 일도 잘 할 수 있다. 여덟시부터 공장에 출근한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면 큰돈을 벌수는 없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대우를 해준다. 월급도 올라가고. 요즘은 회사가 힘들어 제 때 돈을 주지 못하는 때도 많지만 상관은 없다. 주지 않는 건 아니니까. 철판을 틀에 찍어 뭔 제품의 바탕을 만드는 건데, 자세히는 모른다. 별 관심 없으니까. 그냥 젠장 맞게 뜨거우면 그런데 관심이 싹 사라진다.
다섯 시가 되면 퇴근한다. 야간작업까지 뛰면 시간 외 수당에 두 배의 임금을 더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돈을 벌지는 않는다. 아무리 돈이 좋다 해도 지겨운 일을 하루에 열여덟 시간 쯤 하면 사람이 미친다. 스스로를 잃어가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저 먼 이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아니니까. 그들처럼 돈이 절실한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고생하면,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삶을 희생해서 살아가는 거겠지. 사실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저녁은 밖에서 사먹는다. 너무 돈을 아끼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진다. 맛있는 저녁을 먹는 건 자기위안이다.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랄까. 하루 오천 원에서 만원 남짓 한 돈을 쓴다고 해서, 사회에 그렇게 큰돈이 돌기야 하겠냐마는. 돈은 잘 쓰면 또 다시 내게 돌아온다. 돌고 도는 게 돈이라지 않는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즐거움.
여섯시가 되면 술집으로 출근한다. 여섯시가 되면 나는 바텐더로 변한다. 바는 수입이 짭짤한 곳이다. 들쭉날쭉 할 때도 있지만 잘만 하면 하루에 삼사십 만원도 챙길 수 있다. 요즘은 경기가 많이 힘들어져서인지 손님들의 팁이 예전 같지가 않다.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제법 인지도가 높은 바텐더고, 단골손님도 많다. 공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사람들은 내게 고민을 털어 놓는 것으로 자신의 응어리를 푼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새벽 두시까지 일하고 퇴근한다. 잠은 네 시간 정도만 자면 된다.
이렇게 일해서 한 달에 얼마정도를 버냐고? 공장이랑 바에서 받는 월급을 합치면 대충 이백만원은 된다. 거기다 매일 들어오는 약간의 팁을 합치면… 나머지는 비밀이다. 월급은 전부 저축하고, 나는 팁으로 생활한다. 일종의 용돈이랄까. 왔다갔다 버스비에 저녁 값을 빼면 다르게 쓰는 돈도 없다. 담배도 피질 않는다. 가끔 좋아하는 술을 사 마실 때는 있지만 도매상에서 병으로 받아오기에 큰 부담은 아니다. 한 달을 모아 결산하고, 다시 저축한다.
왜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렇게 독한 편이 못된다. 심한 사람들은 쓰리 잡까지 뛰면서 돈을 모은다. 나는 그저 또래보다 조금 열심히 일할 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년 육 개월 동안 오천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 이 돈을 모아서 무얼 할 거냐면, 전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날 거다. 독일은 외국인에게도 교육을 위해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다고 들었다. 꼭 독일이 아니라도, 나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그동안 못한 공부도 하고 싶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의 인생이 아름답지는 않잖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입대를 해야 한다. 군에 대한 문제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고민이다. 나는 집안이 빵빵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특출 난 것도 아니고,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남자들은 다 군대를 가야한다. 더욱이 유학을 가려면 병역문제를 해결해야지. 올해 말까지만 돈을 모으고, 군에서 수능을 준비한 다음에 전역과 동시에 대학에 입학할거다. 인생은 계획적으로 살아야한다. 아버지의 실패가 내게 준 교훈이다. 준비된 자만이 내일을 잡는다. 아자.
보자. 오늘은 그동안 모은 돈을 확인해볼까. 통장을 확인하는 건 내게 힘을 주는 생활의 활력소다. 꼭 어린아이가 돼지저금통에 조금씩 돈을 모으면서 빵빵해진 돼지를 보는 기분이랄까. 통장에 적혀있는 건 몇 자리 숫자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청춘을 바친 삶의 증거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통장정리를 했다. 잔액이…
없다.
이게 뭐야? 전산 에러인가? 통장을 다시 넣는다. 통장이 나온다. 잔액은 없다. 이상한데. 번호표를 뽑아들고 은행 직원에게 갔다. 잔액 조회 좀 하려고요. 뭔가 통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서. 이상 없습니다. 잔액은 영원이네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내가 돈 찾아간 적도 없는데. 어제 예금액 전액 출금하셨다고 나오는데요. 누가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게 무슨 말이야 죄송하다면 다야? 신원조회도 하질 않고 돈을 출금해주는 은행이 어디 있어! 죄송합니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나를 끄집어내고, 은행 문을 막아섰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설마… 설마…
아버지에게 카드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 급할 때 조금씩 찾아 쓰라고 카드를 준 일이 있다. 아비라는 작자가 아들내미 죽어라 고생하는 꼴 봤으면, 그게 자기 때문이란 걸 알면, 적어도 인간이면 뼈 빠지게 모은 돈 죄다 긁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다.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새벽 세시쯤이 되니 아버지가 들어왔다. 나는 물었다.
아버지가 돈 빼갔어요? 그게 말이다… 아버지가 돈 빼갔냐고요. 그래. 그 돈 어쨌어요. 아니, 이유나 좀 들어봐요. 왜 빼갔어요? 빚쟁이들이… 남은 오천만원 빨리 갚질 않으면 너희 엄마 찾아가서 다 엎어버린다더구나. 네 엄마에게 못할 짓을 저질러 우리를 떠나갔는데, 다시 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 아들아. 그럼, 적어도 나한테 한마디 상의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돈 버는지 봤잖아? 아무리 아버지라도 그건 내가 피땀 흘려 번 내 돈이라고. 언제 돈 쓰지 말라 그랬어? 그래. 빚은 다 갚았다 쳐. 그럼 내 돈은? 내가 잘못해서 집에 빚 생긴 거야? 내가 아버지보고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랬어? 아버지가 신나서 사업하다 말아먹은 거잖아. 내가 그동안 원망이라도 했어? 근데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더럽고 힘들고 아픈 거 참아가면서 모은 내 돈 오천만원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그것도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빚 갚는데 다 날아갔다. 내 지난 이년 육 개월의 청춘이,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동안 눈물 콧물 다 흘린 게 아닌데. 아버지에게는 그게 돈 오천만원 이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한테는 그게 꿈을 살 수 있는 종자돈이었고, 지나간 내 청춘이었고, 나 자신이었다. 손가락질 받아가면서, 쌍욕 들어가면서 번 돈이다.
아버지는 이제 빚을 다 갚았으니, 열심히 일해서 돈을 갚아주겠단다. 내가 언제 돈 갚아 달라 그랬나? 아버지는 내 돈을 빌려간 게 아니라, 당신 빚 때문에 아들의 청춘과 노력과 꿈을 팔아먹은 거요. 지나간 내 시간은, 내 청춘은 어떻게 갚아 줄 건데? 아버지 나이를 생각해요. 내일 모레면 예순이야. 환갑잔치 할 나이라고. 남은 시간동안 운전한다고 얼마나 모아질 것 같아요? 얼마나 살 것 같은데? 아 진짜 대답이라도 좀 해보라니까!
-쾅. 고개를 숙인 아버지를 뒤로하고 집을 나왔다. 수중에는 오늘 팁으로 받은 구 만원이 전부다. 통장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차라리 적금을 부을 걸. 뒤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 슬픔조차도 느낄 수 없는 공허가 맴돈다. 달은 더럽게 둥글다. 별은 더럽게 빛난다. 이제 나는 뭘 하면 좋단 말인가. 새벽바람이 차갑게 몰아치고 내 인생도 차갑게 내동댕이쳐졌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다.
바닥에 뒹구는 신문지가 발에 채였다. 기적을 던지고 잠들다. 야구… 야구라. 신문을 들어 기사를 읽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김모씨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타구를 잡다 떨어지며 목뼈 골절. 현재 중태? 이게 무슨 소리지? 휴대폰이 울렸다. 어, 건달이냐? 웬일이야. 뭐가? 신문에 그렇다고 나오는데? 이거 진짜야? 지금 집 근처. 지금 영도지?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보자.
택시를 잡아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건달은 혀를 내밀고 있는 고양이를 옆구리에 끼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냈냐? 뭐 그렇지. 옆에 고양이는 뭐냐 특이하게 생겼네. 어. 강아지야. 뭐? 이름이 강아지야. 얼마 전에 주웠어. 참 너다운 이름이다. 술이나 한 잔 할까? 알바 너 공장 나가야 하지 않냐? 건달이 물었다.
그만 뒀어. 돈 좀 모았나보네. 아니. 왜, 너 열심히 돈 모았잖아. 우리 얼굴도 안 보고. 오천만원 쯤 모았는데, 어제 다 날렸어. 짜식. 경마장 갔냐? 로또? 바다이야기인지 해삼이야기인지 사기도박 했구나! 내가 받아줄까? 아니. 그럼? 아버지가 빚 갚는데 다 썼어. 이런 니미… 씨-발 아무리 아버지라지만 너무하는 거 아냐? 술이나 마시자.
포장마차에서 오뎅탕 하나를 시키고 소주 두병을 깠다. 거의 삼년 만에 만나 술을 마셨다.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참 용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온 이야기. 별이 슬프게 빛났다. 우리는 열아홉 겨울에 헤어지고 스물 둘의 가을 즈음에 다시 만났다. 그 때만해도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고, 우리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배운 것도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나마 품고 있던 꿈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나는, 무얼 하면 좋을까.
취기가 올라 서로 세병 째 술을 마시는데, 건달이 말했다. 근데 이 고양이새끼 있잖아. 말할 줄 안다? 인마 너 취했냐. 진짜라니까. 집을 나서는데 나보고 병신이래. 확 영도다리에서 던져 버리려다가 참았다. 무슨 고양이가 말을 해. 좀 웃기기는 하다. 혀를 계속 내밀고 있네. 영양실조로 앞니가 빠져서 그렇데. 지가 병신이면서 어디 밥 주는 엉아보고 병신이래 싸-가지 없는 놈이.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그래서, 너 어떡할 거냐. 뭘? 돈 다 날렸잖아. 아버지보고 갚아 달랜다고 그 돈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어. 그러냐. 응. 우리 병원에나 가볼까. 어딘 줄 알고. 찾다보면 나오겠지. 그러자. 근데 중태라며. 가서 뭐하지? 예전처럼 우리한테 어째라 저째라 이야기도 해 줄 수가 없잖아. 그냥 가보자. 혼자서 힘들 거 아냐. 우리 힘들 때 그녀석이 많이 도와줬잖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선 새벽거리를 거닐었다. 돈? 모르겠다. 일? 모르겠다. 잘려도 모르겠다. 세상 나 하나 없다고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바나 공장이 나 없다고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하루 한 끼 저녁 먹는 돈이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듯, 나도 세상에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침대에 누운 친구에게 약간의 힘은 되어줄 수 있겠지.
사람들은 일터로 향한다. 학생들은 학교로 간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모르겠다. 통장의 잔고가 영원으로 찍히면서 내 꿈도 다 무너졌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는 물음 하나만 도로를 질주한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2:52
상병 노유승
뭔가 꼬인 인생의 한 사람의 이야기인것 같네요..
왠지 저하고 미묘하게 비교가 되네요.. 2009-01-17
15:13:42
병장 김민규
후.... 2009-01-17
17:59:57
병장 이재륜
이게 이렇게 이어지네요..
으아.. 가슴이 먹먹.. 2009-01-17
18:27:27
병장 이건희
가슴이 아프네요... 2009-01-19
11:24:47
병장 장지훈
역시 냉소적인 문체 무준씨의 글.
이런분위기의 글을 읽는다는건 참으로 행복합니다. 2009-01-19
12:43:47
상병 이석현
마구마구 이입되어버렸습니다. 2009-01-19
14:38:18
병장 이동석
그리고 보니 제목이 참 친숙하군요.
이 편의 주인공의 설정도 꽤나 익숙하고요.
허허,
이거 밑그림만 보는것으로도 이리 신날줄이야. 와와- 2009-01-21
18:3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