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유에프오를 믿으시나요.  
병장 김무준   2009-04-02 10:37:49, 조회: 369, 추천:0 

무료한 토요일 오후. 봄날의 햇볕은 따끈따끈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날씨는 잠자기 딱 좋을 정도로 포근했다. 흐아암. 나는 잠에서 깬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펴고 세수를 했다. 누군가 이렇게 소풍가기 좋은 날에 집구석에 박혀있는 건 죄악이라 징징대는 것 같아서 괜히 나가고 싶어졌다. 딱히 할일은 없지만 꾀죄죄한 몰골로 나갈 수는 없잖아.

-오늘 오전 열한시 삼십분, 경기도 성남시 상공에서 타원형의 미확인 비행물체가 목격되었습니다. 보도에…

방에 틀어놓은 티비에서 시덥잖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성남 상공에서 유에프오가 발견되었단다. 삼십 분가량 목격되다 휙 사라졌다나. 귀가 솔깃하기는 했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는 일은 잘 없으니까. 세수를 마치고 죽어라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하얗게 변할 줄 모르는 피부를 쳐다보다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피부가 좀 더 하얗다면 좋겠는데.

아침에 보기는 했다. 베란다에 가서 냐옹이 밥도 주고 맛동산도 캘 겸해서 나갔다가, 하늘에 떠있는 무언가를 봤다. 구름은 아닌 것이 그렇다고 뚜렷한 모습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타원형의 물체가 하늘에 떠있었다. 저게 무얼까 고민하다 하도 냐옹이가 울어대기에 아침을 챙겨주고 맛동산을 캐낸 후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유에프오면 뭐해. 공군에서 출동해 비행접시를 때려잡고 국민 여러분 외계인은 존재합니다! 라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을 텐데. 외계인이 있건 말건 잠을 잘 시간을 돌려주는 건 아니잖아.

도라에몽이 그려진 후드티를 입고 하얀색 슬립온을 신었다. 누나는 나를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한다. 스물 둘 씩이나 처먹고 무슨 도라에몽 티에 실내화를 신고 싸돌아다니니. 아무렴 어때. 유쾌하게 살아가는데, 키치면 또 어떻다고. 성인이라고 꼭 점잖게 빼입거나 유행을 따라 스키니 진을 사야할 필요는 없다고요. 잠깐의 이별에 앞서 냐옹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사실 난 하늘을 날수 있지. 하지만 그녀는 나를 똥 보듯 해. 말할까. 모두. 말해 버릴까. 엠피쓰리에서 초코크림롤스의 지나간 노래가 흘러나왔다. 흐음. 선곡이 괜춘하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깥 공기를 들여 마셨다. 썩 좋은 공기는 아니다. 서울만큼 매캐한 매연냄새가 나지는 않아도, 산골마을 맑은 공기보다는 적당히 지저분하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슈퍼맨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신문기자로 살았다. 사랑하는 여인은 슈퍼맨을 사랑하면서도 달랑 안경 하나 쓴 클라크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나 슬펐을까.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은 얼굴이라도 가리고 다니니까 모른다고 쳐도, 슈퍼맨은 안경 벗고 파란 쫄쫄이에 빨간 팬티를 걸쳤을 뿐인데 말이다. 하늘을 날다보면 눈물이이. 가슴은 찢어지는 데에. 초코크림롤스의 노래는 클라크의 슬픔을 불러댔다.

잔다고 점심을 굶었더니 배가 고파졌다. 뭘 먹을까. 곧 있으면 저녁을 먹어야 할 테고,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으면 밤늦게 야식을 또 먹어야겠지. 배가 좀 고파도 간식이나 먹어야겠다. 아이스크림.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베스킨라빈스. 나뚜루. 하겐다즈. 어디를 갈까 머리를 굴리다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이름이 퍽이나 우습다. 주문하는 사람도 부끄러운 이름을 지어놓고서 팔아먹다니. 콘이나 하나 먹어야지. 엄마는 외계인 하나 주세요.

역시. 할 일이 없다. 날씨가 좋아서 나오기는 했는데 나른한 주말 오후에 할 일이 없다니. 슬프다. 빽빽하게 찬 사람들과 차들은 다들 어딘가 갈 곳이 있어서 움직인다.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단지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밖에 나와서 꾸물거리는 사람은 없겠지. 그래도. 이 좋은 날 무료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나 같은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이 덜 퍽퍽하지 않겠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요. 누나 뭐해요. 아니. 그냥. 날씨도 좋은데 뭐하나 싶어서. 집이야? 나랑 똑같구나. 오늘 유에프오 뜬 거 알아요? 아니,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신기하잖아. 봤어요? 나도 보긴 했는데 알게 뭐람. 그게 유에프오면 뭐하고 외계인 비행접시면 뭐해. 그지. 할일 없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어요. 아 지금 나와도 괜찮고. 알았어요, 거기서 봐요.

서현역 삼성플라자 앞 자라매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서현역에는 부자가 참 많다. 디올이나 구찌의 쇼핑백을 든 여자들. 버버리 프로섬의 코트를 입은 남자. 나 부자요하고 드러내기 위해 입은 건 아닐 테다. 일반인들은 저 옷이 버버리인지 바바리인지도 구분을 못하니까. 기다림이 지루해 자라매장으로 들어갔다.

유후. 직원들이 이건 어디서 나타난 그지 깽깽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에, 그러니까 나는 한 사람의 고객으로 여기 들어온 거라고요. 그런 눈빛은 좀 자제요. 한 달에 서너 번 스페인 본사에서 유입된다는 최신 트렌드의 옷들을 보면서, 참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싶다. 이십세기 초라서 슈퍼맨을 사랑하는 여인은 클라크를 못 알아봤던 걸까. 그 때는 빠른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을 거다. 그럴지도.

매장을 나가니 누나가 도착해있었다. 기다리게 해놓고 지는 아이쇼핑이나 하고 있냐고 몇 대 맞았다. 아프지는 않다. 늘 이렇게 만나니까 이제는 이해할 법도 한데. 두어 대 맞아주고 뭘 할지를 물었다. 모르겠단다. 빤하지. 나도 할일 없었고 누나도 할일이 없었는데 밖에 나온다고 딱히 할일이 생길 리는 없다. 심심한 사람끼리 만났으니 오죽할까.

공원 가서 맥주나 한 잔 할래. 또 대낮부터 술이에요? 얌마 맥주가 술이냐. 맥주는 음료야. 보리음료. 에, 술 잘 마시는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몰라도 누나가 그런 말 하니까 영 아닌데. 죽을래? 빨리 사와. 나 돈 없단 말이야. 코로나 알지? 네에. 안주는 프링글스 정도면 되겠죠. 아니, 오늘은 새우깡이 먹고 싶은데. 맥주에 무슨 새우깡이야. 맞는다. 삼 초 안에 출발한다. 실시.

맞기 싫어서 몸을 움직인 건 아니다. 때리는 거야 귀여운 수준이니까. 여자한테 맞아봐야 얼마나 아프겠나. 편의점에 들어가 코로나 한 병을 사고, 하이네켄 다크를 한 병 샀다. 왠지 흑맥주가 당겨서. 아아, 자꾸 낮술 마시면 안 되는데. 프링글스나 초코칩 따위를 사가면 기어코 새우깡을 먹겠다고 떼를 쓸 테니, 새우깡 한 봉지와 초코칩 쿠키를 하나 사서 나왔다.

서현역 앞에 퍼질러 앉아서 마실까 하다가, 대낮부터 지하철 앞에서 술을 처마시는 젊은 남녀가 썩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을 대중의 안녕을 위해 공원에 갔다. 이것도 소풍이라면 소풍이니까. 바리바리 싸들고 돗자리 깔고 앉아서 노는 것만이 소풍은 아냐. 봄 소풍. 봄 소풍에 꽃놀이를 간다고 해두자. 공원에는 벚꽃이 흐드러져 있었고 바람은 따뜻했다.

누나는 술을 반병쯤 비우더니 무릎을 세팅하라 명령했다. 벌써 취하는 모양이다. 잔디밭에 앉아서 한쪽 무릎을 내어주니 벌렁 누워버렸다. 이봐요. 누워서 뭐 먹으면 소된다고요. 워낭소리에 나오는 소. 음모. 소. 잔소리를 해대려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예뻐서 내버려뒀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벚꽃이 간간히 떨어지고. 좋은 날이다. 나오길 잘한 것 같다.

있잖아. 에? 너 어릴 때 외계인한테 납치된 적 있다며. 에이 그 말을 믿어요? 그럼 구라냐 이 새끼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못 믿겠는데. 얌마 누님이 특별히 믿어줄게. 그럼 그렇다고 치죠. 외계인이라는 거, 있다고 믿어? 흐음. 글쎄 그게 꿈이었을지 진짜였을지는 모르니까. 나도 모르겠어요. 너무 비현실적인 일을 겪으면 믿기 힘들잖아. 그러냐? 그렇죠.

어릴 때. 음. 코 찔찔 흘리면서 돌아다닐 때. 네 살 때쯤이었나. 외계인한테 잡혀간 적이 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외계인들처럼 생긴 건 아니었다.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고. 외국 사람은 또 아닌 것이. 사탕처럼 보이는 물건으로 나를 유혹하는데 어떻게 따라갔더니, 둥근. 꼭 변비나 감기 때 맞던 좌약처럼 생겨먹은 물체에서 광선이 내려왔다. 외계인을 따라 밝게 빛나는 곳에 들어갔다. 따지고 보면 납치는 아닌가.

어쨌든 어린 아이는 판단능력이 없으니까. 납치였다고 해두자. 외계인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있었고 잠시 후에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을 보았다. 몸이 우주공간에 떠 있었다. 에, 서있었다는 게 맞겠다. 둥근 지구가 보였고, 달이 보였다. 점점 배경이 변하더니, 지구는 작아져 태양계가 되었다. 외계인을 따라 은하계 곳곳을 떠돌았다. 구상성단. 백색왜성. 블랙홀 따위를 보면서. 우주의 신비랄까. 그런 걸 느꼈다.

한참을 우주를 여행한 뒤에 주변은 다시 빛났고 외계인은 좌약 우주선에서 나를 보냈다. 그리고 손에 막대사탕처럼 보이는 물건을 쥐어줬다. 무섭고도 놀라서 집으로 뛰어갔고, 엄마와 아빠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지만 믿지 않았다. 신기한 꿈을 꾼 거라고. 그랬다. 꿈일지도 몰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외계인이 준 선물을 간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외계인이 준 것은 이 엠피쓰리였다. 용량이 무제한인 엠피쓰리.

거 참 치사한 외계인이네. 기왕 줄 거면 이어폰도 함께 줬어야지. 그러게 말이에요. 신기하기는 하다. 뭐가요? 그거 저번에 컴퓨터에 꽂아봤을 때 용량이 표시가 안 됐잖아. 그렇죠. 근데 노래는 빵빵하게 들어가고. 얼마나 넣었어? 에, 계속 안 지우고 폴더 만들어서 그 때 그 때 넣었으니까. 한 사오천 곡 될 걸요. 에이 겨우 그거밖에 안 돼? 음악도 좋아하는 인간이? 불법으로 다운 받으면 그렇잖아요. 앨범 사서 파일 변환해 넣으니까 그렇더라고요.

누나는 한참을 웃었다. 날씨는 좋았다. 벚꽃이 살랑살랑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고. 누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서 더 좋았다. 삶의 소소한 여유. 지루한 일상에 찾아오는 이런 여유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봄이로구나. 외계인이고 유에프오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하루를 보내다보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겠지. 그럴 거다.

야. 왜요. 얌마 반항적인 태도 보인다? 취했어요? 무슨 헛소리야. 아냐, 하나도 안 취했다고. 비밀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나 사실 외계인이야. 이 아가씨가 정말 낮술 먹고 제대로 취했나. 안 취했다니까. 이게 뭔 사각거리면서 고양이가 풀 뜯어먹는 소리에요. 진짜라니까. 난 너 믿는데, 넌 나 안 믿어? 에라. 알았어요. 믿어요. 진짜지? 믿는다고요.

외계인이면 초능력 같은 거 쓸 수 있어요? 음… 소년. 뭘 기대하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둘리가 쓰는 것처럼. 얌마 둘리가 외계인이냐? 걔도 엄밀히 따지면 지구인이야. 지구에서 태어난 공룡이잖아. 도우너면 또 몰라도. 어쨌든 도우너 보면 타임 코스모스 타고 여행 다니잖아요. 도우너가 초능력 쓰디? 그건 아니지만. 있기는 있어. 뭔데요? 난 시간을 거스를 수 있지. 그럼 보여줘 봐요. 싫어. 왜요? 원래 초능력이라는 건 중요할 때만 쓰는 거야.

초능력 따위. 외계인 따위. 지금 무릎을 베고 누운 사람이 외계인일 리가 없잖아. 말이 되냐고요. 누나가 술이 많이 취한 모양이다. 맥주 한 병도 다 못 마시는 아가씨가 무슨 술을 이렇게도 좋아하는지. 어릴 때 남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기 힘든 경험을 겪었대도, 외계인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있을 것 같다는 게 있다는 건 아니다. 사후세계를 증명하지 못했듯 누구도 외계인이 실존한다고 입증하지 못했잖아.

여전히 벚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누나는 자기가 벚꽃이라도 된 양 풀밭을 뒹굴었다. 나도 스물 둘 처먹은 성인남성이라고 보기는 힘든 편이지만, 저게 어딜 봐서 서른에 접어든 노처녀란 말인가. 얼굴도 동안인데다 하는 짓은 딱 초등학생 수준인데. 엠피쓰리에서 다시 초코크림롤스의 노래가 들렸다. 사실 난 하늘을 날 수 있지. 풀밭을 뒹굴던 서른의 노처녀가 내 손을 잡았다.

나 내일 가야해. 어디를요. 고향에. 고향이 어딘데요? 안드로메다. 이 아가씨가 정말 제대로 취했네. 취한 거 아니라고. 난 안드로메다에서 왔어. 이보세요.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먹었겠지. 이게 누나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나 하나도 안 취했다고. 워워. 거기까지. 이 꼬맹이가… 나, 간다. 집에요? 응. 고향 갈 준비해야지.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흘러 다시 토요일이 왔다. 그동안 누나는 연락이 없었다. 항상 내가 먼저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나는 또 잠깐 일어나 냐옹이 밥을 주고 침대에 엎어져 잠을 자려고 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뜬금없이 누나가 찾아오곤 할 때가 있어 벌컥 문을 열었다. 누나는 없었고 웬 정장을 입은 흑인이 선글라스를 끼고 서 있었다.

설마. 맨인블랙에 나오는 윌 스미스는 아니겠지. 헌데 영화에서 보던 모습과 퍽 닮았다. 이거 어디서 몰래카메라라도 찍나. 복도를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카메라 따위는 없었다.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카메라가 설치되었을 리는 더더욱 없고. 윌 스미스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아참. 윌 스미스는 미국인이지.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가. 문을 닫으려 했다. 근데 윌 스미스가 문을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에, 네. 놀라셨을 겁니다. 한국어 하시니까 더 놀랍네요. 윌 스미스 씬가요? 네 맞습니다. 거 참. 저번 주 토요일에는 유에프오가 하늘에 뜨더니 이번에는 윌 스미스야? 내가 돌았나. 윌 스미스 맞습니다. 예. 무슨 일로 한국까지 찾아오셨죠? 설마 내가 만나던 서른 살짜리 애어른이 외계인이라 조사차 방문했다는 말을 하려고요? 맞습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거 참. 이게 꿈인가. 꿈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졌을까. 그렇게까지 피곤했던 건 아니니까, 그럴 리는 없고. 현실인 것 같은데 윌 스미스가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고 있으니 영 못미덥다. 에라. 꿈이라면 꿈이겠지. 윌 스미스는 지구에 불법 체류하는 외계인을 가끔 관리하는데 최근에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에 외계인이 무단으로 비행접시를 띄웠다고 설명했다. 연방 우주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나 뭐라나. 그게 누나였고, 탐문수사를 하는 중이란다. 개꿈도 별 개꿈이 다 있다. 윌 스미스는 협조에 감사하다는 말을 붙이고 영화에서 보던 은빛 막대를 꺼냈다.

그거 기억제거 광선인가요. 그렇습니다. 플래시가 번쩍하고 윌 스미스씨가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대로 당분간 행동할 테고요? 잘 아시는 군요. 지구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영화와는 다르게 퍽 친절하시군요. 영화는 홍보용인지라 흥미를 위해 편집되곤 하죠. 그런가요. 참 힘드시겠어요. 별 말씀을. 이 일도 일상이 되고나면 별 일 아닙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윌 스미스는 기억제거 광선을 날리고 당신의 기억에 외계인 따위는 없으며, 도라에몽이 그려진 티셔츠 따위를 입지 말고 스물 둘이면 스물 둘답게 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친절하기는 했지만 광선을 쏜 후에는 영화와 비슷했다. 일종의 직업병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제거광선을 맞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몇 시간이 흘러도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벙벙했다. 외계인이라는 게 있는 걸까. 글쎄다. 어릴 적 우주를 관람하는 스펙터클하고도 초우주적인 경험을 했고. 서른 살 지구인으로 위장한 외계인을 만났다. 거기다 맨인블랙에서 파견 나온 윌 스미스와 대화를 나누고 기억제거광선까지 맞았으니, 외계인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유쾌하네.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건 어릴 적 만난 외계인 덕분인가. 유쾌한 경험이구만.

냐옹이에게 저녁을 주고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게 잠이 잘 왔다. 꿈을 꿨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나는 코를 찔찔 흘리며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떠나버린 누나가 꿈속에 나타나 나를 불렀다. 나는 누나를 따라갔고 좌약처럼 생긴 우주선에 올랐다. 누나는 내 손을 잡고 말머리성운과 장미성운. 빛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폭발하는 초신성. 안드로메다 따위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별했고, 누나는 내 손에 막대사탕처럼 생긴 엠피쓰리를 쥐어줬다.

나는 외계인이야. 하면서.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1:18 

 

병장 김대운 
  아싸 조회수 1 찜콩. 
왠지 우리 누나도 외계인일 것 같아서 무섭네요. 읔 2009-04-02
10:50:44
  

 

상병 이재환 
  음, 전 믿어요. 얼마나 넓은지 가늠도 안 가는 넓은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그건 참 굉장한 공간낭비인것 같아서요. 흐흐. 

그나저나 여기 누나는 외계인 하나 주세요. 2009-04-02
10:54:42
  

 

상병 권홍목 
  오앗, 무준씨 글 치고는 좀 기화님 스러운냄새가 나는건 저뿐? 
맑은 주말 오후의 즐거운노래같은 글이네요 
저 엠피쓰리 부러워요(울먹) 

전 외계생명체의 존재가능성은 긍정하는데('지적인 외계생명체'는..음..글쎄요) 
UFO가 외계인의 비행체일것이다-라는데는 부정적이에요. 

아이스크림먹고싶어요 2009-04-02
11:12:16
  

 

일병 정일하 
  저는 여동생은 외계인 하나 주세요. [뭐,뭣이!?] 2009-04-02
11:13:30
  

 

병장 조명훈 
  ...직접 쓰신 소설인가요? 2009-04-02
11:30:36
  

 

병장 김무준 
  이게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깽깽이가 생산한 텍스트는 맞습니다. 2009-04-02
11:34:00
  

 

병장 안재현 
  여태 껏 무준님과는 다른 느낌의 글이로 군요 2009-04-02
11:35:06
  

 

상병 송기화 
  어머. 왠지 상큼한데요? 

그나저나 누님의 초능력은 언제 보여주시나요? 2009-04-02
11:36:30
  

 

병장 김무준 
  마지막에 보여줬잖아요 이양반아. 2009-04-02
11:41:21
  

 

병장 김상윤 
  어렸을때 경험을 누나는 지금 과거로 가서 한거로군요 2009-04-02
11:57:38
  

 

상병 송기화 
  그냥 꿈인 줄 알았죠, 뭐. 흥. 2009-04-02
12:58:36
  

 

상병 김태완 
  여태까지 무준님의 글과는 다르게 글이 참으로 비현실적이고 깜찍하네요. 
근데 저 냐옹이 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왔던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 2009-04-02
15:23:35
  

 

병장 김무준 
  아무 관련 없습니다. 2009-04-02
15:53:29
  

 

병장 김민규 
  뭐였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여간 어릴때 시골 갔다 오는 길에 하늘에 떠있는 이상한걸 본 적이 있었더랬죠. 
번쩍 하더니 저 반대편으로 슝 날아가는 것이, 도대체가 종잡을 수가 없는 괴물체. 그날밤 뉴스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그 소식을 전해 주더군요. 
도대체 뭐지, 음? 2009-04-02
23:44:38
  

 

상병 홍도형 
  오, 단 일합에 죄다 읽어버렸다. 
역시 재밋군요. 2009-04-04
15:53:04
  

 

상병 홍도형 
  ... 만약 만국어 마스터 스미스씨가 이 글을 본다면 글쓴이를 잡으러 면회오는건가요. 
사인은 받아다 나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