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병장 최도현 2008-08-12 15:09:33, 조회: 275, 추천:2
#1.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일전에 대학생을 잠깐 과외해 준 적이 있었다. 과외라기보다는 며칠 시간을 내어 가르쳐준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인문학과 학생이었는데, 교양과목으로 <물리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듣고 있던 학생이었다. 어떤 경우로 이 수업을 듣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말고사가 임박한 상태여서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나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이미 오래되어서 과연 예전에 공부했던 것이 다시 기억날지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강의 자료를 보고나서 이내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과외는 무보수였다. 원래 안면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학생은 내 설명을 잘 따라와 주었고, 다행히 나중에 좋은 성적을 받았다. 물론 내가 과외를 해주지 않았더라도 워낙 영특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솔직히 배우는 동안 나의 가르치는 방식이 공격적이고 호통 치는 듯해서 무서웠다는 고백을 하였다. 나는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 주변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었는데 그에 상응하는 은혜를 베풀지 못했다.
오래 전 일이다. 일 년 정도 깊이 교제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올바른 영혼을 지녔으며 영민하고 명징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고 진중(鎭重)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완벽한 성인은 아니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닦아 주어야 할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박박 닦아내야 할 얼룩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었지만, 수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고, 아직까지 치유 받지 못한 남녀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별을 하였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앞에서 되새겨 보았던 과외 학생의 고백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일방적으로 위로를 받으려 했고, 끊임없는 사랑을 받으려만 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침착하고 항상 품위가 있으며, 내면의 깊이를 갖춘 사람의 충고를 소망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녀 옆에서 언제나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부족하였고, 그녀는 나에게 과분하였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에게로 밀려 들어왔던 모든 슬픔들, 아쉬움들, 이런 것들을 모두 초월해서 우리는 모두 한 형제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다 같이 허물 많고 죄가 있는 인간이지만 다 같이 사랑하는 이웃이며 가족인 것이다.
므낫세Manasseh는 요셉의 첫 번째 아들이다. 요셉은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나님께서 잊게 하셨다고 고백하며,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로 지었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말은 그동안의 고통을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셨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 아픔이 나를 좌절시키거나 절망시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나를 치유하셨으며, 나를 더욱 견고하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녀와 헤어졌지만,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축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축복은 상대방이 잘되고 행복하길 바라는 그런 수준에서의 축복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축복이 아니라, 이제 당신은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가장 비인격적인 표현일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신앙적 도약이나, 자기 암시, 또는 자기 합리화도 없다. 여기에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는 지극히 간단하고도 한 치의 의심 없는 믿음만이 해처럼 빛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본연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우리 얼굴에 얼룩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얼룩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쉽게 지워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의 과정이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의 얼굴을 덮고 있던 형형색색의 가면들을 이제 하나 둘씩 벗어 던져 버리는 것이며, 우리가 그동안 고수하고 있었던 자신만의 해자(垓字)를 두른 견고한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러 겹의 가면들을 모두 벗어 던진 맨 얼굴이 한 동안은 어색할 지라도, 활짝 열어 젖혀진 자신의 성(城)안이 처음엔 불안할 지라도, 우리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는 그 심연의 골짜기를 지난다면 이제야 우리의 얼굴에 묻어있는 얼룩을 닦을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찾았을 때, 우리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으로 바뀌어 질 것이라 확신한다.
**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영국의 영문학자인 루이스의 소설 <Till we have faces>를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12:03
병장 노요셉
제 이름이 나오는군요(땀) 하핫,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글 내용대로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이나,
외식하는 가면을 벗어버릴때 비로서 진정한 나와 함께
대면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기엔 현실이 너무 쉽지 않군요..(울음) 2008-08-12
16:37:40
병장 이태형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마다 상당히 괴롭군요. 2008-08-12
17:32:31
병장 이동석
제가 읽어본 [일상이야기]중에 가장 묵직합니다.
일상이 묵직하신건가요. (웃음)
제게 과분했던 사람을 못 알아보고 가볍게 '버렸'던 일이 떠오르면서
그 사람을 찾아가 무릎이라도 털썩 꿇으며 고해성사라도 하고싶어집니다.
그 사람은 목사의 딸이었는데, 전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제목에서 따와
'blower's daughter'라고 불렀습니다. 음. 제가 죽일놈입니다.
결국 그 노래를 들을때마다, 영화 클로저를 볼때마다 괴로움에 떠는 제가 남았죠. 2008-08-12
19:11:09
병장 이동석
(제 집안이 어느새 기독교 집안이 되버린지라, 기독교 분위기에 대한 반감이나 뭐 그런게 충만해서 그랬습니다.) 2008-08-12
19: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