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완벽한 용두사미 이야기
상병 이동석 [Homepage] 2008-06-05 22:05:26, 조회: 389, 추천:1
<용두>
우리들은 왜 그녀를 좋아할까. 나는 그녀를 은근하게 좋아한지 몇 년이나 되어서야 겨우 이런 의문을 품었다. 나는, 우리는 왜 그녀를 좋아하는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각자가 그녀를 좋아하는지를 알면서도 여전히 친하며 그녀는 왜 우리들이 아닌 다른 녀석들하고만 만나는걸까. 도대체 우리는 왜 각자 여자친구도 사귀고 부킹도 곧잘하고 소개팅도 하는 주제에 왜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정도면 그녀가 나쁜년이란 말 한마디정도는 나올법도 한데, 그런 말을 내뱉기엔 그녀는 잘못한게 전혀 없다. 그녀는 단지 예뻤고 친절했으며 재치있고 지적인데다 몸매도 좋고 목소리는 귀에 감기며 미소가 정말 사랑스럽고... 망할.
고등학교 동창끼리 술을 마시는데 심심잖게 등장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망할’로 끝이 났다. 그녀는 단지 남고가 공학으로 바뀌면서 들어온 첫 여학생중 하나였을뿐인데 우리는 졸업한지도 6년이 넘은 이때까지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만 바라보며 그녀만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제일 지고지순한‘척’ 했던 동원이 녀석마저도 벌써 두 번째 사랑을 마쳤을정도니까. 하기는 6년간 두 번째 사랑인데 벌써라고랄 것도 없다. 승기녀석은 휴가나왔더니 이미 예비역 날강도같은 놈이 채가버린 그녀에게 배신감마저 느끼는 모양이었다. 전에 없이 술에 취해 절망을 뱉어냈다. 수정이 걔랑 나랑 결혼하면 아들 둘에 딸둘 놓기로 했었는데. 그 말은 나도 들었었는데 승기와 결혼해서 그러겠다는게 아니라 결혼하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물론 승기녀석은 들은척도 안했다. 수정이가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낚아챘으나 곧 결별 했던 백수 녀석은 최대한 조심히 말을 꺼냈다. 수정이가 뭐가 그리 대단한건지 난 사실 모르겠어. 최대한 조심했다고 해서 나머지 녀석들의 배알마저 멀쩡할리는 없다. 사실 난 최대한 냉정한척 하고있었지만 나 마저도 목소리가 떨렸고, 명민이 녀석은 나직하게 신발거렸다. 선균이는 담배만 뻑뻑 피는 품이 수정이한테 달려가 소리라도 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요즘 수정이랑 제일 가까웠던건 나였다. 물론 수정이와 가장 감정적으로 거리가 먼 백수녀석마저 코웃음을 쳤다.
구질구질한 놈들. 명민이는 신발거리더니 아무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선균이도 화장실을 갔고, 백수는 집에서 전화해대는 동거녀의 전화를 조용한곳에서 받기위해 뛰쳐나갔다. 남은건 군인들인 나와 승기뿐. 망할 예비역 X끼들. 그냥 여자애들을 가만이를 안둬. 예비역 진×7869874691287364이라 감이 없는지 승기는 예비역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하긴, 저놈은 올해 전역하기라도 하지. 예비역 진 ×∞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을까?
정말로 그녀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녀는 단지 인간관계가 매우 좋을뿐이었다. 그녀는 사실 인터넷에서 굴러다니는 얼짱들과는 좀 거리가 있었는데, 뭐랄까 완벽한 미모는 아니었는데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생각되는 외모였다. 무슨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래 그녀의 미모는 나 따위의 졸필로는 콧등의 모공하나도 표현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녀는 먼저 다가가 손내밀줄 알았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시내와는 한시간 거리의 미팅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왕복 한시간을 걸어 야산에서 만나던가 (솔직히 이건 뻥) 아쌀하게 상업과 공업보다는 알바에 힘쓰시는 실업계고 언니들을 만나는게 전부인 우울한 남고에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자 메시아이며 네오이고 세일러 문인 그녀는 금수같은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난 그때 천국을 보았다. 그 자리의 모두가 간증했듯 우리는 천국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순한 양이 되기로 했다. 물론 탈이라도 쓰겠다는 거지 우리는 뼛속까지 금수X끼들이었다. 우리는 학생회나 동아리를 장악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시한 꽃다운 열일곱 후배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학생회장이나 동아리 회장, 못해도 총무나 연락부장정도는 해먹어야했던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정쟁이나 분쟁도 이보다 더 유치하고 저열할순 없었을 것이다. 18년째 교실 뒤에서 잠만 자도 공부는 곧 잘하던 성진이는 갑자기 렌즈를 끼고 오더니 왠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난리였고 16년동안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제구는 갑자기 불교로 개종했다. (불교동아리에 여학생들이 많았다) ‘송정리 형광등’이라는 링네임을 가지고 있던 스트리트 파이터 수원이는 갑자기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수화부에는 여학생이 더 많았다.) 오덕후스러운 향기 가득했던 만화부엔 마지막으로 만화본게 드래곤볼이었던가 짱구였던가 중얼거리는 녀석들로 가득해졌다. (만화부는 여학생이 정말 많았다.)
그저 여자 후배들과 함께 할수 있다는것만으로 그해 우리는 발악했다. 후보 12명이 난립하자 학생부장이 성적으로 잘라내어 5명이 박터지게 싸웠던 학생회장 선거는 결국 ‘이 모든 것은 이미 내 계산 속에 있었다’고 회고하던 성진이 녀석의 승리였다. 성진이는 중학교 재학시절부터 이 모든 것을 꾸며온 것이다. 그는 이미 ‘친구’들을 포섭했으며 일종의 정당을 조직하고 있었다. 그 조직은 선후배, 선생님 심지어는 서무실 김양 누나와 매점 누나까지 포섭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참고로 나조차도 순간적인 충동으로, 12명이나 입후보 신청할정도면 회장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는-더 정확히는 멋진 학생회장이 되서 모든 여학생의 선망이 되겠다는 우습도록 가소로운 분위기- 이미 불타올랐었으니까, 정확히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입후보했었고 말했다시피 떨어졌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편집부장을 꿰찼다. 어쨌거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사실 승기녀석도 고등학교 입학해서 한 선배의 집에 놀러간 뒤부터 밑밥을 깔고 있었다. 그는 수정이의 친오빠인 민식이형이 부장을 맡고 있던 홍보부에 들어가서는 그때부터 수정이네 집을 드나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역사는 늘 잘난놈들의 놀이터다. 잘나기로는 동네에서 알아주었던 백수가 수정이 손을 잡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때 그 비탄과 좌절, 놀람과 증오, 안타까움을 잘 갈무리하며 차마 백수에겐 티내고 싶어하지 않아하던 학생회의 못 잘난 십수명의 남자들의 표정을 난 아직도 잘 기억한다. 더불어 백수를 좋아하던 몇몇 여자후배들의 ‘다른애도 아니고 수정이랑 사귀는거니까 GG’정도의 비언어적 의사표현도-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거나 마시던 물을 뿜거나 갑자기 울며 뛰쳐나가거나- 그 여자애들 볼때마다 놀려줄수 있을정도로 다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때 쥐고 있던 연필을 부러뜨렸다.
이 뭔가 말도 안되는 커플의 행보는 거짐 장동건-김태희가 사귄다면 그 커플에 쏠릴법한 전국민적 관심에 비견될정도로 낯낯이 <카더라 소식통>에 의해 전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드라마 <가쉽걸>이 따로 없었다. 나는 백수녀석과 게이커플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농담할정도로 붙어다니는 사이였었는데 나의 담담하게 묻어나오는 절망을 백수녀석을 수정이에게 빼앗긴 절망의 표현정도로 해석해버린 야오이,팬픽 마니아녀석들 덕에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그게 아니라 나도 수정이 좋아한다고 말할바에 그냥 게이하고 말정도의 녀석이었기 때문에 그전까진 단순하게 인사나 주고 받던 수정이와 헐리우드 영화식으로다가 ‘여자-게이 남자친구’정도의 관계가 되고 있었다. 물론 게이로 오인 받은 주인공들이 가만히 있는건 그런식으로라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서일것이고 나도 물론 그런식으로 함께 했다. (당연히 그정도로 진지하게 게이니 뭐니 한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고1 여자애들의 참혹한 음담패설속에 묻어나는 나에 대한 인식은 거의 뭐 그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왜 그런 남남커플인데도 항상 합의되지 않는 관계를 강요하는 것으로 묘사되는것인지. 그러니까 우리는 흔히 외모로 판단해서 그렇다.)
정말이지 수정이는 나를 ‘게이 오빠’씩으로 여기지까진 않았지만, 그녀가 백수와 헤어지고 학생회나 다른 남자들이나 <장수정 쟁탈배 전국 노래자랑>정도쯤에 매진하고 있을즈음에는 뭔가 확실히 있었다. 그녀는 실연의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안고 있을때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게 다가왔다. (그래 네가 먼저 다가왔어!) 밤 늦게 갑자기 전화해서는 몇시간이고 통화하고, 가끔 술을 사달라고 하기도 하는게 -참고로 난 중3때부터 어떤 추가 설명없이 술,담배 구입을 할수 있는 상태였다. 신랄하게 말하자면 신임 교사들을 움찔하게 만들고, 저 아버님?, 입학해서부터 윗학년들이 선배로 오인하여 인사하게 할만큼- 정말이지 이런 생각 하기는 싫었는데 얘가 날 좋아하나?
그 뒤는 생각도 하기 싫다. 망할 친구놈들은 정말로 있는 힘껏 비웃어준 것이다. 낄낄껄껄꾈꾈꿀꿀깔깔 빌어먹을 놈들 작작 좀 해. 어쨌거나 나는 그런식으로 수정이를 계속 만났고 가끔씩 그녀의 아찔해지는 미소를 볼때마다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의 조로아스터교 수도승들이 수행중 사념이 들때마다 외웠다는 주문 ‘녀는날싫어해그녀는날싫어해그녀는날싫어해그녀는날싫어해그’를 되네이며 행복에 미쳐 안드로메다로로로로로로로 향하는 정신을 붙들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어느 떡볶이 집에서나 시장 국밥집, 가끔은 차이니스 레스토랑, 아주 가끔 조그만 호프집과 아파트 벤치에서 히죽이며 뭔가를 중얼거리는 수염이 덥수룩한 미친남자를 보았다면 그건 백방 그 시절의 나일것이다. 그녀를 꽤 자주 만나긴 했지만 사실, 단 둘이 만나기를 기대하며 달려가고 보면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오거나 누구도 오기로 했다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럴때면 나는 일껏 그정도쯤 가볍게 이해하는 대인배 쿨가이정도로 보이기 위해 구겨져가는 안면근육을 최대한 스트레칭하는데 주력했다. 그 누군가가 중요했는데 마찬가지로 안면근육을 구기지 않도록 발악하는 승기녀석을 보게 될 때면 언제나 자리다툼에 피가 터지곤 했다. 그럼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승기 오빠 오는지 몰랐어? 승기 오빠가 연락한댔는데’ 라는 말이나 할뿐이었다. 당연히 승기는 연락을 할 리가 없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민식이형 -수정이 친오빠-이 수능을 보던날. 매년 학생회 주도로 선배들 수능응원(을 빙자한 합법적 외박)이 유사이래로 호황이었다. 학생회간부들은 문,이과에 맞춰 수를 나눠야 했는데 민식이형은 이과였고 나는 문과였다. 그때 나는 지조 없게도 수능 응원을 핑계로 미팅을 할 예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미팅하는데 왠 외박?) 옆 여고에 있는 중학교동창이 몇 명 데려오고 나도 친구 몇몇 데려가 주머니 탈탈 털어 이마트에서 장보고 친구 자취방에서 밤을 샐 (그래서인지 난 대학MT가 별로 새롭지 않았다) 예정이었다. 나의 지조없음을 숨기기 위해 갑자기 10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핑계를 댔는데 명색이 초-중-고 동창인 놈들 마저 그러든가 말든가 하면서 알아채려고도 안해서 오히려 서운하게 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예의상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정도로 진심으로 걱정해줘 순간 현모양처를 속이고 정부와의 밀월여행을 계획하는 남자의 속내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와 나는 여자-게이 남자친구 사이였지만.
내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장을 보고 친구 자취방에서 맞닥드린 여고생들의 면면을 보며 경악하는 동안, (‘그녀의 종족’을 참조하면 엘프말곤 다 있는 다종족 파티. 주로 호드쪽이었다.) WOW에서 얼라 대 호드의 불균형 만큼이나 그녀가 응원가는 이과로 지나치게 몰린 수능 응원장에는 하나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친 오빠의 수능 대박을 기원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밤새 응원하는 ‘구민 여동생’쯤 되는 그녀를 에스코트 하고자 지나치게 많은 남자 녀석들이 밤부터 몰린 것이다. 청계광장 촛불 집회하는 것 마냥 모인 ‘구민 여동생의 기사단’은 구민 여동생이 화장실을 갈때조차 우르르 몰려다녀 일대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마 그들이 촛불이나 각목을 들었다면 구민 여동생은 한 나라의 여왕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슬쩍 수정이를 술집이나 피시방, 찜질방 심지어는 비디오방으로까지 유인하려 시도했다. 그녀는 편의점을 제안한 다훈이를 따라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마 그녀는 단지 캔커피를 마시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훈이 녀석에겐 편의점이건 술집이건, 심지어는 모텔이건은 상관 없었다. 그는 거의 수정이를 보쌈하려들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교묘했고 ‘그녀의 기사단’조차 그녀의 행방을 모를정도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태파악이 된 직후 서로 으르렁 대던 기사, 정확히는 금수들은 하나의 깃발 밑에 운집했다. 그녀를 찾는다! 누군가 외치기라도 했으면 복명복창했을지도 모를 그들은 인근의 여자 화장실부터, 편의점, 피시방, 술집, 찜질방에 비디오방과 모텔의 각 실까지 뒤졌다.
금수들 : (벌컥) 수정아!
(여자 비명소리)
벗은 남자 : (깜짝 놀라며) 뭐야 너!
금수 : 없네. (쾅)
정도의 과정으로 찾아 헤메던 금수들은 드디어 이성을 조금씩 찾게 되었고 그들의 경쟁자들중 다훈이 녀석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맙소사. 그녀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걸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그들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문자 무제한인 녀석들에겐 끊임없이 문자질을 그녀와 다훈의 전화번호를 아는 녀석들에겐 끊임없는 전화질을 시키고 나머지는 다훈이 녀석의 심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실 분석할 것도 없었다. 그놈이 그놈이었으니까. 모두의 눈에서 섬광같은 것이 스쳤고 각기 다른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훗날 그녀는 회고했다. 그날 전화랑 문자가 너무 많이 와서 핸드폰이 꺼져버릴정도였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핸드폰이란걸 집어던질뻔 했다고.
무슨 편의점을 택시까지 타고 가냐는 말에 오빠 친구가 알바하는 곳이 있어서 가는거라며 2400원쯤 나오는 거리의 편의점으로 들어가 어? 그 친구 일 안하나 보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뭐 마실래로 이어질정도로 치밀하고 뻔뻔했던 다훈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은, 그녀는 말만 ‘구민 여동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인근의 다른 고등학교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 옆학교 녀석이 우리학교 선배들을 응원하러 오는 것을 빌미로 그녀를 구경하러 왔던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그녀가 없는 응원 장소의 선점 따위 알 바 아니었고 마침 그 택시비 2400원 거리의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있던 학생이 제 친구들에게 그녀가 나타났다고 알린것이었다. 포위망은 조금씩 좁혀져갔다. 인질의 털끝하나라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은 인질극 대처법까지 스스로 터득해버린 것이다. 편의점 뒷문과 인근도로를 봉쇄하고 타학교생들이 먼저 편의점으로 들어가 포진했다. 그리고는 ‘암행어사 출두요!’라도 외치고 싶을듯한 표정으로 나타난, 다훈에겐 저승사자일 ‘구민여동생을 위해 밤을 잊은 수능 일년남은 남정네들’이 들이닥쳤다. 다행히 그들 눈에 무사한 수정이가 보였고 당장의 분노보다는 그녀의 안위가 중요하기에 모두 다훈을 홀로 길가에 버려진 조지 부시를 발견한 이라크인들처럼 짓밟는 대신 그녀에게 달려간 것이다.
수정아 괜찮아? 그녀가 사라진지 겨우 이십사분 지났을때였다.
다친데는? 택시타고 편의점와서 캔커피 먹느라 입천장이 좀 데었을 뿐이었다.
밥은 먹었어? 말했다시피 이 이야기는 그녀를 겨우 이십오분만에 만나서 한 이야기다.
안 추워? 편의점에는 난방이 참 잘 되고 있었다.
일단 그녀는 안전하다. 그리고 나면 배신자, 아니 납치범, 아니 테러범, 아니 아니 악의 축에 대한 응징이 시작된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일단은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다. 다훈은 곧 세계평화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 작자가 되었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잠깐만 있으라고 해놓고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들을 지으며 다훈을 끌고 갔다. 물론 그들이 겨우 이런일로 살인을 할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쉽게 죽여줄리 만무 했다. 아마 수정이 기다리다 지쳐 나오지 않았더라면 다훈은 전학을 가는게 아니라 중환자실이나 정신병원을 갔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술 취하고 백열등 조명에 보니) 너 참 예쁘구나.’에서 ‘눈을 떴을때, 난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오이디푸스가 왜 진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뽑았는지를 이해할수 있게되었다.’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을때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오빠들이 오빠가 아니라 금수X끼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들은 신입생적 MT때 바람 쐬러 가자던 예비역 오빠가 가슴만질때 깨달은걸 그녀는 단순히 고1때 오빠 수능응원 갔다가 깨달은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갑자기 그 금수X끼들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거나 속으로 욕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친절이 불필요한 파란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금수들은 서로를 물어뜯다가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지만, 곧 고삼이 되었다. 그리고는 정말이지 내일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난 수학문제를 하나 더 풀겠다는 심정만 가지고 그녀는 정말이지 가끔씩만 생각하며 책상앞에 앉았다. 군인이라면 보통 소녀시대에 열광하지만 그렇다고 휴가나와서도 제대해서도 소녀시대만 쫓아다니지 않듯 그녀는 가끔 무슨일이 있을때에나 떠올리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금수들을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음흉한 속내를 깨달으며 약간은 괴로운척 하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수정이와 가까워지기엔 지금만한 시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것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고결해서 손대기 무서운 수정이보단 그 수능전날밤을 함께 했던 여자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 날 눈을 뽑아 버리고 싶었던건 사실 그 여자아이의 쌩얼에 실망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술김에 벌인 무책임한 짓이 기억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보니 그녀들도 처음엔 나와 내 친구들을 보며 적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 얼짱의 노예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거울에 뱉은 침에 그려진 내게 묻노라니. 내 이름이 뭐였더라. 음.
휘순아. 야 육봉달! 그래. 맞다. 그거였지.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선균이었다. 너도 군인됐다고 열시 넘으면 피곤하냐? 화장실에서 잘도 자네. 그리고 보니 같이 옛날 이야기를 하던 승기놈은 어디갔을까. 승기는 내일 소개팅한다고 일찍 들어간댔어. “나는?”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선균이놈은 말을 계속 잇는다. 너도 좀 면도도 하고 옷 좀 챙겨 입어라. 까놓고 말해서 너 소개팅 시켜줄래도 욕먹을까봐 못시켜줘.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왜 그녀를 좋아할까. 왜 그렇게 환장을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내 다른 여자 만나며 잘지내다가 군대가고 여자친구 떠나가니까 다시 그녀를 사랑하게 됐을까. 그녀는 왜 날 싫어하는걸까? 왜 그녀는 그딴 X끼랑 사귀는거지?
뭐래냐? 이X끼.
<사미>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지명, 인물과 무관할까요?
제목은 <추격자> 나홍진 감독의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46:16
상병 신지훈
<사미> 부분이 압권입니다. (웃음) 2008-06-06
11:01:06
상병 이태형
많이 신선한 글이네요.
이런 글은 그닥 접해보지를 않았는데(웃음)
재밌게 읽었습니다. 2008-06-06
18:55:31
상병 이문희
공대에서 얼마없는 여학우중 이쁜 여학우, 그것도 착하기까지한 여학우.
여자여자여자여자여자여왕. 알것 다알고있는 여학우여학우여학우여우. 입니다. 2008-06-07
11:36:56
양순호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부분에서 덜컹 했습니다. 으하하하핫. 2008-06-07
16:27:06
상병 이동석
음, 공대도 이렇구나. (일반적인 대학에서의 남녀비율과 무관한 여초대학 전남대중에서도 극악의 여초를 자랑하는 사범대 다녀서 모르겠다는 배부른 소리) 2008-06-08
03:47:36
병장 장재혁
아. 이거 완전 재밌어요!! 2008-06-09
10:28:18
상병 이동석
재밌어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제 유머감이 상당한 적응기간이 필요한데,
(너무 로우개그)
적응력이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저러나 전 언제쯤 짜임새있게 글을 쓸수 있게 될지. 허허) 2008-06-09
21:54:44
병장 김관선
아 정말 미치도록 재밌게 읽었습니다. 완전 재밌네요. 2008-06-10
16:51:02
병장 박상욱
아 은은한 로우개그 참 바람직하네요 2008-06-11
09:57:31
병장 김별
재밌습니다.
여초 현상이 심각하죠 전남대(웃음)
요즘은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쿨럭) 2008-06-11
11:26:52
상병 이동석
전 책마을에서 로우개그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제 멋대로)
재미라도 있어야 할텐데요.
사실 웃음에 대한 강박은 없는데 (뻥)
상욱// 은은한 로우개그라는 표현 마음에 듭니다. 허허
관선//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김별// 요즘 전남대 가면
뛰노라니 소녀시대
뭐하시나 원더걸스
어쩔시구 쥬얼리네
그럼뭐해 아직군인
이라는 민요가 유행입니다.
제가 유행시키려고요. 2008-06-11
12:34:15
병장 문두환
헐, 동석님이 이런 글을 썼었다니. 푸하하~글을 읽는 내내 영상이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왠지 실화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그리고 이 글 정말 재밌어요. 가지로! 2009-01-10
15:35:21
병장 이동석
이 즈음엔 일단 글이 전체적으로 많지 않았고, 양극화가 심했으며, (그것도 신경 써서 쓴 쪽은 극소수인 쪽으로) 일단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전 이 즈음 거의 몇년만에 글을 쓰는거라서, 그냥 웜업-분위기로 쓰는 사람이 즐거운 글을 쓴것이지요. 흐흐. 2009-01-11
16:37:06
병장 문두환
/동석
그런가요? 하긴 이때 글들의 분위기가 조금 '가벼운'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요. 거의 몇 년만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겸손인가요 오만인가요? 으흥~ 2009-01-11
16:50:29
병장 이동석
음, 그게 혼자 노트에 끄적이는거 말고 다른사람 보도록 글 쓰는게 참 오랜만이라는 거였어요. 헉. 졸지에 난 아무리 놀아도 이정돈 쓴다네 이사람아-느낌의 댓글을 달아버렸군요. 흐흐. 2009-01-11
17:12:04
병장 김민규
허 참, 마구로 동숙옹, 그 댓글을 달지 않아도 '난 아무리 놀아도 이정돈 쓴다네 이사람아-'는 몸으로 느껴집니다. 어떡합니까 이 무력감을. 그냥 가지로- 하나 날리고 도망가야지. 쩝쩝쩝 2009-01-11
17:53:43
병장 이동석
억억, 그게 아닌데, 흑 2009-01-12
21: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