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오누이 이야기  
상병 김무준   2008-11-25 00:10:34, 조회: 160, 추천:0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는 우리 오누이를 위해 떡을 팔러 나갔다. 우리 오누이는 외로움과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 내 죽마고우를 불렀다. 밤을 보내고 있었다. 고개를 넘고 넘어 고을 시장으로 떠났던 당신은 오늘도 어김없이 당신의 사랑을 미처 다 팔지 못한 채 어두운 고개를 넘었으리라. 손이 부르트도록 떡을 빚고 빚어서 발이 헤지도록 고개를 넘었을 당신은 오늘도 밀가루 범벅이 된 손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었으리라. 우리가, 그 하얗고 고운 손이 저 끔찍한 놈의 손이었음을 알았더라면 굶어 죽더라도 문을 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문을 열었고, 하얀 두건에 가려진 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배부름을 모르는 포악한 짐승은 제 자존심을 팔아넘기고 손쉽게 배를 채우는 방법을 택했을 거다. 산 중의 제왕이라는 이름 따위는 산신각 화장실에 제 똥과 함께 처넣었겠지. 젠장. 젠장. 젠장. 더러운 짐승이 왜 하필이면 고개를 넘는 당신을 택했던 것이냐. 내 손발이 닳도록 한 번도 효도해 본 적 없는 우리 어머니를 고른 것이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야속했다. 어린 동생과 나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가족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일을 만드셨다는 말이냐. 저 새파랗게 솟은 수숫대는 놈의 이빨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아. 하늘이시여. 이것이 내게 주는 선물이십니까.

그래. 인간은 저 짐승보다도 못하다. 수수밭 나무위로 도망친 우리를 샛노란 짐승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은 어떤 악몽 속 야차보다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삐죽 튀어나온 이빨은 수숫대처럼 날카로웠다. 놈이 솥뚜껑만한 두 손으로 나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나무는 점점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나는 빌고 또 빌었다. 하늘이시여. 우리 오누이와 제 친구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제발 동아줄을 내려 우리를 살려주시어요.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믿을 수 없었지만, 하늘 끝에서 동아줄이 하나 내려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동아줄은 나 하나를 지탱하기도 벅차보였다. 이런 육시랄! 어째서 달랑 한 줄만 보내는 거야! 이게, 이게 아니란 말이야! 나 역시 미치도록 간사한 인간이었다. 동아줄을 내려준 하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왜 단 한줄 뿐인 겁니까. 하늘이시여. 내 목숨을 팔아도 좋으니 단 한줄 이라도 더 내려주시어요. 빌고 또 빌겠습니다. 이 간사한 인간을 어여삐 여기시어 한줄 만 더 보내주시어요. 그렇게 동아줄 하나가 더 내려왔다.

나무는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나와 내 친구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번 씩 농담으로 주고받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친구는 물었다. 나와 네 동생이 만약에 벼랑 끝에 매달려있어. 너는 한명밖에 살릴 수 없어. 우리 손에서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할래? 야 인마.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없잖아.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난 어떻게든 둘 다 살릴 거야.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가. 네 동생과 네가 올라가. 그럼 너는? 괜찮아. 어서 가. 그럴 수 없어! 난 어차피 기다릴 가족도 없어 가버려! 가란 말이야! 시끄러워. 우리도 이제 고아야. 어머니는 저 씹어 먹을 것의 손에 돌아가셨을 게 뻔해. 기다릴 가족이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럼 어떡해야할까 친구야.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다고!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의 상황이 화살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우리 둘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데 단 한명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야. 친구의 물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친구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올라가. 너는? 네 동생은? 우린 괜찮아. 싫어. 못가. 아니. 가야해. 살아남아서 우리의 복수를 해줘. 살아. 어떻게든 살아서 우리 복수를 해줘. 나는 두 사람 모두를 택하겠어. 살아줘. 친구는 내 눈빛을 보았다. 우리는 짧게 눈빛을 나눴다. 그가 정말 나의 친구라면 그는 동아줄을 붙잡고 살아남아 우리의 복수를 해 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친구와 나는 뜨겁게 악수를 나누었고. 친구는 동아줄을 붙잡았다.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어린 동생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으나, 결코 울지 않았다.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우리 어머니를 따라가자. 혼자 가면 외로우실 거야. 동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생을 안은 채 삐죽하게 솟은 수숫대로 몸을 던졌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나는 친구에게 외쳤다.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널 살리고, 동생과 함께 따라 죽을 거다. 으하하하하하하.

새파랗게 빛나던 수숫대가 붉게 젖었다.

뱀발. 여전히 어른을 위한 동화는 어려울 뿐.
뱀발 둘. 그래도 연재는 안해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3:58:27 

 

상병 이지훈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허우적 2008-11-25
00:25:14
  

 

병장 이동석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2008-11-25
06:51:57
 

 

상병 양 현 
  으하하하하하하! 2008-11-25
07:03:23
  

 

상병 김용준 
  웃음소리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겟네요. 음...저는 서글픈 소리로도 들리고...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표현력이 모자라서 설명은 못하겠지만 '어떤 굳은 결심을한 웃음소리'같네요. 

동화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니 재밌네요. 후후후. 2008-11-25
09: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