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예전으로의 회귀  
병장 윤영돈  [Homepage]  2008-11-10 10:40:12, 조회: 193, 추천:0 

예전으로의 회귀.

요즘 개인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비상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헤로인을 너무 많이 마셔 천국의 나락에서 손짓하는 어떤 존재를 보고 있는 마냥 텅빈 눈으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않다. 아니, 이러고 있는게 나의 비상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우습지만 책마을을 끊었다. 독서도 끊었고, 운동도, 연등도, 영화, 영어, 디자인, 사진공부도 끊었다. 끊고 싶어서 끊은 것도 아니고 외부의 압제를 당한 것도 아니다. 자유의사에 의한 정지. 그래 정지다. 나는 말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바쁜몸이야. 하며 언제나 이를 갈며 공부를 했고, 이등병 때부터 짜투리시간을 쪼개고 쪼개 실력을 쌓기위해 애쓰던 내가 한순간에 정지해버렸다. 그러다보니 시간과 공간의 방에라도 있는 듯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많다고 느껴본적이 없는 이 군생활의 하루가.

이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나는 멍하니 보내고 있다. 때론 멍하는 것에 지쳐 피곤해 잠들기도, 지루해질때쯤 새로운 멍때리는 곳을 찾아 움직이며 어슬렁거린다. 내가 상병때부터 생각한 말년 병장이 '시간 존나 안간다.'라고 말하면 속으로 비웃으면서 '전역해서 뭐할지 꿈꾸지도 않으면서 막연히 전역만을 꿈꾸는 멍청이'라고 지어준 녀석들이 되어있었다.

무엇이 잘못된걸까? 나는 분명 전역하고 할 것에 대해 명확한 목표가 있는데. 너무 빡빡한 계획과 요구능력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끼며 능력을 얻는데 전념했는데. 멍하니 있는 동안 이러면 안되지 안되지 이럴수록 꿈을 이루는 시간은 배수로 늘어만 가는데.. 하고는 있지만 나는 여전히 멍때리고만 있었다. 똑같은 일의 반복과 똑같은 장소, 똑같은 행동, 똑같은 사람, 똑같은 공부의 반복에 똑같은 매너리즘에 빠져버린걸까? 똑같은 것에 지친 잠재의식이 내 명령을 거부하고 날 이렇게 만든것일까?

멍하니 비어버린 박제눈을 하고 있는동안 계속해서 질문만을 나에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웃기게도 이런 질문을 하는 행위는 질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질문에 질문을 꼬리를 물고 운다. 하지만 답은 없다.

이러다 죽어버리는거 아니야?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쯤 내무실의 후임 한 놈이 물었다. "왜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십니까?" 그러게 나도 그 이유좀 알고싶다. 고민과 별개로 말장난에 말장난을 오가는 전혀 진지하지 않은 대화를 해나가다가 녀석이 자기 심심하다고 놀아주라고 한다. 너는 언제나 심심하잖아 하고 쏘아붙여 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키고 녀석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농구도 하고, 싸구려 자판기커피 한잔을 놓고 전혀 도움될 것 없는 수다를 떨고, 드라마 재방송을 보면서 송혜고 가슴이 줄었다는 시시껄렁한 주제로 드라마다 끝날때까지 논쟁을 펼치기도 하면서 이 녀석과 데이트하고 있는건가?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하루를 보냈다.

아,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논건.

실로 오래간만에 하루를 이렇게 보낸 것을 알았다. 물론 오늘한 것들은 군 생활 동안 수도 없이 많이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군에 입대하고 나서부터는 이것들을 한꺼번에 해본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단 하루도.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나면 그만큼의 시간을 뺏긴듯 허둥지둥 자리를 잡고 실력을 쌓기위해 애를 쓰거나 오늘 먹은 칼로리를 모두 식스팩을 만드는데 소모하기 위해 발악했다.

내가 원래 이랬던가? 전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는걸 싫어해서 승부를 내야할 때는 악착같이 달라붙기는 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여유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미친듯이 열심히하면 그에 비례한 성과가 나온다는 지론따윈 우스워했고, 적정량의 노력과 경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사고가 최대의 성과를 만든다는게 내 지론이었다. 수능을 볼 때도 책정한 량만 채우면 야자를 시키던 뭘 시키던 내 관심 밖이었고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물론 원하던 대학을 간건 아니지만 공부따윈 관심이 없었던 내가 성적가지고 차별하는 학교에 짜증나서 차별의 상징인 청운반이니 뭐시니하는 그룹 전부는 무리더라도 반 수 이상 꺽어버리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고, 원하는 대학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 생긴거니.

그래. 그랬었지. 난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그렇게 달려왔던 것일까? 군에 들어오면 머리가 포맷되고 남에게 뒤쳐진다고 수도없이 많이 들었기에 두려워서? 내가 꾼 꿈이 그렇게 중요해서?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난 중요도를 떠나서 언제나 내 방식을 고수해왔었다. 군에 들어왔다고 해서 내 자신이 바뀌지는 말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어느새 예전의 내가 이해못하는 무리가 되어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멍청이. 자기 혼자 잘난척은 다하더니 어느새 싫어하는 타입이 되어서 원래 그렇다는 듯 그 입장에서 또 잘난척을 하고 있던거야.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뭘 그렇게 성급해하는거야.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여유를 가져. 그게 내 가장 큰 장점이었잖아. 멍때렸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가 왜 멍하니 앉아있는거지 하는 이유따윈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건 알 필요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을 얻었으니. 이제 두려워서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멍청이 짓은 하지 않겠다. 멍때리기 전의 나 - 군에 입대하고 후부터의 나는 안녕. 정말 안녕.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고하고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줘야 할지 모르고 혼자서 낄낄대고 있는 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데이트 상대에 말했다. "뽀뽀해줄까?" 녀석은 아무말도 않았지만 벌어져 있는 녀석의 입모양으로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병신' ㅡ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 날의 데이트는 나의 애정담긴 마운트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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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이네요- 라고 말한것도 백만번째인것 같고, 오랜만에 오니 재가입을 해야 하는 것도 백만번째인것 같고. 아무튼 그렇네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8:11 

 

병장 고재형 
  누구나 느끼는 병장병이 아닐까 싶어요 
힘내세요. 여기서 뒤쳐지면 정말 두려운 결과속에 결속된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슬프잖아요. 2008-11-10
10:48:59
  

 

병장 윤영돈 
  질풍노도의 시기같은 멍때리기는 끝났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몰아치던 짓이 멈췄으니 다행이죠. 뭔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여유를 느낄 줄 몰랐던 군생활에서 벗어나서 다행일 뿐이에요. 다행이죠. 다행. 2008-11-10
11:37:44
  

 

상병 양순호 
  언제나, 자신에게 있어서 필요한건 어느 누군가와의 안녕이기도 하죠. 2008-11-10
11:58:05
  

 

병장 이태형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저도, 어떤 누구도 한번쯤은 고민했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참, 시간 아까워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채찍질 할때는 언제고 멍때리며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이 참.. 후회스럽게도 느껴지고 그냥 뭐 그렇습니다, 허허. 
결과적으로는 좋게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영돈님.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2008-11-10
14:46:37
  

 

병장 윤영돈 
  오랜만이네요. 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지라 살짝 당황하고 있는중이네요. 2008-11-10
14:48:11
  

 

상병 이우중 
  그러고 보니 그 '히-'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웃음) 
애정담긴 마운트가 내포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사고가 흘러가긴 했지만 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가끔씩은 그렇게 보내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같은 경우야 거의 매일 그렇게 보내다가 가끔씩 이건 아니다 싶어서 진지하게 생각도 하곤 해 보지만 결국 생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요. 허허. 2008-11-10
15:02:58
  

 

병장 윤영돈 
  헛, 마운트에 목조르기일 뿐입니다. 
전혀 이상한 의도는 없는 순수한 폭력성(?)으로 행한거죠. 

저도 어쩌다 이 모양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뒤늦게라도 되찾았으니 다행이죠. 2008-11-10
16:47:32
  

 

병장 김현민 
  어우, 영돈님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이 느끼고 있네요. 글 쓸 시간은 분명 있는데 미치도록 쓰고싶고 
멋지게 쓰고싶고 휘양찬란하게 쓰고 싶고 열심히 쓰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은데 그것도 아니고,,, 공부할 계획은 주구장창 세웠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운동할 계획은 주구장창 세웠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공든계획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라 추측은 하지만서도 
에휴. 저도 정지상태네요. 저와 똑같은 처지가 가슴깊이 동조로부터 와닿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정지시간. 조금 길어지면 방황이라 해도 
정지시간을 조금은 애용하려구요. 마음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전! 으악. 2008-11-11
04: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