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어느 군인의 완전한 죽음  
상병 강수식   2008-08-11 10:24:49, 조회: 580, 추천:1 

베이징 올림픽이 한참이고 저기 러시아 근처 어딘가 그루지야에서는 전쟁이 한참이고
중국에서는 테러가 일어나고 박태환은 금메달을 따고 여자 양궁은 올림픽 6연패를 하고
한국축구는 이탈리아에게 무참하게 패배당하는 여름입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밤이되면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날이네요. 무언가 아쉽고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허전한 그런 기분, 아세요?
그래서 저는 요새 서태지형님의 신보앨범만 계속계속 되풀이해서 듣고 있습니다.
시크한 내 기분을 조롱한 걸까- 노래 좋네요. 잡소립니다. 하하

며칠동안 그냥 쭉쭉 써내려가봤는데 글이 엉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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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사이좋은 세상 메뉴닫기를 했다. 

2.
중학교시절, 동창들은 다 모인다는 그 유명한 커뮤니티와 허리춤에 매달려 전화번호를 찍어대는 사각형의 기계-삐삐라고 불리던-를 시발점으로 세상을 향해 소통하고자 했던 나의 의지는 늘 오픈이었다. 어쩌면 지극한 외로움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일 수도...혹은 기쁜 마음에 학교에서 탄 상장을 가지고 뛸 듯이 집으로 향했지만, 한번 쓱 보고는 ‘잘했다’라고만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던 어린시절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병적으로 슬프거나 외로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소통을 향한 시도는 절대 닫혀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나에게 죽는 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호흡이 멈추고, 심잠이 멈추고, 뇌가 활동을 멈추고 온 몸에 산소가 공급되는 일이 멈추어 사지가 한낮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혀져 간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살기위해’라는 아주 편리하지만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좁은 울타리안에 제한된 여건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발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울타리너머 저 세상과의 소통에 열을 올렸다. 외계어딘가에 있을 생명체와 교감을 맹신하는 빵상아줌마와 같이.

그러나 부대찌게집에서 일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일년하고도 몇 개월이 더 지난 지금, 소통은 가로막혀 버리고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한참의 신호음이 울린 후에도 받지 않는 열 몇 자리로 이루어진 전화번호들과 음성녹음을 물어보는 차가운 목소리 앞에서. 관물대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더 이상 내용물이 채워지지 않는 편지함 앞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칭찬을 받기위해 더 다가고자 했다. 또한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보기좋게 얇은 입술로 나를 치장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내게서 더 멀리 떠나갈 뿐이었다.

그건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중세시대에는 산 사람의 배를 가르고 도르레에 연결된 갈고리에 내장을 연결하는 고문기구가 있었다고 한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정신을 똑바로 차린채 자신의 내장이 도르레에 줄줄이 끌려나가는 것을 보는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하루하루를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고문과 같았다. 나는 산채로 내 뱃속에 내장이 줄줄이 끌려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고통을 당하는 것 마냥 아프고 무서웠다. 사이좋은 세상 메뉴를 닫아버리고 부대 주소를 지워버리고 세상을 향하는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 더 이상은 그러한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세상에서 조금씩 배제되어 가며, 천천히 죽어가는 나를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내가 세상을 버리고 숨어버리게겠다! 하는 완전한 죽음이.

그러나 어찌보면 부대찌게 집에 취직하게 된 이후로 내가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는 것은 이미 한참전에 예견되어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완전히 죽는 것이 나에게 가장 올바른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개’였으므로.

3. 
내가 ‘개’ 혹은 ‘개수식’이라는 별명을 얻게된 연유에는 알코올이라는 요소가 상당부분 많은 이유를 차지하고 있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으나 알코올의 힘을 빌려 이성의 끊을 놓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아마도 1년 동안 사귀던 현모양처 M양과 헤어지고, 역시나 알코올의 힘을 빌어 건널 수 없는 강 너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던 Y양과 만나고나서 부터였을 것이다. 어쩌면 집에 있기 싫어서 도망치듯 나와 친구들의 자취방에 무전취식하듯 얹혀살기 시작했을 때 부터였을 수도 있다.(나는 집에서 걸어서 15분도 떨어지지 않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하루하루가 불안한 날이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 난 이렇게 술을 마시고도 공부는 잘 할 수 있을꺼야!-에 차있으면서 언제, 어떻게 무리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을 안은채 살아갔던 날들을.

이러한 내 가슴속에 응어리는 알코올에 의해 이성의 끈이 끊어지면 빛을 발하고는 했다. 나는 이유없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백미러에 주먹질을 해댔으며, 학교 근처 주택대문에 이단 옆차기를 날리기도 했었다. 다음날 일어나면 찌뿌등한 몸둥아리와 주먹에 남아있는 상처, 얼굴에 커다랗게 남은 생채기에 전날의 흔적이 딱쟁이처럼 붙어앉아 있고는했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이러한 나의 행위예술은 점점 그 정도를 더해갔다. 급기야는 학교 건물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트리고, 공중전화기의 수화기를 반토막 내었으며, 바보계단이라 불리는 비대칭적 계단 옆의 풀밭에서 구르고, 핸드폰을 잃어버린채 비어있는 강의실을 찾아가 하루밤을 보냄으로써 룸메이트들이 밤새도록 나를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도록 만들었다. 또한 후배들을 이끌고 팀장으로 처음 출마한 광고 공모전에 낙방하고 잔뜩 술을 마신 후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미친 듯이 울부짖음으로써 젊음이라는 고뇌와 방황이 가득한 시절을 온 몸으로 표현해내는데 점점 열을 올렸다. 그러자 상당히 냉정한 비평가였던 나의 주위사람들은 ‘너는 역시 개다’, ‘정신 차리려면 한참 멀었다.’, ‘등록금이 아깝지도 않느냐.’ 와 같은 신랄한 비판을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개가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가게되었다. 2년이라는 대학생활동안 나의 행위예술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해대던 그들의 가슴에 ‘너는 여전히 개야’ 라는 소쿠리할아버지가 와도 반박하지 못할 진리만을 남겨둔 채로. 

  반쯤은 삭발 비슷한 머리를 하고 터벅터벅 빈 걸음으로 얼마간의 행위예술 공연을 마친 뒤 마지막 사회에서의 밤을 보내는 나에게, 언젠가 내가 공모전에 낙방하고 무릎을 꿇고앉아 미친 듯이 울었을 때 내 옆에서 같이 울어주던 N양이 나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군대에 가서 니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 좀 유산소 운동으로 활활 태워버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게 몸과 마음에 근육 좀 단단히 만들어서 와.”

멋진 인사였다.

4.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곳에서 지내게 된 일년 몇 개월의 시간동안, 난 별반 달라진게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변한게 없다. 난 여전히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놈이고, 술은 어찌되었던 정신을 잃을 때 까지 마셔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내 주위에 같은 출발선상에서 “요이! 땅!” 하고 같이 출발했던 녀석들은 모두다 저 앞으로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는데 나는 알코올에 취해 아직도 출발선 근처에서 비틀비틀거리며 저주나 퍼붓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세상, 공평한게 하나도 없어. 왜 나한테는 좋은 환경과 능력을 주지 않는거야?’

N양은 나에게 몸과 마음의 근육을 멋지게 만들어서 만나자고 말했지만 오히려 나는 쓸데없는 비곗덩어리만 피둥피둥 붙은 채 더욱더 퇴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완전히 죽어보기로. 그리고 완전히 다시 태어나 보기로. 이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는 완전한 죽음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개’ 라고 생각하던, 고삐풀린 망아지라고 생각하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건, 그들의 기억속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0.000000000000000001g이 될 때까지(이미 그런지도 모른다) 완전히 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안에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사유를 하고, 내 자신을 잘게 쪼개는 세포분열을 하는 것이다. 나를 지나쳐 빠르게 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녀석들 때문에 조마조마해 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길로 어떠한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지, 어떠한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천천히는 가되 어디로 가는 지는 잊지 않으면서. 아무래도 너무 빨리달려 자기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막상 결승점에 도착한 후에야 ‘여기가 아닌게벼?’ 하는 것보다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천천히 가는게 더 나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완전한 죽음 속에서 세포분열 거친 후에 다시 태어나 민간인으로써 저 밖의 땅을 밟는 날, 조금 더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넌 역시 개 정도 밖에 안돼’ ‘니가 뭘 한다구? 웃기지마. 폐인이나 안돼면 다행이지!’ 라고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씨익, 웃어줄 것이다. 그러다 나를 앞으로 가로질러 한참을 달려나가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결승선에 도착한 후에도 갈피를 잡지 못해 ‘워메! 여기가 워디랴?’ 하게 될 때, 나는 말해줄 것이다.

‘비틀거려보지 않고, 넘어져보지 않았으니 뭘 알 턱이 있나?’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6:12 

 

상병 박찬걸 
  어딜가나 자기관리는 정말 중요하죠. 
슬슬 절실해져 가고 있네요. 사회에서 뭘 할지에 대한 준비들이... 2008-08-11
10:52:36
  

 

병장 이태형 
  아주 잘 읽었습니다. 
제 기준으로 봐도 '개'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행동을 많이 하셨네요. 
전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이었으니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변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쉬운데도 어렵죠. 
생각도 마찬가지고. 
굳이 죽은 다음에 환생해서 출발점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어쨌든 자신이 걸어온 길이니까요, 지울 순 없죠) 수식님 나름대로의 방식일테니, 응원만 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파이팅! 2008-08-11
11:02:17
  

 

병장 노요셉 
  저도 내면 어딘가에는 완전한 죽음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핏 공감이 되는 글이군요, 잘읽엇습니다.. 2008-08-11
11:12:14
  

 

상병 강수식 
  병장 노요셉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전한 죽음이란 어찌보면 
매력적인 것일수도 있죠 (웃음) 막상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또 생각처럼 잘 안될수도 있을꺼란 생각도 약간 듭니다(웃음) 

병장 이태형 // 예, 전 뭐(웃음) 착실한 학생이랑은 거리가 멀었죠. 개는 개였지만 
뭐, 그래도 나름대로 익살과 재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돌을 던진건 
등록금에 대한 시위정도(응?) 하하. 
근데 중요한건 저처럼 개짓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죠. 
어찌되었건 무엇에서든지 사람은 배우는 법이니까요. 
나이 삼사십먹고 저렇게 개짓할 순 없잖아요. 젊은나이에 한 때 객기를 부릴 수 있었다는것 또 그러한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웃을 수 있잖아요(웃음) 
다만 깨달은게 있다면, 이제 객기는 그만 부릴 때가 되었고 뭔가 좀 다른 방향으로 
나야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한거죠. 비틀거렸던 만큼 앞으로 더 잘나갈 수 
있을꺼라고 자기위안이나마 해봅니다.(웃음) 
아무튼 응원 감사합니다!(웃음) 2008-08-11
12:55:37
  

 

병장 황인준 
  공감이 가는 글이군요. 
물론 술과 관련된 부분은 아니고요, 
그 위에 사람들의 관심에 관해서요. 
글을 읽으면서 동질감을 크게 느꼈답니다(웃음). 

그리고 마지막 한 구절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그래요, 지금은 한 번도 안 넘어지고 달리기보다는, 
무릎까져가면서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게 더 좋은 시기죠. 
열심히 넘어지면서 열심히 달려보자구요(웃음). 2008-08-11
13:31:27
  

 

병장 이동석 
  저는 몇번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살아있기는 했는지, 죽었는데 왜 또 살아난건지 뭐 이런건 안중에도 없던 차가울것도 냉정할것도 없는 세상과 맨살로 접촉하였지요. 

그건 그렇고 전 아무리 술에 취해도 물리적인 행동은 안하는줄 알았더니 
(단 개소리가 맥주병을 까서 털어넣어주고 싶을정도로 늘어난다곤 하더이다) 

술 만 먹고 일어나면 가끔씩 
주변에는 있었으나 가깝지도 아니하였고 욕망하지도 아니하였던 사람과 동침을 하고 일어나는 크리티컬 블랙 아웃이 터져서 
(거으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온 기이한 인연되시것습니다) 

16년 동안 한사람만 바라보셨던 지고지순의 달인 
난봉 이동슥 선생 받고 

16년 동안 잠자리를 한번도 바꾸지 않으셨던 
모텔 이동슥 선생 더 
로 불립니다. 

얼마전부턴 
16년 동안 인종주의 반대를 외쳐오신 
백마 이동슥 선생까지 추가. 

...어쨌거나 술은 적당히 먹어야쓰죠. 
아마 제가 술과 담배를 안 먹고 안 피고 모았더라면 
렉서스를 뽑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08-11
17:34:36
 

 

병장 이태형 
  부가설명을 안했더니 왠지 비난조로 들리네요, 제가 수식님께 했던 덧글 말이에요. 

전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이었으니까요. 이후에 달릴 말이 생략되었네요. 
쓰다보니까 타이핑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해서, 삼첨포로 빠져버린 결과지요. 

그러니까, 말 잘 듣는 착실하고 수동적인 학생이었고, 그 나이에 겪어보고 싶은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몹시 방황했었던게죠. 방황도 고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하게. 
전 차라리 수식님이 부럽습니다. 그런 일을 경험하기도 했고, 그를 통해서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셨으니까요. 남자다움에 대한 동경이랄까(수식님이 하셨던 것이 과연 진정으로 남자다움인가에 대한 논쟁은 패스) 

좌우간 제 덧글이 너무 공격적으로 들렸다고 판단되어 변명해봅니다. 
더불어, 작문 솜씨가 무척 탐납니다(웃음) 
저도 언젠가는 남들이 감탄하며 공감해할만한 글을..! 2008-08-11
18:01:40
  

 

병장 박종석 
  치킨에 맥주가 땡기는 여름입니다 (에휴) 2008-08-12
11:46:48
  

 

이병 김진성 
  오히려 나는 쓸데없는 비곗덩어리만 피둥피둥 붙은 채 더욱더 퇴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부분이 심하게 공감되는 군요 2008-10-24
10: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