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시월의 어느 오후, 담배, 그리고 자화상  
상병 강수식   2008-10-20 22:01:19, 조회: 238, 추천:0 


애써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해보지만 끝내 어떤것도 찾지를 못한 나는 또 다시 담배곽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하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며 문득 생각해본다.
한 시인은 스물 세 해 동안 자신을 키운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워온 팔 할은 담배연기처럼 길게 내맘沮 
길고 허연 한숨들은 아닐는지.


그래 나에게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한숨처럼 내맘沮 눅눅한 연기가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지나온 시간의 이랑을 따라 자욱하게 내려앉은 한숨과 뜨거운 열정을 잃어버린채 바닥으로 흩날리는 시커먼 담뱃재와 같은.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해 허연 연기를 내뱉어보지만 결국 까맣게 타들어간 가슴만이 담뱃재가 되어 바닥으로 하염없이 
툭툭 떨어졌던 삶을 나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스물 세 번째 해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또 생각해본다. 자신을 키운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했던 그 시인은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다고만 했다. 담배연기처럼 
이어진 내 스물 세 해도 돌이켜보면 마냥 부끄럽고 애달프기만 하다.

무엇을 위해 나는 살아왔던가.
무엇 때문에 내 가슴은 
뜨거운 불꽃을 잃은 채 땅바닥을 향해 흩날리는 죽음같은 재가 되었던가.




알 수 없다.




피식,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에 쥔 담배를 비벼끈다. 어느새 맞잡을 수 없는 기억들이 
노을이 되어 내얼굴을 물들이다가 사라지며, 저물어가는 스물 세 번째 해를 이야기하듯 짙고 푸르르고 쓸쓸한 해저물녘 어스름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삶의 고난을 맛보지 못한 허옇고 가느다란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고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내 자화상이 그 담배연기와 함께 피어오른다.



쓸쓸하게 휘어진 두 팔을 고단하게 내 뻗은 나무들의 어둑한 실루엣 사이로 피어오르는 그 자화상은 길고 얇은 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아마도 그렇게 흘러가다가 또 다른 먼 미래의 언젠가 스물 세 번재 해를 맞이하는 나와 손을 맞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언제나 스물 세 번째 해를 살 것이므로.


지금처럼 뒤돌아보며 부끄러워하고 다가올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기만 한 또 다른 스물 세 번째 해를 나는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빨갛게 타들어가도록 치열하게 싸우다가 가슴속에 깊게 패이게 될 상처만큼 짧아져 불꽃을 잃은 채 한 없이 바닥을 향해 흩날리는, 한 때의 열정을 잃어버린 허연 재 밖에 남지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덧 두 번째 담배도 거의 필터까지 타들어가 있었다. 나는 담배를 입술로 가져가 힘껏 폐속으로 연기를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꿈도, 사랑도, 열정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내가 누구일까 하는 자조섞인 물음까지도 담배연기와 함께 길게 내뿜어버렸다. 하늘을 뒤덮은 묵직한 구름위로 푸른 잉크가 두껍게 펴저가는 가운데 내가 내뱉은 가느다란 담배연기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시월의 어느 오후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6:25 

 

상병 김무준 
  아... 담배 줄여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2008-10-21
00:27:19
  

 

상병 양순호 
  본격 금연 홍보 영화 콘스탄틴을 계속해서 보시는겁니다. 
그럼 끊을 수 있을..아니 줄일 수 있을지도요. (아마도) 2008-10-21
05:19:56
  

 

상병 이우중 
  뜬금없지만 
저는 이상하게 가을에는 윤동주, 겨울에는 기형도 
술에 취했을 땐 이상의 시를 찾게 되더라고요. 

나만 그런가.. 2008-10-21
07:51:00
  

 

상병 강수식 
  예. 담배는 줄여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폐암걸릴지도 몰라요(웃음) 

그런데 순호님 
콘스타틴은 마지막에 악마가 살려주지 않나요? 
하하. 
저는 그걸보고 담배는 악마의 기호품이니 
담배를 펴서 암에 걸리면 악마가 살려줄꺼야, 란 생각이.. 

죄송합니다. 
때리진 말아주세요(땀땀) 2008-10-21
09:42:40
  

 

상병 강수식 
  윤동주 기형도 이상 
다 멋진 시인이죠. 

저는 정승호 시인의 시가.. 

그런데 기형도 시인의 시는 
왠지 모르게 가을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2008-10-21
09:43:53
  

 

병장 황인준 
  훗. 이거이거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인데요? 
저도 시름을 담배연기와 함께 하늘로...(땀땀). 2008-10-21
09:49:59
  

 

병장 이동석 
  전 담배 끊었습니다. 훗, 벌써 
세달은 된줄 알았더니, 꼴랑 보름되었군요. 쩝. 하루하루가 분노에 가득차있어요. 크크. 2008-10-21
12:55:24
 

 

병장 이현승 
  수식님 담배 피셨군요. 실망이에요. 하하. 

담배를 펴서 이런 멋진 표현력이 나온다면, 저도 한대쯤은 할수 있는 청년이 되고 싶네요. 2008-10-23
14:4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