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슬픔예찬  
상병 김무준   2009-01-04 00:30:10, 조회: 197, 추천:1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지나간 사랑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말하면, 미쳤다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다들 살아가며 자신의 옆에 있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 사랑을 무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사랑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한다.

어쩌면, 내 사랑의 방식은 정신적 외상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한다. 부성애가 강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상처 입은 여인네들을 잘 감싸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아가씨가 많은지도. 나는 윤종신의 노래처럼 그늘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그늘 같은 사람. 그렇게 살아왔다고 믿는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내게 기대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고, 내 몸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상처 없이 깨끗하고 맑게 살아가는 여인들에게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나보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인네를 보면 가슴이 떨리는 짐승이다.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이상하게도 눈물 흘리는 여자가 좋았다. 질질 짜는 아가씨는 싫다. 조용히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눈물 흘리는 여인네가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나 그늘처럼 살고자 했던 나도 치유해주지 못한 여인이 있다. 내 트라우마는 거기서 시작했는지도. 그녀는 아마도 나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감정에 못 이겨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때문에 내 사랑은 짝사랑이 되었다. 지금 내가 사랑에 아파하고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녀 때문일지도. 미처 다 주지 못한 이 넘치는 사랑을 타인에게 나누어주고 싶은지도.

이유야 어찌되었든. 지금 내 옆에 있는 아가씨 몰래 만나는 여인네들이 꽤 있다. 대부분 나를 거쳐 간 여인네들은 몇 년씩 연애를 하며 한 사람과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딸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랄까. 아쉽지만 뿌듯한 이 기분에 이 짓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맹세컨대 수많은 여인을 만나왔지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여인네들은 모두 떠나보냈고, 그녀들의 마음을 쓸데없이 흔들었던 적은 없다. 이건 나만의 룰이었고, 규칙이었다. 그래서 내 옆에 누군가 있을 때에도, 여인네들을 만났다. 이런 내 방식을 이해해주는 마음 넓은 여인네들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아가씨를 만난다.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찾는 이 아가씨도 그런 사람이다. 상처가 무척이나 많기에, 내가 그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다는 건방진 마음으로 아가씨를 만나고 있다. 물론 서울에는 나를 건방진 오리라 부르며 쿡쿡대는 애인이 있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기에. 바다를 좋아하는 아가씨를 만난다.

이런 만남의 과정에서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존재한다. 화학시간의 질량보존의 법칙이랄까. 아가씨의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나도 아파야한다. 아픔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처는 치유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과정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나에게 기대온 여인을 뿌리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만난다.

물론, 애인에게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대놓고 이러쿵저러쿵 해서 이런 방식으로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일일이 설명했다면 아마 내 강냉이는 남아나지 않았을 게다. 눈치는 다들 채고 있겠지만. 이런 나도 이해해주는 쿨한 여인은 쉽사리 만나기가 힘들다. 때문에 이번에도 바다로 향했다. 아가씨를 만났다. 여전히 상처투성이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르고. 달래고. 챙기고. 내 마음 한 칸을 내어주었다. 그만큼 슬프고 아프다. 작년쯤이었던가. 이제는 내가 없어도 되리라 믿고 떠나보내었더니, 왠 그지 깽깽이보다도 못한 놈을 만나서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다시 나를 찾았다. 어쩌겠는가. 업이라면 업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나는 다애주의자다. 어떻게 사람이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가. 다른 이에게는 내가 장애인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장애인이다. 무튼. 나는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많이 아프다. 아가씨는 나를 만나면서도 나쁜 놈을 떠올렸고, 보고 싶어 했다. 하아. 나는 아가씨에게 내 손을 내어주고, 함께 소소한 일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니까. 나를 만나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함께하며 아픔을 잊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왜 그렇게 사랑에 목마른 짐승마냥 사랑을 퍼주고 다니냐고? 사랑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거다.

또 하나의 룰이 있다. 나는 절대 내 아픔을 그녀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늘은 그늘이어야 한다. 쉬어가는 사람이 나무 때문에 아프고 힘들면 쉬어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외롭다. 수많은 여인네들을 만나고, 사랑하지만 나는 언제나 외롭다. 권상우는 사랑이 돌아오는 거라 절규했을지 몰라도, 부메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만큼 아프다. 나도 상처받는다.

그래도 사랑한다. 왜? 나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싫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지독한 패러독스의 연속이지만. 나는 사랑한다. 내 사랑의 방식이, 돌이켜보면 아픔을 치유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그 여인네에 대한 트라우마일지 몰라도. 이미 내 방식은 내 일부가 되어버렸다. 담배를 피며 부산에 있을 아가씨를 생각했다. 아가씨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 아니겠지. 다시 아프다.

그래도 사랑한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언제쯤 내 상처가 아물지 모르겠다. 나는 이 아픔의 과정에서 행복을 얻는다. 나는 아프지만 행복하다. 언젠가 이런 나를 치유해줄 누군가를 만나면. 이 긴 연애도 끝이 나겠지만. 아직은 아닌가보다. 나는 그래서 사랑한다. 숱한 여인네들을 사랑해왔고, 또 사랑한다. 아가씨가 보고 싶다. 아마도. 다음에도 나는 바다로 향할 것이고, 그녀는 나와 바다를 만나러 돌아오겠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혹은 평생이 걸릴지라도. 나는 아마 그 아가씨를 또 만날 것이다. 그녀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내 아픔이 멎을 때 까지.

우습지만 나는 외로움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아. 가야겠다. 사랑하러.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0:49 

 

병장 박장욱 
  으아 마지막이 정말 가슴을 후벼 파네요.. 

사랑하러... 2009-01-04
00:39:52
  

 

상병 김무준 
  사랑예찬으로 제목을 정하려다 던져놓고 읽어보니 이건 사랑이라기 보다 슬픔이 어울리겠다 싶어 제목을 급 변경. 아, 역시 나는야 그지 깽깽이. 2009-01-04
00:40:42
  

 

병장 박장욱 
  아 외로움이 후벼파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글은 

정말 제 가슴의 확인사살이군요.. 

그러므로 추천 ! 2009-01-04
00:47:49
  

 

병장 이동석 
  저도 난독증인지 오랜만에 이면지에다 출력해가면서 글을 읽고 있습니다. 죽갔군요. 글도 못읽고 글도 못쓰고. 

술때문인가. 2009-01-04
20:52:09
 

 

병장 정병훈 
  무준씨 다운게 뭔지 모르지만, 일전에 봐 왔던 글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글이 자주 보이는군요. 일전의 키워드는 글이었다면 요샌 사랑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요 몇일 계속적으로 사랑에 대한 글을 뽑고 있군요. 2009-01-06
10:06:27
  

 

상병 김용준 
  우리 무준씨 슬픔예찬이라...했는데 전 사랑으로 볼래요. 낄낄낄. 아무튼 잘 보고 갑니다. 

Ps. 요즘 사람들이 사랑이야기를 더 자주 올리는 것 같아요. 사랑이 필요해서일까요? 
아무튼 무준씨 실제 사랑얘기나 들어보고 싶네요.(웃음) 중얼중얼. 2009-01-06
15:25:38
  

 

상병 김무준 
  별로 재미 없어요. 2009-01-06
18:33:58
  

 

상병 김용준 
  음...재미 없어도 이야기 해주면 안되요? 흐흐흐. 2009-01-07
1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