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스물여섯을 꿈꾸며
병장 김민규 [Homepage] 2008-12-29 23:44:34, 조회: 289, 추천:0
스물여섯을 꿈꾼다. 너와 내가 맞이할 세상에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할 그 날을.
아직 한 번도 네게 좋아한다는 소박한 말 한마디 해 본 적이 없으나 내가 너를 볼 때에, 네가 나를 볼 때에 그 눈길은 유심했다. 관심의 소심한 표현은 休家때마다의 만남이 되었고 설렘은 다른 친구를 끼우는 것으로 다스렸었다.
울타리 안으로 돌아와 저 국도위로 달려오는 서울의 기별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느끼는 나의 이 조급한 마음을 숨기고자 열흘에 한 번 전화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세상살이에 바빴던 너는 그나마 나의 기별을 놓치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 다음날 저녁에나 연결이 되었을 때, 거진 반쯤 울며 너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런 자잘한 일들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속에 정서적 거리감을 압도하는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알았다. 내게 다가오는 너의 느낌이 예사롭지 않음을,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임을 진작 느껴버렸고, 그래서 익숙한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음에도 너와의 대화에 나의 시선은 고정되었다. 신촌 한켠에서의 또래모임 자리가 파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서로 제 할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어 뭐하냐는 무심한 문자로 네게 다가갔을 때에, 그 어색한 사이임에도 우리는 다시 만나 함께 전철에 올랐다. 각자의 집으로 가는 중간에는 갈림길이 있어 어디선가 나는 먼저 내려야만 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아쉬워 나는 먼 길을 돌아갔다. 그 때 너는 알아챘을까. 유난히도 반짝이던 너의 눈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너는 많이 돌아온 사람이었다. 대학 이 년을 마치고 이곳에 들어와 이 년을 뱅뱅 돌고 있는 내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 년 회사를 다니다가 반수를 해 들어왔다며 동갑내기 07학번으로 자신을 소개하던 너는, 시차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기同期였다. 내가 이곳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가면 너와 같은 학기를 다니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경력은 너의 일렀던 선택에 기인했다. 중학 시절, 상위 이십퍼센트 이내의 성적을 지녔지만 서울여상을 택했고, 고삼 실습기에 나갔던 대기업 계열사에 곧바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 지금의 너에게는 후회로 남았다. 세상에 나가보니 실업계 출신 비정규직은 그저 거들어주는 존재일 뿐이었고 그런 현실은 네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주었던 것이다.
세상에 분노하는 이는 많지만 진정 분노해야 할 때 그것을 폭발시킬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일단 한번 짜여진 틀 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꿈꾼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다. 너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했고, 던져야 할 때 모든 것을 던져 세상과 맞섰다. 내게 있어서 너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미 한 번 넘어선, 스스로를 증명한 젊은 성인成人이었다.
바깥소식은 눅눅하고 어렵기만 하지만, 너와 내가 알았던 두 경제학과 선배 커플들의 이야기는 내게 희망을 주었다. 너와 나처럼 동아리에서 만나 함께 지내며 알아온 사이였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공부했지만 금융감독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스터디를 하고 있었기에 모두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다 남자 선배가 시험에 붙고, 여자 선배도 한 두 학기 후에 국내 1위라는 모 증권사에 들어가게 되고, 어느 날 보니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이 날아들었더란다. 아버지가 주셨던 결혼자금 이천만원을 주식에 넣어둔 지 육 개월 만에 두 배 반으로 불린 선배는, 맞벌이의 힘을 빌려 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다른 한 커플은 조금은 곡절이 많았는데, 같은 학번의 둘이 2학년일 때에 신호위반을 해버렸던 탓이었다. 배는 불러왔고, 딸은 집에서 쫓겨났다. 게다가 아들은 군 미필자였다. 벼랑 끝에 몰린 듯 했으나 현명한 시아버지가 나섰다. 일단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며느리를 딸로 삼아 등록금을 대주며 학교를 마치게 했다. 어린 출산이었기에 건강한 아들이 나왔고, 졸업을 한 며느리는 굴지의 대기업 계열 증권사에 취직을 했다. 그사이 나온 아들은 남은 2년을 공부해서 신이 내렸다는 그 국책은행에 이번에 합격을 했고,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아이를 일찍 기른 것이 고마운 일로 여겨지며, 그들의 한 발 빠른 행보가 귀감으로까지 회자된다는 것이었다.
경영학과의 나와, 경제학과의 너를 그 위에 겹쳐서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 것일까. 면회랍시고 오랜만에 찾아온 어머니께 나, 스물여섯에 갈 거라고, 근데 나가서 집 한 칸 바로 마련할 형편은 안 되고, 아이 문제도 그렇고, 딱 오년만 맞벌이해서 이십 평짜리 아파트만 하나 구하면 나갈테니까, 그때까지는 빌 붙을 거라고, 농 섞인 진담을 하며 선배 커플들의 경우를 생각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네가 아니라 화려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여 들어왔지만, 세상에 제정신 갖고 사는 사람 몇 없다는 나의 까탈스런 현실인식은,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순수가 남아있을 때에, 뜻과 생각과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라면, 잡는 것이 백번 타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굳어지게끔 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젊은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할 마땅한 분량인 것이다.
너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리고 너를 있게 한 그 우주적 존재가 너를 사랑하듯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키르키즈스탄의 비스켓(비슈케크가 맞는 표기라는데,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전화라는 방법으로 그것을 알아듣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나는 이 발음을 고집하고 있다)에서 이 한겨울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보며, 네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그 선함을 더욱 많이 누리며 나누고 싶다고 말하는 네게 구만 칠천 오백원짜리 한 달을 사는 내 월급을 나누어 주면서도 나는 그저 행복했다.
고작 이십 오일간의 단절일테지만, 떠나는 날이 다가오며 너의 목소리는 내게 더욱 간절해졌고, 다소간의 조급함을 보이기를 감수하고서라도, 일요일에, 그러나 닿지 않아 다시 월요일에. 금요일에 그러나 닿지 않아 다시 토요일에. 그리고 오늘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 네게 전화를 했다. 가면 많이 추울텐데, 남방의 기운이 닿지 않는 이곳 철원도 고작 영하 십도 안팎인데, 그곳의 일상 온도는 영하 이십도라는데, 귀도리라도 챙겼는지, 두툼한 장갑에는 생각이 미쳤는지, 이리저리 신경쓰이는 것이 왜이리 많았던 것일까.
비자의 문제가 쉽게 풀리고, 골프장갑은 까먹고 두고 왔지만 큰 비니를 챙겼으며, 걱정했던 수화물 무게제한 - 현지에 계신 분께 이런저런 물품들을 챙겨 보내드리자면 1인당 20Kg의 제한으로는 어림도 없다 - 이 팀 전체로 따져서 10Kg가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마음이 푸근했다. 사실은 내게도 전력前歷이 있어서, 같은 마음으로 다른 지역에서 몇 달을 보냈던, 날씨는 추웠지만 따뜻했던 당시의 기억이 입혀지면서, 우리가 같은 가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높은 가치를 더욱 알아가고자 애쓰는 너의 모습에 지금의 내가 너무도 못 미쳐 안타까운 좌절감이 밀려왔지만, 그만큼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자극하고 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스럽고, 그래서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먹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1월의 삼분의 이가 지나고 나면 너는 돌아올 것이고, 즈음 해서 나도 면접을 이유로 서울에 가게 될 것이고, 그 때는 하루를 비워 내어 주겠다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다시금 나눌 수 있게 될 것이지만, 비행기가 뜬다는 오후 두 시가 지나고 꺼져있을 너의 휴대폰을 짐작하며 든 한켠의 아쉬움과 공허함은 어찌 메울 방법이 없었다. 그것이 어느새 내게 자리잡아버린 너의 존재감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너를 생각하며, 너의 가는 길을 빌어주리라, 다시금 마음먹는다.
이런 마음으로 미국의 ex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찜찜하고 미안해서 채널을 닫아버린 지 그새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직감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ex는 소식없는 나를 추궁하며 이러저런 방법으로 친구를 잃는 서운함을 알려 왔다. 아버지는 그를 가리켜 계륵이라 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중성적 관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방적 소통의 차단 역시도 8년차 친구에게 못할 짓인 것 같아 약해진 마음으로 전화를 하고 말았다.
왜 일들은 터질 때 연관되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짐짓 마음을 누르고 평온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토록 괴로울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마음 한켠에는 그와의 기억들을 남겨놓고 미련을 갖고 있는 스스로를 보는 것이 참혹했다. 내년에 미국에 가게 되면, 아마도 여간해서는 그가 있는 CA로 가게 될 터인데, 어떻게 내 입장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슬러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33분 남았던 국제전화카드가 이런저런 평범한 이야기들로 거의 동이 난 때에야 비로소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니 목소리를 듣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전에는 몰랐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할 수가 없다고, 잔액부족 비프음이 울려 이제 삼십초 안에 전화는 끊어질텐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그가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에 전화는 차갑게 끊어지고 말았다.
스스로의 나약함과 모순을 보아야만 하는 것은 참 서글프지만 그렇기에 자라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ex와 그런 소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이제는 용납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선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숨기고 있는 나의 모습들만큼이나 너를 기만하는 일이 아닐까. 마음은 복잡한데 머리는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만의 밀실에서 끌어낼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관계론이라 욕을 먹어도 좋다. 그만큼 너를 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신의를 보일 수 있다면, 그래서 너의 믿음을 안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세워온 모든 가정들과 믿음들이 무너지고 상호적 관계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나만의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일 것이다. 가장 낮게, 가장 솔직하게,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너에게 보여주며 포장없는 현재를 설득하고 싶다. 나를 믿어도 좋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때라야만 그 모든 것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진솔함 없이 쉽게 세워진다 할지라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만큼 나는 곤고한 자로되 밑바닥의 내 모습을 감추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삶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약속하기에 내가 한없이 부족하고 딱하기 짝이 없으나,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네가 이런 나의 진심을 깨달아준다면, 그 진정성만은 부정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게 잠시간 열병처럼 도지는 무엇이고 싶지 않다. 빨리 달아오르는 것은 빨리 식기 마련이다. 고진하게 그러나 홀로 익어 미처 닿기도 전에 타버리지는 않게,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때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너에게 바라는 유일한 일이다. 더 깊이 사랑하며, 더 많이 생각하며, 내일을 꿈꾸고 너를 그린다. 무한한 인내와 포용으로 이런 나를 감싸줄 수 있기를, 그런 너의 호의를 구하면서.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너에게 줄 수 있을 한 가지 약속이라 말하는 것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2:38
병장 김동욱
'유난히도 반짝이던 너의 눈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좋은데요? 그리고 이런 댓글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경제학과 커플이야기에서 덜덜하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금감원이랑 한은(산은)이라. 털썩
이래저래 쓸쓸하신 민규님을 위로해주실 두환님도 바깥공기를 맡고 있으니 한층 그 외로움이 커가는거 아닐까, 란 정신없는 생각이 듭니다. 네, 잠이 필요해요. 2008-12-30
00:52:08
병장 김민규
밤에 방 온도가 14도까지 떨어져서, 막판에는 뒤척이다 일어났더니 더 피곤한 오늘입니다. 두환님은 이제 그냥 없는 사람 치려구요, 에잇, 안그러면 부러운 마음만 커져서. 그가 책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연민하며 스스로를 다스려보렵니다. 허허허
전해들은바로는 산은이랬어요. 덜덜덜. 꿈은 하늘이로되 현실은 궁인이군요. 2008-12-30
09:29:28
병장 정병훈
이거 일단 곱씹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달려줘요.(웃음) 어젯밤 다들 달렸겠군요.
저는 1월 1일날 나갑니다. 2008-12-30
09:53:20
상병 정근영
아아
그녀와 헤어진 지금, 왠지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군요.
왜 저는 솔직하지 못했을까요.
2년을 넘게 사귄 그녀가, 그저께 그러더군요.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것 같지 않다고,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고. 그래서, 더는 못하겠다고. 그 어떤 친한 친구보다도 가까이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그 말이 슬프게 공명하며 마음을 아릿하게 합니다. 스물 두해가 지난 지금까지, 전 남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법을 몰랐나봅니다.
영원이라는 말의 부질없음을 알기에, 변치않는 사랑을 약속하지는 못하겠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윈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는데, 거기에서 그녀는 더는 다가갈 수 없는 벽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안되겠습니다. 편지라도 한 통 써야겠어요. 2008-12-30
10:05:17
병장 김민규
괜히 생각만 많아지는 오늘입니다. 쩝. 변치 않는 것이 있겠나마는, 닳을 것이 두려워 새 신을 집에만 모셔두고 맨발로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닐지요. 변덕스러운 저 자신을 알기에 겁은 나지만. 2008-12-30
13:53:53
병장 정병훈
민규형, 출판 할래요?
풉- 요새 시간 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또 뽑아 내는군요.
저는 보통 이런 글을 쓸때 없는 일을 상상해서 쓰는데, 민규씨는 있는 사실을 맛깔나게 쓰는게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일전에도 말씀 드렸듯, 제 키워드는 '이십대'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볼때 마다 엮어서 한권의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십대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생각하는 일이라, 좀 팔리지도 않을까요? 풉- 디자인만 좀 깔끔하게.... 네. 조용히!
어째껀, 이십대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시기인것 같습니다. 결혼 문제도 있지만, 이성적인 문제나, 성적인 문제 까지도 개방적이며, 모든 것은 개인의 행동과 생각에 따라 결과물을 얻기 때문에 모두들 고민하고 힘들어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단 글 쓰는 입장에서의 시선은 어찌보면 대단히 소소한 얘기고, 진부한 사랑 얘기일 수도 있는 일을 이정도로 풀어 쓸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정도는 써줘야지... 여타 다른 사랑에 관한 글은 이제 보지 않습니다. 느끼기에 거기서 거기거든요.(논쟁 즐) 아, 이건 좀 위험한 얘기니까 생략.
이런 글 환영입니다. 하필 제가 쓴 글 위에 위치해서 제 글은...
어째뜬. 결국. 경제학과 커플은 위대하군요. 털썩. 혹시 이 글에 작가가 숨겨 놓은 장치가 있다면, 귀뜸해주세요. 요샌 이걸 아는 재미에 사는지라, 2008-12-30
19:56:42
병장 김민규
아이구, 쑥스럽게 갑자기 웬 추천사를. 허허 무안합니다.
길게 써놓고 뒤에서 짧은 댓글로 부연하는건 답지 못한 태도인 것 같아서, 그냥 글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딱히 숨겨놓았다고 할만한 것도 없고, 그럴만한 실력도 안 되고요. 그렇지만 댓글이 좀 고팠던건 맞구요. (웃음)
고진하다. 국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옛 표현이라는데, '잔꾀를 모르고 우직하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다만 인터넷 사전은 이 단어를 두고 '좋은 뜻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나쁜 뜻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한답니다. 요새야 약삭빠르고 영악한 것이 승리하는 시대니까.
세태는 그러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것을 지키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 지금의 저에게는 참 필요한 일인 듯 합니다. 2008-12-30
22:36:22
병장 정병훈
음, 시리즈물인데요. 시간순으로 따지면, 제 글 민규씨글 요셉씨글.
고진하다가 순 우리나라 말인가요? 국어사전에 안나오네요. 고진하다를 설명하신 이유는 혹시 단어 뜻이 어려워서 설명 해 주신것인지 아니면 민규씨가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심어 놓은 단어라서, 핵심적인 단어라서 설명을 해주시는 건지 궁금하군요. 제가 숨겨놓은 장치 얘기해달라고 해서 알려주신건지. 오호.
어찌 되었건 멋지지만 이상 야리꾸리한 단어 하나 들고 퇴장합니다. 총총총- 2008-12-31
16: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