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송기화 전집  
병장 김무준   2009-05-03 14:31:52, 조회: 175, 추천:1 

심심했다. 칼럼을 마무리하려 관련서적을 찾아도 대체 어딜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어 펴놓은 노트를 접고 말았다. 미루고 미뤘던 잡지 스크랩도 다 끝냈겠다, 공모전 네 곳에 텍스트를 보낸 데다 당분간 공모전도 없고,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역인사나 미리 써둘까 하다 하품을 찍찍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송기화의 텍스트가 생각났다.

깽깽이에 필적하는 다작의 달인. 물론 깽깽이보다는 더 적은 텍스트를 썼다 해도 단편만 놓고 보면 깽깽이보다 훨씬 손가락을 많이 놀린 양반이다. 깽깽이와 비슷한 시기인 작년 구월 중순부터 책마을에 출몰하여 특유의 상상력과 반전, 사고의 전환을 늘어놓는 글쟁이.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깽깽이는 송기화의 텍스트를 그다지 읽어보지 않았다. 시간이나 때울 겸 해서 일상이야기를 제외한 송기화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보았다.

송기화가 본격적으로 책마을에 굴러다닌 시월 말부터 십이월까지의 텍스트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큰 키워드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다. <공룡>, <재판>, <뻐꾸기>, <전염병>, <응답>, <선택>, <택시>, <인연>, <날개>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인류의 이기적 특질을 늘어놓는다. 직접적으로 인류가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환경을 파괴했고 그에 따른 단죄를 받고야 말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전염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텍스트 내에서 인류는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다 광합성이 가능해지는 전염병에 걸린다. 북반구의 인류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다 마침내 버섯이 되고 남반구의 인류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택시에 탄 생물학자는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우리의 세계로 방문한다. <뻐꾸기>에서도 뻐꾸기는 인간의 환경파괴를 보고 폭력적 특성을 찾아 새끼뻐꾸기에게 강력한 속성을 부여하고자 우리 세계에 자신의 새끼를 놓아둔다. 집에 간 정영목이 생태에 관심을 갖고 환경운동에 힘쓰듯 송기화는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송기화는 다양한 텍스트로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할 결과를 표현하고 경고한다.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지듯. 전염병으로 인간이 종말을 맞이하듯. 사고의 전환과 이해가 없는 발전은 파괴를 낳을 뿐이라고.

작년에 쓴 송기화의 텍스트는 다분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다. 톡톡 튀는 발상의 전환과 특유의 상상력으로 일반적 현상이나 기존의 가치통념을 뒤집어 놓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이를 여성적이면서도 깔끔하게 텍스트로 그려내지만 메시지 자체는 암울하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상실이다. <선택>에서 보여 지듯 송기화가 생각하는 인간은 세계를 깨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변화의 상실이다. <인연>에서의 남자는 사랑을 위해 여자를 구속하며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해의 상실이다. <눈물받이>의 주인공은 눈물마저 잃는다. 텍스트 속 인간은 적지 않은 것들을 잃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룡>부터 <날개>로 이어지는 작년의 텍스트가 생산되기 직전에 연재물 <314씨 시리즈>가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는 일본의 <사신 치바>와 비슷한 형태의 장편으로, 314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사신(의 일종)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후세계와 윤회를 소재로 다른 세계를 위트 있게 묘사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삶과 개인의 존재, 그리고 삶의 본질에 자신의 생각을 섞어놓는다. 텍스트의 메시지는 ‘현재를 현명하게 소비하고 더 나은 삶을 살라’다. <314씨 시리즈>가 시월 이십삼일에 끝났고, 이십사일부터 <공룡>을 비롯한 많은 텍스트가 생산되었다는 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십이월 삼십일부터 일월 십이일에 걸쳐 작성된 <대장장이>부터 다시 키워드는 바뀐다. 텍스트를 설명하려면 이와 연계된 <칼>을 언급해야한다. 이영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송기화는 한국적인 모습으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상을 실현시키는 칼과 칼을 만들어주는 대장장이, 그리고 그 칼을 가진 이들의 에피소드를 엮은 텍스트에서 송기화는 희망과 변화, 투쟁이라는 진보적 키워드를 집어넣었다. 이전의 텍스트가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판에서 머물렀다면 한걸음 나아가 변화를 문학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태도도 변화를 맞는다. 과거의 텍스트들이 단순한 상실에서 끝났다면, 최근의 텍스트에서는 회복을 말한다. <방해꾼>에서는 잃어버린 자아의 발현을 제안하고, <책>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을 극복해 희망을 노래하자며 술잔을 기울인다.   

시간이 흐르며 송기화의 텍스트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송기화식 상상과 잔잔한 표현은 여전하지만 메시지는 한층 부드럽다. 명예의 전당에 있는 김지민식 글쓰기를 하는 듯 보여 진다. 지난해의 송기화가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같았다면 지금은 유리구슬로 변한 느낌을 받는다. 맑고 영롱하게 현상이라는 빛을 삼키고, 자신만의 색깔로 현상을 새롭게 해석해 늘어놓는다. 마구로 이동슥은 누군가 송기화를 채찍질해 한국문학의 희망으로 키웠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기화라는 이름을 보면 으레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사고의 전환과 상상이다. 수많은 텍스트를 통해 송기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버금가는 상상을 보여줬다.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를 마무리하는 능력은 이제까지 깽깽이가 접한 많은 글쟁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여긴다.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소재를 뒤집고, 미시적 세계와 현상을 해석해놓은 텍스트는 놀랍고 또 놀랍다.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일상을 비틀어놓는 상상에 비해, 미시적 세계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사후세계 역시 우리네 회사와 마찬가지로 부서가 나뉘어 있고, 쳇바퀴 굴러가듯 돌아간다. 신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세계를 관리하는 세계장들이 있고 이 세계장들은 다양한 세계를 관리한다. 외계인은 택시를 탄다. 저 너머에 있는 미지의 것들이 우리네 삶과 별 다를 것 없는 형태로 묘사된다. 인간적일지언정 그 이상의 것은 찾을 수 없다. 이는 베르나르의 경우와 같이, 송기화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송기화는 텍스트를 쓰며 많은 반전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상상과 반전에 열광했다. 최근의 뉴웨이브 문학과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을 맛깔스럽게 보여준 덕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기대 때문인지, 지난 텍스트들은 지나치게 반전을 그리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해가 바뀌며 송기화는 한걸음 나아간다. <만남>과 <만담>, <방해꾼> 등으로 반전을 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고 세계를 해석해냈다. 이월 중순에 쓴 <편지>에서 다시 반전은 등장하나, 이후의 텍스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삼월 십-팔일에 게시된 <유리>를 마지막으로 송기화의 텍스트는 한 달 보름가량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의아한 점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며 잔잔하고도 밝은 이야기로 돌아오던 송기화가, 비교적 최근 생산된 세 편의 텍스트 <애완동물>, <기억>, <유리>에서는 다시금 어두운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들지 않으며, 꿈은 유리처럼 깨어지고 만다.

꿈은 유리와도 같다.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나지만 잠에서 깨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송기화는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이 대화하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송기화 본인만이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잔잔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송기화의 상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텍스트를 기다려본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지만, 꿈을 꾸니까. 비록 유리구슬과 같을지라도.




뱀발.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음.
뱀발 둘. 많은 이들이 기화씨의 텍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특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텍스트를 통해 상실의 회복을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함.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사니까.
뱀발 셋. 그런 의미에서 책마을이 기화씨를 잃는다면 골 때릴 것임.
뱀발 넷. 냠냠. 아마도 마지막 독서후기.
뱀발 다섯. <뻐꾸기>와 <인연>, <유리>는 가지로 가야 함. 소사분들 참고바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3:59 

 

일병 김태건 
  짝짝짝 

기화씨는 멋진분 

무준씨도 멋진분 2009-05-03
20:46:43
  

 

병장 김형태 
  제목을 보고, 푸하하 웃었다 클릭하고선 멍때리고 있습니다. 

기화씨의 '책'은 정말 잊기 힘든 것입니다. 제가 책마을에 거주한 이후 본 정말 어마어마한 추천과 가지로가 달렸기에 아직도 선명합니다. 무엇보다 내용때문이었겠죠. 기화씨의 글이 뜸-해지면 저도모르게 애탄답니다. 보고싶습니다 기화씨의 글을 더더더더더 2009-05-04
07:32:49
  

 

상병 송기화 
  어휴. 뭐 이런 부끄러운... 어휴. 2009-05-15
14:27:57
  

 

상병 진수유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9-05-15
14:33:52
  

 

병장 차종기 
  이것도 가지로 가죠, 가지로 2009-05-18
09:27:14
  

 

상병 황호상 
  그저 할 말을 잃은. ... 2009-05-18
13:21:58
  

 

병장 이지훈 
  멋지군요. 책마을다운 독서후기 중 하나가 아닐런지요. 

가지로 갑시다 쿵쿵 2009-05-18
22:26:34
  

 

병장 김호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