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세 번째 회상  
상병 김무준   2008-12-17 15:21:36, 조회: 153, 추천:0 

나는 어릴 적부터 귀찮은 아들놈인 게 분명했다. 아부부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님께 물음을 던졌단다. 아뽜 조곤 모야? 옴마 조곤 모야? 부모님은 그럴 때 마다 내 눈높이에 맞추어 일일이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단다. 초딩들의 필살스킬 ‘왜요?’를 세살 적부터 연마했고 무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 내 물음은 끊이질 않았단다. 아아. 내게 만약 그런 자식이 태어난다면 이 깽깽이 새꺄 니가 직접 알아보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봐! 라며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르겠는데, 부모님은 굉장히 인내심이 강하셨던 게 분명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 속에는 한 아저씨가 있다. 일곱 살 쯤 이었던가. 나는 튀김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하상가 한편에 자리한 분식집에 늘 붙어있었다. 부모님은 지하에서 식육점을 하고 계셨기에 지하상가는 내 놀이터였고 비밀기지였다. 그런 비밀기지에 가끔 출현해 부모님도 잘 사주지 않는 튀김을 사주는 레이드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했다.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채,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항상 빛나는 구두를 신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늘 오뎅을 시켜놓고 소주를 들이켰고, 나는 늘 그런 아저씨 옆에 앉아 튀김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그는 몇 년 후 내 기억 속에서 아련히 사라졌다.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굉장히 많이 웃었다.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줬다는 것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기차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머니와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입사를 위해 김해공항으로 향하던 때였던가? 어쨌거나.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아니. 어쩌면 나를 낳고서 처음으로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회상한다. 어머니는 말했다. 아들아. 엄마는 아들을 믿는다. 네가 대학을 가지 않았든, 아무런 목표가 없든 간에 언젠가 커다란 꿈과 열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리라 믿는단다. 너는 이제껏 내가 본 누구보다도 똑똑한 아이니까.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철없이 말했다. 왜요?

나이 스물이나 처먹은 놈이 어머니 앞에서 왜요라니. 왜요는 일본 담요가 왜요고 이놈아! 하며 급 브레이크를 세우고 후두부를 강타할지도 모를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어머니는 답을 늘어놓으셨다. 어린 시절부터 너는 달랐단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둘 열셋을 배웠으니까. 그 때 그 아저씨 기억나니? 분식집에서 떡볶이며, 튀김을 사준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아저씨가 아니었다. 스물여섯, 일곱쯤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에게는 아저씨로만 보였겠지만. 무튼 그는 삶과 학문에 대한 의문에 찌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매일같이 지하상가로 술을 마시러 왔단다. 그러다 어린 나와 만났고. 매일 이야기를 나눴단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 어린 것과 무슨 대화가 통하냐 하고 물었더니, 청년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게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상하게 말이 통하네요.’ 라고 답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석사인지 박사인지를 땄단다. 고려대 무슨 과라더라?

나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머리가 좋다는 생각은 해보았어도, 똑똑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공부는 똑똑한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믿었기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해 본 적도 없다. 그건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다. 미술이 그랬고, 언어가 그랬으며, 비평이 그랬고, 심리학과 철학도 그랬다. 어떠한 공부든 깊게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내가 필요한 만큼 배웠지만, 체계적으로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빈센트 반 고흐와 인상주의 화가들이 늘 헷갈리고, 영어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가 어떠한 차이로 그렇게 변했는지도 모르며, 박민규와 김애란인지 하는 양반들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으며, 니체와 데카르트와 하이데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개념을 주장했는지도, 그들이 쓴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학문은 단 한순간도 내게 진지한 탐구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머리가 좋았던 탓일까. 여기저기 주워들은 잡지식이 많아 어려운 이야기라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자는 어렵고, 여러 학문에 심취해 깊이 파고 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저씨와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그가 내게서 어떤 답을 얻어갔는지도. 정말 답을 얻어갔는지, 아니면 단순한 위로를 받았을 뿐인지도 알 수 없다. 나는 학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고, 패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진지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그지 깽깽이라 부른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들판을 뛰노는 한 마리 짐승이다. 내가 오리 새-끼인지, 백조 새-끼인지도 몰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다만 은빛 갈기를 휘날리는 한 마리 늑대이고 싶어 그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그들처럼 사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짐승이 되기는 했지만 그토록 바라는 늑대는 되지 못했다.

아무생각 없이 손가락을 놀린다. 이제껏 퇴고를 해 본 적이 없다. 글을 쓰고자 노트를 펼쳐놓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요약하거나, 정리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여전히 그지 깽깽이다. 오늘도 글은 어지럽기만 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텍스트를 창조한다.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텍스트마저, 내게는 진지한 대상이 아니니까.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뒤를 돌아 내 발자국을 확인해본다. 텍스트는 흘러간 나의 발걸음에 불과하다. 지나온 흔적을 돌이켜본다. 날카로운 발톱은 없지만, 조금씩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 아저씨는 한 마리 늑대가 되었을까? 알 수 없다. 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할 뿐. 그는 늑대 같은 남자였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들판을 거닌다. 지나간 텍스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내 걸음도 그러하리라. 인간의 말을 점점 잊어가고, 늑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앞에 펼쳐진 저 먼 곳이 황야라 할지라도. 나는 늑대의 뒤를 좇겠다. 그리고 그들의 무리에 어울려 진짜 늑대가 되리라.

그러면, 다시 내 발자국을 좇는 누군가가 들판을 질러오고 있겠지. 그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3:59:45 

 

상병 정근영 
  허허, 요즈음의 무준씨는, 그야말로 머신이군요 
무준씨의 어릴적 얘길 들어보니, 문득 입궁 전 봤던 외국 시트콤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아빠와 딸이 무슨 대화인가를 나눴는데, 아빠가 뭐라고 말하든 딸은 항상 "...Why..?"를 외치던.... 배를 잡고 한참동안 데굴데굴 구르며 웃던 기억이 나네요 
왠지, 그때의 무준씨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을것 같은데요?(웃음) 2008-12-17
16:47:06
  

 

상병 김무준 
  원래 좀 손가락을 많이 놀립니다. 2008-12-17
17:28:36
  

 

병장 양 현 
  이런 글을 썼을 때마다 우리 무준씨는 괴수란걸 알게 되요. 그래요. 늑대가 될 수 도 있는거죠. 당신을 위해서? 글쎄요, 난 우리를 위해서라고도 말하고 싶어요. 그렇죠. 이렇게 내질러대는 무준씨는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는걸까요. 누구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쓰는거죠? 우리일까요, 자기 자신일까요. 어렸을적의 아저씨. 그리고 왜요. 저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지만 제 기억은 이렇게 정확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쓰긴 뭐하죠. 이렇게 댓글로나마 남기는 내 자신은 부러워하고만 있네요. 부러운 무준씨. 에잇. 

무준씨는 늑대하셔요, 전 대마왕할께요. 2008-12-17
18:00:04
  

 

상병 이지훈 
  멋지다-군요 
무준님은 정말 좋은(?) 늑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으르렁 2008-12-17
21:13:51
  

 

일병 조민석 
  잘읽었습니다 2008-12-18
12:17:56
  

 

책마을 
  무준씨 거의 도배-수준인데, 이건 뭐 자세히 보니, 벽화-였군요. 흐흐. 2008-12-18
19:56:37
  

 

상병 김무준 
  그래피티 정도라 해두죠. 2008-12-19
01:11:27
  

 

병장 이동석 
  역시, 다시 읽어도 재밌군요. 괜찮으시다면 떡볶이며 튀김이나 드십시다. 흐흐. 2008-12-21
18:43:33
 

 

상병 김무준 
  기회가 된다면 말이죠. 2008-12-21
18:4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