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살아가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상병 김무준 2009-01-18 00:36:50, 조회: 148, 추천:1
합격자 통보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역시 떨어졌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목구멍에 무언가 먹먹히 들어차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그동안 많이 준비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붙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필기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삼년 쯤 준비하면 필기는 붙는다는데. 나는 바보였나 보다.
부모님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장남으로서 못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부모님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원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천신만고 끝에 법대에 들어갔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 대학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택했다. 힘들게 부모님을 설득했다. 자신 있다고. 구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뒤에 행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행정고시는커녕 구급 공무원 시험에도 붙지 못했다.
내 나이 스물둘이다. 부모님한테 손 벌려가면서 공부하고 학원비내고 시험치고 할 나이는 아니라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좀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기를 원했고, 부모님의 힘으로 공부했다. 그만큼 기대는 더 컸다. 부모님에게 아들은 공부를 제일 잘하는 법대출신 엘리트로 보였을 거다. 시키는 대로 다 하면서 컸다. 친구들은 이런 내가 마마보이라고, 부모님한테 휘둘려 산다고 비웃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면 나도, 부모님도 너무 슬플 테니까.
대학에도 재수를 해서 겨우 들어갔었다. 힘겹게 들어간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이 사법고시보다는 쉬워보였다. 인정한다. 어쩌면 도망가고 싶었던 건지도. 부모님의 기대에서, 장남이라는 책임에서, 좀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게 잘 사는 거라 믿었다. 아버지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했다. 조금 더 안정적인 무언가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질 않는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한다. 여보세요. 나다. 휴가 나왔냐? 그렇지 뭐. 잘 나온다. 그냥 꼴 보기 싫다고 제발 집에 좀 가래. 그러냐. 어디냐? 동래 학원 근처야.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럴 일이 좀 있다. 술 한 잔 해야지? 그래. 그러자. 뭐야 진짜 무슨 일 있어? 아니. 왜. 평소 같았으면 공부해야 한다고 못 만난다고 그랬을 거 아냐. 동래로 올 거냐? 야, 나 노포동인데 사실 차비가 없다. 좀 데리러 와라. 그래 알았다.
군바리를 데리러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광고 스티커에는 학원 광고가 참 많다. 가기만 하면 다 합격시켜 줄 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그렇지가 않다. 학원에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이건 노력이 부족한 내 탓이니까. 똑같은 학원에서 똑같은 선생 밑에 공부해도 붙을 놈은 붙고 떨어질 놈은 떨어진다.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거겠지. 이십여 분 만에 노포동에 도착했다.
누가 군인 아니랄까봐 군복을 입고 있다. 배터리 네 칸이 찬 걸 보니 이제 병장이구나. 시간이 참 빠르다. 이 녀석 스무 살 때 군대 간다고 설치더니 벌써 전역할 때가 다 됐다. 군대 일찍 간다고 죽어라 놀렸었는데, 지금 만나니까 조금은 부럽다. 아직까지는 현실에 어떻게 적응해 살아가야할지 고민 없이 지내고 있겠지. 차라리 군대에 말뚝을 박을까 싶기도 하다.
넌 무슨 군인이 차비도 없이 돌아다녀. 야, 군인이 돈이 어디 있냐. 버스도 휴가증에 딸려 나온 걸로 겨우겨우 타고 온 거야. 휴가증? 어. 휴가증에 집에 갈 때 잘 가라고 공짜로 버스나 기차탈 수 있게 조치해 주거덩. 세상 좋아졌네. 좋기는 무슨. 니가 군대 와봐라. 하긴 너 올 때쯤에는 더 좋아져 있겠네. 요즘 군대 좋아. 폭행이나 폭언 같은 것도 많이 없어졌고.
병장이니까 좋은 거겠지. 매일 전화오고, 인터넷 하는 걸 보니 부대에서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남자가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좀 돼서 돌아온다는데, 얘는 영 아닌 것 같다. 하긴 사회에서 지내는 우리도 정신 못 차리고 빌빌대는데 군대 간다고 사람이 순식간에 변할 리가 없다. 그래도 나보다는 낫겠다. 헛짓 한답시고 날려먹은 세월만 이 년이니. 차라리 군대에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싶다.
야, 근데 너 무슨 일 있지. 아무 일 없다니까 그러네. 에, 얼굴에 다 써져 있는데? 여자한테 차였냐? 아님 공부가 잘 안 돼? 시험 떨어졌어. 시험? 무슨 시험? 수능 시험? 아닌데, 수능 볼 날짜는 아닌데. 참 법대 갔었지. 사법고시를 벌써 쳤을 리는 없고. 무슨 시험? 법대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데 생각만큼 잘 안 되네. 아… 자식. 힘내 인마. 사람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법이야. 그래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더라. 야, 나 옷 좀 빌려주라. 무슨 옷? 정장 같은 거 없어? 있기야 하지. 좀 빌려주라. 갑자기 왜? 너 소식 못 들었냐. 롯데… 어, 뉴스 봐서 알고 있어. 인마 그럼 친구면 친구가 뻗었는데 병문안도 가질 않았었냐?
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면 핑계겠지. 시사공부를 해야 한다고 뉴스랑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보니까. 알고는 있었다. 가면 뭐하나. 녀석이 일어나서 반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있는 거 보면 가슴만 답답해 질 텐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우리는 다들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다. 내가 의사였다면 옆에서 지켜봐 줄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수험생이라는 이름의 백수고,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친구를 돌아 볼 시간이 없었다. 핑계라고 해도 좋다. 정말 그랬으니까.
집에 도착해 친구를 방에다 박아 넣고 아버지 앞에 앉았다.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을 각오는 했다. 아버지는 화부터 내셨다. 힘들게 고생해서 공부하라고 대학 보내놨더니 사법고시는 힘들 것 같다고, 공무원 시험은 자신 있다고 학원 보내달라던 놈이 수능도 그렇고 또 떨어졌냐고 화를 내셨다. 남동생이 들었을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아버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사자 직업을 원해서 가고 싶지도 않던 법대를 갔고, 차라리 현실적인 길을 가고자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
친구가 이래저래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나가잔다. 언제 찾아 입었는지는 몰라도 용케 검은색 정장을 챙겨 입었다. 군인이라 그런지 등도 많이 넓어진 게 진짜 남자가 되었구나 싶다. 그동안 난 뭘 한 걸까. 아들로서 아버지의 소망을 다 이뤄드리지도 못했고, 스스로에게 충실했던 것도 아니다.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집을 나왔다.
왜 검은색 정장이야? 꼭 장례식 가는 것 같잖아. 그냥 그래야 될 것 같더라. 군복 입고 갈 수는 없잖아. 이거 청원휴가 나온 거야. 중태라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할 것 같았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일어 날 거야. 인마 그건 네 생각이고. 일어 날 거야. 애가 갑자기 벌떡 하고 일어난데? 일어 날 거라고! 아,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녀석은 일어 날 거다. 꼭 일어 날 거다. 녀석이라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믿는다. 녀석이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야, 나도 녀석처럼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낸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스물둘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구별할 줄 안다. 공무원 시험을 선택한 건 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핑계로 내 길을 가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자신이 없었다. 나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어떤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현실에 맞서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부모님 핑계를 대고 좀 더 현실적인 답안지에 답을 표시했다. 알고 있었다.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거. 후회할거라는 거. 그래도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하면 부모님의 말을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게, 지금의 내 삶이 내 삶이 아니라, 부모님이 바라는 삶 밖에 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다.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홀로 쓸쓸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꽃다발이 창가에 쌓여있는 걸 보니 꽤나 많은 사람이 다녀간 모양이다. 학창시절에는 인기가 꽤나 많았던 녀석이었고, 성격도 좋았다. 모두를 이끄는 리더라기보다는 함께 있으면 든든한 형 같은 존재였다. 우리의 버팀목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우리 중에 제일 성공한 녀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다. 눈물이 나왔다. 우리 모두 성공해서, 당당하게 성공해서 동창회 할 때 모여서 술 마시기로 약속했는데. 녀석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지만, 그 믿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녀석이 우리 곁을 떠날 것만 같아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직 죽음에 익숙하지 않다. 내게 죽음을 가르쳐 줄 사람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야… 왜 울어. 울지 마. 죽은 것도 아니잖아. 인마 네 말대로 벌떡 일어나서 다 거짓말이었다고 웃어넘길지도 모르는 거잖아. 야… 아 씨 울지 말라고. 왜 울어 인마. 저 자식 우리 우는 거 보면 얼마나 슬프겠어. 야… 흑. 울지 말라고… 아 쪽팔리게. 크흑. 울지 말라니까. 흑… 으흑…
침대보를 흠뻑 적시고서 우리는 병원을 떠났다. 얼마나 외로울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대체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걸까. 움켜쥔 두 주먹이 나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우는 모습을 봤을까.
킁. 쿨쩍. 야, 눈물 좀 닦고. 다 큰 어른이 칠칠맞게. 이게. 킁. 뭐냐 쪽팔리게. 이제 뭐할래? 넌 뭐 할 건데? 글쎄다… 뭐 하면 좋을까. 사박 오일 내내 저 녀석 옆에 있어주고 싶다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야, 우리 이번 기회에 동창회나 하자. 뭔 소리야 생뚱맞게. 동창회 좋잖아. 나 군대 가기 전에 한 번 모이고, 그 이후로 우리 다 모인 적 없잖아. 휴가 나왔다고 다 연락 한 번 넣어봐. 군바리 돈도 없다며. 야, 군인이니까 이번 기회에 거하게 한 번 얻어먹어야지. 어때? 기발하지? 그래 연락이나 해보자.
누구한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녀석. 녀석이 생각났다. 제일 바쁜 녀석이니 우선 약속부터 잡아놓는 게 좋겠지. 전화를 걸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3:11
상병 김예찬
점점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2009-01-18
12:43:12
병장 김민규
그러게요. 잘 읽었습니다. 2009-01-18
14:03:42
상병 김용준
그대가 있어 나는 버티고
그대가 있어 나는 살아가고
그대가 있어 나는 존재한다.
그대가 있어 세상이 두렵지 않다.
그대가 없어 나는 싸우고
그대가 없어 나는 부딪히고
그대가 없어 나는 존재한다.
그대가 없어 당신의 몫까지 산다.
Ps. 그냥 주민분들 글 보다 보면 그냥 시상이 떠오르네요? 낄낄낄. 고마운 사람들. 후후후.
아무튼 술술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09-01-19
01:29:07
병장 장지훈
계속해서 이어지는군요. 2009-01-19
13:58:42
상병 이석현
왜이렇게 두근거리죠?
저만그런가요. 2009-01-19
20:52:33
병장 이동석
이건 뭐 다음 페이지 넘기는게 아쉬울 정도로군요. 다음 페이지가 마지막 페이지 일까봐.
그런데 스물둘-이라, 참 오묘한 나이로군요.
열아홉처럼 어른이 되가는 과정의 종착역도 아니고, 스물처럼 이제 어른이 되기는 됐는데, 바뀐건 아무것도 없는 나이의 고통도 약간은 지났고, 스물 대여섯처럼 튕겨져 나갈까봐 안달을 하며 궤도를 붙잡거나 애저녁에 떨어져나가 절망에 저는 나이도 아니고 스물아홉, 서른-처럼 이제 뭔가 하나 붙들고 있거나, 붙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이도 아니고, 그 훨씬 뒤의 나이처럼, 어른인것 처럼 살고 있었는데, 사실은 단지 꿈을 잃어버린 어린애였음을 깨닫고 돌아가는 나이도 아닌
단지 스물둘-
누군가는 그 나이를 겪어보지 못하고 떠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물둘이거나, 스물둘이었거나, 스물둘일 모든이를 위한 이야기.
뭔가 상투적이고 좋군요. (허허)
어쨌거나 왜 스물둘인가-를 생각해보니, 내가 스물둘이니까-라는 답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기사 저도 입궐하기 전에 스물둘이었고, 그 때 쓴 글을 보면, 이미 스물둘인데, 혹은 스물둘밖에 아닌데도, 엄청난 절망에 시달렸으니까요.
게다가 누구의 스물둘도 같을순 없는거니까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건필! 2009-01-21
18:4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