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사회적 기업: 또 하나의 대안  
병장 정영목   2008-07-13 02:39:26, 조회: 294, 추천:3 

1000자 이내로 글쓰기 수련 중입니다. 역시나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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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자본주의는 모든 경제 주체의 욕망이 세상사를 움직이는 오직 하나의 원리라고 내세우는 듯 하다. 물론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잠시간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제 곧 그마저도 힘들어 질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음으로써 세상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의 붕괴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과도한 군비 경쟁을 일으킨다. 실질적 이득을 주지 못하는 행위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낭비가 발생하며, 그 낭비가 임계 지점에 이르면 이른바 ‘파국’이 시작된다. 각 주체의 이기적인 선택이 전체의 이득이 될 거란 주장은 그야말로 믿음에 불과하다.

우리에겐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윤극대화 기업은 그 역할을 담당하기엔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 그것은 현 자본주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는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에도 문제가 있다. 그것은 기부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순간에 오히려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 때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어려우면 기부금부터 줄인다.

사회적 기업이 이윤극대화 기업과 비영리단체의 세련된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기업은 투자자에게 원금을 상환하고 내부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익을 올릴 뿐, 나머지 초과 이득은 사회에 재투자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분명 기업이기 때문에 그 동력을 스스로 마련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공익성과 자생력 모두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대립적인 것에서 장점만 가져온다는 아이디어는 때때로 아주 기만적인 것일 수 있다. 게다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두 토끼를 하나의 토끼로 재정의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만한 창의력을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이 새로운 구세주인 양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현 상황에서는 ‘또 하나의 대안’이라 받아들이면 괜찮을 성 싶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2:10 

 

병장 이동석 
  1000자라는게 어떤 특정한 의미가 있는지요? 
어쨌거나 
짧고 간명하긴 하군요. 흐흐. 

기다렸습니다. 이런글. 
(자유게시판을 보고 있으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어서?) 2008-07-13
10:32:44
 

 

병장 정영목 
  1000자가 인간이 블로그나 게시판 같은 곳에서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한계량이라고 해서요. 생각을 몇자 이내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토론에서도 도움이 될 꺼같아 한동한 수련해 볼까합니다. 2008-07-13
13:24:05
  

 

병장 이동석 
  오, 그렇군요. 
하기사 모니터를 통해서 보면 가독성이나 집중도가 훨씬 떨어지기도 해서 애먹기도 하는걸 보니 적정한 길이 안에서 정리하는게 깔끔하니 좋겠군요. 2008-07-13
14:10:18
 

 

이병 홍명교 
  저도 1000자에 대한 글을 본 것 같은데 고민이 생기더라구요. 원래부터 그런가, 아니면 훈련된 것인가. 만약 MTV세대 이후의 현상과 같이 시각적으로 빠르고 쉬운 것에 훈련된 시각을 지닌 독자들에 대한 배려에 의한 발상이라면 참 헷깔리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만들때에도 요즘엔 컷이 많고 영상이 화려해야 사람들이 보잖아요. 그렇지 않고 홍상수 영화같은 건 잘 집중하지못하니까요. 그럼 영화는 모두 MTV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구요. 마찬가지로 글도, 내가 저거에 맞춰서 글을 써줘야 하나, 아니면 풍부한 레퍼런스와 사유를 채워서 글을 써야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기겠죠. 사실 자기에 엄청 관심있는 분야의 글이라면 2000자라도 열심히 읽지 않을까요? 연구를 안해봐서 모르겠네요. 1000자의 제한이 자칫 인간의 사유와 고민의 시간들까지 제한하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무섭습니다. 모니터가 무서운건지, 인간이 무서운건지... 
뭐가 좋을까요? 절대진리는 없고 그냥 자신의 독자가 누구인지 생각하고난 이후에 글쓴이만의 선택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나'와 독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인 것 같기도 하구요. 2008-07-14
02:52:56
  

 

병장 이동석 
  확실히 1000자로 쓰니 묵직한 내용도 단번에 읽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도입이나 소개, 문제제기 이상을 바라기는 어렵기도 하겠어요. 쓰는 사람도 읽는사람도. 

그러나 
간략한 글로 형상화시키는게 익숙지 않은 저로서는 1000자라는 제한이 
시조나 하이쿠 같은 함축성과 형식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음?) 2008-07-14
06:42:22
 

 

병장 정영목 
  홍명교 님// 제가 생각하기에 1000자 글쓰기는 Deliberate Practice의 일환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수 훈련이랄까요? 1000자 글쓰기에 시간 제약을 두면 꽤 좋은 훈련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Deliberate Practice: 일의 양(경력)을 늘리는 것보다 의미있는 훈련를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길에 더 중요하다는 개념. See also http://www.xper.org/wiki/seminar/DeliberatePractice 


이동석 님// 가급적 문제제기-대안제시란 틀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3Fs(Facts, Feelings, Findings) 형식도 좋을 듯 하구요. 2008-07-14
07:27:16
  

 

병장 장윤호 
  강유원씨 홈페이지에서 비슷한 글쓰기 훈련 방식을 본적이 있네요. 5문단에 1000자 안팎으로 글쓰기 뭐 이런 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해본적은 없습니다만..(땀) 
저도 성격이 좀 건조하고 상상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문학성을 담보 하지 않는 글이라면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양적인 변화가 어느순간 질적인 변화의 초석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2008-07-14
09:33:34
  

 

병장 이태형 
  사회적 기업. 
경제에 대해선 아는 게 전무한지라 신선하게 들리는데요. 
정말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대됩니다. 2008-07-14
09:38:57
  

 

병장 오영석 
  글을 보다 문득 S기업의 후원을 받는 S대학에 토론형 입학시험을 봤을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시험 형식이 역할토론이었습니다. 지문 몇개 쭈욱 주어주고 역할을 맡아서 토론하는거였는데 생각나는걸 요약해보면 '각자 정부, 기업, 중산층, 서민층의 대표라 생각하고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토론을 해봐라'뭐 이렇게 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제 주변의 환경때문인지 전 서민층을 대표해서 토론을 했고 정부, 기업, 중산층들이 말하는 것들에대해 반박하느라 정신 없었죠 다대일이 되었다라는 느낌이었다랄까? 진짜 사회의 생각을 작게 축소해놨다라는 느낌이랄까? 어찌되었든 또 어찌어찌해서 토론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교수님들 질문에 답하고 하는 독특한 시험방식이 30분정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토론장에서는 빈부격차 해소에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쪽으로 논의가 이어졌고 시간이 다되어 마지막 교수님들 질문에는 이런 질문이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기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때 수험생이 각방에 5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제일 마지막에 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4명의 친구들은 '한명도' 빠지지않고 '최대 이익의 추구'라고 답을 하더군요. 
서민층을 대표하고 있었고 평소 저의 생각은 기업이 이익만을 추구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윤창출을 통한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답을했고, 제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들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듯도 했습니다. 
2번의 관문을 통과하고 마지막 3번째 관문이어서 1.5:1경쟁률이었기에 합격이란 생각을 거의 굳혔는데 내내 마지막 교수님들의 표정이 맘에 걸리고 있었습니다. 불안은 현실로 나타났고 수능보기도전에 재수학원에 갈 처지였습니다. 다행히 이곳저곳 문을 두드렸었고 재수학원대신 2학기때부터는 알바전선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때 S대 시험을 본 이후 '기업의 존재 목적'에 대한생각은 아폴로 깨끗하게 빨아먹지 못해서 질겅질겅 씹는 것처럼 뒷처리 잘 안된 찝찝함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기업보국'이라는 사훈을 가지고 있다는 S기업의 모습이 TV나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주시면 시험장의 그 마지막에 느꼈던 탐탁치 못한 묘한 공기가 텔레포트타고 현실로 옮겨지면서 헛기침이 나오고 가레가 끓어 오르던데 왜 그런지는 그때 합격을 못해서 아직 모르겠습니다. 

개인적 이야기 한참 주절주절 하다보니 생각나는게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사회적 신뢰를 잃은 우리의 기업이 
'또 하나의 대안'이라는 사회적 기업으로 변모하거나, 새롭게 나타나거나 
여튼 어찌어찌 되어 이것이 대안다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기업 자신, 정부, 대중(중산층, 서민) 모두가 충분히 이 대안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지지를 보내야 대안으로 자리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시험에서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제가 내놓은 '기업의 사회공헌'이란 내용을 충분히 뒷받침할만한 이론과 현실의 예를 들지 못해 토론자들에게 이해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론없는 실천없고, 실천없는 이론 없다고 좀더 구체적인 사회적 기업의 활동방향이라던가 현실의 정부, 대중, 기업이 '사회적 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책마을 주민들께서 이런저런 생각을 같이해서 
이론을 세우고 실천방법을 제시할 수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들게하는 글이었습니다. (웃음) 2008-07-15
05:02:58
  

 

병장 이동석 
  음, 영석씨 나도 그 학교 시험봤었음. 
하필 밥대를 지원해서 
하필 집시법에 대해 물어보드만. 

쥐쥐쳤지뭐. 2008-07-15
21:00:59
 

 

병장 이동석 
  어쨌거나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 공부해볼 가치는 확실한듯합니다. 2008-07-15
21:01:28
 

 

병장 정영목 
  오영석 님// 

흥미로운 경험담이었습니다. 실제로 경영학 책에서도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며, 그것을 '최대 이윤'이라 못박는 경우가 많지요. 

책마을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룬 책들을 서로 서로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08-07-16
08:10:08
  

 

병장 이재민 
  흐음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꼴 다른 느낌의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 란 주제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가장 작은 원 속에 '주주'가 적혀 있고, 그 후로 무한히 팽챙되어 가는 동심원들의 나열이 떠오르구요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만 
성선설보단 성악설에 가까운 제 사상으로는 
참 파격적인 제안인 동시에 
'다른 나라들은?' 이란 생각이 떠오르네요 

굳이 
맥도날드나 디즈니같은 예를 들지 않아도 
기업 자체가 국가성의 첨병이 되는 경우는 수도 없지요 
세계기업, 세계기업, 국제화, 세계화 외치는 이 순간에도 
국가간의 장벽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았죠 
미국의 조잡한 대처에서도 볼 수 있듯이요 

최근에 읽은 
조셉 글리아니츠가 떠오르는군요 2008-07-18
09:59:34
  

 

병장 정영목 
  이재민 님// 

대체로 이런 주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역에서 
유럽 연합이 가장 진보적이고 
미국과 아시아가 비슷비슷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업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주 중심의 기업들이 지금처럼 그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만에 하나, 그것이 국가를 무력화 시킬만큼 강성하게 된다면 
Corporative State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그건 파쇼랑 다를 게 없지요. 경제적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008-07-21
02:35:57
  

 

병장 이재민 
  정영목 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을 처음 소개받는 거라서..(긁적) 
본문에 보면 내부 운영자금을 뺀 나머지 초과이익은 사회에 환원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내부 운영자금이란 지금의 경영을 유지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금만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초과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기업의 성장은 '0'가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주주자본주의의 득세 하게 늘어난 자기자본소각 등의 행위가 없어지는 정도일테니까요. 사실상 이 둘 사이의 간극은 꽤나 커보인답니다만... 

현대 경제사회에서 국가의 발전을 담보하는 '도구' 자체는 기업을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경영학도로써 전자의 경우라면 꽤나 위험한 발상일 듯 하군요. 제가 '다른 나라들은' 이라고 여쭤본건 물론 다른 나라들은 따르지 않을 거란 유아적인 가정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현재 겨우 1만 달러를 넘어선 소득수준을 가진 한국에서 발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이란 물음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3만 달러를 넘어서는 일본, 독일, 스위스 정도 되면 굳이 성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먹고 살만큼 살고, '특별히' 가난한 이는 적으니까요 2008-07-21
10:55:04
  

 

병장 이재민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리고 상당 기간 동안은 국가가 기업보다 강력한 지위에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이는 국가별로 차이가 많겠지만요(적어도 소말리아보다 GE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요) 

저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마치 사회주의로 진입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워보입니다. 
대신 횡횡하는 '주주자본주의'의 관점을 넓혀 종업원 내지 소비자를 'stakeholder'의 관점으로 확장시키는 폭넓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번 말뿐이지만, 'economist'같은 영미식 자본주의 따까리도 종업원을 'stakeholder'로 보는 관점의 전환을 외치고 있구요. 2008-07-21
10:58:38
  

 

병장 정영목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기업은 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금만을 남기고 모두 사회에 재투자 하는 조직을 뜻합니다. 전자의 경우지요. 그러나 기업의 성장이 0이 될꺼라는 주장에는 다소 견해차가 있습니다. 개인의 돈이 될 이윤이 사회 전체에 재투자 되는 셈이라서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업도 그 영양분의 혜택을 받게 될 테니까요. 

사회적 기업을 주창한 유누스의 의도는 모든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기 보담, 비영리단체가 이윤극대화 기업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2008-07-21
16:14:44
  

 

병장 이재민 
  흐음 
저로썬 
사회의 발전이 거업의 발전으로 연결될 거란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군요 
사회 구성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 설사 그들이 자기계발을 통해 역량을 길러낸다고 하더라도 전사적인 R&D 활동 없이 이런 성과가 얼마나 표출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건 마치 일차방정식의 계수가 달라 기울기가 다른 경우라고나 할까요? 조잡한 비유지만, 그만큼 그 quantity나 quality가 다를 것이란 말쓰밉니다. 

제 생각엔 
오히려 모든 기업이 유누스의 주장처럼 사회적 기업을 주창한다면(물론 이루기 힘들겠지만), 그래서 기업을 통한 세계 성장지향 경쟁을 자제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일부 기업만 이리 실시한다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엄연히 주식발행을 통한 자본거래가 허용되어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성장이 정체되어버린 기업은 발전과 생존이 위협받기 십상이라는 생각입니다 2008-07-22
08:57:06
  

 

병장 정영목 
  네. 이 사회적 기업의 현실적 모델인 마이크로크레딧이 방글라데시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도 방글라데시의 '어떤 특수성(사회적 신뢰)'이 분명 작용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역사회에 대한 투자, 그리고 그 지역사회의 발전에 의한 성장이 운좋게도 선순환 구조를 띄었죠. 모든 경우에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극빈층에 대한 저금리 무담보 대출'이라는 시도부터가 자본주의의 근본 전제와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성공했지요. 그리고 R&D의 경우에는 오픈 소스나 위키노믹스와 같이 사외 인재와의 연결을 통해 도모하는 것이 점점 효과적인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변화들이 워낙 거대한 흐름인지라 괜히 전문적인 입장을 취하면, 마치 예언자 비스무리한 모습을 띄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전,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인해 이 변화가 깨어지지 않는 한, 결국 사회적 연대를 중요시 하는 어떤 조직 유형이 경제적 영역에서도 전략적 우위를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품 이면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날테니까요. 2008-07-23
08:03:28
  

 

병장 이재민 
  어찌보면 이건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시장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에 가깝다 생각되는군요. 합리성에 기초한 극한의 이익추구행위는 시장경제의 기본 가정이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리드나 저공해 디젤차의 소비 및 개발을 본격적으로 촉진한 계기는 전 세계적인 고유가입니다. 상품 이면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긴 한데, 과연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개도국의 입장에서도 합리적 소비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2008-07-25
08:22:48
  

 

병장 정영목 
  무엇이 더 중요한 계기이냐에 대해선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화두와 비슷한 거 같네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이끌고, 위기 그 자체가 변화에 대한 인식을 키우고... 이런 구조. 무엇이 근본적이다라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개도국 역시,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진다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산업화가 아니라 고도의 농업입니다. 그것을 진흥할 수 있는 보호무역 역시 필요하구요. 2008-08-02
13:22:59
  

 

병장 이재민 
  고도의 농업이라... 자칫하면 리카르도의 무역이론과도 연결되어, IMF 일단의 숨겨진 논리와 유사해질 수도 있겠네요. 
문제는, 개도국들이 농업이 주 산업인 이유가 그들이 이에 필요한 skill이 충만하고 충분한 자원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나마' 그들이 잘하는 것이 그 분야라서 그런 것이지요. 리카르도야 개중 잘 하는 것 계속 하면 자유무역이 선진국, 후진국 모두에게 좋은 win-win게임 만들어준다고 했지만 어디 그런가요. No way. 
여튼. 개인적으로는 정영목씨랑 띄엄띄엄이나마 계속되는 이 토론 지적 자극이 많이 되고 즐겁네요. 2008-08-05
13:50:36
  

 

병장 정영목 
  제가 고도의 농업을 주장한 이유는 '화석 에너지에 기반한 산업화'라는 길로 가봐야 가까운 시간 내에 모두 파산할 꺼라는 환경론적 입장 때문입니다. 이 논리가 말씀하신 것처럼 소위 윈윈 논리로 악용될까봐 '보호무역'을 주장했구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고도의 농업은 두가지 선결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할 것', '수출용이 아닌 내수 중심의 작물 농업'일 것. 이 조건을 만족하면서 생산성이 높은 농업을 고도의 농업이라 부르는 거죠. 이 정도면 자유무역 옹호론이 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토의 뿐만이 아니라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2008-08-05
14:45:20
  

 

병장 이재민 
  전에도 얼핏 느낀건데 영목님이랑 저랑 가장 기본적인 가정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한 국가는 세계무역 상대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아니 역학상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발전없는 국가는 퇴보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결국 이러한 경우에 개도국이나 저개발 국가가 성장을 위해 추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 과거 우리나라와 대만이 했던 것처럼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수출위주의 성장전략이겠지요(저는 아직 보수의 틀을 못 깬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내수를 키우고 산업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실수가 많았지만,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대안이 아니었는지.. 

기술을 모르는 짧은 제 소견이지만, 현실적으로 기술의 발전단계가 어느정도 선형적이라 가정했을 때,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할 수 있는 기술은 어쩔 수 없이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기술을 개발한 후에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프리카 일부국가처럼 엄청난 천연자원이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선진국의 기술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로, 자족으로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2008-08-08
16:00:32
  

 

병장 이재민 
  그리고 혹시나 말씀하신 '환경론적 입장'에 관한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목씨는 항상 폭넓은 독서를 하고 계신거 같아서 안그래도 추천도서 좀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2008-08-08
16:01:23
  

 

병장 정영목 
  안그래도, 환경론적 입장에서는 국민국가, 선형적 진보라는 개념이 매우 약화됩니다. 국민국가는 어떤 한정된 수단으로 의미가 극히 위축되고, 선형적 진보는 시간의 화살(엔트로피 증가)로 대체되죠. 여러면에서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실 위 두 개념을 전제하고 시작하면 비슷한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과연 폐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러나 우리가 중세 유럽 사람들의 신 중심 세계관을 잘 이해못하듯 우리 미래 세대(있다면)들도 위 두 개념에 매달린 우리를 이상하게 볼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개혁주의자(The Reformer)가 아닙니다. 개혁주의자는 심층 구조를 손대려 하지 않지요. 그러나 그곳을 바꾸지 않는 변화는 결국 레드 오션에서 끼리끼리 노는 행위와 진배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심층 변화'가 힘든 이유는 부분적으로 강대국의 방해 공작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구요. 아기 분유값을 무료로 제공하려는 한 국가의 정책을 네슬레 사가 정치 공작을 펼쳐 좌절시킨 사례는 유명하지요. 
제가 다중의 정치 참여를 어느 문제에서나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 환경 그 자체가 일종의 제약 조건이거든요. 스위스 사람들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네슬레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제 환경주의적 생각들은 아직까지는 거의 전부가 제러미 리프킨의 것입니다. 여기에 프리초프 카프라의 입장도 어설프게 녹아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책을 추천합니다. 몇 개 예를 들면, 『엔트로피』『소유의 종말』『노동의 종말』『바이오테크 시대』『육식의 종말』『유러피언 드림』『생명의 그물』『히든 커넥션』『동양 사상과 현대 물리학』 등등. 참고로 두 사람 모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람이란 걸 염두해 두시길. 2008-08-08
1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