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부끄럽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병장 김선익   2008-10-10 19:52:31, 조회: 351, 추천:0 

  지성과 이성을 겸비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화제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특히 나 같이 사상이 덜 정립된 사람인 경우 더 그렇다. 내 생각을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반박을 하겠다는 거야? 애매한 내 태도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들로 때워버리곤 한다. “너는 너무 어려서 그래. 그래도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책 60권만 읽어봐. 생각의 틀이 잡힐 거야. 책이란 게 생각의 방대함을 차곡차곡 정리해주거든” 나에 대해 내려지는 그들의 판단도,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도 ‘도 아니면 모’ 라는 생각에 88년생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입궁을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소소한 일들을 일반화 시켜버리는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있는 곳이 궁이라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입궁 후 애매한 내  태도 중에서도 조심스레 자리를 잡게 된 부분이 생겨 책마을에 털어놓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같은 군인인 만큼 틀렸다고 말하지 말고 의견을 말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후임들한테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이름은 善(착할 선) 翼(날개 익)이다. 그래서 후임들 사이에서 천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내 한 달 후임은 훈련 중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일반부대로 오게 된 특전사 출신이다. 출신답게 몸매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부지다. 복싱신인왕전에 출전했던 경험도 있다. 성격이 정반대인 우리 둘을 대하는 후임들의 태도 역시 정반대다. 나를 수업시간에 대놓고 자도 눈감아 주는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내 한 달 후임은 수업시간에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서라도 눈에 불을 켜고 있어야 되는 선생님으로 보면 된다. 내게 기분이 나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나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왜냐?

  그 대답에 앞서서 내가 먼저 질문을 해보려 한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었으면 한다. 지금은 일제강점기의 3월1일이다. 나는 22살의 학생이다. 오랜만에 낮잠을 청하려 누었는데 창 밖에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밖을 나가보니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될 것이라곤 앞에서 끊임없이 총을 쏴대는 일본순사들과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만세 행렬뿐이다. 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먼저 대답해보자면, 지금의 나를 그 때로 돌려보낸다면 나가지 못 할 것 같다. 흥분으로 온 몸에 찌릿함을 느낄 진 몰라도, 너무 무서워 차마 발을 떼지 못 할 것 같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그래도 조금만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윤흥길 씨의 ‘산불’이란 소설을 보면, 대학운동시절 홀로 사로잡히는 바람에 온갖 고문을 받고 동료들의 은신처를 모두 실토해버리고만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심한 자책감에 빠지고 연쇄방화범이 내고 다니는 산불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지난모습도 함께 태워버리려고 한다. 결국에 주인공은 연쇄방화범으로 내몰려 수년간 집중적인 수사를 받다가 그 지방을 영영 떠나버리게 된다. 나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고통 혹은 죽음 앞에서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반박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김구선생님과 도시락 폭탄을 들고 자폭을 시도한 윤봉길 열사는? 나라가 어려울 때 들고 일어섰던 수많은 의병들은? 그분들의 높은 정신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럼 난 할 말이 없다. 나는 아직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삶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두 가지 명제에서 ‘삶’의 가치에 치중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전에 근접한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알지 못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바로 죽음이 삶에 수많은 가치를 안겨준다는 것과, 내가 죽음이란 근본적인 명제를 재껴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이제 가치관을 정립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인생무상을 논할 때가 아니다. 죽음이란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도 굳건해져야 한다.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문열씨도 피비린내나는 정치세계에서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건 아닐까? 



- 저는 개인적으로 이문열씨 팬입니다 
- 내일 9일짜리 설탕을 나갑니다 (이번주 토요일 일요일 주말과업을 한다는 뿌듯한 소식이..하하)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9:10 

 

상병 이우중 
  한때 쇼비니스트임을 자처할 때의 저였다면 아마 시위를 이끌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이유로라도 시위를 이끌고 있을 의향이 있군요. 

참, 
- 저도 개인적으로 이문열씨의 팬입니다 
- 저도 내일 3일짜리 설탕을 나갑니다 2008-10-10
20:05:02
  

 

병장 이동석 
  누군가를 틀렸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그가 단지 자기보다 어리고, 배움이 짧다고 해서? 

또 가치관은 흔히 말하는 개념 장착하듯이 정립되고, 완성되어야만 할까요? 

그런데, 
이문열보다 어리고 덜 배운 
저는 이문열이 (어떤 부분에선) 틀렸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뭐 단지 한괴뢰를 봤기때문만도 아니고, 진보를 자처하기 때문만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의 글이라도 그의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던져버리진 않습니다. 

그는 확고합니다. 그의 세계는 완성되었죠. 그리고 그는 끝장나버렸습니다. 그에게서 뭔가를 더 기대할수 있을까요? 

에, 솔직하게 무섭긴 할겁니다. 전 전경이 노려보기만 해도 움추려드니까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선 가만히 있는게 더 괴롭지 않겠어요? 오히려 휩쓸려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붙잡은 사람은 정말이지 확고한 사람이겠군요. 더 이성적이고 성숙한 사람이라는 자평을 할수도 있을것이고, 실제로도 더 이성적일지도 모르겠군요. 

결론은 
두분 부럽습니다. 젠장. (하하) 2008-10-10
20:42:55
 

 

병장 이동석 
  쇼비니즘(chauvinism) 

ꃃ〖사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광신적인 애국주의나 국수적인 이기주의. 프랑스의 연출가 코냐르(Cognard)가 지은 속요 〈삼색 모표〉에 나오는, 나폴레옹을 신처럼 숭배한 프랑스 병사의 이름 니콜라 쇼뱅(Chauvin, N.)에서 유래하였다. 

ꄵ징고이즘. 2008-10-10
20:43:57
 

 

병장 이동석 
  그리고 우중님의 글솜씨를 보여주셔야 할때입니다. 
릴레이 소설을 써주세요. 흐흐. 2008-10-10
20:44:40
 

 

병장 김선익 
  /상병 이우중 
단호하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실전배치를 하다보니 다급한 긴장감과 함께 지금이 일제강점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이러더라구요 
'무기가 있어야 나가지' 

실전부대가 오히려 애국정신은 빵점이네요. 저부터 시작해서.. (웃음) 실전의 순간 우중님이 이야기하신 쇼비니즘적인 생각이 아니라 나에 대해 먼저 떠올랐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병장 이동석 
가치관 정립에 대해서 절대적이진 않지만 그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문열씨는 확고했을 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보여준 그의 태도는 애매했죠. 그의 글과 그의 말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구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의 글에서만큼은 기대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넌 틀렸어 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성적이라기보다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거든요. 친일을 선택한 서정주씨나 이광수씨는 틀린걸까요, 아니면 다른 걸까요 2008-10-11
05:54:02
  

 

상병 김무준 
  가끔 농담식으로 전쟁나면 어떻게 할 것 같나냐는 물음을 주고 받습니다. 맨날 대답은 총이고 뭐고 다 버리고 이나라를 뜰테다! 라고 하지만... 

막상 전쟁 터지면 도망가고 할 새도 없이 무작정 뛰어 들겠죠. 

나 없으면 내 가족 내 사랑 내 친구는 누가 지키나요. 도망치면 전쟁 이겨도 주변에 고개 못 들듯. 쪽팔리기 싫어서 목숨걸 걸 놈이네요 저는. 2008-10-11
08:40:37
  

 

병장 문두환 
  갠지스 강 주변에는 품 안에 화장(火葬)을 할 돈만 품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인도인들에게 죽음이란 삶의 극단에 서 있는 무엇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하더라구요. 

이제 이십 몇 년을 살면서도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데,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선택지에 단 두개의 답안만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흐흣. 2008-10-11
17:46:33
  

 

병장 이동석 
  그런데, 쇼비니즘이 권장되야하는겁니까? 허허. 2008-10-11
21:23:11
 

 

병장 김선익 
  상병 김무준/ 
도망치면 전쟁 이겨도 주변에 고개 못 들듯. 쪽팔리기 싫어서 목숨걸 걸 놈이네요 저는. 

쪽팔리기 싫어서 목숨걸다... 
저는 그런 제 모습을 보기 싫어서 
이 글을 쓰고 싶었어요 
내 스스로 판단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2008-10-24
07:16:40
  

 

상병 이호석 
  선익아 이 글 보게 하려고 가입시켰구나 내가아는 너는 항상 마음은 가지고 있어 그걸 분출시킬 무언가 아니 그걸 분출시킬 수 있게하는 정신을 니 스스로 깨달아야 할 거 같아. 2008-10-29
16:01:12
  

 

병장 이동석 
  음, 선익님과 호석님은 선후배 사이같군요. 흐흐- 
(10월 글 돌아보는중입니다) 2008-11-07
14:22:48
 

 

병장 공영일 
  제가 김선익 수병님의 글에 등장했다는게 재미있네요. 
하지만 저는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2008-12-01
01:0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