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병장 최초의 날  
병장 정근영   2009-06-06 03:41:03, 조회: 169, 추천:0 

바야흐로, 그 날이 왔다. 갓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부터, 상병 최후의 날까지 그토록이나 바라마지 않았던 그 날이. 물론, 1주차때 빵모자를 쓰고 어리버리한 표정과 어쩔 줄 모르는 자세로 말년 병장 조교들의 간지나는 자태를 바라보던 때의 순수한 부러움(차라리 외경이라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이 아직까지도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짬찌끄레기들(그들의 총 군생활을 더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을 가볍게 쌩까고 들어와, 정량배식을 하고 있던 나에게 “장난하냐?”며 폭풍같은 병장 간지를 내뿜던 그의 늠름한 모습이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히 박혀있는 이유는, 내가 조금이나마 그의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비록 내 머리는 오로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권위와 권력을 거부하고 있었을지 몰라도, 마음 한 편에서는 배터리 네 칸과 어깨위에 장착한 녹색 딱지의 절대권력을 갈구하는 욕망이 있었음을, 나는 부정할 수가 없다.

배터리 충전을 완료하고, 녹색 딱지로 대변되는 절대권력을 오롯이 위임받은 지금, 내가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하는 이유는, 이 자리를 거쳐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여준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행동들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그들의 모습을 내가 똑같이 되풀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후배들에게 ‘저놈도 똑같은 놈이었어’라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스로가 정한 원칙에는 충실한 편이었고, 후배들에게 나름대로 인간적으로 대해주었으며, 한 번 쯤은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나 역시 완전한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첫 번째요, 내 딴엔 이해와 배려라 생각하고 행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이 두 번째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고, 두 번째의 경우는 이런 것이다. 예컨대 후배가 사소한 잘못을 하나 저질렀다. 내 딴에는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모른 척을 한다. 그런데 그 후배는(혹은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선배 또는 후배는) ‘저 사람은 나(분대원)한테 전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쓰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좀 화가 나는 것이 이런 오해가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과, 이런 경우에 아예 작정하고 갈구는 것보다 결과가 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순수한 배려와 조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후배들의 우습게 보는 듯한 눈길과 깔봄으로 되돌아올 때마다(저 선배는 갈구지도 않네. 만만하게 봐도 되겠다. 라는 등의) 인격이고 뭐가 다 쌩까버리고 조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 윗선배들이 했던 일과 그리 다르지 않게 된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솔직히 조금씩의 회의감이 마음속에 쌓이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가 정했던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흐려져 갈 때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것이, 내가 지금 떠들고 있는 ‘원칙’이라는 것이 상당히 자의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정한 그 원칙이라는 것이 다른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고 짐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내가 싫어했던 악폐습을 후배들에게 되돌려주지 말고, 내가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자’ 이것이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만들어놓은 원칙이고, 이대로만 궁생활을 한다면 그렇게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고 내 마음대로 후배들은 대하는 것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폭력이고 부조리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그 많은 사람들이 ‘나 정도면 궁생활 잘했지’하며 자신이 잘했던 점을 생각하면서 궁을 떠나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는 거라고는 그에 대한 뒷담화와 호박씨 뿐이었다는 점을 볼 때 이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내가 떳떳하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조금의 부끄러움이 남아있던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꽤나 풀린 군번이었다. 행정병들 중에서도 가장 빡세다고 여겨지는 자리만 아니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많아서 좋기는 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갓 배터리 두 칸이었을 때, 벌써 밑으로 열 명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세대 교체의 과도기에 있다는 문제가. 그것도 성격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두 세대의 사이에.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거지만, 참 힘들었다. 내 바로 위에 세 분들(6월 1, 7월 2였다)은 후배들을 갈구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이 당한 것은 후배들한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개념없는 후배들 좀 교육시키라고 지시했지만, 애초에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내 양심에 충실하고자 했던 나는 그 순간에는 예예- 하면서도 차마 쌍욕을 섞어가며 갈구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애들 관리 안 하냐는 말과 함께 다시 쌍욕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순 없으니,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때까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믿어왔지만, 이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지금 있는 곳이 군대니 만큼, 선배로서 후임을 가르쳐야할 어느 정도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그리고, 몇 번을 가르쳐도 못 알아들을 경우에는 욕을 섞어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는 놈이, 또 고집은 굉장히 강하다. 스스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절대 Yes하지 못하는 성격을 타고났기에. 그래서인지, 꽤나 많은 트러블이 있었고, 눈물을 보인 적도 몇 번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애초에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의 규칙을 거부했고, 감정의 짬처리(예컨대 자기가 기분 나쁠 때 아무 이유 없이 후배들을 갈구는 행위)가 더 이상 전승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말하자면, 선배를 선배로서의 대우는 해주되, 그것이 사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거나, 너무 심한 정도로 넘어가지는 않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앞의 세대와 다르게, 내 뒤를 잇는 신세대들은 어느 정도 이런 생각에 대해 동의를 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내 위의 그 셋은 제외다. 짬 안 되는 나 혼자로서는, 초록딱지를 어깨에 매단 3명의 최종보스를 감히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 이건 의식적 도피에 대한 변명이요,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밑에 바글바글한 후배들과 힘을 합쳐서 저항이라도 해봤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경계인이었다. 앞과 뒤,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그래, 웃긴 얘기지만, 난 지금 시원하게 내 선배들을 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딱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그들의 방법론이었지, 그들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는 인간적 매력까지 풍겼으며, 악의없는 행동들(비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곤란할지라도)에서는 진심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 중에 한 명과는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비록 약간 어긋나는 코드 때문에 가끔씩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랬었기에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과격한 방법을 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그래, 난 못난 선배였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현실 속에 바스라져가는 이상을 참담한 심경으로 지켜보아야 했던 내 심정은, 우리 막내에게 미안한 만큼이나 쓰리고 아팠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그러나, 현실을 벗어던질 수 있을만큼 용기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여태까지의 삶을 되짚어 볼 때, 나는 경계인이요, 방관자요, 관조자였다. 현실과 이상, 내부와 외부, 진보와 보수, 왼쪽과 오른쪽 등으로 나타나는 두 개의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른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다. 좋게 말하면 중립이요, 중도였지만, 내 행위가 그런 고결하고 절대적인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에 불과함을, 내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의식적으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느 쪽도 갈 수가 없어서 가운데에 머물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에도 붙지 못하고 있었다. 내 선배들이 옳다고 생각했으면, 그들이 했던대로 따라했어야 했을테고, 그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진심으로 그들을 설득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갔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은, 그놈의 우유부단과 의지박약 때문이었을까.

바라보는 삶은 애초에 치열할 수가 없다.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내 삶이 왜 그리도 따분하고 허무했는지. 그것은 스스로를 관찰자적 위치로 규정해놓고, 애써 주체적 삶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 6개월간, 내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 것은 결국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진정 후배들을 생각했다면 그리했다면 안 됐을 것이다. 그들을 불러 나는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너희를 이러이러하게 대하겠다고 말을 했어야 함이 옳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오해가 생길 경우에는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는지 차분하게 대화로 풀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전에 내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그들이 생각했던대로 귀찮음에서 비롯된 무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어디에라도 숨고싶을 만큼 부끄러워졌고, 미안해졌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나 경멸하던 위선과 가식이 아니던가. 아래에 명교님의 글에서 '죄다 니힐리즘과 나르시시즘에 갇힌 청산주의자다'는 말에 머리가 띵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리라. 철저하게 외부적인 시선에서, 자기만족과 허무함에 빠져버린 이상주의자. 젠장-


거창하게 혁명을 꿈꾸지는 않으련다. 내가 바뀜으로써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다만, 나는 이제야, 뒤늦게나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고자 할 뿐이다.
상병 최후의 날을 지나, 병장 최초의 날에.
비로소.
 

20.3.1.9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5:59 

 

상병 김태완 
16.48.3.84   근영님의 회사 신입사원 수용 패턴과 위와 밑의 경계선상에 놓여 과도기의 희생자가 된 모양새가 제 것과 참 유사하군요. 궁안에서 변혁의 선두주자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저도 궁생활 1년 5개월간 보수와 개혁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홀로 남들과 차별화되는 개척의 길을 걷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큰 방안엔 안하무인의 윗사람들과 개념무탑재의 아랫사람들의 수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평화로운 방안 생활을 위해선 희생정신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윗사람에게 궁의 변혁시대가 도래함을 각인시켜주는 작업과 아랫사람에게 윗사람이 처했던 궁의 시대적 배경과 그로 인한 윗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행동양식에 대해 이해 시키는 작업이 요하였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방안 분위기도 훈훈해 졌습니다. 가끔 윗사람들이 손해보는 느낌에 투덜댔지만 곧 나가지 않느냐 조금만 참으란 말에 금새 또 수긍을 해 주어 그 분위기가 유지됐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안좋은 점도 많이 초래 하였습니다. 특히 궁에서 지켜야할 기본자세가 점점 흐트러져 지휘체계가 예전보다 정립되지 않아 일처리가 치밀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도 소위 말하는 '빵꾸'만 안나면 되지란 사고의 정립으로 이내 수그러졌습니다. 

궁생활 1년 6개월째. 정형적이기만 할 것 같던 궁도 지휘관이나 구성원의 노력여하에 따라 참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불만스러운 점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이 격겠지만 유들유들 잘 해결해 나가려 합니다. 어쩔 수 없지란 말을 하기보다 조금씩 바꿔보려 합니다. 2009-06-06
08:32:27
 

 

병장 김우현 
18.1.11.19   저의 과거의 그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저 또한 네칸이 되고 많은 것들을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불필요한 옛병장들의 위세에 눌려 행하던 많은 행위들을 바꾸었죠. 
비로소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이 모든 것들을 바꾸었습니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나은 이곳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러나 많은 희생을 요구로 합니다. 
간혹 본의아니게 많은 후배로 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으며 
윗 선배들로부터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바꾸려고 마음먹은 이상 실천은 해봐야 합니다. 
정작 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좋지 않은 눈으로 저를 평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인정하게 되더군요. 이해해주게 되고요. 

아무튼, 축하합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입문하신것을 (웃음) 2009-06-06
09:36:07
 

 

상병 이재원 
38.8.20.139   왜 근영님의 글을 보면서 내 자신을 보는것 같을까요. 2009-06-06
10:25:49
 

 

병장 김상윤 
18.18.12.122   봐주다보면 
아예 못본척하면 멍청해서 못본다- 
살짝 지적만 하면 귀찮아서 뭐라고 안하니까 신경 안써도 된다. 
라고 되버리는 이곳이 참 슬픈것 같기도 하고 .. 
다만 이쪽 마을은 다들 그렇게 포기해버리고 거의 통제랄것도 없다는게 그나마.. 
JDJ 님도 HBK 님도 떠나가실때가 되서 말이죠.. 2009-06-06
10:38:50
 

 

상병 양동훈 
18.1.17.5   누구나 비슷할 겁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속칭 '상병이 접힌' 그 이상의 사람들이니까 
어딜 가도 꿀리는 밥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저도 상병 최후의 날이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솔찍히 옛날같은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더군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겟죠.. 2009-06-06
14:03:03
 

 

상병 이종보 
18.49.43.151   전 지금 이순간 나태해진 제 자신과 처음 이 마을에 이주했을때의 제 모습을 비교하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지요.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놈의 궁생활, 제 힘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는 나태함만이 남았습니다. 문을 닫는다던지, 무엇을 가져오라던지 등의 사소한 일 조차 누군가에게 지시해버리는 그런 나태함이 말이죠. 결국 저도 이곳에서 내려오는 암묵적인 습관에 물들어버렸나봐요. 머리는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건 입궁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참, 슬픈 일이죠. 2009-06-08
01:38:54
 

 

병장 박상민 
18.48.3.49   돌고 도는 학교.. 언제나 똑같은 일의 반복이란.. 

참.. 무지렁이합니다 2009-06-08
08:24:47
 

 

병장 윤영석 
22.112.1.112   이번달에 배터리 충전을 했던 저로써도,, 세대교체 시기에 와서,,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물론 어느정도 선배들 뜻에 따라가기는 했지만... 

두칸때와 세칸초기때에 선배들에게 돌아오는 욕을 먹으며, 후배들을 갈구기는 했지만, 

세칸 중반부터 이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아무말도 안하고 배터리 충전을 한 이후로는 
더더욱 조용히 살고있답니다. 가끔 혼내기는 하지만요. 2009-06-08
09:52:31
 

 

병장 정근영 
20.3.1.45   태완 / 궁에서 지켜야할 기본자세가 흐트러져 지휘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궁이라는 곳의 기본적인 성격상,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허허 

우현 / 글쎄요, 저는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저의 생각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 후배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저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겠네요. 

재원 / 아마도, 모두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할 거에요.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느냐, 아니면 생각에서 머무느냐는 실천력의 차이일 뿐. 

상윤 / 그러게 말이에요. 어떤 방법을 택해도,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단점이 더 부각되어 보이니까요. 

동훈 / 맞아요. 윗사람이 나가고, 아랫사람이 많아질수록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죠.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지않나 싶어요. 

종보 / 그게 체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그런 나태함은 예전에 그렇게나 경멸했던 선배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다르지 않겠죠. 

영석 / 그렇죠. 선배들의 강요에 어쩔수 없이 혼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것이,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