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버스정류장
병장 홍성기 2008-11-20 14:49:06, 조회: 259, 추천:1
여기, 두 남녀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던 남자가 살포시 여자와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을 비비적거리다 입을 뗐다. 여자가 눈을 감고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쑥스러운 듯 버스 노선도를 본다. 자기야, 나 사랑해? 여자가 물었다. 뭐 그런 걸, 남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당연하단다. 여자가 총총 뛰며 남자와 팔짱을 꼈다. 그럼, 자기야, 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여자의 말에 남자가 별생각 없이 이-뻐서 좋아. 했다. 그런데 여자는 재차 확인하고 싶은가보다. 그러면 나보다 더 이-쁜 애가 나타나면? 남자는 곰곰 생각하다 이내, 너보다 이-쁜 애가 어디 있어. 하고 만다. 그러면서 벤치를 삭삭 닦는 시늉을 하고 여자더러 앉으란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아끌어 같이 엉덩이를 깔았다. 그럼 있지, 자기야, 내 얼굴이 자구 나면 갑자기 못난이같이 변하면 어떡해. 여자가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그럴 리 없잖아. 걱정하지 마. 남자가 여자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나는 듯, 자고 나면 못난이 되나 한 번 확인해 볼까? 하며 씩 쪼갠다. 여자의 입이 샐쭉했다. 장난하지 말구우. 만약에 진-짜 그러면 어떡할 거야. 만약에, 절대 그렇다면. 남자는 가벼운 고민에 빠진다. 그래도 괜찮아. 사랑, 하니까. 남자가 속삭였다. 나름대로 결정적인 단어, 사랑! 잠시 여자의 표정이 밝아지는 듯하더니. 사뭇 진지해지며, 그럼 얼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네. 그럼 자기는 날 왜 사랑해? 하고 물었다. 남자의 표정도 진지해진다. 그럼 넌 왜 나를 사랑하는데? 남자가 묻자 여자는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하구선 남자의 눈을 쳐다본다. 그렇게 이글거릴 수가 없다. 남자가 다시 곰곰 생각하다 말했다. 착하잖아, 너는 착하니까. 그러자 여자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그럼 나보다 착한 애가 나타나면? 여자가 물었다. 이제 남자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지금 그는 심상찮은 데자뷰를 느끼고 있다. 남자가 다시 대답했다. 아니, 착하다기 보다, 너니까. 그냥 너니까 좋아하는 거야. 특정한 이유 같은 건 없어. 여자는 남자의 대답이 시원찮은지 재차 묻는다. 뭐어야 그게- 나니까? 나인게 뭔데에- 남자가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뭐긴 뭐야, 너인 게 너인 거지. 이 세상에 너는 하나밖에 없잖아. 그러자 여자는 약간 토라진 듯 그럼 특별한 이유는 없는 거네? 하고 묻는다. 남자가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 있지- 여자가 다시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남자의 얼굴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면- 만약에-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어떡해. 여자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아무 말이 없다. 여자는 슬며시 팔짱을 뺐다. 남자가 여자와 눈을 맞추고 힘겹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여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곤 살포시 남자에게 입을 맞댔다. 둘은 한참을 다시 비비적거리다 입을 뗐다. 그런데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래도-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 일순 정적이 일었다. 남자는 애꿎은 도로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심한 차들은 정류장을 지나치고 지나갔다.
어, 버스 왔다. 여자가 발딱 일어섰다. 여자가 타는 버스였다. 남자도 일어섰다. 여자는 총총 뛰어가며, 자기야,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하고선 버스 안으로 쏙 사라졌다. 남자는 한참동안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사라지자 남자는 서둘러 콜택시를 불렀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47:26
병장 이동석
오오-
물론 글은 읽지 않았습니다. 흐흐. 2008-11-20
14:51:57
병장 이동석
허허, 이런 여운이 있나, 왜 남자는 '서둘러' 콜택시를 불렀나. 추워서? 2008-11-20
14:54:04
상병 최현수
본인의 이야기 인가요?(웃음) 만약에 본인의 이야기라면 대략난감한 순간 이셨겠어요. 2008-11-20
14:55:25
병장 이충권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에 먼저 가서 서프라이즈 하게 해주는건가요오오... 2008-11-20
14:57:03
일병 지영남
음,,? 2008-11-20
15:00:15
병장 이동석
감상의 여지를 줄여버리는 리플- 이를테면 감줄리
전 남자가 짜증이 나있다는걸 표현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뭐 거의 출발 비디오 여행이구만요. 2008-11-20
15:05:04
병장 조현식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배고픈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피자는 먹고 싶고, 그렇다고 식은피자를 먹기는 싫지만 어쨌든 주문은 해야될 것 같고 쓸데없이 돈 쓰는 것은또 싫은 그 여자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저럴때는 경상도 식으로 나가야죠! 가시나 미칬나. (웃음) 2008-11-20
15:08:20
상병 이준혁
에피소드가 일어난 장소에서 얼른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아닐 까 합니다. 2008-11-20
15:08:49
병장 이동석
현식/ 파하하. 그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실제지명과 판결을 언급하며 진짜인것처럼 하지만, 픽션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게 물건너온 인터넷 유머라는 속설도 있더군요.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거나 아무리 그래도 과실치사인데 참작되서 무죄까지 나온다는건 무리가 아닌가 싶어요. 법감정이 다를수도 있겠지만.
이 글 다시 읽어볼수록 재밌네요. 허허. 장면이 생생해요.
그리고 저런 문답이 오가면 전 정나미가 떨어지는걸 보니 역시 싹수없는 남자- 2008-11-20
15:18:02
상병 양 현
남정내도, 버스에 같이 탔었어야했어요. 타고나서 말하는거죠,
"자기랑 같이 자고나서 일어나보면 달라져있는지 확인해볼라고"라고....... 클클클. 2008-11-20
16:22:08
병장 정병훈
와... 역시 성기님의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짧지만 긴 여운을 받습니다. 흐흐흐 재밌네요. 2008-11-20
21:03:01
상병 김지웅
아 괜히 읽었다-
뭔가 마음속에 텅빈 공간이 자리 잡은듯한 공허함,,
이느낌 정말 싫다 흑흑
하지만 재밌기에 나는 열번 백번 읽고 상상한다. 남자가 콜택시를 부른 이유를, 2008-11-21
04:05:45
병장 김낙현
이거 읽으면서....
어째서 캐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연애 불변의 법칙'이 성공적일 수 밖에 없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허허]
못된 여자들. 2008-11-21
08:12:19
소위 문보람
이런 리얼리즘..샘나네요. 흑 2008-11-21
09:27:33
병장 정영목
남녀 간의 유전자적 이해관계가 극명히 드러나는 글이군요 2008-11-21
09:5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