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방해꾼 2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15 13:07:18, 조회: 95, 추천:0 

소녀는 행복했습니다. 예쁜 꽃들이 온 세상에 가득했거든요.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꽃이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늘에도 구름 대신에 커어어다란 꽃잎이 떠있었죠. 장미, 백합, 프리지아, 목련, 연꽃, 수국, 라일락, 심지어 저 멀리에는 커어다란 라플레시아도 보였습니다. 소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요. 소녀는 손을 뻗어 꽃들을 꺾었습니다. 소녀의 손에 들린 보라색 장미와 파란땡땡이의 튤립, 그리고 푸른색의 코스모스들이 꼬물꼬물, 줄기를 움직이며 서로 엉켜 화관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웃으며 화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꽃들에선 소녀가 좋아하는 솜사탕 향기가 났어요. 소녀는 꽃밭을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어느샌가 커다란 토끼와 양이 나타나 소녀와 함께 뛰어놀았습니다. 착한 토끼와 양은 꽃을 먹지 않았어요. 보드랍고 폭신폭신한 털로 소녀를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꽃밭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배고파."
소녀가 말했습니다.
"휘파람을 불어봐."
토끼가 말했습니다.
소녀가 입을 뾰족 내밀고 후-하고 숨을 불자 뿌-하고 나팔소리가 났습니다. 나팔소리가 꽃밭에 울려퍼지자 하늘에 떠있던 커다란 꽃잎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비가 내려왔습니다. 자동차만큼이나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소녀의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타."
소녀는 나비의 말을 듣고 나비의 등 위로 올라갔습니다. 나비의 등은 보송보송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자 둥실하고 떠올랐습니다. 소녀는 멀어지는 토끼와 양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토끼와 양도 소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비는 생각보다 빨랐고 토끼와 양은 금새 보이지 않게되었습니다.
"어디로 가는거야?"
솜사탕 향기가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소녀가 물었습니다.
"배가 고프다며,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거야."
나비가 대답했습니다.
멀찌감치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해바라기였지요. 해바라기의 그늘 밑으로 오아시스도 보였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자 오아시스 주변에 알록달록 피어있는 꽃들도 보였습니다. 동그란 꽃술 주위로 동그란 다섯개의 꽃잎이 달린, 누군가 그린 것 같은 꽃이었어요. 오아시스 주변에서는 솜사탕 향기가 아닌 다른 달콤한 냄새들이 풍겨나왔습니다. 나비가 오아시스 근처에 착륙했습니다.
"여기야?"
"여기야."
소녀는 나비의 등에서 내렸습니다.
"안녕-"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며 떠올랐습니다. 꽃잎을 향해 솟아올랐습니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아시스 주변에 피어있던 알록달록한 꽃들이 흔들렸습니다. 보라색 꽃 하나가 줄기를 쭈욱 늘려 소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소녀는 손을 들어 보라색 꽃잎을 잡아당겼습니다. 톡, 소리를 내며 꽃잎이 떨어졌습니다. 소녀는 그 꽃을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달콤한 맛이 퍼졌습니다.
"포도맛이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빨간 꽃은 딸기맛, 녹색 꽃은 사과맛, 갈색 꽃은 콜라맛이었습니다. 소녀는 신이 나서 보이는 대로 꽃을 입에 넣었어요. 그때였습니다.
"검정색은 콜라맛이네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상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검정색 꽃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습니다.
"맞죠? 이게 콜라맛 맞죠?"
아저씨는 웃으면서 물어봤습니다. 검정 꽃을 소녀를 향해 내밀었습니다. 소녀는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재밌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꽃을 씹었습니다.
"윽, 이건 계피맛이에요."
소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습니다.
"아, 이게 계피맛이구나. 이건 맛 없는 거에요?"
"제일 싫어하는 맛이에요."
퉤퉤, 소녀는 입에 든 꽃을 뱉고는 얼른 베이지색 꽃을 씹었습니다. 바나나맛이었죠.
"혹시 검은 색 싫어해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찍었어요."
이상한 아저씨는 양 팔을 크게 벌리며 대답했습니다.
"저, 아가씨."
"저요?"
"예, 아가씨."
소녀는 아가씨라고 불리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요.
"여기 굉장히 예쁘네요."
"네, 너무 너무 예뻐요."
소녀는 대답을 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걸 느꼈습니다. 이 꽃밭은 정말 너무 예뻤어요.
"도대체 이걸 어떻게 생각한거에요?"
"생각하다니요?"
"이건 아가씨가 생각해 낸 꿈이잖아요."
소녀가 들고있던 짙은노란 색 꽃을 떨어트렸습니다. 소녀가 제일 좋아하는 레몬맛이었지요.
"이거 다 꿈이에요?"
"네."
소녀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거 다 가짜에요?"
"네."
소녀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일어나면 다 없어져요?"
"네."
소녀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흐느꼈습니다.
"아니, 아가씨 왜 울어요?"
"나하요, 아여씨 나빠요."
소녀는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말했습니다.
"아가씨, 왜 울어요."
순간이었습니다. 소녀가, 꽃밭이, 솜사탕 향기가,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앞,뒤,좌,우 모든 것이, 어디를 둘러봐도 흰색 뿐이었다. 가뜩이나 까마득하게 넓은 공간이 흰색의 힘 때문에 더욱 넓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방해꾼-이라고 주로 불리는 정신적 존재의 보라색 옷은 압도적인 흰색에 묻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방해꾼은 그저 서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방해꾼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삐에로 같다고 말했다.
"에이, 예뻤는데."
혼잣말을 했다.
"나도 그런 거 상상해보고 싶은데."
갑자기 발버둥을 친다. 팔을 휘두르고 뛰고 구르고 눕고 물구나무를 서고 다리를 놀린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다.
"왜 난 안되지?"
숨을 고르더니 다시 누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흰색만이 가득한 세상에 점같이 놓여진 버둥거리는 보라색이 하나.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1:41 

 

상병 차종기 
  꺄악 조횟수 1의 상큼한 키득, 

하지만 또다시 방해꾼의 등장이군요, 어제 차이더니, 
심통이 난건가, 잘읽겠습니다~ 2009-01-15
13:08:38
  

 

병장 김민규 
  "앞,뒤,좌,우 모든 것이, 어디를 둘러봐도 흰색 뿐이었다. 가뜩이나 까마득하게 넓은 공간이 흰색의 힘 때문에 더욱 넓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방해꾼-이라고 주로 불리는 정신적 존재의 보라색 옷은 압도적인 흰색에 묻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방해꾼은 그저 서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방해꾼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삐에로 같다고 말했다." 

아, 긴박감이 넘칠 정도로군요. 쵸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잠깐만, 저 놈 그 삐에로 맞죠? 666 삐에로. 
죽어라!! 에잇!! 2009-01-15
13:12:26
  

 

병장 정병훈 
  몇가지 이야기를 끌고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이야기꾼이군요. 2009-01-15
13:28:52
  

 

일병 송기화 
  종기님/ 차인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아요, 랄까나. 쿨한 삐에로랍니다(응?) 

민규님/ 666은 뭐죠? 어쨌건 미움받고 있군요(흐-뭇) 

병훈님/ 아, 요즘들어 느끼는건데 저, 정신분열 같아요. 


어쨌건 삐에로는 다운을 일으키지 않는군요, 그러면 이번엔 룬으로? 2009-01-15
13:32:38
  

 

병장 김민규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참조. 들먹이는 이유는, 당시에 생각했던 이미지와 완벽하게 겹쳐서요. 아, 정말 밉구만요. 2009-01-15
13:36:22
  

 

상병 차종기 
  오늘 밤에도 나타난다면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롭게 대화나 해볼까나-, (랄라) 2009-01-15
13:40:37
  

 

병장 안재현 
  악몽을 꾸는 경우에는 왜 방해를 안하는 걸까요... 나쁜사람 2009-01-15
14:00:38
  

 

상병 김형태 
  제꿈에도 삐에로가 나오게 생겼습니다 2009-01-15
15:21:26
  

 

병장 이동석 
  흐흐흐, 정말 환상적이군요. 어서 봄이 왔으면, 

아아. 봄이다. 난 다시 쉬크한 도시 남자고, 정원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카라가 뛰놀고 있다. 아하하하하- 

그런데 저건 뭐지? 

뾰-ㅇ 

뿅- 

뾰옹- 

뿅- 

저 어- 멀리서 보라색 공같은게 튀어 온다. 아놔. 꿈이구나. 2009-01-15
2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