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바람 피우다.  
병장 허기민   2008-07-21 11:43:21, 조회: 333, 추천:1 

들어가기 전에

책마을로 유유자적 흘러 들어온 지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듯 합니다. 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전라도 광주 출신(이곳에 동향 분들이 많이 계신 거 같아서.. 절대 지역주의 이런 거 아닙니다)의 제대 94일 남은 공군 병장입니다. 그동안 눈으로만 글을 읽고, 마음으로만 곱씹느라 손이 놀고 있었네요. 가입인사조차도 올리지 못했으나(실은 써놓았으나 쑥스러워서 올리지 못하고 있음), 며칠동안 아니 오래전부터 쓰고 싶어왔던 주제를 이제는 써봐야 될 거 같아서 이렇게 글 한 편 올립니다.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라 여기 계신 분들의 반응이 상당히 부담되기도 하지만 용기를 한 번 내어봅니다. 

들어가서

군에 입대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제대 날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럴수록 떨리는 기분과 함께 초조함이 더해만 간다. 제대 후에도 결국엔 나를 속박하는 것들(복학할 때 필요한 등록금, 집 구하기, 전공 공부 등)이 나를 옥죄어 올 것이 뻔해서 그런가보다. 각설하고, 나에게는 군에 입대하고 나서도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여자친구가 있다. 다음 달이면 교제한지 3년이 되니 20살 이후로는 그 친구와 함께 시간을 공유한 셈이다. 군대 안에 있으면서 여자친구 속을 부단히도 많이 상하게 했다. 부대 내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은 상태라 화가 나면 내가 전화하고 싶을 때만 전화하기도 했다(자주 이런 건 아니다, 네 달에 한번 정도?). 이외에도 나는 일과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본의 아니게 그 친구에게 풀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는 통화할 때 80% 정도는 나의 무뚝뚝한 목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 질 때가 많았고 나는 나대로 여자친구는 여자친구대로 성질이 나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금방 화해했다. 다행히 여자친구의 마음이 넓은 바다와 같아서 나의 소심함과 성격적인 괴팍함을 다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친구도 아직도 내게서 용서하지 않고 있는 점이 있는데, 내가 다른 여자를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이는 지금 흠 잡을 데가 없으나 이 주제만 나오면 여자친구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기분이 바로 뾰로통해진다. 아직도 그녀를 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자친구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었다. 햇수로 따지면 이제 거의 7년차가 접어드는 셈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학교’ 라는 드라마에서였다. 당시 그녀는 내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레모나 CF 모델로 처음 등장해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배우였다. ‘학교’ 라는 드라마에서 그녀는 당대 신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연기를 했는데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 특유의 청순가련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요즘도 연예계에서 ‘가장 동안인 연예인’을 뽑을 때 순위권에 들기도 하는 외형적인 외모도 내 혼을 빼놓았다. 몇 년 전에도 그녀가 출연했던 ‘단팥빵’ 이란 드라마에 여고생 시절을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동안인 그녀의 모습에 인터넷에서도 아주 잠깐 화제가 되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평소엔(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라곤 쳐다보지도 않던 나였는데, 그녀를 본 이후로 나는 매주 ‘학교’를 보기 시작했다(물론 새로운 ‘학교’ 가 등장했을 땐, TV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PC게임에 열중했다.) 그녀는 이후에 ‘와니와 준하’ 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톱스타는 아니었는지 브라운관에서 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내가 그녀를 마음에 두었든 안 두었든, 시간은 흘러갔고 그녀는 점점 내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명절날 오후, 친척들을 많이 보지 못해 수입이 짭짤하지 못한 내 현실을 한탄하면서 TV 채널을 돌리던 중이었다. TV 속에서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의 눈은 분노에 이글이글 타며 TV에 당연한 듯이 고정됐고, 잠시 후에 명절 특집으로 나오는 오전 드라마인 걸 알게 되었다. 보통 드라마라는 게 아침 드라마면 여덟시쯤에 방영되고 저녁 드라마는 여덟시 삼십분쯤에 방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당시엔 꽤나 의아했다(나중에서야 명절에는 아침 열시나 열한시 사이에 특집 드라마를 가끔 방영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 특선 드라마에서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결혼한 신혼 부부 역을 맡고 있었다. 상대역은 야인시대 등으로 유명한 아역 배우 출신의 안재모 씨였다. 아이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고 남편의 무심함에 바람 잘 날 없었으나 극적으로 화해나고 나서는 어찌나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지, ‘저 상대역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라는 생각을 했다. 부부가 서로 싸울 때에는 그녀를 편들며 ‘그녀 옆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 해 줄 수 있다고’ 라며 외치기도 했다(어머님들의 감정 이입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음에 기뻤다. 16부작, 창립 기념 특선 드라마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따분한 명절날에나마 그녀를 다시 새길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어제 본 것처럼 익숙했다.
그 후 나는 고교 3학년이 되었고, 수학능력시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TV와, 아니 그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나는 이따금씩 그녀가 생각나면 네이버에 그녀 이름을 검색하면서 근황이 어떤지를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나는 그녀를 잊지는 못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여자 연예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김태희 씨 등 당대의 미녀들보다 그녀가 훨씬 아름답다고 주장했다가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누가 뭐래도 내게 있어 그녀는 아름다웠다. 
얼마 안 가 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학교 수업도 오전이면 마쳤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지칠 때쯤, 나는 가슴 한편에 묻어있던 그녀의 기억을 꺼냈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함이 나를 채웠다. 세상은 참으로 편리해져서 조금이라도 유명한 사람은 인터넷에서 이름만 치면 대강의 근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검색 결과, 그녀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단팥빵’ 이었다. 박광현 씨와 류현경 씨가 출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쾌활하고 발랄한 선생님 역으로 출연했는데, 가슴 깊은 곳엔 성당 신부가 되어버린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런 배역이었다. 얼른 재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계속 촬영 중이었으므로 진도를 따라잡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버려서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나온 그녀는 한결같이 내 이상적인 여성상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런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내 마음도 갈대처럼 흔들릴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미니홈피를 몇 번 들어가 본 뒤였다. 드라마에서 나온 모습과 너무 다른 그녀의 실제 모습을 보았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4차원적인 세계관을 접하고 그녀의 생각들이 쓰인 게시판과 그녀의 일상이 담긴 사진첩을 보고 있자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실제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내가 바라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매일매일 그녀의 미니홈피를 찾아감과 동시에 방문 횟수는 더욱 줄어만 갔다. 즐겨찾기에도 등록되어 있던 그녀의 미니홈피를 삭제한 건 얼마 뒤의 일이었다. 나는 실제 그녀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입대하였고 그녀는 ‘달콤, 살벌한 연인(?)’, ‘내 사랑’ 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하고, 아침드라마 ‘고맙습니다’ 에도 장혁의 첫사랑으로 출연하는 등 꾸준하게 브라운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달콤한 나의 도시’ 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내 기억으론 32, 내 나이는 23. 철없던 학생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고 이제는 연예계에서 인정받던 동안인 그녀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좋아한다. 한 때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달콤한 나의 도시’를 보면서 다시금 인정한다. 이제 나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그녀 자체일수는 없다는 것을. 드라마의 뜻을 찾아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기본 수단으로 하여 표현하는 예술 작품” 이라고 한다. 브라운관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단지 표현 수단이지, 그녀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TV에 나오는 그녀와 그녀 자체의 모습까지도 좋아하려고 한다. 나는 그래서 ‘달콤한 나의 도시’에 나오는 태오가 되고 싶고, 그녀 옆의 실제 연인이 되고 싶기도 하다. 구름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면 그녀와 나는 실제로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전까진 나는 그녀를 좋아할 것이다. 나이 차가 무슨 소용이랴. 
이러니 내 여자친구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마치며

며칠동안 짬짬이 글을 쓰다보니 뒤죽박죽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방전된 두뇌를 다시 충전하여 썼다가 다시 방전시키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이런 것 같습니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고 하고 싶은 말들은 막상 다 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올리지 않는 것보다 한 번 올려보는 게 후회는 하지 않을 거 같아 올려봅니다. 날씨가 무덥지만 그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웃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4:04:31 

 

상병 양순호 
  연예로써 좋아하는 이와, 연애로써 좋아하는 이는 틀리다고 보고 있는데. 
아닌 이들도 많더군요. 히힛. 그래도 중요한건 여느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데에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8-07-21
11:52:26
  

 

병장 고성구 
  최강희 빠돌이 여기도 추가요~ 

최강희가 벌써 30대라니..흑흑 2008-07-21
13:24:35
  

 

상병 정찬훈 
  최강희.. 예전에는 좋아했었는데, 
뭐랄까.. 요즘 들어서는 예전과 같은 빛(?)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08-07-21
13:47:49
  

 

병장 이재민 
  처음엔 우리 임여신 얘기인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아니군요 
흥흥 2008-07-21
13:58:31
  

 

일병 이동열 
  전 요즘 월화드라마가 너무 좋습니다 

좋아하는 분들이 각각 주연으로 나오고 있으니 행복할 따름 

(정작 드라마를 보지는 못하지만요, 울음) 2008-07-21
14:07:20
  

 

병장 이동석 
  왐마, 저랑 고향도 같으신디 취향도 똑같으시구먼요. 
(푸하하) 아따 반갑소잉. 

저도 <학교>의 보이시한 최강희가 좋았어요. 
그때부터 최강희에 대한 애정을 지켜왔어요. 
물론 중간에 조금 자리잡지 못하는 모습은 여간 안타까웠지요. 

그 어두운 시기를 뚫고 결국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요즘은 원숙해져서 더 좋아요. 탱글탱글한 톰보이는 없어졌지만, 팔자주름마저 귀여운 사람은 참 드물죠. 2008-07-21
15:20:11
 

 

병장 박준연 
  연예인은 하나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요.(웃음) 다만 현실은 우리가 받아들인 '이미지'와 틀릴 수 있으니, 그 간극을 메꿀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 없는 저로써는 정말 좋아했었던 연예인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단, SBS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는 박은경 아나운서를 (......) 2008-08-05
10: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