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바람소리  
상병 김무준   2009-01-21 14:05:28, 조회: 181, 추천:1 

별로 나오고 싶지 않았어. 녀석 군대 가기 전에도 나는 오질 않았으니까. 그 땐 바쁘기도 했지만 애들 만나면 고운소리 들을 수 없는 거 알고 있었지. 친구라 해도 보통 사람들은 그래. 이 나라에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식이란 게 그렇잖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우리는 다른 종의 인간이야. 동성에게 이성에게서나 느낄법한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거 이해 못해.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있겠어? 바라지도 않지만.

김군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텐데. 침대에서 산소호흡기 하나에 의지한 채 굳어있는 김군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까봐.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차마 찾아갈 용기가 없었지. 근데 소식은 궁금하더라. 어떻게 됐는지. 다시 일어날 희망은 있는지. 그래서 욕먹을 거 알면서 왔었어. 기분? 기분 참 더럽네.

사람들은 그래. 내가 동성애자라 해도,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 건 아니잖아. 내가 대놓고 남자랑 길바닥에서 키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들을 보면서 한 번 자빠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도 아냐. 그렇지만 싫어해. 타당한 이유 없이.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적 사고와 가치가 아닌 여자들의 머리를 가졌다는 게 그렇게 큰 죄라면 나는 지금이라도 혀를 깨물고 자살하겠어. 살아가는 이유. 그게 죄는 아니니까. 진짜 그게 죄라고 한다면, 그럼 죽어야해? 엄마의 남편이 말했던 것처럼 다리사이에 있는 걸 잘라버리고 죽어버려야 해?

그 새끼는 학창시절부터 날 싫어했지. 마주치기만 하면 죽이려고 들었어. 나도 쓰레기지만 너는 정말 재활용도 불가능한 찌꺼기다. 사내새끼가 자존심도 없냐. 맞기도 많이 맞았어. 재수 없다고.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도 아냐. 재수 없다고. 이유 없는 혐오와 폭력에 익숙하지 않던 때였어. 죽을까 생각도 많이 했지. 실제로 그렇게도 했고.

난 많은 걸 바라고 있던 건 아냐. 존경하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가족이, 소중한 친구들이 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랬는데.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지 나는 남자가 좋다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감정을, 남자에게서 느낀다고. 내 자신에게 당당하기를 원했어. 내 사랑에 떳떳하고 싶었어. 이해해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어. 그래도 내 주변사람들은 나를 받아 주리라 믿었어. 믿었지.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뻐한다던가. 엄마는 그런 날 끌어안고 펑펑 울었어. 엄마의 남편은 삼대독자가 자진해서 대를 끊으려 한다며 엄마를 버렸지. 엄마의 단란했던 행복을 내가 깨버렸어.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엄마야. 늘 미안하게 생각해. 못난 아들이라서. 병신 같은 남자라서. 원망하지는 않아. 나를 여자로 낳아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신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여자의 영혼이 남자의 몸에 들어온 거라고. 살아온 경험과 주변 환경이 날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건 어떤 의미에선 나를 부정하는 거니까.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겠지. 다시 공을 던질 수도 없을 테고, 그 씁쓸한 웃음을 빛나던 눈동자를 따뜻한 마음을. 이제 더는. 옛날 생각나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물론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운이 없을 뿐이랄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은 진짜 운에 달린 거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바에서의 하루는 똑같았어. 돈 많은 여자들은 남자들이 그렇듯 잘생기고 예쁜 남자를 주물러. 왜 그런 말들 하잖아. 여자가 상상하는 것들은 남자보다 몇 배는 더 심하다고. 이 사람들이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더 좋아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날 쳐다볼까?

누구도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어.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존재할 뿐. 근데, 나는 적어도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했어. 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 거지?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남자의 몸에 여자의 영혼이 들어왔다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까. 모르겠어. 혼자서는 답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정거장에 감독님을 꼭 닮은 사람이 앉아있었어. 너무 놀라서 창문너머로 쳐다보는데, 감독님일 리가 없잖아. 옛날 생각이 나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려야할 정거장을 놓쳤어. 걸어오는 내내 추억이 맴돌았어. 감독님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 멋진 사람이었고. 엉뚱한 사람이었지. 학교에 있는 꼴통들을 죄다 모아서 야구를 시킨 것도 그렇고, 경기하는 내내 헛소리를 하면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작전으로 우리를 결승전까지 이끌어줬어. 야구… 야구 왜 했냐고?

적어도 그라운드 위에 서 있을 때만큼은 변태나 미친년이 아니라, 한 명의 선수였으니까. 있는 그대로. 한 명의 선수라는 존재로 나를 응원해줬고, 우리 꼴통들을 응원했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도 파이팅을 외쳤고, 학생들까지도 난리가 났었지. 함성소리에 파묻혀서 경기에 집중할 때면 나를 잊을 수 있었어.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나 자신을. 나라는 존재를 잊고서 우리가 되어서 그라운드에 서 있었어. 그래서 야구를 했어.

야구 왜 안하냐고? 알잖아. 술이나 담배나 야구도 결국 똑같아. 현실을 잊게 하는 거지. 나 자신을 잊고서 무언가에 기댄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어. 그래서 더러운 거 싫은 거 참아가면서 몸 굴리는 거고. 가장 문제인 걸 바꾸고 싶지만 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건 운에 달린 거였고, 이미 나는 달려서 나왔잖아. 그러니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내 힘으로.

거긴 어때? 살만해? 외롭지는 않고? 나 너무 외로워. 너무 힘들어. 스쳐가는 사람들 옆으로 뒹구는 낙엽 소리에도. 너무 외로워. 쏟아지는 가을바람이 파랗게 높은 하늘을 뒤덮는데도, 내 마음에는 아무것도 흐르지가 않아. 텅 빈 가슴에 사람들이 던진 돌덩어리가 모이고 모여서, 커다랗게 멍든 바위만 남았어.

엄마. 보고 싶어. 두 번 다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흘러. 눈물만 흘러… 엄마… 엄마…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3:50 

 

상병 김민혁 
  제가 아는 여자아이 두명은 정말 둘을 좋아하고 있지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게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뿐인데, 

그사람이 단지 나와 같은 성별을 가졌다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는지 의아할뿐입니다. 

단지, 소수이기에 

다수에 의해 희생당하는 소수인 

제친구에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없는 저의 무능력에 회의를 느낍니다. 2009-01-21
14:41:11
  

 

상병 심재승 
  몇일전 모 방송사에서 하는 투캅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인터뷰 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그들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별다른건 없었죠. 우리와 다를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있다는것에 대하여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주위에서 갖은 비탄과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그렇습니다. 그들에겐..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장애우와 같이 다수에 의해 희생당하는 소수인에겐 
위로가 아닌 이해가 필요한 것같습니다. 
그들 그대로 봐라봐주는 그런 시선과 이해가 말입니다. 

민혁님. 친구분에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를 전해 줄 수 있는 
그러한 관심과 이해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인것 같습니다. 2009-01-21
15:21:54
  

 

일병 조진한 
  순결한 사랑 VS 순결하지 못한 사랑 2009-01-21
15:55:16
  

 

병장 장지훈 
  언제나 완성도 높은 글로 눈의 즐거움을 줌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이끌어 내게 하시는 무준씨. 아. 최고에요. 2009-01-21
15:59:56
  

 

일병 송기화 
  상대가 여자였다는 것 때문에 첫사랑 얘기를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여아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대학 동기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그때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울더라구요. 
막상 저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아 친구도 있고 해서 별 생각 없었는데, 남들은 그렇지 않았나봐요. 울고있는 아이에게 
"여자라서 좋아한 게 아니라 좋아한 사람이 여자였을 뿐 아니냐' 
라는 허튼 위로밖에 해주지 못한 제가 밉긴 하더군요. 2009-01-21
16:00:14
  

 

상병 김예찬 
  김규항씨 옛날 글 중에 돈, 집안, 배경 등을 따져 만나는 이성애자들 보다 순수하게 몸뚱아리와 몸뚱아리의 끌림으로 결합하는 동성애자들이 더 사랑에 있어서 순수한게 아니냐, 는 요지의 글이 있던게 기억나네요. 2009-01-21
17:15:57
  

 

병장 이동석 
  잘 읽었구요, 절절한데 단번에 읽히는게 좋네요. 과하지도 않고. 

다만, (무준씨의 설정이나 글에 딴지를 거는게 아니고, 단지 첨언하는겁니다.) 

일단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동성애자중에 트랜스젠더는 분명 교집합이 있긴하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거든요. 스스로 남자라는 정체성은 확실하지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보편적인 게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게이라고 반드시 여성스러운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욱 마초-인 경우도 많다는군요. 남남커플에서 남자 역을 하는 이를 탑-이라고 하고, 여자 역을 하는 이를 바텀-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평생 탑-역할밖에 안해봤다-는걸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마초가 심지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도 있다는군요. 

트랜스젠더- 예를 들면 남성이 여성의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건 무슨 전문 용어가 있는데, 전 역시 중증 고유명사 망각증 환자라서) 고로 성정체성-과 성적 취향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다는거죠. 2009-01-21
18:18:15
 

 

병장 이동석 
  암튼 책마을 출판사가 생기고, 무준씨의 글을 추려 출판한다면, 광고문구는 이렇게 나올것 같군요. 

88만원 세대가 쓴, <삼미 수퍼 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 
꼬불꼬불 꼬이고 뭉친 편견을 단번에 날려버릴 호쾌하고 사려깊은 적시타 

어떤게 더 느낌있나요? 2009-01-21
18:22:10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김규항씨 글은 뭔가 어폐가 있군요. 물론 요지뿐이라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동성애자들이라고 몸뚱이만 보고 결합-한다는건 뭐랄까 식당에서 눈맞으면 바로 화장실 가서 붕가붕가-하는걸로 묘사하는 <로드무비>에서처럼 호모포비아가 엿보이는것 같습니다. 물론 옹호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2009-01-21
18:24:53
 

 

병장 장지훈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 동슥씨는 이런 쪽의 화두가 던져진다면 역시....(웃음) 

멋있어요 동슥씨. 저는 동슥씨의 성적 소수자를 위한 행동들이 그들에게 대한 양심적 보상인지 아니면 그저 관심이 있기에 그런것인지 잘 모르겟지만. 

여하튼 멋있네요. 2009-01-22
08:03:08
  

 

병장 이동석 
  전 여성문제에 더 관심이 많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멋있는건가요? (음?) 

제 취향의 문제겠지요. 전 어떤 편견-이나 차별 같은걸 싫어할뿐이랍니다. 양심-의 문제는 아니에요. 별로 양심없는 인간이라. 흐흐. 2009-01-22
09:3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