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바다를 보고 다시 바다를 보고 다시 바다를 꿈꾸며  
상병 김무준   2008-12-11 03:39:49, 조회: 129, 추천:0 

모든 게 썰물에 쓸려 저 바다로 사라졌다.

다이어리 맨 뒷장에는 친구가 주고 간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을 전공하는 녀석에게 바다가 보고 싶다 징징대며 뗑깡을 부렸더니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장의 바다사진을 찍어주었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광안대교가 눈에 보이고 썰물 때인 듯 파도가 빠져 나가고 있다. 바다에는 드문드문 미역더미나 작은 돌멩이들이 뒹군다. 흑백의 사진은 내 다이어리의 끝을 차지했다.

며칠째 심각한 감기에 걸려 끙끙거리는 중이다. 가벼운 기침과 시작하기에 올 겨울도 어김없이 좀 앓겠지 했는데 좀 심하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핀 탓인지 기침에는 형광색 화학물질이 가득한 눈부신 물체가 섞여 나온다. 후우. 숨을 끝까지 내뱉으니 거미줄을 긁는 소리가 저 안에서 푹푹 뿜어져 나온다. 폐 깊숙한 곳까지 점령당했나 보다. 이게 폐렴인지 결핵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감기라는 나그네는 내 몸을 떠나실 생각이 없나보다. 아무렴.

휘모리장단에 맞춰 몰아치는 스트레스의 폭풍이 아주 그냥 작살나게 간지폭풍을 일으키며 시속 삼백삼십삼 킬로의 속도로 후두부를 후려친다. 이건 반칙이잖아. 클린치 상태에서 들어오는 상대의 무자비한 공격은 나를 빈사상태로 만들었다. 몸과 머리를 어제 저녁 마파두부마냥 으깼다. 한 사일 간 하루 한 대로 줄였던 담배를 반나절 만에 대여섯 배쯤 피우면서 금연의지는 장렬히 전사했다. 나흘을 버텼으니 다행이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삼일천하하고도 하루를 더 버텨주었잖니.

말 한마디에 사람이 무참히 부서져 내릴 수 있을까. 있다. 나는 감기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이를 몸소 체험했다. 나를 이겨냈던 이천오년의 가을. 산사의 낙엽을 쓸며 아저씨께서 던진 한마디가 기억났다. 며칠 전까지 삼년을 지켜준 것도 말 한마디였으니 말 한마디에 휘익 하고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몸도 머리도 이게 죽은 건지 산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애써 바느질하던 가슴마저 터져버렸다. 아아. 살아있는 게 다행이야.

바다가 보고 싶다. 나는 바다가 보고 싶다. 

[사진 속 바다가 비온 뒤의 바다인지 비가 내리려는 바다인지 비가 쏟아지는 바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의 사진이란다. 하긴. 개장을 했다면 이런 조용한 바다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겠지. 꼭 지금 내 마음과 같은 사진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사오년 쯤 뒤의 나를 그려본다. 피팅 모델의 몸에 줄자를 대고 바늘을 매만지고 고민하며 옷을 만드는 내 모습은 열정에 가득 차 있다. - 공팔 점 칠 점 육 점 아침] 중요한 것은 ‘열정’ 그 자체라고 사진 아래 적혀있다. 사진 아래 달린 잡기 밑에는 칠월 육일 아침이라고 써져있다. 지금. 바다 사진 속 나는 바늘에 찔리고 실에 묶여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른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아아 제기랄. 언제 쯤 괜찮아지려나. 감기약이 없다. 애인에게 일요일 약 좀 사들고 찾아오라 말했다. 아마 사흘 뒤에도 콜록거리고 있을 것 같다. 아마 담배는 사흘이 아니라 사 개월이 지나도 피고 있을 것 같다. 이런. 그런 고로 감기가 쉽게 나을 리가 없다.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면 어떠랴. 당장 움직여야 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담배를 끊으려했다. 담배는 내 폐활량을 넉 달 만에 반 토막 내주었다. 미칠 만큼 멋있는 자식. 다행히도 내 폐활량과 함께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잠의 연기도 가져갔다.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 잠이라는 마약에서 해방된 삶은 나를 좀 더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만들었다. 중학교 수학 자습서를 사도록 만든 것은 팔 할이 담배연기다. 이 고취된 학습욕구는 연기처럼 사라질 테지만.

겨울 바다라도 저 품에 뛰어들 테다.

바다를 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그 넓은 자태와 고요함이 내 슬픔 기쁨 따위의 감정을 모두 받아줄 것만 같아서. 내게 손짓하고, 다시 손짓한다. 푸른 물결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내 안에서 꿈을 찾으라 속삭인다. 어린 시절 모래 바닥을 뒤져 고운 조개껍질을 찾아내듯 바다향기 안에서, 파도의 물결 아래서 꿈을 찾으라 말한다. 그 작고 짭짤한 속삭임 안에서 나는 내 꿈을 찾고 있다. 기억의 페이지를 넘겨 뒤적거리다 보면 조각난 기억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나는 꿈의 조각으로 꿈을 그린다. 오리고 자르고 붙여서 다시 새 그림을 만들어야지.

아직도 사진 속 바다처럼 나는 너무나 흐리다. 꿈도 현실도 너무도 흐리다. 그러나. 결코 바닷물이 흐린 것은 아니다. 바다에 비친 저 하늘이 흐리게 보일 뿐이다. 언젠가 저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고 해가 내리쬐면 바다는 다시 제 색을 찾겠지. 밀물과 썰물이 모래사장을 쓸어내듯 마음도 바다처럼 쓸려가고 다시 채워지겠지. 다시 바다를 찾아 나를 비추면 나는 웃고 있겠지. 환하게. 웃고 있겠지. 저 사진의 바다가 비가 오는 바다라면, 나는 알고 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비가 내리는 바다는 없음을. 그래. 썰물이 저 너머로 내려가고 밀물이 이 위까지 차올라도 바다는 눈앞에 펼쳐져 있다. 기억의 조각을 뒤져 꿈을 그리면 그만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백사장의 모래알 같은 기억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다시 꿈을 그려야지. 이번에는 가슴에 모래를 채워 넣어야지. 머리를 바닷물에 감아야지. 몸에 바다를 적셔야지.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 서서 활을 들고 태양을 향해 시위를 당겨야지. 

별로 만든 화살로, 저 타오르는 태양을 사냥해 빛을 손에 담아야지.

한 마디에 무너졌지만 다시 한 마디에 일어선다. 모든 것들은 제 자리에 있어야한다는 아저씨의 말처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낫지 않는 감기는 감기라 부르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화도 화라 부르지 않는다. 여전히 내 껍데기는 조개 무덤마냥 바다에 버티고 서 있다. 알고 있다.

사진은 순간을 담아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 피사체인 현실은 멈추지 않고 변화한다. 물론. 나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3:58:53 

 

상병 박장건 
  그 동안 너무 쉬운 글만 봤나..싶습니다. 아니면 일부러 골치아픈 걸 싫어해서 조금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글을 피하던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윽..두세 번 읽고나서야 어느정도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요..(웃음) 잘 봤습니다. 2008-12-11
04:14:22
  

 

상병 김무준 
  더럽게 써서 그렇습니다. 2008-12-11
04:42:29
  

 

상병 김무준 
  사실 요즘 제가 하는 짓거리는 계속 지켜본 사람 아니면 이해 못합니다. 신비주의 컨셉으로 뻘짓 중이라. 2008-12-11
04:51:55
  

 

병장 양 현 
  빛을 손에 담으면 머릿속에 이런 메세지가 울려퍼질겁니다. 

<SYSTEM> 김무준님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이름의 던전에 파티를 맺고 레이드를 뛰러 가겠죠. 보스는 누구죠? 우리 동석씨 어때요. 아니면, 또다른 자신일까요? 음? 2008-12-11
07:17:41
  

 

병장 이동석 
  음, 정석을 펴들었다가 다시 중학교 문제집을 사게 되면, 누구나 감상-에 젖게 되죠. 
(이건 왜곡이다-) 

농담이고 
저는 괜히 시들시들 한게, 연말이고 말욘이고 뭐고 없는것 같아요. 변화하고 싶은 욕구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지치고 게을러 빠진 더러운 몸뚱이를 거울로 보고 있기 때문이죠. 2008-12-11
07: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