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미간과 인중
병장 최도현 2008-08-25 10:14:39, 조회: 257, 추천:0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마음에 드는 인상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역시 단순히 외형적인 것만으로도 매력을 느끼고 미소 짓게 만들며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첼리스트 중에 <송영훈>이라는 사람이 있다. 단순히 송영훈씨의 외모를 묘사한다면 이마가 넓고 눈에서부터 입으로 내려오는 얼굴선이 날렵하고 말끔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인상이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첼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음색만큼이나 무게감 있어 보이는 진중한 눈빛 역시 그의 전체적인 인상에 잘 어울린다. 송영훈씨의 전체적인 인상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무언가를 차근차근 자상하게 가르쳐줄 때 나오는 부드러움이다. 이와 더불어 그가 사회에 환원하는 일련의 활동 등을 통해, 외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인품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현재 국내 기업체와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들이 뜻을 모아 음악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송영훈씨의 인상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상형>과 아주 근접하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몇 가지 사항들을 추가하고 싶다. 자상한 아버지나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움 역시 마음에 드는 인상이지만, 이런 부드러움도 포함하는 동시에, 미간에 깊숙하고 뚜렷한 주름이 있어 어쩐지 쉽게 다가가기 힘든, 대하기 어려운 범접할 수 없는 인상을 지닌 이미지도 마음에 든다. 그 모습은 꼭 중세 유럽의 한 귀족 또는 공작의 집 어느 한 벽면에 걸려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또한 입술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얇지만 색깔이 유난히도 불그스름하며, 도톰한 상태로 치아가 보이지 않게 입을 모으고 있어야 한다. 송영훈씨는 자신의 지도를 잘 따라오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가지런하고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어떤 굳은 의지가 있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이미지는 지난겨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고행(?)에 가까운 일을 진행했던 백건우 씨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부인에게 마저도 그저 무뚝뚝하기만 하고, 그의 대화는 일상의 밋밋하기 그지없는 내용뿐일 것만 같아 보이지만, 그의 인상만큼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백건우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버릴 것만 같은 순전한 눈망울을 가진 동시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드러난 널찍한 이마는 앞머리가 약간 벗겨져 더욱 시원스러워 보인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분리하여 들으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연주하여야 한다는 그의 고지식함과 무뚝뚝함이 마음에 든다. 일상의 소소한 일일지라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함이 묻어 있는 느릿한 그의 어조가 마음에 든다. 어눌하면서도 묵직한 말투와는 상반되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적 편력은 그의 예술관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연주회가 끝나고 사인회 자리에서 펜을 야무지게 쥐고 있는 그의 손은 세월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잔주름이 가득하며, 굵은 핏줄이 돌출되어 있었고, 피아니스트라 하기엔 전혀 길지 않고 뭉툭하기만 하였다.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반드시 손가락이 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상형>은 부드러우면서도 무뚝뚝한 인상을 지닌 사람이다. 고지식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하며 다소 거만해 보이기도 하는 인상이지만, 그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지적 관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송영훈씨, 백건우씨, 그리고 한 명을 더 꼽으라면 정운영 선생의 인상이 내가 닮고 싶은 이미지이다. 이 분들의 인상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우러러볼 수 있도록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큰 바위 얼굴>과 같은 닮고자 하는 표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이 큰 바위 얼굴의 외모뿐만 아니라, 외모에 상응하는 인품까지도 닮아간다는 과정을 그린 이 짧은 이야기의 훈훈함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나의 짧은 문장력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며, <마키아밸리>의 절제되고 겸손한 표현으로 대신하고자 하는 염치없는 행동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의 발자취를 따르므로, 현명한 사람은 늘 가장 빼어난 자를 닮으려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비록 그들과 똑같아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향기의 얼마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 <군주론, 마키아밸리>
물론, 이성에 대한 <이상형>도 역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남자가 깊숙한 주름의 미간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면, 개인적으로 인중이 뚜렷한 여성에 호감을 갖게 된다. 단순히 외형적인 이미지에만 국한하여 쉽게 예를 들자면,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이었던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을 상상해 보면 적절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나의 이상형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 해보기 위해 잠시 문학적인 표현을 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신과의 만남은 제 가슴속에서 소중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어요. 당신의 그 신선한 생각이 제게 얼마나 귀한 의미를 갖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고지식하고 극단적인 성향까지도 제게는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이해되고 있을 정도예요...... 왜냐하면 저 역시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미성년>(F.도스또예프스끼, 열린책들, P.793)
이는 <까쩨리나>라는 공작의 딸이 주인공 <아르까지>에게 진실 된 고백을 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의 일부이다. 주인공 아르까지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양식이 나의 모습과 흡사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과 주변 인물들의 현실적 존재 상황에서 벌어지는 삶의 다양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내면이 성장해가는 모습이 나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숙하기만한,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미성숙한 모습으로 일관해 올지 모를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도, 이렇게 방황하는 처량한 영혼을 전적으로 이해해주고. 고지식하고 극단적인 성향까지도 받아들이며, 오히려 그것마저도 소중한 의미와 추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숭고함이 깃든 여성이 바로 내가 찾고 있는 이상형과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상형인 그녀는 까쩨리나의 표현처럼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성격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도 그녀의 진지한 성격에 맞추어 반응을 할 것이다. 그녀의 진지함에 내재된 중심의 진실함은 젊은이와 같은 무한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며, 학생과 같은 정답고도 독창적인 기분,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젊은이와 학생에 특징지어지는 가장 큰 덕목인 성실성과 겸손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래 발췌부분 역시 까쩨리나와 아르까지가 대화를 나누며 지난 과거의 애틋한 장면들을 기억해내는 장면이다.
아르까지 마까로비치, 당신은 적절한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자주 젊은이들끼리 하듯 이야기했었다고 했지요......(중략)...... 전에 제가 ‘저는 러시아 여성이기 때문에 러시아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나요? 우리 둘이서 열심히 당신이 말한 [사실]이란 잡지를 읽었던 적이 있지요(그 말을 하며 그녀는 씽긋 웃었다). 당신은 뭐랄까, 이상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때때로 갑자기 생동감이 넘쳐 아주 적절한 말을 했고, 제가 관심을 가진 일에는 같이 관심을 가져 주었지요. 그렇게 <학생 기분>으로 돌아갈 때면 당신은 정말 정답고 독창적인 분이에요......(중략)...... 기억하나요, 우리는 때때로 몇 시간 동안 숫자에 대한 이야기만 했고, 계산도 하고 비교도 하고, 우리나라에는 학교가 몇 개 있느니,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느니 하는 이야기에 열중하곤 했지요. 우리는 살인 사건과 그 외의 형사 사건을 계산하여, 그것을 좋은 소식들과 비교하며...... 그것이 대체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장래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려고도 했어요. 저는 당신 덕택에 성실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책, p.448)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보았던 숭고함과 진지함,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젊은이의 생동감과 학생 기분, 그리고 성실성과 겸손은 이제 나의 이성에 대한 <이상형>을 어느 특정한 형상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의 초점으로 모여들게 하는 인상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그녀가 진실로 <살아 있는 생활>을 하고 있음으로, 그 이상적이고 완전한 존재 속에서 내 영혼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죄성(罪性)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자신의 내면 안에 깃든 근본적인 결핍의 요소가 이글거리는 밝은 태양에 과감히 노출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회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내 자신만의 이념을 세워, 결국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골짜기로 침잠해 들어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활은 강렬한 태양의 직선적이고 직접적인 것만큼 솔직하고도 단순하며, 분명함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근원적인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아르까지가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르까지의 아버지 베르실로프(안드레이 뻬뜨로비치)에게 까쩨리나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의 이성에 대한 이상형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살아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이상형은 이글거리는 태양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곳으로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데려다 준다.
안드레이 뻬뜨로비치, 그 부인이야말로 당신이 아까 공작의 집에서 말씀하신 <살아 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살아 있는 생활은 아주 솔직하고도 단순하며 너무나 우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까닭에, 바로 그 단순함과 분명함 때문에, 우리가 평생 그처럼 애써서 찾고 있는 목적물이라고 믿기 힘들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런 관점에서 이상적인 여성을 찾았는데, 찾고 나서 그 완전함, 그 이상적 존재 속에서 <모든 악덕>의 근원을 발견하셨어요! (같은 책, p.471)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12:22
병장 이태형
이해하기엔 난해합니다.
허허허.
뜬구름 잡는 기분이네요(...)
잘 읽었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통곡)
어렵네요. 2008-08-25
10:58:38
병장 이동석
음, 일단 말머리가 [일상이야기]인지라,
미간과 인중이 급소라거나,
인중이 예뻐야 여자지 가슴만 크다고 여자냐는 내용이 예상되면서
클릭들어가고 있는데
미간과 인중을 주 재료로 인상학과 문학을 인용해서 만연체의 문장 계속되고 있는데,
뒤로가기 누르고 있는데,
음, 제가 출판편집자라면, 일단 말머리를 [내글내생각]으로 바꾼뒤
제목을 '미간과 인중에 대한 인상학적 고찰'이거나
'인상으로 보는 이상형에 관한 소고'같은 책마을 클리셰로 제목을 바꿔
주민들을 낚아보겠습니다만,
정작 저도 별로 신통찮아서... (웃음)
어쨌거나 말머리 바꾸시는걸 추천해드립니다. 크크, 2008-08-25
11:40:45
병장 이재민
그래서 이상형이 누구란 말씀인가욧!(버럭)
저는 연예인으로 보면 호감가는 연예인이 은근히 많은데
현실로 와서 보면 결국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거의 비스무레하더군요
그러니까
예뻐서 끌리는 거 말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스타일은 거의 비슷하더군요 2008-08-25
11:44:59
상병 양순호
위 읽고, 아래 읽고 생각나는건 요근래 신문서 볼 수 있는 허모선생의 '꼴'이네요. 클클클.. 2008-08-25
12:17:02
병장 전승원
베르나르 베르베르 의 <천사들의 제국>에도 인중에 대한 내용이 있더군요.
인중은 한 사람이 출생하는 순간, 그를 수호하는 천사가 손가락으로 찍어서 만든다는 설정으로 베르나르는 내용을 전개했습니다.
이 놈의 수호천사를 당장 때려잡아서라도, 예쁘게 다시 만들라고 협박을 해야겠군요. 2008-08-25
12:21:07
상병 이동열
여담이지만... 백건우님의 리사이틀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울음)
날씨는 무더운데 왠지 기분이 우울한 나날들이네요(울음) 2008-08-25
14: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