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무협지와 중국사 사이에서 - 무림 방파 성립의 시대적 조건들  
일병 김예찬   2008-11-02 16:21:43, 조회: 255, 추천:1 


0. 이제까지의 글들이 좀 딱딱하고 어려운 감이 있지 않았나, 싶은 반성이 들어서 이번에는 전공 과목의 기억들도 되살려 보고, 좀 라이트한 글을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쓰게 된 글입니다. 이런저런 무협지들을 읽다가 무협지에 등장하는 여러 방파들을 좀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은 거의 제 머릿 속에 남아있는 중국사에 대한 기억들과 무협지의 뇌내 파편들의 조합이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글이라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만.. 


1. 무림 방파 성립의 시대적 조건들 - 군사적 배경

무협지에 등장하는 여러 문파들 - 이른바 정파의 명문가 구파일방 / 오대세가의 개념은 언제 어떻게 대충 틀이 잡히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무협에 대해 빠삭하신 분이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역시 김용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먼저 이야기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무림 문파들은 일단 무력을 토대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무력 집단의 존재는 전근대 국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게 되면 국가가 무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바로 이 곳의 존재가 근대 국가가 무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전근대 사회에서도 물론 국가가 군사력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정부가 한 국가의 군사력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서양 중세 시대처럼 각 영지의 영주들이 자체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왕국에 전쟁이 벌어질 때 마다 왕에게 병사를 빌려주는 형태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조선 왕조처럼 국가가 병력을 독점하지만 왜란이나 호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국가의 개입 없이도 백성들이 의병을 만들어서 의미있는 군사력으로 化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근대 국가가 들어서게 되면 상비군 개념이 등장해서 지방의 독립적인 군사력 없이 국가가 무력을 독점하게 되고, 총기 소지의 제한을 통해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국가 이외에는 무장 집단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 속에서 '총기'의 등장이 굉장히 큰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상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꽤나 숙련이 필요한 그전까지의 칼, 창, 활 등의 무기와 달리 총기는 몇 가지 간단한 주의 사항만 숙지한다면 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살인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만약 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근대 국가에서 징병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징집에 있어서 전투력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과 군사 행동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집단으로 양분화 된 징병제가 시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높은 숙련을 요구하는 기타 무기와 달리 낮은 수준의 지능과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유의미한 전투력을 지닐 수 있는 총이라는 무기 때문에 징병제가 가능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궁에 오게 된 것은 모두 총 때문이다!) 쉽게 제조하고 입수 할 수 있는 원시적인 칼, 창 등의 무기 대신 쉽게 만들 수 없는 총이 무력 행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총의 갯수만 제한하면 무력 집단의 생성을 방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무협지의 무대는 총기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로 소급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무협지가 총기가 주력 병기로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2. 무림 방파 성립의 시대적 조건들 - 정치적 배경

그렇다고 해서 총기가 주력 병기로 등장하기 이전 시대 - 총기가 언제 부터 중국 전쟁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는지는 관련 책자가 주변에 없어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의 의화단 사건 이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라고 모두 무장 집단이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강력했고, 이러한 황제와 정부의 힘이 강력할 때는 당연히 반란 세력이 준동을 막기 위한 무장 집단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청조에서는 반청복명을 주장하는 한족의 비밀결사들을 극심히 탄압했고, 특히 건륭제 때 대표적인 비밀결사인 천지회의 반란 이후에는 비정치적 목적의 민간 조직의 결성이나 심지어 의형제 결의마저도 강력히 탄압하기도 했죠. 따라서 무림 방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대로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되어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작품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겼던 김용 같은 경우는 대가 답게도 주요 작품의 배경을 중앙 정부의 힘이 극도로 약화된 시기로 설정해 놓습니다. 예를 들어 영웅문 3부작의 각각 배경은 금나라의 압박으로 송 정부의 힘이 약화된 시기(사조영웅전), 몽골 군사력이 대륙을 휩쓸고 오랜 전란으로 지방 치안이 어지러워지는 시기(신조협려), 원이 쇠락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군웅들이 투쟁하는 시기(의천도룡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무림 방파들은 나라의 어지러움과 상관없이 오랜 역사를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3. 무림 방파 성립의 시대적 조건들 - 경제적 배경

무림 방파들도 수많은 문도들을 거느리는 조직인 만큼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이 꼭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무협지는 각 문파들의 수입원을 주루/기루의 운영이나 표국의 운영으로 잡고 있죠. 뭐 직접 문파의 문주가 주루/기루/표국을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스폰서라고나 할까요, 지역에서 강력한 무력과 명성을 보유한 문파가 주루/기루/표국의 배경이 됨으로써 혹시 있을 수 있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주루/기루/표국에서 상납금을 받는.. 마치 요즘 시대의 조폭같은 운영 방식이긴 합니다만. (따지고 보면 조폭하고 그리 다를 것도 없군요.) 좀 더 특이한 문파들, 예를 들어 불가 계열의 소림사나 도가 계열의 무당파 같은 경우 따지고 보면 종교 조직이기 때문에 신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기도 하죠. 문파가 소유한 거대한 농장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설명도 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하네요. 아무튼 대부분의 경우 주루/기루/표국 운영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과연 이렇게 역사적으로 주루/기루/표국의 운영이 가능해진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부터일까, 라는 것입니다. 한 문파의 운영금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주루/기루/표국은 당연히 규모가 큰 상업 도시에 위치하고 있어야하는 서비스업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역사에서 각 지역마다 일정 규모의 상업 도시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중국 같은 경우는 워낙 땅덩이가 넓다 보니 육로를 통한 교역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편입니다. 소나 말을 이용한 운송 수단은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고, 게다가 대륙의 산맥이 워낙 스케일이 크다 보니 빠른 운송을 핵심으로 하는 교역은 자연스럽게 수로를 이용하게 되었죠. 양자강, 황하 등 유명한 강들, 그리고 수 대의 대운하 건설 이후 수로를 통한 대규모 교역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역 도시들도 수 대 이후에 등장하게 되지요. 당대에는 실크로드를 통한 해외 무역으로 서안(삼국지를 통해 익숙한 장안성입니다.) 역시 대규모 교역 도시로 발전하게 되구요. 하지만 이처럼 상업 도시들이 등장했다고 무협지에 등장하는 거대한 주루/기루/표국들이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주루/기루의 경우에는 송 대에 들어서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당 대까지만 해도 일정 시간 이후에는 바깥 출입을 금하는 통행 금지가 있었거든요. 송 대에 들어서면서 통금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밤문화가 발전하면서 주루/기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렇다면 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표국 역시 송대 들어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교역이 발달해야 표국 같은 운송 대행 업체가 생기는 법인데, 일정 규모 이상의 대규모 교역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것도 송 대로 보이거든요. 그러므로, 이러한 경제적인 부분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무림 방파들의 경제적 기반이 성립될 수 있는 시대는 송 대 이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4. 역사 속의 유사 방파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배경이 갖춰졌을 때 무림 방파와 유사한 조직들이 역사 속에 등장했는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물론 유수의 역사를 지닌 소림사, 사서에도 이름을 남기고 있는 전진파, 사파 계열로 주로 등장하긴 하지만 아무튼 역시 사서에 이름이 남겨져 있는 명교 같은 경우가 있지만 이들은 무림 방파라기 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림 방파의 또 다른 형태인 명문세가들은 당연히 존재하긴 했겠죠. 무협지에 주로 나오는 남궁세가, 모용세가 등은 사서 속에서도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가이긴 합니다. 모용세가 같은 경우는 5호 16국 시대에 북동부 지역에 연나라를 세운 나름 왕족 집안이기도 하고. (천랑열전인가요? 국내 무협 만화에 보면 이와 같은 모용세가의 이야기가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가의 경우 보충하자면 일전에 북경 여행을 갔을 때 들렸던 박물관에서 삼국 시대의 유물을 본 적이 있는데, 오나라 지역 명문가의 저택 모형이 있더군요. 거대한 저택의 사방에 망루도 설치되어 있고 연병장으로 보이는 한 구석에는 창, 칼 모형들도 주룩 걸려있더군요. 세가의 경우 거의 이런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림 방파라기 보다는 지역의 세력가의 형태였겠죠.

녹림 계열의 경우 뭐 별거 없이 그냥 산적 집단이니까 당연히 역사 속에 수없이 등장합니다. 송 대 수호지로 유명한 양산박의 산적들도 녹림의 부류겠고, 중국 동남부 해안을 휩쓸었던 청 초의 유명한 해적 정성공도 떠오르는군요. 중국의 비밀결사들을 다룬 논문에서는 '북교남회北敎南會'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북 지역의 비밀결사들을 '교문'이라 부르고, 화남의 비밀결사들은 '회당'이라 한다는 뜻이죠. 교문은 일종의 종교적 결사로 원 말 나타났던 백련교 -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바로 그 명교와 같은 갈래입니다. - 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한편 회당은 의형제 결의를 맺은 무뢰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속적 집단입니다. 반청복명을 기치로 내걸고 청 초기에 반란을 꾀했던 천지회가 바로 대표적인 회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읽다보면 주인공 곽정의 사부들인 강남칠괴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회당'의 행동 양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국가의 법 체계를 넘어선 그들만의 도의를 따지고(의리 때문에 망하는 캐릭터들이죠..), 결의 형제를 맺고(그들은 모두 의형제입니다.), 상호 부조하는(각자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서로 돕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속적 결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무림 집단이죠. 역시 김용의 작품인 의천도룡기에서는 무당파가 등장하는데, 무당파 같은 경우는 '교문'의 예로 볼 수 있겠습니다. 교문의 특징인 가부장적 위계서열화(장문인을 중심으로 무림의 배분을 기준으로 서열화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종교적 의식의 강조(도가 계열의 문파니까요),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 뿌리를 둔 모습(무당산에 위치하며 주변 농촌 공동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이 보입니다. 

무림이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나는건 역시 청 말의 의화단 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홍콩 무협의 걸작 '황비홍' 시리즈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의화단 사건 때는 중국 각지의 교문, 회당, 녹림 집단 등등이 각자의 무력을 보유하고 양이들과의 대결에 나섭니다. (결과적으로 참패하긴 합니다만.) 청 말의 혼란기 속에 국가는 군사적인 통제력을 잃게 되고, 각 지역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중 군사력이 조직되는데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무림 문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 이미 민간 용병 비슷하게 무력 충돌의 선봉을 맡았던 집단이 있었으니 이들을 무림 집단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좀 더 비약해보자면 중화민국 수립 - 항일 투쟁 - 국공 내전에 이르기 까지 중국 역사 속의 끊임 없는 무력 투쟁 속에 등장한 '자발적으로 동원된 군사력'들의 뿌리는 무림 방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익히 잘 알려진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대장정이 끝나자 홍군의 숫자는 100배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조직되고 훈련되지 않은 각 개별의 민중들이 과연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전투력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을까요? 일종의 민중-군사화에 능한 중소 집단들이 대륙 각지에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이 핵심이 되어 병력화가 빨리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해볼 수 없을까요? 아무튼 이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긴 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35:14 

 

상병 양순호 
  무협이란 얘기가 나오면 꼭 궁금한게 있었어요. 무협에서는 신무기. 즉 총이나 기계나 이런게 나오면 안되는걸까요?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까요, 아니면 여기서 끝인걸까요. 2008-11-02
16:30:02
  

 

일병 김예찬 
  신무협에서는 총과 기계가 가끔 등장하긴 합니다만, 무림인들의 내공 앞에서는 그리 효과적인 무기는 못되더군요. 신무협은 아무튼 리얼함이 떨어져서 별로.. 

이 글은 여기서 끝입니다. 죄송합니다. (웃음) 2008-11-02
16:32:36
  

 

병장 이동석 
  흐흐- 이게 다 총때문이다-에서 

<갱스 오브 뉴욕>에서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총으로 무장한 징병제를 기반으로 한 군대가 등장하면서 도끼로 싸우던 갱들은 와해되버리는- 

무협의 세계에 등장한 총포-뒤의 근대국가- 그에 따라 재편되고 사그라드는 무협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008-11-02
16:47:03
 

 

상병 양순호 
  음. 총에다가 기를 실어서 쏘는 기탄 뭐 이런건 없는걸까요. (곰곰) 
몸에 기운을 둘러 강해지게 하는것처럼 팔이나 다리를 기계로 만들어, 
아니면 기계로 덮고 그 위를 기운돌게 하는.... 

..이런걸로 한번 써볼까요. 음.. 2008-11-02
16:56:30
  

 

상병 김무준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은 국내 무협이 아닌 중국정통무협과 중국사, 그리고 홍콩의 무협영화에서 추론하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국내 무협도 용대운씨의 작품처럼 대하소설의 성격을 띄는 정통무협의 경우에는 그 배경이 원(元)말기부터 주원장이 세운 명(明) 길게는 누르하치의 청(淸)까지 그 시대가 이어집니다. 언제 사라졌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나, 화산이나 무당 등의 파들은 실존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 설봉, 용대운씨 등이 중국에 기행을 다녀오는 걸 보면 아마 아직까지 명맥이 이어져 오거나 실존했다는 기록(혹은 흔적)이 남아있겠죠. 허나, 지금 현재 장르시장을 주도하는 신무협의 경우에는 역사적 고증이나 배경은 터무니없게만 깔려있거나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뿌리도 없는 국적불명의 글이라는 악평을 받고 있죠. 

영화 무인 곽원갑(이연걸 주연)에서 무인들이 어떻게 서양과 문물에 무릎꿇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실제 중국인들에게 있어 무(武)라 함은 어디까지나 이연걸의 황비홍과 같은 서양 문물과 힘에 맞서는 한족(※중국인들은 그토록 오랑캐에 배타적이었으면서 청(淸) 마저도 자국의 역사라 생각합니다. 중국대륙 내에서 본토를 지배했던 왕조라면 몽고족이고 만주족이고 죄다 한족이라는 가치관이 있죠. 알고보면 중국도 인종의 도가니탕...)의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와호장룡 역시 그 배경이 청(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발을 한 인물들이 나오는 무협영화는 90%이상이 청(淸)이 그 시대적 배경이죠. 동방불패 등의 역사적 배경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으니 패스하겠습니다. 

한국현대무협지의 시대적 배경은 추측할 수만 있을 뿐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인물들의 사고나 행동양식 등도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것들인지라 정확히 설명 드릴수는 없으나 현재까지 힘겹게 명맥을 이어오는 전통무협의 경우 명(明) - 원(元) - 청(淸)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등장문파와 타국의 등장 등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일 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중국 무협지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하고 싶군요. 최근 한국무협이 중국이나 대만으로 역수출 되고는 있지만, 평준화 시켜 일반적 특성을 빼내고자 할 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8-11-02
17:29:12
  

 

상병 김무준 
  아이러니하죠. 한족 외 오십을 넘는 소수민족을 본토에 거느리고 그들을 차별하고 배척하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부르짖는 한족이 실은 오랑캐와 피 섞인 민족이니... 

중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해 추가적인 설명은 아랫분들께서 해주실겁니다. 중국문학 전공하신 분 어디 계시던데... 2008-11-02
17:33:54
  

 

일병 김예찬 
  이동석 // 의화단 사건 때의 모습이 딱 <갱스 오브 뉴욕>의 그 장면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양순호 // 그런 작품도 신무협 중에 몇 개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무준 // 제가 국내 무협은 좌백, 용대운 작품 외에는 몇 개 읽어본게 없습니다. 신무협도 여러 개 읽긴 했지만 말씀하신 대로 역사적 고증이 전혀 안되어있는게 대부분이고.. 

의화단 사건 이야기하면서 곽원갑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곽 만 기억나고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황비홍으로 돌렸습니다. (웃음) 2008-11-02
17:36:53
  

 

일병 김예찬 
  청조와 한족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하지요. 아편전쟁 이후에 청조에 의해 중요한 관리로 임명되어 양이와의 대립에 선봉으로 나서는 관료들은 거의 다 한족 유지 출신입니다. 다만, 한족 관료 출신으로 지방 군벌을 이끌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후 청조에 대해 반란 노선을 걷게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청 말기의 관료 집단 사이에서 개혁의 방법론을 두고 만주족 - 한족 사이의 파워게임도 적지 않게 목격됩니다. 

의화단 사건에서 만주족과 한족이 점하는 위치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벌써 그 수가 많지 않았던 만주족 귀족 신분의 정부군 장군들(향락과 마약 복용등으로 인해 팔기군의 정신은 타락한지 오래였죠.)은 온건파, 양이에게 중화가 침탈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혈기방장한 한족 청년들(이들이야 말로 무협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협의인들이겠습니다.)은 강경파였고.. 이런 점에서 무협은 한족의 문화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008-11-02
17:48:28
  

 

일병 장봉수 
  무준// 저기.. 
무당은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2008-11-02
19: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