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모르는게 약이다.  
상병 김민규  [Homepage]  2008-10-04 19:44:40, 조회: 225, 추천:1 

또 중국發 식품오염사건이다.
혹자는 분개하지만 누군가는 '장기간 굳어진 업계의 관행' 이라고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설마 나와는 관계없을거야' 라고 애써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 순결한 우유 -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 에 왜 그런 지독스러운 하얀 가루를 넣었는지 궁금했다. TV에서 보여준 실상은 이랬다. 그 나라에서는 우유의 가격을 매길 때 단백질 함량을 기준으로 하여 정한단다. (우리 나라는 지방과 세균함량을 기준으로 한다) 보통 우유를 뽑아서 놓으면 단백질 함량이 11%정도. 여기에 물을 우유만큼 섞은 뒤에 5%정도의 멜라민을 첨가하면, 그 단백질 함량이 물을 섞기 전과 비슷하게 유지된단다. 훌륭한 trick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단백질을 11%함유한 분유에 멜라민을 5% 섞으니 29%정도의 단백질 함량을 보였다고 한다. 영양성분상 변한건,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마리의 젖소를 데리고 같은 양을 짜도 두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니, 그놈의 가루가 당장 수천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동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친절한 TV는 한 마디 덧붙인다. '이 과자를 하루에 5.9통, 커피를 4000잔, 뭐를 몇백개, 뭐를 얼마나 이렇게 잔뜩 매일매일 먹지 않는다면 사실 그렇게 걱정할게 없으니 물 많이 먹고 오줌이나 좍좍 싸세요'

진실. 이란 그런 것이다. 알고나면 모두가 호들갑에 죽네 사네 하지만 알기 전까지는 모르고도 잘만 산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멜라민 과자를 먹어 왔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입궁전 마지막 5개월을 중국에서 보내며 매일같이 그 동네 우유와, 빵과, 과자, 그리고 요플레를 하루에도 수없이 입가로 끌어들였던 전력까지 갖고 있지 않은가! 

당시에도 흉흉하기는 했다. 뭐, 내과의사가 감기걸린 자기 딸에게 직접 처방해 먹인 약이 불량이라 딸이 그 다음날로 생을 달리했다든가,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한 와인 몇백병이 사실은 공업용 메탄올로 만들어 단체로 눈이 멀고 일부는 치명적인 단계까지 갔다는 둥, 또 누군가는 길거리에 무수히 팔리는 꼬치구의의 원재료가 사실은 우리가 알듯 닭, 양, 소가 아니라, 비둘기, 개구리, 쥐, 라고 했다. 그래도 어쩌하리? 입증해낼 수 있는 방법이,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래서 정말로 어디가 어떻게 된 사람이 주위에는 없었다. 일단 가격은 무진장 착했다. 한개 100원짜리 요플레를 뚜껑은 까지도 않은 채 빨대를 꽂아 죽죽 빨아당기면서, '이곳은 낙원이야' 했고, 나중엔 동네 꼬치구이집 주인장들과 다 친해져 내가 가면 일단 묻지도 않고 깔아주고 시작했었다. 하루에도 몇십元치씩 팔아주니 마다할 턱이 있나.

그들의 그러한 사정, 즉 열악한 제조환경, 저급한 재료, 그리고 무엇보다 식품에 대한 저조한 인식을 모르는 바 아니다. 분명 이건 무언가 문제가 있다. 다른건 몰라도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어머니 말씀대로 '다 잡아 죽여야 돼.' 그러나 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로 인해 수혜받는 것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그 저급한 멀리하고싶은 중국産 제품들이 식탁에서, 책상위에서, 마트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리고 공장들의 수급에 차질이 생긴하면, 그 피해는 그대로 어디로 갈 것인가. 왜 물품이 저급한가. 오로지 가격 하나로 후려쳐 뭉터기로 덤핑 받아오는 것, 다 우리네 무역상들 소행 아니었던가. 그렇다. 내가 만난 이들, 한 달에 1000元(≒약 13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공장에서 일하고, 그 돈으로 한달을 살아가며,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물가가 싼 것만은 사실이나 체감하기로는 고작해야 1/4 수준이다. 한 달에 3000元을 가지고 생활과 거주와 여가와 유흥의 문제를 풍부하게 해결하면서 '이곳은 천국이야'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한켠으로는 미안했는지 모른다. 13억의 허리띠는 전세계를 먹여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탱될 수 없는 평화이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 불합리와 경제적 학대의 골이 깊어지고 곪아 터져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겠지만, 이들의 노동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저가의 대량생산은 당연 불가능이다. 어쩌면, 3차 오일쇼크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을 우리의 증대된 구매력과 함께 그들의 싼 몸값이 상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더불어 더욱 나를 당황하게 했던 건, 한류라는 이름으로 대륙을 돌아다니는 거짓된 이미지의 망령이 그들의 정신 한켠을 빼앗아, 마치 우리가 10여년 전에 일본을 보며 그러했듯이 일종의 시샘과 동경이 혼재된 복잡한 감정으로 하여간 '韓'자가 들어간 모든 것에 +50점 붙여놓고 보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에게도 한국 프리미엄이 붙어, 지내는 내내 젊은 친구들의 환대를 받으며 생활하는 데나, 중국어를 배우는 데나 도움이 되긴 했지만,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고 찜찜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아 후생의 극대화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왜 이런 구조가 성립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세대들이, 단순히 나타난 현상만 보고 반중을 논한다. 별다른 기술력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수만 가지고 있다 보니 1차산업의 부각이야 필연적인 결과였겠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의 지급이나, 공정한 무역의 태도는 우리에게는 없었다. 단지 싸게 많이 들여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낮은 가격수준에서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임금을 후려치고 생산시설을 최대한 굴려먹고 저급한 재료를 쓰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심지어 9시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중국 무역상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중국 본토에서 팔리는 물건이 훨씬 나아요. 중국 사람들은 먹는 데는 충분히 투자하거든요. 제일 싸고, 제일 마지막에 남는 것이 한국에 가죠. 왜나면 한국에서는 무조건 싼게 최고거든요. 그런건 우린 못 먹습니다'  그의 말을 100% 신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해야겠다. 한국에만 100%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이 모든 결과들은, 애초부터 예정된 부메랑이었다는 점에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다. 당장 옆사람이 중국산 재료가 들어간 무언가를 먹고 바로 죽어나간 적도 사실은 역대에 없으니, 알아도 그냥 모른척 하련다. 중국 노동자의 사정을 공감하고 세상을 바꾸기에는 뭐랄까 사실은 역부족인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에서 출발해 천안문 광장까지 행진하며 덤핑 무역상들을 규탄하기에는 당면한 그대 삶의 현실의 문제가 더 시급하지 않은가.
괜히 화학 성분이 어쩌고, 100mg당 기준치가 얼마고, FDA 권고안에 따르면... 하며 고상한 척 하기에는 우리네 주머니 사정도 빡빡하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서 사실 그런 데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고, 깨놓고 보면 우리나라 식품 공장 사정이라고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해왔듯이 그냥 있는대로 쿨하게 먹고 싸고 살자. 그러다 때가 되면 가겠지. 

어쨌건 가기 전까지 178에 5자 초반대 무게를 유지했던 필자는, 그곳에서 5개월을 보낸 후  6자에 근접해서 돌아왔으니, 그거면 된 것 아니었겠는가. 그간 몸에 이름도 모를 10년후에 밝혀질 이상한 화학물질이 축적됐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39:57 

 

병장 이동석 
  그러니까 모르는게 독이군요. 2008-10-04
20:07:21
 

 

상병 양순호 
  이미 모든 식품들은 만들어지고 나서 부터 여느 누군가도 모를 무언가가 들어가기 시작하죠. 생각해보면 이미 순환 아닌 순환이 돌아가고 있는거겠구요. 헌데 왠지 기사 느낌이네요. (곰곰) 2008-10-04
20:25:06
  

 

상병 이지훈 
  중국산 식품오염사건만 터지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 제 머릿속에 작용했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인정할 수 밖에 없군요...너무 쉽게 언론을 따라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허허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군요...음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가네요. 모르는게 약이기도 하지만 동석님 말씀대로 모르는게 독이기도 하네요 2008-10-04
20:34:15
  

 

상병 김민규 
  중국의 스타벅스는 멜라민 파동이 터진 이후에 커피에 들어가는 모든 우유를 두유로 대체했다고 하죠. 고급한 미국 브랜드이므로 그런 파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알까요, 그 두유, 사실은 GMO 콩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요. 
돌고 돌고 캐고 캐다보면 결국 멀쩡한 건 없을 것 같네요. 
슬픈 현실일지. 뭐, 아무 효과도 없는 그냥 맨 알약을 먹어도 심리적 기대효과로 약효가 있다잖아요. 그냥 뭐라도 맘편하게 잘 먹고 사는게 정신건강에도 몸에도 좋은게 아닐지요. 2008-10-04
20:45:51
  

 

병장 이동석 
  음, 제가 말한 '모르는게 독'이라는건 이를테면 민규님이 예를 든 멜라민 우유는 알고 유전자 조작 콩은 모르는게 독이라는겁니다. 멜라민에 대해 알지만, 여전히 모르는건 마찬가지란 것이죠. 

그리스인 조르바씨 (50세. 전남 영광) 
는 확대경으로 본 물에 벌레가 있다고 해서 갈증을 참을것인지 확대경을 깨버리고 물을 마실건지를 물어보더군요. 확대경을 치워버리고 물을 마시긴 해야할겁니다. 

그러나 조르바씨는 이미 '알고'있지 않습니까? 2008-10-04
21:01:26
 

 

상병 이우중 
  이쯤에서 좀머 씨의 의견도 궁금해지는데요, 

눈을 멀게 하는 와인이라... 눈먼 자들의 세계를 만드려는 것인가... (두둥) 

참, 저 월요일부터 유.... 네, 그 유... 갔다와야 해요. 당분간 못들어오겠네요.... 

이 말 하려구요(웃음). 이거 뭐 기우제라도 지내야지 2008-10-04
21:22:17
  

 

상병 이지훈 
  병장 이동석// 저랑은 다른 의미셨군요!!... 설명을 듣고 나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는 동석님이 생각한 의미가 더 와닿네요 과연.. 2008-10-04
22:03:44
  

 

상병 김세현 
  그 부메랑을 그대로 턱에 꽂히게 놔두실건가요 (웃음) 이런식이면 독도나 광우병같은 것도 우리의 조아리기식 외교 관행때문에 자초한 부메랑이라 치부해버리고 멍때리고 있다면..그것도 그냥 때가 되면 죽으면 되는건가요 (웃음) 뭐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지, 동네 형이 세상을 바꾸는지는 2008-10-05
07:49:09
  

 

상병 김민규 
  너무 무겁게 가지 맙시다(웃음)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라면은 처음에 위대한 발명품으로 칭송받았지만, 어느 날인가 동물성 저질 기름 파동으로 난리를 치고, 대두유로 바꾸니 MSG 첨가냐 무첨가냐를 놓고 싸우다가, 이제는 환경호르몬이니 트랜스지방이니 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제도 저는 뽀글이를 끓여 먹었습니다. 사는게 그렇죠. 몸에 안 좋은 줄은 알지만 뭐 어떡해요. 저녁밥이 쌀빵 군대리아면. 
파고들자면 끝이 없는 문제일 것 같은데, 지금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10년후에 또 튀어나오고, 튀어나오고, 그땐 그런걸 먹었나 싶고, 반복되겠지만...... 그냥 먹는거라도 맘편하게 신경안쓰고 먹을래요. 그런 말이었답니다. 2008-10-05
10:22:46
  

 

상병 김세현 
  네..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다만 그런식으로 무감각해지는게 싫어서 저는 좀 더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라는 관점으로 바라봤을 뿐이지요..멜라민 하나에 피켓들고 시위하자는 말은 아니랍니다. 저는 그저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동경할뿐이지요 (웃음) 2008-10-05
18: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