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몇 몇 용어에 대한 잡담.  
상병 김예찬   2009-07-09 154748, 조회 201, 추천0 



전 항상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드러나는 통찰력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어제도 잠깐 디씨인사이드  베스티즈를 돌다가 요새 흔히 쓰이는 용어들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잡담이니 좀 오버스러운 해석일 가능성을 배제하시면 안됩니다. 흐흐.


일코팬  아이돌 팬질과 거리가 먼 분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할지도 모르겠네요. 일코팬이라는 단어는 '일반인 코스프레 팬'의 줄임말입니다. 말 그대로, 심정적으로는 팬이지만 평상시에는 일반인인 척 하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죠. 이 사람들은 보통 아이돌 팬들이구요. 친구들을 만날 때나 직장에서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사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팬 사이트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사람들이 바로 일코팬입니다. 온갖 아이돌 팬들이 서식하는 베스티즈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일코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주로 자신이 소녀시대 일코팬인데, 알고 지내는 팬이 아닌 사람(보통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누군가가 어느날 소녀시대 칭찬을 하더라, 아니면 험담을 하더라, 그래서 자기 기분이 어떠어떠했다 뭐 이런 잡담을 많이 쓰곤 하죠. 나는 동방신기 일코팬인데, 내 주변에 누군가도 동방신기 일코팬인 것 같더라. 살짝 얘기를 꺼내서 팬심을 공유하면 어떨까요 뭐 이런 글도 많이 있구요.

이런 일코팬들은 보통 아이돌 팬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다니기 쪽팔리다는 20대 이상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건, 일코팬들이 일코팬으로써의 애환을 이야기하는 글들을 보면 가끔 자신이 아이돌 팬임을 커밍아웃 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은밀한 기대감도 함께 느껴진다는 점이죠. 일코팬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꽥 하고 외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것을 팬이 스스로 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로 받아들여야할까요 글쎄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길티 플레져라는 말이 있죠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는 선호 취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코팬은 이 단어의 한국적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겠죠. 재밌게도 요즘 세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길티 플레져, 혹은 키치함, B급, 매니악 등등이 문화적으로 우월한 취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일반인')이 선호하지 않는 마이너 취향을 즐기면서 상대적인 만족감을 얻는 경향입니다. 물론 마이너 취향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마 잘 모르실 것 같은데.. NT 노벨이라고 아세요라고 물은 후 결국 오타쿠 취급 당하면서, 속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자위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처럼 마이너 취향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반인'과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는거죠. 요즘 세대는 어떻게 보면 다들 서로 다른 취향의 오타쿠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수많은 갤러리를 가진  DC고, 또 非DC 인구들도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어디서든 놀고 있기 마련이구요.

'일코팬'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용어입니다. 우리 모두는 취향의 커밍아웃 순간을 은밀히 기대하는 일코팬들입니다. 나이에 안맞게 아이돌 팬임을 커밍아웃하고, 그에 따라 주변인들이 조금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생각할 때 느끼게 될 그 즐거움. 아, 역시 일반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러나 '나는 마이너 취향'이라는 생각 자체가 사실 허구죠. 모든 것이 상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취향 역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합니다. 나는 다양한 상품 중에 조금 희소해 보이는 무언가를 선택한 소비자에 지나지 않구요. 그러나 내가 선택한 '마이너' 역시 결국에는 대량 생산되는 이미지 상품에 지나지 않거든요. 동방신기 일코 팬은 주위 어딘가에 같은 동방신기 팬이 있기를 기대하면서도, 결국 같은 팬을 만나게 되면 기쁨과 더불어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에게 '팬 공동체'는 가상 공간에서 '팬으로서의 나'만을 받아줄 곳이기 때문에!

좀 멀리 나가서, 아이돌 팬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취향 경쟁도 생각해볼만 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팬들은 마치 '내가 얼마만큼 더 매니악한가'를 겨루는 것 같아요. 이 역시 '마이너 취향 추구'에서 발생하는 웃기는 일이죠. 서로 모르는 사이의 소녀시대 팬들이 갑자기 서로 알게 되었을 때를 가정해보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크크.

A  소녀시대 누구 좋아해요
B  저는 태연이요. (혹은 윤아요.)
A  그래요 전 써니 팬이에요.(혹은 단파니, 긴 등의 팬들 끼리 소통되는 코드)  - 속으로는 이런 대중적인 취향의 놈이 있나, 진짜 팬이 아니군! 이라고 생각한다.




잉여  어느 샌가 인터넷 공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잉여라는 표현.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사회에 불필요한 폐인오덕찌질이 등을 일컫는 단어죠.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얼마 전 디씨 힛갤에 올라온 아싸갤(아웃사이더 갤러리..) 스타벅스 현피 게시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게시물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싸갤에서 활동하는 갤러가 스타벅스 같이 가볼 동료를 구한다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연락이 와서, 둘은 함께 소주병을 들고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와 소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갤러리에 인증 샷을 올리죠.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이러한 행동에 다음과 같은 리플이 쇄도합니다. 아싸갤러라는 사실에서 일단 잉여. 스타벅스 소주 인증에 잉여 of 잉여 인정 잉 to the 여, 잉 to the 여 , 잉 to the 여...

대충 용례가 이해가 가시나요 크크. 어디서 부터 유행을 탄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잉여라는 단어는 요새 들어 더 급격히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밌는건, 이러한 '잉여'라는 단어에 대해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자신의 학술적 개념으로 정리한 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실업'인구와 '잉여'인구라는 표현이 가지는 함의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실업(Unemployment)은 직장을 '잃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경제인구는 고용되어야 하지만, 실업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고용을 통해 줄여나가야할 인구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잉여(surplus) 인구는 오히려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여라는 표현은 정상보다 과잉의 상태, 없어져야하지만 없어지지 않은 잔여물, 쓰레기 등의 뜻을 가지고 있죠.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잉여 인구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없어져야 할 인간쓰레기들입니다.

어느샌가 유행하고 있는 이 잉여라는 표현은 디스토피아적 세대 담론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청년실업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죠. 모두가 위기라고 이야기하고 경쟁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상황에서, 하릴없이 디씨질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잉여지만 넌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잉여라고 내뱉게 됩니다. 하지만 디씨질이 왜 '잉여' 행위인가요 이미 우리 머릿 속에선 스스로가 자유롭게 게으를 권리(그러면서 가끔 빠삐놈 같은 전설 of 레전드를 탄생시킬)도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잉여'라는 표현은 치열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구요.

저는 이 같은 '잉여의 탄생'을 보면서 가끔 두려움을 느낍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는 바로 이같은 '잉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사회에서 내팽개쳐진 룸펜들, 떠돌이들, 하층 노동자, 소농민들 같은 불만세력이 결국 루이 보나파르트의 열광적인 지지층이 되었죠. 다른 커뮤니티들 보다 유독 창의성, 전문성, 공격성이 강한 디씨를 단순히 '악플러' 집단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아야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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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차종기 
  이런 제길, 퇴근시간의 압박.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흑 2009-07-09
155159
  

 

상병 오효섭 
  호오 잘 읽었습니다. 그런단어가 있었군요.. 
어제 설탕 먹고 왔는데 집에서 허송세월 보내다 온거 같은,. 쯔습.. 2009-07-09
155750
  

 

일병 이승진 
  예찬님, 자꾸 앞서가버리시다뇨. 섭섭하네요. 그러나 시원하달까. 

'잉여'라는 현상이 저는 부정적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실질적인 생산성이 정점에 달했고 노동의 양이 줄어가는 시점에서 잉여는 어찌보면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업을 통한 잉여가 자꾸만 늘어가고, 노동에 접근할 수 있는 인구자체가 너무나 제한적으로 변하는 이 현실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노동의 (그 신성하신)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더 이상 노동 윤리에 갖힌다면, 답이 안나올것 같다는 그런 애매모호하고 뒤죽박죽인 저의 이야기. 

아무튼, 이야기가 술술 뻗고 있어서 참 기쁘네요. 이런 멋진 글쟁이. 2009-07-09
155928
  

 

상병 박원익 
  요새 유행하고 있는 '잉여'라는 단어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용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새로운 통찰력에 감탄했습니다. 사실, 처음에 '소외'라는 단어가 번역되었을 때, 당대에는 상당히 묵직한 어감으로 다가왔을 텐데, 지금 중고딩들의 범용한 비평용어가 되었지요. 그런데, '잉여'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수순을 거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은 이러한 제 나름의 역할과 가치를 지닌 '기표'들이, 온당한 의미에서 '번역'되고 있다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폐기처분되고 있다는 방증으로만 보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만의 기표로 '잉여'라는 단어를 재활성화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지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부분에서 뿜었습니다... 확실히 '잉여'들의 자조감이 하나의 유의미한 사회세력으로 뭉칠 때, 매우 퇴행적인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요. 2009-07-09
160211
  

 

일병 박정민 
  개념글은 힛갤로 꺼져- 라고 하고싶지만 여긴 책마을이니 닥버... 

아.. 디씨가 그립군요,. 2009-07-09
160459
  

 

상병 서석호 
  허허.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운 좋게도 
오늘 글들은 참 재밌게 잘 읽히네요. 2009-07-09
161106
  

 

상병 윤정기 
  일코팬 같은 용어사용에 관해선, 하루이틀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신기하네요. 개인적 취향의 마이너화가 사회 관계에 있어서 개인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특징적 '도구'가 되는 현상이 말입니다. 물론 '획일적인 취향'에서의 탈피가 그런 도구형성의 주된 바탕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획일적 탈피', 즉 보편성에서 무조건적으로 탈피하려는 일종의 사회적 '징후'같이 느껴집니다. 마치,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거야!' 라는 사춘기 소년의 세상물정 모르는, 하지만 뻔한 외침같아서 말이죠. 

잉여라는 단어는, 글쎄.. 저는 일반사회를 공부하며 '잉여가치'에 대해 배울 때 처음 접했던 단어입니다만, 요즘은 '잉여인간'이라는 소설제목이 마치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09-07-09
163609
  

 

상병 김예찬 
  종기  네시에 퇴근하십니까!!!!!!!!!!!! 

효섭  사실 모르는 편이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설탕 때는. 크크. 

승진  저도 그 필연성이 두려워집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잉여인구라는 개념이 실업인구라는 개념을 대체해가는 것이겠지만요. 

원익  역사가 반복된다는게 바로 그런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씨 같은 경우는 아싸갤이나 막장갤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이해되는데, 아싸(=왕따)나 막장(막장녀 동영상 현상이 처음에는 뉴스에서도 언급되었죠)처럼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지던 것들이 어느새 유희화되었으니까요. 

정민 사실 저는 그 '개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이 글에 쓰고 싶었는데, 급귀찮아져서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했습니다. 전 요새 갤러리 돌 시간이 없어서 그저 힛갤만 눈팅하고 있습니다.. 

석호  그러고보니 정말 오랜만에 이름을 뵌듯. 

정기  이전 '인디' 글에서 썼던 것처럼, '스타일 추구'야 말로 이 세대의 강박증인 것 같습니다. 그 유형이 '간지 스타일'이든 '오타쿠 스타일'이든 (물론 그 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위계는 다르겠지만) 다들 뭔가 취향을 향한 강박이 있습니다.. 잉여인간은 저도 매우 동감하는 바입니다. 200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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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이석재 
  흐흐. 잘 봤습니다. 제 밖의 친구가 잉여잉여 이러길래 어떤 의미인가 했더니. 요즘도 제초작업 하십니까 흐흐 2009-07-09
204551
  

 

병장 차종기 
  예, 네시에 퇴근합니다. 키키, 
그나저나 잉여란 단어가 그렇게 많이 쓰이는 줄 몰랐네요.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 생각은 했건만,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하고 작은 문제를 이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시다니, 
역시나 사랑스럽군요.흐흐 2009-07-10
081012
  

 

상병 권홍목 
  전 디씨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잉여는 들어봤다는.... 
잉여는 정말 많이 쓰이더군요. 처음 들었을때의 왠지모를 씁쓸함을 지적해주는 것 같아서 좋네요 2009-07-10
102538
  

 

상병 박진우 
  디씨에서 말하는 잉여는 뭐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편합니다. 
사실 디씨를 하는 것 조차 잉여짓에 가깝죠. 2009-07-13
010950
  

 

상병 김태완 
  나도 잉여에 가까운가 2009-07-14
150746
  

 

상병 진수유 
  잘 읽었어요. 2009-07-17
135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