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만담 4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23 15:13:24, 조회: 63, 추천:0 

어느 오후, 오두막은 언제나와 같이 정신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의 오두막은 누가 보더라도 '치밀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티백씨와 믹스씨가 괴상한 자세로 균형을 잡고 서있는 주위로는 도미노가 빈틈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새카맣고 반들반들한 도미노들은 크기가 모두 달랐습니다. 손가락 두마디 만한 도미노에서 시작되어 차츰차츰 크기가 커지더니, 현관 앞에 있는 마지막 도미노에 이르러서는 믹스씨의 키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제자야."
티백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긴, 한쪽 다리를 들고 투명의자와 비슷한, 물리법칙에서 상당히 벗어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 치고는 매우 정상적인 목소리였습니다.
"예에에."
팔굽혀펴기를 하듯이 땅을 짚고 엎드렸지만 왼쪽 팔은 허공을 향해 치켜들고 있는 믹스씨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시작한다아아."
"예에."
딱.
티백씨가 손가락을 튕기자 최초의 도미노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도미노는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두번째 도미노를, 두번째 도미노는 자신보다 조금 더 큰 세번째 도미노를, 세번째 도미노는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네번째 도미노를 쓰러트리며 달려나갔습니다. 
다르르르륵.
거실의 한가운데서 시작된 도미노의 파도는 부엌을 향해 달려 쌓아둔 그릇과 잔들을 타고 식탁으로 올라갔습니다. 식탁 끝에 아슬아슬 서있던 도미노는 등을 떠밀려 떨어지면서 자신보다 조금 많이 큰 도미노를 쓰러트렸습니다. 부엌을 빠져나온 도미노는 거실을 뱅글뱅글 돌다가 티백씨의 오른쪽 발등 위를 지나갔고-티백씨는 그제서야 편한 자세를 취했습니다.-믹스씨의 오른쪽 팔을 타고 올라가 믹스씨의 등에서 V자 모양을 그린 후 왼쪽 팔을 타고 올라가 떨어지며 흐름을 이어나갔습니다.-믹스씨는 그 직후 방바닥에 엎어졌습니다.- 마지막 도미노가 현관을 우당탕 부수며 넘어지는 순간, 티백씨와 믹스씨는 얼싸안고 기뻐했습니다.
"성공이에요, 스승님!"
"수고했어, 믹스군!"
그들이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서에 맞게 티백씨의 발등 위에 먼저 도미노를 놓았다가 믹스씨의 등에 도미노를 올려 줄 사람이 없어서 다시 해체했을 때, 믹스씨가 버티지 못하고 팔을 흔들어 쏟아져버린 도미노들, 그리고 티백씨의 말에 따라 하나하나 깎아낸 5602개의 크기가 다른 도미노들, 수많은 고난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스승님?"
팔다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성공의 쾌감을 만끽하다가 먼저 현실로 돌아온 믹스씨가 물었습니다. 티백씨는 여전히 성취감의 세계에 빠져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응?"
"그런데 이건 왜 한거죠?"
"아."
티백씨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부서진 문을 원래대로 고치고 손짓 한번으로 도미노들을 모두 치웠습니다. 오두막의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간 도미노들은 누군가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이 불안정하게 쌓였지만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지독한 불균형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균형상태였습니다.
"이게 다 오늘의 강의를 위해서야."
며칠 전,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은 티백씨는 모처럼 스승의 위엄을 세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승의 위엄을 세우는 방법은 제자를 향해 강의를 해주는 방법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믹스씨에게 도미노를 깎도록 지시했습니다. 크기가 다른 5602개의 도미노를 군말 없이 깎는 것 보면 스승의 위엄은 충분해 보이는데도 정작 티백씨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광이 나지 않는다거나, 감촉이 좋지 않다며 엉뚱한 문제로 틱틱거린데다가 8시간에 걸친 도미노 설치 작업에서 수전증이 의심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오히려 스승의 위엄을 깎아먹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은 걸로 모자라서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은 곳에 말뚝을 때려박도록 말했지만, 마법은 유전이야. 그렇다고 양측 부모님이 다 마법사라고 자식이 꼭 마법사인 것도 아니고, 어차피 유전병 비슷한 거니까 희귀하지. 어쨌건 마법사로 태어난 사람들은 시각, 촉각 같은 오감에 룬에 대한 감각을 하나 더 타고나는데, 세상에 떠도는 룬의 감촉, 무게, 색. 이런 건 그냥 우리가 느끼는 거야. 남들에게 아무리 가르쳐 주고 설명해 준다고 되는 게 아니지만 넌 마법의 재능도 없는 것이 과학의 힘으로 마법사가 되겠다고 우기니까, 이런 방식으로라도 가르쳐야 하는거지. 어, 그래. 학생."
손을 번쩍 든 믹스씨를 보고 티백씨가 장난을 섞어 말을 끊었습니다.
"네, 선생님. 무슨 말인지 하아아아나아아아도오오오 모르겠어요."
"얍!"
"으억!"
티백씨가 왼쪽으로 팔을 휘젓자 멀찌감치서 손을 들고 있던 믹스씨가 코를 부여잡았습니다.
"이런 거다. 내가 가진 룬을 다루는 감각으로 내 왼쪽에서부터 네 얼굴까지 이를테면 룬의 도미노를 쌓은거야. 그래서 내가 왼쪽의 룬을 건드리자 도미노가 넘어져 네 얼굴을 때린거지."
믹스씨는 아직도 코가 얼얼한 지 멍한 표정이었습니다. 주로 정신이 나간 사람 같지만 아주 가끔씩 제대로 정신이 나가는 사람인 티백씨는 강의를 할때만은 위대한 마법사 같았습니다. 괴팍했다는 말입니다.
"어쨌건 이런 룬을 다루는 감각은 갈고 닦을수록 노련해지는 거야. 조금 전에 도미노에서 보았듯이, 치밀하게 계산된 마법일수록 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만드는거지."
손가락 두마디 만한 도미노로 시작해 믹스씨의 키와 비슷한 도미노로 끝난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믹스씨의 머릿속에서는 하나하나 깎아내느라 고생했던 기억들만 스쳐지나갔습니다.
"아, 결국 그 '힘'이라는 걸 알려주시려고 굳이 문을 부수신 거군요."
"그래, 아까는 조잡하게 높은 곳에서 떨어트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힘을 증폭시켰지만 정말 마법적인 방식이라면 여러가지 길이 있어."
"마법진 같은 거죠?"
"그렇지. 뭐 마법진도 사실 한가지 방법일 뿐이지만."
정말 많은 방법을 알고있다는 듯이 쉽게 쉽게 말하는 티백씨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 같아 보였습니다.
"마법진이라는 건 사실 말하자면, 음, 아, 해머던지기 같은거야. 참, 더러운 비유구만. 어쨌건 해머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던지면 그냥 던지는 것보다 훨씬 멀리 나가잖아. 마법진도 룬을 붙잡고 진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빙글빙글 돌리다가 집어던지는 거지."
티백씨는 해머를 돌리는 시늉을 하며 설명했습니다. 폼은 꽤 그럴싸 했지요. 
"물이 콸콸 나오는 호스의 끝을 눌러서 좁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건가요?"
"아니, 달라. 호스를 누르는 건 쉽잖아. 해머던지기는 무지하게 힘들거든. 마법진 만드는 것도 무지 피곤해."
"아, 그렇게 피곤한 일이라면 뜬금없이 몇천, 몇만배짜리 마법진 만들어서 숨겨두지 말라구요."
"이얍!"
"억!"
일격을 받은 믹스씨는 얼굴을 움켜쥐고 쓰러졌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어딘가 감정이 실린 것 같은 공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론수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기의 룬을 느끼는 법, 구별하는 법, 응축하는 법, 움직이는 법, 쌓는 법, 힘을 넣는 법, 몇가지 노하우,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모두 눈을 부릅뜨고 필기할 만한 귀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믹스씨에겐 모두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처럼 들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검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벽이 온 세상을 뒤덮으려 하는 것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싸우던 믹스씨에게 반가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 이만 실습."
"넵!"
믹스씨가 벌떡 일어나 방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티백씨는 머리를 긁으며 오두막 밖으로 걸어나갔구요. 공터, 앞마당, 실험장소, 주차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지금은 실습장인 집 앞의 넓은 공간에서 멍하니 서있던 티백씨에게 믹스씨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준비됐습니다!"
얼핏 봤을 때 믹스씨는 기사들이 입는 갑옷을 차려입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믹스씨는 기사들이 입는 갑옷에서 실용적인 요소들만 모두 제거하고 입은 것 같았습니다. 불편해보이기만 했거든요. 게다가 이상한 고글까지 끼고 있었습니다.
"그거, 정말 돼는 거 맞아?"
티백씨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됩니다, 돼요!"
믹스씨가 쓴 고글은 믹스씨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것으로 대기에 퍼져있는 룬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티백씨가 마법적인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건성건성, 시큰둥이었습니다. 뭐, 믹스씨는 그 덕분에 성공작이 나올 수 있었다며 좋아했지만 말이죠.
"언제봐도 괴상하게 생겼어, 그거."
"원래 프로토 타입은 이런 겁니다."
믹스씨가 입고있는 갑옷 비슷한 불편해 보이는 쇳덩어리는 믹스씨가 목표로 하고있는 '과학으로 이루는 마법'의 첫발이었습니다. 룬엔진을 동력삼아 대기에 퍼져있는 룬을 다룰 수 있게 하는, 성공만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줄 대단한 기계였습니다.
"자, 그럼-
티백씨가 손을 까딱이자 오두막 안에서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 얼굴만한 도미노 조각이 날아왔습니다. 무너지는 소리는 간신히 이루고 있던 균형이 깨진 결과인 듯 싶었습니다. 
-우선 이걸 넘어트려보자."
도미노 조각은 티백씨의 손짓에 따라 10m 정도 날아가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자, 걱정 마시라구요. 갑니다."
믹스씨가 철옷의 가슴팍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룬엔진이 가동되었습니다. 등쪽에 달린 룬엔진에서부터 옷 곳곳에 연결된 선으로 붉은 빛이 퍼져나왔습니다. 붉은 빛은 특히 장갑에 집중되었습니다. 티백씨는 그 모습을 보며 도미노를 향해 걸었습니다.
"자, 준비 됐습니다아."
도미노의 옆에 선 티백씨는 믹스씨가 붉은빛이 나오는 장갑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 거리는 것을 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변의 룬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움찔했습니다.
"오."
믹스씨의 손끝에서부터 룬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믹스씨의 손짓에 의해 룬들이 질서를 가지고 정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기껏해야 손가락 두마디 정도의 도미노를 쓰러트릴 정도밖에 안되지만, 하나의 의지 아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룬은-
"잠깐!"
티백씨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믹스씨가 자신만만하게 손을 저었습니다.
"이얍!"
"으억!"
티백씨가 눈을 감싸쥐고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면서 도미노를 덮쳤습니다. 쓰러진 도미노와 티백씨를 내려다보며 믹스씨가 자신만만한 제스츄어와 승자의 표정을 짓고는 외쳤습니다.
"하! 힘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거죠!"
바닥에 주저앉은 티백씨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얼빠진 표정으로 믹스씨를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했다."
티백씨는 어른이었습니다.

덧. 우스갯소리밖에 할 게 없네요. 흐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3:05 

 

병장 김민호 
  와우, 이건, 그냥 쓰신 건가요, 아니면 연속해서 이어지는 건가요? 
대단히 잘 쓰셨는데, 왠지 따라가기가 힘드네요(땀) 2009-01-23
15:48:39
  

 

병장 안재현 
  언제나 이름이 너무웃겨요 하하 2009-01-23
17:06:27
  

 

병장 이우중 
  이렇게 티백씨는 눈을 잃고-(응?) 2009-01-23
18:27:27
  

 

병장 김민규 
  도미노가 티백씨를 덮치고! 둘은 어른이 되어가고-(응?) 2009-01-23
22:12:15
  

 

병장 이동석 
  사랑해요, 기화님, 낄낄. 2009-01-24
12:5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