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만담 3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21 18:34:47, 조회: 109, 추천:1 

"으워어어어어어"
컵 마을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을 꼽으라면 모든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티백씨와 믹스씨의 오두막을 뽑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시끄러운 곳은? 이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릴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치안유지대장실'이라는 의견을 내놓을 것입니다.
"으어어어어억"
대장실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소리를 듣는 대원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대장님을 도울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책했지요. 그러니까-
출동은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출동을 알리는 벨이 울자마자 대원들은 반사적으로 마을 외곽에 있는 오두막으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대원들은 오두막을 100여m 남겨둔 채 멈춰야만 했습니다. 오두막 지붕을 뚫고 솟아오르고 있는 불 회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너무 거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알아서 탈출해서 이미 아웅다웅하고 있었습니다.
"악!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에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스승님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설계한 건 믹스군 자네잖아."
"제가 설계한 건 저딴 거대 화염방사기가 아니라구요!"
"내가 만든 것도 화염방사기는 아니야."
"아악! 그런데 왜 불이 저렇게 콸콸 쏟아져 나오냐구요!"
"허허, 불이 콸콸 쏟아져 나오다니, 재미있는 표현이구나."
"아아아아아악! 위에 구멍이 뚫려버릴 것 같아!"
"아무래도 점화장치가 좀 문제였던 것 같지?"
"잠깐, 점화장치요?"
"어? 아, 아니. 여.. 열선! 그래 열선말이야 열선!"
"점화장치요?"
"아아니, 잘못 말한거야. 실수라구?"
"점화장치?"
대원들은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건드린 것인지 말이죠. 그리고 두 남자의 말다툼에 참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둘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티백씨!"
"오오, 카세트씨. 반갑습니다."
"됐습니다. 오늘은 또 뭡니까?"
"시트가 좀 눅눅하기에 말리려다가 말이죠."
"예?"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바람개비를 만들고 있었어요."
"네?"
"그런데 거기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어요."
"..."
끝이었습니다. 카세트씨는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카세트씨의 얼굴을 보고도 말을 걸 수 있는 대원은 없었습니다. 카세트씨는 자신이 타고 온 차에 올라 문을 닫고는 쌩- 돌아가 버렸습니다. 다른 대원들도 그 모습을 보고 허둥지둥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카세트씨는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출동사유칸에 채워넣을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채 괴성만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한편, 자기들 때문에 누군가 사무실에 쳐박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티백씨와 믹스씨는 치밀하게 어질러 둔 오두막에 엎드려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어어이, 믹스군."
뒹굴거리며 말을 꺼내는 티백씨의 말투는 참 여유가 넘쳤습니다.
"예, 스승님."
마찬가지로 뒹굴거리며 대답하는 믹스씨의 말투 또한 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시트가 좀 눅눅한 것 같아."
"그 점화장치는 떼다가 출력 낮춰서 벽난로에 달아놨어요."
"우리 믹스군은 응용력도 참 좋네."
"우리 스승님은 능력도 참 좋으셔. 그런 코딱지만한 점화장치로 오두막을 통채로 태워먹을 불도 뿜어내게 만드시고. 저 그거 출력 조절하다가 숲에 불 낼 뻔 한 거 아세요?"
"아니, 왜?"
"출력을 70%로 줄여도 그따위 불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이번엔 뭘 어떻게 개조하신걸까나아?"
"아.. 그.. 그건.. 알려줄 수 없다."
둘 사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똑똑똑.
"옳커니!"
냉기에 지쳐가던 티백씨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문을 열자 괴상한 차림의 손님이 서있었습니다. 금발이 아닌 노란색의 머리, 얇은 흰색 선이 체크무늬로 들어간 녹색 옷에 머리와 비슷한 노란 신발. 테가 두꺼운 검정 안경도 쓰고 있었습니다.
"티백씨?"
"예, 그렇습니다만?"
"틱 가문에서 온 글루스라고 합니다. 의뢰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예, 예. 들어오시죠."
티백씨가 글루스씨를 오두막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좀 어지럽죠?"
"...지독하군요."
글루스씨는 혼돈속에 숨어있는 규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글루스씨는 조심스럽게 빈틈을 찾아 까치발을 내딛으며 티백씨의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티백씨는 거침없이 걸었기에 글루스씨는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앉으세요."
"아, 예."
대답은 했지만 앉을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린 후에야 간신히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앉았다기 보다는 인간이 취하기 힘든 107가지 자세 중 하나를 흉내내고 있는 것 같은 글루스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차가 나올거에요."
티백씨는 손님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글루스씨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허리와, 왼쪽 어깨와, 오른쪽 발목과, 오른쪽 두번째 발가락에 쥐가 나기 직전인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차 나왔습니다."
주방에서 믹스씨가 차를 들고 나왔습니다. 대담하게 발을 내딛는 모습이 글루스씨에겐 마법처럼 보였습니다. 믹스씨는 글루스씨에게 차를 한 잔 건내고, 티백씨에게 한 잔을 준 뒤, 자신이 한 잔을 들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혼란스럽게 쌓여있는 물건들과 믹스씨의 몸이 편하게 포개졌습니다. 팔, 다리, 손, 목, 모든 것의 위치, 각도 등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완벽한 자세였지요. 글루스씨는 약간 경이로움을 담은 눈초리로 믹스씨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허리의 통증 때문에 금새 고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이제 말씀하시죠."
"예."
글루스씨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이 자세에서 어서 벗어나기 위해, 단숨에 뱉어 낼 생각이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틱 가문은 펜 왕국 북쪽에 위치한, 북쪽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가문입니다. 하지만 저희 틱 가문에 자꾸로 시비를 걸어오는 북이라는 가문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무력충돌도 잦았다고 하는데요, 요즘은 저희 가문의 인자하신 가주님이신 찹스님께서 무력사태는 최대한 자제하고 계십니다. 대신 북 가문의 가주와 서로의 희귀한 수집품을 자랑하는 고상하고도 문화적인 만남을 자주 갖고 계시지요."
"자존심 싸움이군요."
믹스씨가 글루스 씨의 말을 끊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티백씨와 믹스씨가 날이면 날마다 자기네들 끼리 쓸 물건들을 만들며 오두막을 날려먹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정신나간 대마법사와 서서히 물들어가는 엔지니어라고 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들은 종종 의뢰를 받습니다. '어떠어떠한 것이 하고 싶으니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죠. 아이디어도, 용도도 상대측에서 가져오니 이들은 그에 맞춰 기술력과 마법력만 투자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디어부터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발명보다는 훨씬 쉬운 일인데다가 벌이도 괜찮았습니다. 티백씨도 남이 의뢰한 물건을 만들 땐 장난을 치지 않기에 의뢰주들은 만족했고, 업계에서는 꽤 유능한 공방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떤 걸 만들면 되겠습니까?"
"이건 비밀이지만 저희 쪽 공작원들이 이번 만남에 북 가문에서 가지고 나올 물건을 알아냈습니다.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신비의 생물- 볼프강의 낚싯대입니다."
"볼프강이요?"
볼프강이란 고대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생물입니다. 얼핏 고양이를 닮았지만 직립보행을 하고 머리가 매우 큰 데다가 멍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볼프강은, 동물이면서도 몸 곳곳에 꽃이 피고, 자신의 꼬리뼈-로 만든다는 단 하나뿐인 낚싯대를 가지고 자신이 먹을 물고기를 낚아서 먹는다는 신비한 생물입니다. 전설에나 나오는 이런 생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거의 모든 국가의 건국신화에 볼프강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 그래서 저희 틱 가문은 비상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생물을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오랜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저희가 전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그저 마법사와 엔지니어인걸요."
"네, 그겁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기적을 일으키는 쇳덩어리 입니다. 고대의 물건인 것처럼 보이면 더욱 좋겠군요. 마법과 과학이 합쳐지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예에, 무지하게 어렵겠군요."
티백씨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기적처럼 보이면 되는 겁니다. 저희는 대폭발을 일으키는 유리구슬이나, 끊임없이 물을 뿜어내는 돌, 혹은 불꽃이 솟구치는 바람개비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새로운 것도 좋습니다.
믹스씨는 약간 당황했지만 침착을 가장하며 말했습니다.
"혹시, 저희를 조사하셨나요?"
"예? 아니요."
틱 가문의 수뇌들이 모여 간신히 상상해 낸 '기적'들을 실패작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손쉽게 만들어내어 믹스씨와 카세트씨에게 큰 민폐를 끼친 티백씨가 태연하게 제안했습니다.
"빵 하나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포가 있는데요."
"엑? 스승님. 그거 부쉈다고 하셨잖아요!"
"이 스승은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걸 예상하고 있었다."
"이 거짓말쟁이!"
어른의 권위를 보이려던 티백씨는 순식간에 거짓말쟁이로 몰락했습니다. 하지만 글루스씨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빵 하나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적의 대포-따끈따끈 오븐 2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말 그런 게 있나요?"
"아, 예. 관심있으신가요?"
"예. 대단한 기적인데다가 무시무시한 무기로도 쓸 수 있다면 북 가문에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겠습니까."
일은 일사천리였습니다. 티백씨는 사방에 널려있던 잡동사니 중 몇 가지를 줏어 철컥철컥 끼워맞추었고, 그것은 곧 개구리 모양의 쇳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믹스씨는 기절초풍했고 글루스씨는 마법을 처음 본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티백씨는 또다른 잡동사니를 가지고 왔는데 일정한 룬 파동을 뿜어내는 원격조작장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곤 기적의 대포를 사용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한 후 대포를 가지고 나가 작동 시범을 보여주었고 넋이 나간 글루스씨에게서 꽤나 많은 돈을 뜯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글루스씨를 차에 태운 후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스승님."
"응?"
떠나가는 글루스씨의 차를 보며 믹스씨가 티백씨를 불렀습니다.
"그래도 위력은 조절하셨네요?"
"8배로 조절했지."
"엑? 그게 8배에요? 또 완전히 헛짚었네."
믹스씨는 예전에 자신이 8배의 룬 증폭기를 장착하면 정상적인 오븐으로 가동 될 거라고 한 추측이 틀렸다는 걸 알고는 꽤나 놀랐습니다. 따끈따끈한 빵은 이번에도 꽤나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날 너무 과소평가 한거지."
하지만 티백씨는 동력이 되는 룬을 0.2룬 짜리에서 15룬 짜리로 바꾸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 그리고 스승님."
"응?"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믹스씨가 다시 말했습니다.
"얼마전에 다녀간 손님이요, 이름이 노트라고 했던 사람이요."
"아, 기억나는데 그 사람이 뭐?"
"그 사람 북 가문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아. 그랬었나?"
"그 사람이 가져갔던 물건이 뭐였죠?"
"아마, 넣으면 낚이는 낚싯대였던 것 같은데."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사기꾼 콤비로 찍히는 거 아닐까요?"
믹스씨가 세상 다 산 사람같은 말투로 말했습니다. 티백씨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2:48 

 

병장 이동석 
  볼프강 또 나왔다. 볼프강이랑 무슨 인연 있으신가요. 낄낄. 

글루스 틱 

찹스 틱 

노트 북 

푸하하하하- 2009-01-21
19:06:07
 

 

상병 이석재 
  푸하하하하-- 잘봤습니다. 송기화님은 대체 이런 만담을 어떻게 생각해내시는 건아요. 마치 오버 더 호라이즌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2009-01-21
19:49:59
  

 

일병 송기화 
  동석님/ 볼프강은, 연보라색에 꽃무늬가 있고 머리가 크고 멍한 표정을 짓고 낚시를 하며 제 모니터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 장식품의 이름입니다. 네, 만담에 나오는 이름은 다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이에요. 

석재님/ 아, 이 만담이요. 오버 더 호라이즌-은 안봤지만 그 핸드레이크와 솔로쳐가 아웅다웅하는 것과 마술사 오펜이라는 모 소설에 나오는 티격태격하는 사제관계를 보고 배낀거에요.(뻔뻔) 2009-01-21
20:46:22
  

 

병장 이동석 
  아, 맞다, 그리고 보니 예전 어느 댓글에서 언급하셨었군요. 아- 그 글에서였구나. 김유현님 글에서 그 댓글! 

(이런 멍청이!) 

죄송합니다. 흐흐. 
정말 기화님의 센스는 그야말로 경탄- 경탄- 또 경탄- 2009-01-21
20:54:34
 

 

병장 안재현 
  볼프강 하니까 왠지 영화 아마데우스가 머리에 그려져서.... 2009-01-21
21:03:16
  

 

일병 이상훈 
  역시 대단합니다 ! 2009-01-21
21:33:00
  

 

병장 김민규 
  크하하하 2009-01-22
07:20:56
  

 

상병 김민혁 
  다른 수식어 필요없이... '재밌다 '라고 말해드리고싶어요(웃음) 2009-01-22
07:2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