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로미오와 줄리엣
병장 윤영돈 [Homepage] 2008-11-18 10:56:45, 조회: 168, 추천:1
글이 많이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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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때는 200x년. 써놓고보니 너무 가까운 과거이지만 언제나 디즈니동화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니 - 옛날 옛적에 어느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나라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두 가문이 존재했다. '쿤'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문과 '사바'라는 이름을 가진 가문은 그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고, 두 가문은 서로 도와가며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것과 별개로 서로의 관계는 견원지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쿤가는 언제나 젊은이가 부족했기에 사바가의 젊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사바가는 그것이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고, 서로에 대한 불평불만은 계속 쌓여만가 둘의 관계는 100여년의 세월을 통해 원수지간으로 발전했다.
쿤가의 젊은이들은 사바가의 젊은이들을 증오했고, 사바가의 젊은이들은 쿤가의 젊은이들을 불쌍하고 하찮게 여겼다. 이따끔씩 사바가의 젊은이가 쿤가에게 젊은 노동력을 바칠 때면 사바가의 젊은이들은 그 희생양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고, 그 희생양은 대부분 쿤가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음주가무를 즐기며 괴로움을 잊고자 노력했다.
자 - 배경설명은 이쯤이면 됐고, 때는 200x년 쿤가에는 로미오라는 장성한 청년이 있었다. 그리고 사바가에는 줄리엣이라는 아리따운 여인네가 있었고. 둘은 자신의 가문에 대해 이해하기 전부터 서로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 사람이 없으면 죽고 못살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둘의 사이는 태평양을 가르려는 갈매기의 날개짓마냥 무모하게 커져만갔고 견원지간인 둘의 가문은 그들의 애정행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둘의 사이를 훼방놓으려고 했다.
여러 공작끝에 로미오는 결국 쿤가가 가지고 있던 라푼젤을 감금시켰던 탑안에 갖히게 되었다. 로미오는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곧 가문에 대한 배신행위, 곧 나라의 역적이 되는 것임을 알기에 함부로 도망나올 수도 없이 탑안에 홀로 갖혀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담배만 쭉쭉 빨뿐이었다.
탑안의 행동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체력단련을 목적으로 3평남짓한 방안을 쉴틈없이 17,520바퀴정도 돌아야 된다거나, 새벽에 일어나 창밖으로 누가 오는지 살펴야 한다거나, 방안을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해야한다거나, 이유도 모른채 콘크리트로 된 바닥을 삽으로 파내야 한다거나, 애써 파논 바닥을 다시 시멘트로 매꿔야 한다거나, 애써 매꿔논 바닥을 다시 삽으로 파내야 한다거나 하는 등 실로 단순한 작업들이었지만 이유를 모르는 채로 해야했기 때문에 그 피로는 밖에 있을 때보다 더했다.
때로는 쿤가의 어르신들이 찾아와 이유모를 질타를 받아야 했으며, 또 이유도 모른채 죄송하다는 말만 해야했고, 다시 이유도 모른채 벌을 받아야했고, 다시 한번 이유도 모른 채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다짐을 받아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모를 질타를 받아야 하는 이유모를 일들을 겪으며 내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육체적 고통과 심적고통은 로미오로 하여금 우울하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로미오는 꼬질꼬질 구겨진 줄리엣의 미니어쳐 초상화를 보면서 그녀와 행복했던 나날을 추억하며 홀로 씁쓸한 고통을 달래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로미오는 자신의 방안에 자신말고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한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라푼젤이 남기고 간 인형에 불과한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주 조금씩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자리를 이동해가며 방안을 어지르고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피노키오였다.
로미오가 피노키오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것은 입을 열기 시작했고, 계속 듣기가 힘들어질 만큼 엄청난 양의 말을 했다. 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무용담이었는데 웃긴것은 그 무용담을 할 때마다 코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 채 로미오가 그것의 말을 신경쓰던지 말던지 자신의 말을 떠벌리기 바뻤고, 더 나아가서는 로미오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로미오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것이 마음껏 지껄이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실상 로미오는 외로운 탑 생활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피노키오는 계속해서 지껄여댔고, 늘어나는 코는 긴 겨울을 때우는 장작용으로는 일품이었기 때문에 로미오의 혹독한 탑생활을 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피노키오의 혼잣말의 주된 내용은 대부분 무용담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곧 인간이 될거라는 소리였다. 로미오는 그 때까지 들었던 거짓무용담을 생각하며 이 녀석이 또 헛소리하는구나 하며 신경쓰고 있지 않았지만 때때로 피노키오가 인간이 된다면 굉장히 쓸모없는 녀석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로미오와 피노키오의 생활은 그렇게 계속되었고 피노키오의 땔깜이 필요가 없을 어느 화창한 봄날, 이제는 완전히 적응해 버린 생활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로미오에게 꿈속에서나 그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미오-"
줄리엣의 목소리였다. 오래된 친구를 부르는 듯한 나긋나긋한 음성과 친근한 목소리. 처음에는 환청인가 했다가 피노키오의 발정난 행동을 보고는 실제로 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로미오는 재빨리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한눈에 보아도 줄리엣, 두눈으로 보아도 줄리엣, 뒤로 봐도 줄리엣인 그녀가 로미오를 올려다보며 베시시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미오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그 당황은 곧 행복으로 바뀌었다. 아!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던가! 로미오는 줄리엣과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랬다.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어색한 감도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로미오는 너무나 행복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쿤가의 어르신이 찾아와 그녀를 데려갔고 로미오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날 저녁 피노키오는 로미오가 달밤을 혼자 쓸쓸히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그간 쓸데없는 수사와 수식어를 사용했던 그의 말을 생각하면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짧은 말이었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거야."
"힘드니까."
로미오는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로미오를 보면서 피노키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여자친구도 찾아온 즐거운 날에 왜 그러고 있는거야."
"그래서 힘든거야."
"어째서?"
"나는 라푼젤처럼 머리카락이 길지 않아서 그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할 수도 없어. 아니, 그녀를 여기에 올라오게 한다니 그건 말이 안되지. 동화에서 공주가 왕자를 찾아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어? 그런 이야기는 없어. 언제나 왕자가 공주를 찾으러 가지. 이건 남성우월주의도 내 자존심따위의 문제가 아니야, 난 단지 그녀를 공주처럼 만들어주고 싶어. 하지만 이게 뭐야, 그녀는 아마 날 보기 위해서 쿤가의 어르신들에게 빌고, 빌고, 또 빌었을거야. 나는 그녀를 공주로 만들어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네. 이렇게 탑안에 갖혀서 그녀가 오기만을 바래야만하고, 그녀의 지켜줄 수가 없다니. 이렇게 비참한 경우가 어디있을까. 난 역시 왕자가 아니라서 그런걸까."
말 많던 피노키오도 로미오의 표정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로미오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만을 바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로미오도 다시 안정을 찾는 듯 해보였다.
하지만 로미오는 다시 안정을 잃어버렸다. 그녀에게 보내는 1641비둘기 전서구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언제나 그녀의 체취가 묻어나오는 글씨체로 그에게 화답했던 1641비둘기 전서구는 어느새부터인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띠-'라는 메세지만을 계속해서 보내왔다. 로미오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전서구에 적힌 필체가 그녀가 아니라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피노키오는 그것이 서쪽마녀의 필체라는 것을 알려줬고 로미오는 분노가 담긴 표정으로 전서를 찢어버렸다. 탑안에 다시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로미오는 자신이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는 것에 한탄했다. 자신은 그저 로미오일 뿐이니 마녀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동화라는 세계는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가. 마녀를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백마탄 왕자일 뿐이라고 동화에선 지정해버렸기 때문에 자신은 이렇게 참담한 기분만을 맛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 로미오는 참을 수 없이 슬펐다. 쿤가의 어르신들 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인데, 마녀까지와서 자신을 괴롭히다니.
그 때였다. 아주 작은 빛과 함께 나타난 할머니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로미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신데렐라,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게. 나가고 싶니?' '할머닌 누구세요. 저는 로미오인데요.' 하지만 할머니는 노망이 났는지 계속해서 로미오를 신데렐라라고 부르며 보내주겠다고 했다. 로미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탑안의 호박을 밖으로 집어던지며 주문을 외워 시외버스로 만들었고 로미오가 입고있는 옷에 주문을 외어 등에 3선의 줄을 잡아 주었다. 로미오는 그런 할머니의 신비로운 마법에 놀라워하면서 자신을 내보내준다는 말에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들어논 물건들을 보며 만족한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로미오에게 물었다.
"자, 그래. 준비는 다 된듯하구나. 그럼, 신데렐라. 설탕은 어딨지?"
"네? 설탕이요? 설탕은 없는데요?"
"뭐!!"
- 우르르 쾅쾅
할머니의 노성과 함께 밖은 벼락이 내려치고, 번쩍이는 불빛에 비치는 할머니는 더이상 노망난 할머니가 아닌 마녀 못지않은 포스를 뿜어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설탕도 없이 쳐나가시겠다? 이런 미친."
"그,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당연한 소릴! 에잇, 시간낭비했다."
할머니는 로미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라졌고, 로미오는 영문을 몰라 할머니가 사라지는 것을 넋놓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로미오는 할머니의 노성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결론은 설탕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로미오는 설탕을 모으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바닥을 쓸어 먼지속에 있는 설탕찌끄레기를 모으고 건빵을 먹고먹어 남겨진 별사탕을 잘게 부셔 설탕을 모았다. 건빵은 한번 뜯으면 무조건 먹어야 했기에 별사탕으로 모을 수 있는 설탕은 한정되어 있었고, 결국 로미오는 가내수공업이라는 인형눈달기, 봉투풀칠하기 등의 저가노동을 통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설탕을 모아야 했다.
근 3, 4개월이 지났을 때 로미오는 한봉지정도의 설탕을 모을 수 있었고, 마침 그 때쯤해서 노망난 할머니는 다시 로미오를 찾아왔다. 처음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데렐라,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게. 나가고 싶니?'라는 대사를 외치며 찾아온 할머니는 로미오가 모아놓은 설탕의 양을 보고 이리저리 재보더니 '3박 4일이군'이라고 나직히 말한 뒤 물광으로 광을 낸 설탕구두를 만들어 로미오에게 신겨주었다.
"3박4일이 지나 오후 8시가 되기 전까지 다시 이 탑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그러면 마법이 깨져서 설탕구두는 빨간구두로 변해 미친듯이 피아노를 치게 될거야."
"왜 오후 8시죠?"
"아, 새끼 동화도 안읽어봤나, 까라면 까. 국방부 시계 돌아간다."
할머니는 제 할말을 마친 뒤 사라졌고, 창 밖에는 호박으로 만든 시외버스가 빵빵- 거리면서 안탈거면 가버린다고 성화를 내고 있었다. 피노키오는 이런 일을 자주 겪어봤는지 로미오에게 잘갔다오라는 말만 할 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고, 로미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버스에 탔다. 로미오가 버스에 타자 버스는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보고 로미오는 당황해서 물었다.
"저, 이 방향이 아닌것 같은데요."
"아, 새끼 원래 돌아가는게 정석이야. 설탕 한두 번 먹어보나."
원래 그렇다는 버스기사의 말에 로미오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좌석에 앉았다. 신호대기 무시하고, 속도위반을 일삼으며 미친듯이 달린 시외버스는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돌고, 돌아 4시간 34분 23초가 걸려서 도착했고, 로미오는 피곤에 쩔은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가는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 3분 37초후면 탑에 도착할 것 같았다.
탑에 갇힌지 몇달되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많이 변해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들고다니는 최신형 비둘기, 자주 다녔던 거리마저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에 로미오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질감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줄리엣이었기에 줄리엣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지나지 않아, 갈림길에는 이제 어엿한 성인의 느낌이 나는 빨간망토가 스쿨룩을 입고 로미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스쿨룩 사이로 흘러나온 매끈한 다리와 오빠-♡라는 애교섞인 말에 한순간 정신을 뺏긴 로미오는 빨간망토에게 먹혀 패가망신한 늑대를 생각해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순간 줄리엣을 잊은 자신을 자책하면서 로미오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줄리엣을 만났고, 생각보다 멋지지 않게 만났다. 어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만남을 기대했지만 실제로 로미오가 앞에 나타났을때 줄리엣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로미오의 손을 맞잡았을 뿐이었다. 껴안아들어 빙빙 도는 일따위나 덤벼들어 키스세례를 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거나 말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은 좋았고, 둘은 예전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둘이 시간을 보낸지 어느덧 이틀이 되었을 때 로미오가 나왔다는 소리를 들은 줄리엣의 친구들은 그를 보기 위해 나왔다. 모두 일곱명으로 난쟁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모두 남자라는 사실만 빼놓고는 모두 제각기 매력있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로미오는 기분좋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술자리가 끝난 뒤 로미오는 아쉬운 마음으로 줄리엣을 데려다주고 방향이 같은 일곱번째 난쟁이와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연약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는 캐릭터였다.
"할말이 있어."
갑자기 일곱번째 난쟁이는 로미오를 불러세웠다. 로미오는 취기가 올라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 웃으면서 난쟁이를 쳐다보았고, 난쟁이는 뭔가 결심을 한 듯 로미오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줄리엣이 좋아. 그러니까 너가 줄리엣 옆에 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꺼야."
알딸딸한 기분이 싹 가시는 것을 느끼면서 로미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넌 줄리엣의 친구라며,"
"친구야. 하지만 난 줄리엣을 좋아해. 줄리엣과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 걔한테 너같은 남자친구가 있던 말던 그런거 신경안써, 줄리엣은 매일같이 힘들어하고 있는걸, 이건 신이 내게 주신 기회야."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로미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난쟁이는 더이상 난쟁이가 아니라 난장맞을 놈이었다. 로미오는 화가나서 일곱번째 난장놈의 멱살을 쥐었지만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때릴 마음이 들지않아 바닥에 침을 뱉고 혼자 어딘가로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거지같은 날이었다.
다음날 로미오는 다시 줄리엣을 만났다. 어제의 일은 잊었다는 듯 로미오는 밝은 표정으로 줄리엣을 만났고, 줄리엣은 또 누군가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아는 오빠라는 그 사람은 호탕하고 붙임성있는 성격으로 술자리를 주도했고, 그의 분위기메이커적인 성격으로 인해 술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줄리엣은 화장실이 급한지 잠시 자리를 비웠고, 호탕하게 웃던 아는 오빠는 로미오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알고 있는가? 원래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에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오빠와 결투를 벌여 죽이고 쫓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서도 예외없이 아는 오빠라는 놈이 줄리엣을 놓고 저질농담과 함께 흑심이 담긴 발언을 내뱉었고 어김없이 로미오와 아는 오빠는 결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때가 어느 때인가? 바야흐로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칼싸움을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둘은 신사적이고 합리적으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말싸움을 시작했다. 줄리엣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는 너무도 짧기 때문에 둘은 처음부터 막나가기 시작했고, 줄리엣이 돌아왔을 즈음해선 서로 얼굴을 붉히고 노려보기만 할뿐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줄리엣은 눈치없는 여자가 아니었기에 둘의 이상한 기류에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그녀는 이유를 물었고, 아는 오빠라는 놈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파하고 떠나버렸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아는 오빠를 보고 줄리엣은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로미오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줄리엣을 집으로 들여보냈다. 거지같은 날이었다.
다음날 로미오는 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줄리엣은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가기를 원했고, 둘은 그렇게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미오는 할 말이 없었고, 줄리엣은 약간 침울한 표정이었다.
"왜 그랬어."
대뜸 질문을 하는 줄리엣을 이상하게 보며 로미오가 어떤거? 라고 묻자 줄리엣은 화가 난 표정으로 로미오를 바라보았다.
"오빠한테 나랑 만나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 사이 아닌거 알잖아. 욕까지 하면서 그랬다고 하던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로미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선가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 데자뷰인가? 라는 줄리엣의 말과 상관없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아는 오빠라는 놈들이 문제다. 이건 원래 스토리건 뭐건 간에 상관없이 척결대상 제 1호인 놈들이다. 뭐라 답변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시외버스는 도착하고, 또 빵빵- 거리고, 정신은 없는데 빨간구두는 두렵고, 줄리엣은 로미오를 밀어넣고, 버스는 떠나가고. 줄리엣이 뭐라고 외쳤지만 들을 수는 없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뒤에서 하얀색페라리탄 왕자가 줄리엣에게 다가와 부킹을 걸고, 시외버스는 반대방향으로 돌고 돌아 4시간 34분 23초만에 도착해 간신히 들어오고, 거지같은 날이었다.
로미오의 기분이 어떻든간에 시간은 흘러흘러 다시 탑의 일상에 적응해갈 무렵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피노키오는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쿤가의 어르신들은 이유모를 헛소리를 지껄이고 가셨고, 로미오는 묵묵히 침상정리를 하고 있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피노키오가 자신의 무용담 제 34-1934호를 떠들고 있을 때쯤 작은 빛과 함께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노망난 할머니가 아닌 젊은 여성이 나타나 로미오는 당황했지만 여성은 그런 로미오에게 용무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않고 피노키오에게 다가갔다.
"피노키오군. 당신은 이제 인간이에요."
여성이 작은 봉을 한번 휘두르자 작은 빛더미가 피노키오를 덮었고 빛이 사라졌을 때 피노키오는 더이상 목각인형이 아니었다. 아니, 예전의 피노키오와 전혀 다른 모습. 균형잡힌 몸매에 성형외과의가 울고갈 조각미남이 되어있었다. 피노키오는 노란색 깔깔이를 벗어던지고는 장농안에서 검은색 수트를 빼입고 등에 후광을 뿜으며 로미오에게 다가왔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네요."
피노키오의 악수에 로미오는 당황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피노키오는 당당하게 악수를 하고 난 뒤 여성에게 윙크를 한번 하고나서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피노키오의 행동에 놀란 로미오가 달려나가 창밖을 보니 피노키오는 BMW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어떡해하면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뒤를 돌아보니 여성도 사라져 있었고, 아무도 없는 탑 안은 공허함만이 가득차 있었다.
피노키오가 나가고 나서 로미오는 그의 빈자리를 느꼈다. 쿤가의 어르신들의 이유모를 질타를 받고 나서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익살스런 말투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순 노가다작업을 하는 동안 무료함을 지워줄 무용담은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던 로미오는 점점 변해갔다.
새벽에 자주 일어나고, 흙먼지와 땡볕을 뒤짚어 엎어도 잘 못씻어서 피부는 개기름을 축축해져갔고, 설탕을 모으기 위해 언제나 배불리 먹는 건빵에 허벅지와 뱃살이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다시 반년이 지나가면서 로미오는 개구리로 변해갔고, 로미오가 몸의 변화를 눈치챘을 땐 그는 이미 개구리가 되어있었다.
그는 절망했다. 어느새 자신의 몸이 개구리로 변해 추한 몰골이 되어있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개구리화 되어버린 몸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념과, 절망의 심정이 결합된 로미오는 마치 예전의 피노키오처럼 아무런 일도 안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고, 1641비둘기 전서구는 언제나 서쪽마녀의 필체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띠-'라고만 적혀 있었다.
한숨만 가득한 어느날 오후,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었던 젊은 여성이 나타나 로미오에게 말했다.
"로미오군. 당신은 이제 인간이에요."
로미오는 여성의 말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줄리엣을 만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의 몸은 그대로 개구리의 몸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음에 로미오는 여성을 올려다 보았고, 여성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로미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개, 개, 개구리-이! 꺄아앗!"
여성은 기겁을 하면서 사라져버렸고 로미오는 입만 벌리고 여성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려 개구리, 아니 로미오는 더 큰 낙담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것은 문어발이 달린 마녀였다. 마녀는 개구리, 아니 로미오. 그러니까 개구리 - 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나가게 해줄께. 그대신 너의 목소리를 받겠다."
로미오는 잠시 고민했다. 8옥타브를 넘나드는 자신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넘겨줘야만 탑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로미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줄리엣을 생각한다면 아깝지 않은 조건이었다.
"콜"
콜을 외치는 순간 로미오는 마크를 달고 탑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로미오를 잡지 않았다. 마녀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폴짝폴짝 뛰어, 아니 달려갔다. 그러니까 뛰어- 줄리엣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한 로미오는 자신의 추한 몰골을 생각하고 다가가기를 주저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렇게 추한데 여자인 줄리엣이 보기에는 얼마나 끔찍한 몰골일까? 하는 우울한 생각만 하는 로미오는 줄리엣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자신에게 지어주던 미소는 이제 여섯난쟁이와 난장놈에게 보이고 있었고,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는 오빠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고생해서 찾아온 것을 줄리엣은 알까? 아마 알고 있었다면 저런 미소는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로미오는 자신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이 억울해 씁쓸한 미소를 짓기는 했지만 그녀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더 이상 뭐라고 말 할수 있을까 그냥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돌아서는게 더 옳은 일일 것이다. 예전의 자신은 장성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개구리일 뿐이고,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인데.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난장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개구리다."
일순간 로미오는 자신을 둘러쌓는 무리를 보면서 당황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문어마녀에게 팔았고 자신의 모습은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 로미오는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난장놈은 로미오를 발로 뒤집어까면서 재미를 느끼는지 계속해서 발버둥치는 개구리, 아니 로미오. 그러니까 개구오-이건 좀 이상하니 개구리를 괴롭혔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쯤 따스한 손길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왜 힘없는 개구리를 괴롭혀."
줄리엣이었다. 자신의 몸에 닿는 손길의 따스함은 예전 그대로였고, 고운 아미를 치켜뜨고 난장놈을 보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장난이 지나쳐 삐졌을 때의 표정 그대로였다.
"앗, 더러워. 줄리엣은 그런거 만지면 안돼."
"뭐가 더럽다는거야."
줄리엣은 고운 아미를 찌푸린 표정으로 난장놈을 타일렀고, 곧 난장놈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고놈 셈통이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외친 로미오는 줄리엣을 쳐다보았다.
"아-"
줄리엣은 로미오를 보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얘, 로미오하고 비슷해."
로미오는 줄리엣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아 기쁜마음도 들었지만, 진짜로 추한 모습으로 변한 자신을 알아보면 어쩌나 긴장하며 줄리엣의 눈을 피했다.
"부끄러우면 눈을 피하는 것도 비슷하고. 얘, 되게 귀엽다."
난장놈의 '모습은 비슷하네'라는 비아냥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자신을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줄리엣을 보며 곧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줄리엣은 결국 로미오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곳은 위험하니까'라는 말과 함께 수풀이 우거진 곳에 놓아줬고 여섯 난쟁이와 난장놈과 함께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사라졌다.
로미오는 있는 힘을 다해 폴짝폴짝 뛰면서 줄리엣을 따라갔고, 줄리엣은 곧 친구들과 헤어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난장놈과 헤어지고 줄리엣은 기분좋은 발걸음으로 걸어가다, 천천히 걸었고, 다시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까까지의 모습은 거짓이라도 되는지 우울한 표정을 짓던 줄리엣은 자신의 집앞 수풀에 앉아 있는 로미오를 보고 헤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헤에, 날 따라온거야? 기특하네."
줄리엣은 잠시 생각하더니 '데려가도 괜찮겠지'라는 혼잣말과 함께 로미오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와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줄리엣은 개구리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너 정말 로미오랑 닮았다. 보면 볼수록 로미오 생각이나."
그녀는 마지막 말을 하며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좋았었는데. 아침이 되면 언제나 찾아와 잘 일어났냐고 말해주고, 내가 만든 요리는 무조건 맛있다고 해주고, 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으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고, 그래도 이해못하면 밤을 새서 유치원생도 알아들을 만큼 쉽게 풀이한 해설집을 내주고, 이따끔씩 찾아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밤이면 언제나 잘자라고 해줬잖아. 그때는 정말 좋았는데. 근데 그거 알어? 그렇게 좋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놓고 그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거. 정말 마음아픈 일이야. 왜 난 너한테 그런 것들을 해주지 못했을까? 지금생각하면 난 너한테 너무 받기만 한거 같아. 요즘은 연락도 안하고 얼굴조차 볼 수가 없어. 왜 나는 바보같이 너가 없어졌을 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친구들 앞에선 웃고 즐겁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혼자 있을땐 웃지를 못하겠어. 그러면 또 너는 잔소리하겠지? 하지만 그 잔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정말로.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생각하지 않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줄리엣은 눈물을 뺨위에 흘리고 잠들었다. 로미오는 한동안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난장놈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고 그녀는 그저 행복하고 편하게 살고만 있다고 생각했다.
'못난 놈.'
로미오는 자신을 탓하며 서럽게 울고 싶었다. 지금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약 목소리가 나온다면 이렇게 마음놓고 울수도 없을테니. 사과하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여기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가 이렇게 서럽게 울고있나 했더니 개구리잖아."
나직히 들리는 소리에 로미오는 깜짝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초록색 고깔모자를 쓰고, 매끈한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는 노출이 심한 탱크탑과 핫팬츠를 입고 가리기 위한것이 아닌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입고 있는 초록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요염한 여성이 자신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초록색 마녀. 그녀는 분명 서쪽마녀였다.
로미오는 줄리엣과 서쪽마녀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적대감을 들어냈고 서쪽마녀는 그런 로미오의 행동을 비웃으면서 말했다.
"개구리주제에 꽤나 멋진 모습이네."
'꺼져! 줄리엣에게 다가오지마!'
"아, 시끄러.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다 들리니까 조용조용 말하라고."
로미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서쪽마녀를 보고 깜짝놀랐다.
"문어년한테 목소리를 뺐겼구나. 그년은 너무 탐욕적이라니까."
서쪽마녀는 허리를 숙여 로미오와 눈높이를 맞췄다. 로미오의 적대심 가득한 눈빛이 마음에 드는지 히죽히죽 웃는 그녀는 입을 열었다.
"서쪽마녀가 누구인지 잘 알면서도 그런 눈빛을 보내다니, 재밌구나. 저 꼬맹이만 아니면 수집품으로 가져가고 싶을만큼. 아, 저 꼬맹이를 없애면 되나?"
그녀의 말에 로미오는 펄쩍 뛰면서 '줄리엣을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고, 시끄러운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귀를 막았다.
"아, 아. 알았다고. 장난한번 한거 가지고 그래. 안 그래도 압제자 오즈녀석이 보낸 도로시때문에 골치아파 죽겠는데. 빌어먹을 영감탱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애를 꼬셔서 날 죽이라고 하다니."
서쪽마녀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 로미오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자 개구리씨. 목소리를 다시 되찾고 싶지않아?"
로미오는 그녀의 말에 순간 혹했지만 문어마녀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무언가 요구조건을 걸 것이다. 그런 로미오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살짝 혀를 핣은 그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요구조건따윈 없어. 나를 문어년하고 비교하지 말아줘. 비교자체가 나한텐 욕이야. 자 너한테 목소리를 줄께. 근데 나도 레지스탕스를 운영하고 오즈녀석을 상대하느라고 힘이 별로 없어. 게다가 지금은 도로시를 피해 도망가고 있는 중인걸. 차라리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보냈다면 괜찮은데 순진한 어린애를 보내니 이건 싸울수도 없고. 하아~ 어쨌건 그 사악한 오즈놈 때문에 단 한번의 기회밖에 주지 못할꺼야. 말을 어떻게 이어가건 무조건 단 한번. 알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로미오를 보고 싱긋 미소지은 서쪽마녀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해 속삭였다.
"개구리가 다시 왕자가 되는건 단 한가지라는거 알지? 개구리 왕자님♡"
로미오의 귓가에서 속삭이던 서쪽마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와 동시에 줄리엣은 오랜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나 하품을 했다. 무슨말을 해야할까? 로미오는 많고 많은 말중에 어떻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따윈 상관없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100% 전달할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응? 왜그래."
줄리엣은 자신을 심각하게 보고있는 개구리를 보고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로미오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런 대답없이 계속 들어줘. 나는 로미오야. 아니, 이제 로미오는 없어. 로미오도 줄리엣도, 쿤가도, 사바가도 왕자니 뭐니 그런 것 따윈 이제 신경쓰지 않을꺼야. 내가 다시 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을 때 너가 했던 말을 곰곰히 생각해봤어.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알 것 같아, 기다릴께라는 말이었지? 나는 그 말을 생각해내기 위해 지금까지 고민해 왔어. 어쩌면 이렇게 앉아 있지앉았다면 평생을 몰랐을지도 몰라. 기다린다는 일 너무나 힘들다는거 이제야 알았거든. 나만 힘든게 아니었어. 난 너가 있었기에 그 고통을 견뎌냈지. 하지만 넌 나 때문에 힘들었기에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 아니야, 계속 들어줘. 너가 있어줘서 고마웠어. 지금은 비록 이 모양이라 폼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고마워."
로미오는 자신의 할말을 다하고 눈을 감았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전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한 것만으로 만족이다. 이제 나머진 그녀의 선택에 따를 뿐이었다. 이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든 말든 모두 그녀의 선택이었다.
"바보같긴. 개구리 주제에 무슨 폼을 잡는거야."
짐짓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같아. 날 뭘로 생각하는거야."
- 쪽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로미오는 푸른 빛과 함께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로미오는 천천히 눈을 떠 줄리엣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줄리엣은 그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다. 로미오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지었다.
"다녀왔어."
"늦었잖아. 바보야."
둘은 그 뒤로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야기. - 끝 - 이 아름다운 스토리는 디즈니사의 경영철학인 '모든 동화는 해피엔딩'에 입각하여 만든거니 쓴웃음 짓는 현실과 무근합니다.
덧. 이 글을 궁안의 모든 로미오들에게 바칩니다.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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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를 하고 싶어서 무작정 썼습니다. 사실 패러디와는 무관하지만 '지옥갑자원'이라는 영화처럼
막장으로 나가는 유치찬란 코미디스러운 글을 써나가고 싶었지만 본성이 어둠의 자식인지라
코미디는 어디가고 유치찬란만 남았군요.
게다가 써놓고 생각해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은 동화도 아니군요. 이래저래 유치찬란한 글이 됐네요.
덧2. 글에 나온 동화는 모두 몇개일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8:36
병장 김낙현
우와- 엄청나군요. 2008-11-18
12:11:40
일병 송기화
이히힛,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시작하는 패러디글을 써보려고 노력하다가 이야기가 너무 꼬여버려서 접어버렸던 적이 있어요. 흰토끼의 간을 빼버린 것 까지는 좋았는데(...) 2008-11-18
13:40:16
상병 신대웅
대단한 상상력과 비유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정말 너무재밌게읽었어요.아무 적절한 비유에 감탄 또감탄. 2008-11-18
13:50:07
병장 정병훈
크흐흐. 이것저것 왕창 나오는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기화님의 앨리스도 보고싶은데, 얼른 다시 쓰십시오라고 채직을 휘두르고 싶습니다. 2008-11-18
14:10:13
일병 배지훈
정신없이 읽어버렷네요 한참웃엇습니다 하하하 잘읽었습니다! 2008-11-18
14:33:37
일병 이세종
걸작이네요. 신나게 읽었습니다. 라랄.
정말 잘 이어나가셨네요 하하
답:
떴다 그녀! 로미오 거리의 줄리엣,
찰랑찰랑한 머릿결 30g당 150원-라푼젤,
군용장작-피노키오,
요즘엔 내가 대세-신데렐라,
빨간망토차차와 노란머리수염,
월척! 공주호수편-인어,
간지모자 - 군용개구리,
사과아가씨(진)과 7트랙터,
대략 이런게 섞인듯 하군요. 2008-11-18
15:44:44
병장 윤영돈
월척! 에서 웃었습니다. 하하,
하지만 답중에 하나가 빠져서 냉정하게 무효처리하겠습니다. -히히 2008-11-18
16:23:59
일병 송기화
노란길을 따라가면 대국민사기극을 펼치고 있는 마술사가 나오는 오즈의 마법사가 빠졌군요? 2008-11-18
16:40:38
병장 이동석
이건 정말 아프리카(영목선생님의 개념)의 축복일까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서 더 애틋한것처럼, 더 흥미로운데요. 허허. 2008-11-18
18:06:25
상병 이우중
낄낄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가 셀 때는 10개였는데.. 뭘 하나 더 센 걸까요? 허허.. 2008-11-18
19:37:34
상병 이지훈
헐
너무 재밌는데요 빠져버렸습니다 2008-11-19
04:5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