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대장장이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2-30 17:38:29, 조회: 173, 추천:0 

"저, 계십니까?"
대답이 없자 남자는 조바심을 느꼈다. 서른은 넘어 보이는 남자는 지쳐있었다. 이곳을 찾는 데에만 여러 날이 걸렸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헛탕을 친다면 이만저만 실망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곳이 자기가 찾는 곳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기에 이 곳일 거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변변한 굴뚝도 없는 이 곳이 자기가 찾던 그 대장간인지는 미심쩍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주변은 새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이런 적막은 남자에게는 낯설었다. 돌아가야하나, 남자는 망설였다.
삐걱-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나왔다.
"무슨 일이야?"
"혹시 대장장이 어르신이십니까?"
"그래, 내가 이곳의 대장장이다."
"칼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남자는 실망하는 표정을 쉽게 숨길 수 없었다. 대장장이라고 밝힌 남자는 전혀 대장장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마른 몸에 얇은 팔은 망치나 제대로 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고 하얀 피부는 거센 불길앞에서 살아가는 남자의 피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깨끗한 손 또한 남자가 격한 노동과는 멀어보이게 하는 것을 도왔다.
"칼? 일단 들어와."
대장장이는 말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저절로 닫히려는 문을 허겁지겁 막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두리번 거리지 말고 일단 앉아."
대장장이가 건물 가운데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남자는 대장장이의 말에 따라 낡은 탁자에 앉았지만 두리번 거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건물 내부에 모루와 화로는 없었지만 그 대신 온갖 무기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무기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날부터 손잡이까지 모두 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잘못 찾아왔다는 불안감은 말끔히 사라졌다. 남자는 벽을 채우고 있는 무기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대장장이의 시선을 느끼고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됐어. 자네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되네. 난 그냥 대장장이라고 불러. 그나저나, 칼이 필요하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날 찾아왔어?"
"예?"
"칼 따위야 굳이 이런 곳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저,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소문? 잠깐잠깐, 한 잔 하겠나?"
대장장이는 탁자 구석에 있는 작은 동이에서 액체를 한 사발 퍼올렸다. 검은 빛이 도는 것이 시큼한 향기를 풍겼다.
"흔치 않은 거야.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을걸. 한 잔 하게. 자, 그럼 이제 자네가 들은 소문을 말해보게."
남자는 사발에 담긴 액체로 목을 축였다. 술인가 싶었지만 술은 아니었다. 대장장이의 말대로였다. 흔치 않은,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이 곳에 있는 대장장이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무기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든 무기를 쓰면 하늘에 뜬 구름도 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산을 베어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구름을 가르고 산을 벤다고?"
대장장이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남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 제가 잘못 찾아온 것입니까?"
"아니, 맞네. 맞아. 하지만 아무나 그런 무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돈이라면 얼마라도 내겠습니다. 저에겐 그런 무기가 필요합니다."
"아니, 아니야. 돈은 필요없어. 강한 무기가 갖고 싶거든 이야기나 해줘."
대장장이는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앞에 놓여있던 사발을 비우고 다시 한 사발 퍼올렸다.
"도대체 왜 그런 무기가 필요한지 나에게 말해. 자네 이야기가 강하고 단단하다면 그만큼 단단한 무기를 쥐게 될거야."
"그것은 좀, 곤란합니다."
"안되. 말하지 않으면 무기를 쥘 수 없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무기를 받을 수 없어. 말해."
대장장이의 눈빛은 진지했다.
"걱정말아. 옳고 그른것은 중요하지 않아. 선하고 악한것은 관심없다. 나는 상대가 진솔한 마음을 말한다면 그 누가 되었던간에 무기를 만들어줘."
남자는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다.
"저에겐 무기가, 힘이 필요합니다."
"무엇 때문에?"
"복수입니다."
'하하하! 복수라고? 천재지변을 일으킬 무기를 찾아놓고는 고작 복수에 쓰겠다고?"
대장장이는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남자가 사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목소리 또한 커졌다.
"시시한 상대가 아닙니다. 땅이라도 갈라버릴 힘이 필요합니다."
"허허. 상대가 누구기에?"
대장장이는 사발에 담긴 액체를 한 모금 마셨다. 대장장이의 눈이 흥미로 번뜩거리고 있었다.
"이 세상이 저의 적입니다. 천하를 무릎꿇릴 것입니다."
"이 세상을 손에 쥐겠다? 천하의 꿈을 가질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꿈이 아닙니다. 세상을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세상은 저의 적입니다. 세상의 목을 칠 것입니다."
"그거 흥미롭군. 세상이 자네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어?"
남자는 눈을 내려 탁자를 바라보았다. 촛점이 흐려졌다. 
"세상은 저를 낳은 것이 잘못입니다. 저를 키운 것이 죄입니다. 제 이야기를 허튼 소리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습니다. 제 귀에는 지나간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지난 저녁 오고 간 이야기가 다음날 점심에 제 귀에 들리곤 했습니다. 부모는 제 이야기를 듣고는 겁에 질려 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저는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역병도, 추위도, 배고픔도 저의 숨을 끊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면 행운 아닌가? 그게 죄라고?"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렸습니다. 개울가 다리 밑에서 웅크려 자고 있을 때도, 먹을 것을 훔치다 잡혀서 얻어 맞고 있을 때에도 제 귀에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엊그제 지나간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수십년 묵은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 무슨 소리가 그렇게 들리던가?"
"온갖 소리가 다 들렸습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 아기 칭얼거리는 소리, 짐승 우는 소리. 하지만 제가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울음소리와 비명소리였습니다. 사실 제가 주로 들은 소리는 그것 뿐입니다."
"울음과 비명?"
"온 세상에 사람이 눈물흘리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비명지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곳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곳은 드물었습니다. 잠이 들 때면 처절한 비명소리에 몸소리쳤습니다. 난리라도 난 적이 있던 땅에 가면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곳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미치고 싶었습니다. 허나 저는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허나 드물다고 한 걸 보니 울음소리가 없던 곳도 있었던 것 아닌가?"
"사실 전 이곳에 오기 전까지 온 세상이 슬픔에 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온 세상이 죄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를 태어나게 하고, 죽지 않게 한 세상이 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군요.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쳇, 이곳 얘기였나? 그러면 자네 말이 맞네. 여기는 이 세상이라기 좀 애매한 곳이니까. 이야기나 계속 해보게."
"예. 저에게 이 세상이란 그저 슬픔만 가득한 곳입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던 이제와서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늦었습니다. 온 세상에는 눈물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겠지요. 차라리 이 세상을 베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새로운 세상의 왕이 되겠다는 건가?"
"왕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세상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릴때까지 세상과 맞서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를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한 복수입니다. 이것이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래, 잘 들었네. 그럼 이제 자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보자."
대장장이는 또다시 사발은 동이에 담갔다. 하지만 이번에 사발에 담긴 것은 검은빛의 액체가 아니었다.
"하하! 이것보게?"
사발에는 은빛의 액체가 출렁이고 있었다. 금속빛의 질감을 띄는것이 수은같았다.
"꽤나 단단한 마음이었구만! 이런 좋은 쇠는 오랜만이야!"
대장장이는 동이를 테이블 위에 쏟아 부었다. 은빛 액체가 탁자 위를 넘실거렸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오랜만에 재미있겠는데?"
대장장이는 양 손을 가지고 액체를 헤집었다. 반죽을 하는 듯한 대장장이의 손이 지나갈수록 액체는 점점 끈적해졌고 진흙과도 같아졌다. 곧 대장장이는 안에서 망치를 꺼내와서 두들기기 시작했다. 철퍽철퍽하던 소리는 점점 금속성을 품었고 이내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타오르는 화로도,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의 열기도 없이 금속은 칼의 모양을 잡아갔다.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자, 다 되었네."
대장장이가 건낸 칼은 남자가 보아 온 어떠한 칼보다 우아해 보였으며 단단해보였다. 칼날도, 손잡이도 은빛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로 산이라도 갈라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이.. 이 검입니까?"
남자가 경외가 실린 말투로 말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존경심이 담겨있었다.
"그래. 자네의 마음을 쇠로 삼아 만들어낸 검이지. 자네의 말이 정말 강철같은 진심이었다면 이 검은 자네가 세상을 벨 때까지 결코 흠이 가지 않을거야."
"그렇다면 그 동이에 담겨있던 것은 무엇입니까?"
"쉬어버린 꿈 나부랭이지. 자기 자신도 이룰 수 있을거라 믿지 못하는 매가리 없는 꿈. 상한 꿈 맛이 어떻던가?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장장이 어르신."
"내가 뭘 한게 있다고. 그나저나 아까운 꿈들을 다 부어버렸으니 난 무얼 마시지? 자네, 대장장이가 정말 고맙거든 허튼 꿈얘기나 한번 해주고 가."
남자는 한 손에 검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오지 않는 말을 하려 입만 간신히 벙긋거렸다.
"하하하! 됐어! 나가게! 자네 말마따나 세상이나 베어버리러 가라고!"
대장장이는 시원하게 웃으며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어, 어, 감사합니다 대장장이 어르신!"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장간의 문이 닫혔다. 문 너머에서 대장장이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등을 돌려 슬픔이 가득한 세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01:27 

 

상병 이지훈 
  앗 조회수 0의 상큼함이군요. 게다가 오랜만의 기화님 글 잘봤습니다 흐흐 

왠지 꿈 나부랭이의 맛이 읽는 저에게 느껴졌다랄까요... 

아 맛은 별로일 것 같군요 쩝쩝 2008-12-30
17:57:07
  

 

병장 이충권 
  재가입하셨군요 끌끌. 

검 이름을 지어주고싶네요. 

도륙진멸 검. 

무자비하게 잔인하게 없댄다는 뜻을가짐. 

대장장이에게 칼을 맏깁니다. 음 줘보게나. 

띠링~!뚜둥! +9 도륙진멸검이 +10 에 성공하였습니다. 2008-12-30
18:13:09
  

 

병장 배승택 
  꿈만 먹고 사는 대장장이 아저씨. 
영양가 있는 음식을 드십시요. 2008-12-30
18:44:14
  

 

병장 김민규 
  +9 일본도가 강렬한 은색 빛을 내더니 증발해서 사라집니다. 
두둥!! 2008-12-30
20:44:27
  

 

상병 양동민 
  착용 효과 : 구름이 갈라집니다. 
착용 효과 : 산을 베어버립니다. 2008-12-31
06:54:16
  

 

일병 송기화 
  지훈님/ 그러게요, 저 왜이리 오랜만에 썼죠? 
충권님/ 그게.. 한동안 다시 눈팅생활로 돌아갔었죠(먼산) 
승택님/ 꿈은 커피같은 게 아닐까요? 
민규님/ 크헝헝허어허어허어헝허어헝헝 
동민님/ 제한사항. 팔이 닿아야 합니다. 2008-12-31
09:23:17
  

 

상병 차종기 
  어엇 , 송기화님의 글이다, 선댓글,! 2008-12-31
09:25:59
  

 

일병 이상훈 
  개인적으로 송기화님의 팬입니다. 2009-01-04
17:51:31
  

 

병장 이동석 
  으허허허허허헝 

(김래원 콧구멍 모드) 2009-01-04
18: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