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눈치없는 1人을 추모하며  
상병 김민규  [Homepage]  2008-10-04 08:00:54, 조회: 234, 추천:0 

나는 카카도 아니고, 독일월드컵 당시 하룻밤에 9번을 하면서도 날아다녔다는 호나우지뉴도 아니고, 그냥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뽈이나 차는 주제이지만, 그냥 문득 눈앞에 공이 보이니 한 번 차 보고 싶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 이런다고 잔디깍는 아저씨가 나가라고 하지는 않겠지?




눈치없는 1人을 추모하며 -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간의 관계의 폭력성에 대하여

흔치 않은 일이지만, 어제는 사람들의 인적이 뜸한 윗동네로 땅을 파러 다녀왔다. 미션은 단순했다. 그냥 비스듬하게 나 있는 능선을 깍아 'ㄴ' 자로 만들고, 그 틈에 무언가 아이템들을 배치하면 되는 일.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열심히 곡괭이질하고, 흙을 퍼다 나르고, 십장 miner의 구령에 따라 열심히 '나라시를 까는' 등의 일일테지. 그런 노가다의 사이사이에는 노가리가 있기 마련이고, 그 내용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은 그저 시시껄렁하고 흘러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

그러한 상황에서 대개 발화는 이런 구조를 통해 성립한다. 1. 일을 하다 짬이 났는데 무미건조하고 조용하다 2. 누군가 주도적 1人이 화제를 던진다 3. 여기저기 주위에서 떡밥을 물고 흔들다가 시들해지자 빠진다 4. 눈치없는 1人은 시든 떡밥에 덤벼들었다가 비린내에 질식해 외친다. '왜 난 안되지?' 5. 어느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1번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2, 3, 4에 영향을 미치는 몇몇 변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선 2에서의 주도적 1人에게는 대개 두어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언변이 뛰어나거나 최소한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우라를 소유할 것. 둘째 그것이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비대칭적 우월지위에 있을 것. 이 정도일 것이다. 물론 두개의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직선적 형태로 본다면, 여기에서 첫번째 경우라면 그 대화에서의 참여자간의 관계는 대체로 수평적이거나, 혹은 수직적이더라도 그 수직적 관계가 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참여자들은 단지 대화의 내용에 반해 3번을 시행하고, 뭐 무작위적 확률로 4번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응징은 그렇게 폭력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하루에 100번쯤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나, 두번째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월지위는 권력을 부여하고 그것은 대화의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존대라든지 호응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는데, 그것은 곧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들어주고 대답해야지'하는 예의의 차원을 넘어서, 적극적 형태로 응대할 것을 요구받는 의무의 차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부과된 의무는 3번에서 본격적으로 해소된다. 그 대화의 맥락이나 내용과는 관계없이 (설령 그것이 정말 죽도록 재미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당신 경고입니다.' 라고 외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더라도) 하하하, 그런가요? 나도 그랬던 적 있는 것 같은데, 아, 재미있네요, 호호호 라고 말하며 떡밥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그 과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떡밥이 다 헤어져 버려야 할 지경이 되면 다들 알아서 빠질진대, 4번의 이벤트가 발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이 4번에는 두 가지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는 타이밍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내용의 문제일테지. 타이밍의 문제에 있어서 분명 모든 사람이 대화를 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고 '시기적절하게'라는 것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럭비공같은 녀석일텐데, 사회적 관계성이나 지위의 고하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즉 제멋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내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동일하다. (즉 분명 시든 떡밥을 가지고 비틀어도 십장은 십장이고 miner는 miner이며 고참은 고참이다) 럭비 리그에서 밀린 자들에 대한 응징은 단순하다. 모든 참여자들이 하나의 시선으로 주목하며(아, 어쩌면 여기도 사회적 레벨이라는 변수가 작용하여 그 처지에 따라 주목이 되든 먼산이 되든 갈라지겠다) 멍한 표정을 지어주며, 그중 주도적 1人이 '아 재미없어' 라며 시니컬한 멘트를 날리고, 옆의 한두명은 담배연기를 팍 뿜으며 그 감정적 데미지를 극대화하겠지. 그렇게 되면 눈치없는 1人(대개는 사회적으로 중간 이하의 포지션에 자리하며, 그러한 반박과 비난을 들어도 별다른 반격기를 사용할 수 없는 처지의)은 그저 후회를 곰씹으며 마음먹는다. '다음부터는 남들 덤벼들 때 그냥 묻어가야지...' 

그러나 대화라는 것이 과연 그러한 것인가? 때로 머리속을 헤매며 연관되는 어떠한 사건을 찾아내는 데에는, 공유할만 한 단서를 꺼집어 내는 데에는 다소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카카나 호나우지뉴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개구야나 웃참사에 나오는 것같이 100% 웃음게이지를 보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이기때문에 발생하는 미숙의 문제일 것이며 때로는 단지 어정쩡한 실수일 뿐인데, 혹은 독창적인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은 장인이 도자기를 깨어버려야 하는 스스로도 가슴아픈 그런 상황일텐데,

응징을 받고 나면 그는 대화의 장에서 한없이 움츠려들어, 그냥 수동적인 yes맨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치 싱싱한 인간 하나를 두고 달려가는 좀비들과 같이, 하하하, 호호호..... 참여자들이 계속해서 바뀌는 사바세계의 환경이라면 몇 번의 실수는 그다지 관계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이라는 특수환경 -마치 배틀넷의 래더와 같이, 상위 랭커가 또다른 누군가에게 몇 번 연달아 깨진 것과 같은 등수가 팍팍 떨어지는 무참한 상황- 에서 이러한 낙인은 치명적이다. 그냥 더이상 대화를 하고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른다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 상위 랭커에게 그런 내밀한 진심을 들이댈 수도 없고 말이다.

반성해본다. 나 자신은 그렇게도 폭력적이지는 않았는지.
지위에 기대 인간이라는 기본을 속이려 들지는 않았는지

사실은, 아니 아마도, 그래 어쩌면, 저 불쌍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만큼은 아닐 지도 모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39:41 

 

병장 이동석 
  제가 뻥은 잘치는데 연기는 잘 못해서, 접대용 웃음 이런거 절대 못합니다. 뭐 뒈질뻔 했죠. 요새도 그것때문에 피곤하구요. 허허. 

눈치가 없는건 아닙니다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 부러 눈치없는척을 하게 되는군요. 그래서 오늘도 참, 피곤합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감정노동으로 피곤한 정도와 하지 않아서 피곤한 정도는 비슷한데다, 2차적 피곤- 즉 후회나 자괴감의 정도를 보면 차라리 웃기지도 않은 소리엔 꿈틀꿈틀 웃음으로 소심한 저항이라도 하는게 제 조악한 정신세계의 평화에 좋더군요. 

아, 요새 짜릿짜릿하게 느끼고 있는문제라 말이 많았어요. 
그건 그렇고, 
마지막문장, 

[저 불쌍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만큼은 아닐 지도 모른다.] 
가 얼핏 이해가 안가는데요. 혹 오타인가요? 2008-10-04
11:05:51
 

 

상병 김민규 
  잔인한 동석씨, 제 이야기 아니예요. 난 저렇게 눈치없는 1人이 아니랍니다. 
지난번에 TV였나, 인터넷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대화에서 거절받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무슨 연구기관에서 몇백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했겠죠. 꼭 궁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그런가 봐요. 아마도 그들은, 그저 하하하, 호호호 하며 구색을 맞추면서 거절받지 않고 묻어가는 편을 택할 테죠? 
그래요, 저 위에 나온 눈치없는 1人은 '남의 이야기'일 거예요. 저만큼은 절대로 저렇지 않을 거랍니다. 음, 아마도, 어제 작업갔다가 이야기틈에서 튕겨 나와서 슬피 쓴 글은 아닐거라는 그런 말이죠. 
너무 비틀다가 축이 부러져버린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2008-10-04
12:57:33
  

 

상병 이우중 
  음. 그렇군요. 
마치 friend의 챈들러처럼 말이죠.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을 말아야 하는데 이제 그만 정말 끊을 때가 된 것 같은데 계속 입을 놀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아, 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하. 2008-10-04
15:18:38
  

 

병장 이동석 
  음, 전 만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거의 잡담계의 특급소방수라고, 분위기를 절대로 못 타게 하는거지요. 하하. 

어쩌면 이것도 폭력? 2008-10-04
15:22:29
 

 

상병 김민규 
  음 아마도 동석씨는 매크로가 확실하신 듯 해요. 일상생활에서도 여기서 그렇듯 어떤 이야기에라도 리플을 달고, 화재 진압을 하시는듯?(웃음) 

그래도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죠?... 2008-10-04
18:29:33
  

 

상병 홍승표 
  그나저나 독일월드컵당시의 호나우지뉴의 밤일 루머같은 경우엔 하룻밤에 9번이 맞는건가요 아니면 9시간을 한게 맞는건가요? 제가 처음에 듣기로는 한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9시간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2008-10-04
22: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