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눈치만 보던 아웃사이더가 오만해지기까지  
상병 이기범   2009-07-06 145113, 조회 325, 추천1 


그냥 순간적으로 울컥한 일이 좀 있어서 배설해버린 글이네요.. 다소 투박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대학에 들어간 내가 첫번째로 느낀 것은 인간관계의 어려움 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년이 올라가면 반이 새로 바뀐다고 하지만, 그래도 으례 4~5명 적게는 2~3명씩 같은 반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알음알음해서 금방 친구들을 다시 사귀고, 해서 또 즐겁게 1년을 보내곤 했었다. 허나 대학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어느날 컴퓨터를 켰는데 나도 모르게 하드가 포멧되어버린 기분. 게다가 어느 부류는 예비대학이다 뭐다 해서 이미 친해질대로 친해져있었고, 그건 동기들 뿐만 아니라 선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붙임성 있는 친구들은 곧 잘 그 무리에 합류했다. 허나 나와 몇몇 친구들은 그게 참 힘들었다. 학기초에 열리곤 하는 신입생 환영회나 각종 술자리에 빠짐 없이 참여했던 나였지만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에 동기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왠지 소외되는 느낌.

그 친구들은 곧, 학생회 라는 조직에 참가했다.

몇몇 열성적인 친구들은 학생회 뿐만 아니라 율동패에도 가입을 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지 교문에서 팜플렛 비슷한 것을 나누어 주면서 등록금 동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자금대출을 받아서 학비를 냈던 나로서는 크게 동감하며 서명을 하고, 각종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러자 선배들과 동기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학생회장 선배가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내일 아침부터 너도 같이 하지 않겠냐고

다음 날 아침, 과 동기들 선배들 심지어 다른 과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며 함께 행동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하여 매일 빠지지 않고 나왔다. 언젠가는 법대와 정경대 학생회장들이 본관 앞에서 삭발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자존심 때문인지, 괜히 들키기 싫어 눈치를 보며 살짝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주위엔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었다. 학생회장을 하는 누나와, 집행부 일을 하는 몃몃 선배들만 보일 뿐. 내 동기들은 어디를 갔는지 한명도 없었다. 다 수업이 있나

그날 저녁, 이제는 어느 정도 친해진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 녀석들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너 아직도 그런데 나가냐고. 그렇다고 했다. 

왜 나가냐

그 친구들은 선배들의 그런 모습에 실망했다고 한다. 다 학생회 시킬려고 밥사주고 술사주고 했었던 거라면서, 어떤 친구는 종로에 나갔다가 맞아 죽을뻔 했다는 둥, 너도 빨리 그런데 그만 나가라며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한,두달이 지나자 어느 순간 부터 안보이던 선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했다. 그 선배들은 현재 구성되어 있는 학생회를 인정사정없이 비판했다(운동권이니 뭐니 하면서) 다들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대화의 화제는 눈 앞에 닥친 중간고사와, 입궁얘기, 유학얘기 어쩌구로 흘러갔다. 등록금이나 FTA 같은 주제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두 집단()에 양다리를 걸친 상황이었다. 동기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하여, 그들과의 관계쌓기에도 공을 들였고 또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운동권 선배들과의 연락도 끊지 않았다. 가끔 동기들과 술을 먹거나, 당구를 치거나 하다가 저녁에 촛불집회가 있다고 하면 난 동기들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빠져나가곤 했다. 물론 내 학번 동기들 중에 그곳에 가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리고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힘들지 않은가 힘들었다. 각종 집회나 행사에 시도 때도 없이 불려다니는 것도 귀찮았고, 동기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짜증이 났다(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다 감수해가며 행동을 해나가야만 하는 뚜렷한 신념이나 주관이 있는가 그런건 아니었다. 그러나 막연히 ‘운동권’선배들의 행동이 옳다는 것,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에는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건 분명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후, 난 이런저런 ‘행사’에 많이 참가했다. 2학년때는 ‘농활대장’이라는 직책도 맡았다. 한편으로는 동기들과의 관계도 점점 더 깊어갔다. 판단은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했다.  내가 진정으로 운동을 한다면, 지금 내 동기들과의 진지한 소통과 대화를 통하여,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나에겐 그 자신이 없었다. 가끔씩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다보면 논쟁은 활화산처럼 타올랐지만, 결국 그들을 설득할 언어가 내게는 없었다. 대충 그런 대화는 각자의 인생이니 뭐 알아서 하자- 이런 식으로 귀결되곤 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신문을 읽었다. 각종 강연회에도 참여하고 행동에도 나섰다. 내 인생의 첫 투표는 주황색 빛깔이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2학년 여름, 선배들로부터 대표자를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사양했다. 그리고 입궁을 했다.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년동안 내가 현장에서 본 사건들과 그 때 느낀 감정들. 하나하나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식’한 내 머리를 채워야 겠다고 느꼈다. 내게 있어서 궁에서의 2년은 그런 기간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그런 장면들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가, 후회 없는 시간이었나, 진정으로 그 시간들이 즐거웠었는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고 사회에 나가 다시 시작해 볼 작정이다.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이다. 과거란 미래를 좀 더 발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이고, 자극제 이다. 사람은 오늘의 반성속에 살아간다지만 난 그것도 못한 것 같다. 어느 덧 저녁까지는 5개월 남짓 남았다. 지금 이 순간, 과거 동기들의 ‘눈치’를 봤던 내가 부끄러운 것은 내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마침내 사회로 나가는 그날, 2년 동안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지만 아무 생각 없었던 지난 1,2학년때의 대학생활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세상이 강요하는 그 보편적인 대학생활에 내가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고 나 자신을 채찍질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할 것이다. 어느 누가.. 말한 것 처럼 ‘세상을 해석하는데에 있지 않고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면‘ 분명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선배들 따라다니기에 급급했던 내가 이제는 그 선배들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들과는 조금 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려 한다. 지금처럼 대학생 개개인이 개인화 되어 있는 실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좀 피상적으로 말해보자면 지금까지의 학생회가 ’공동체‘적인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유기체‘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어찌 되었든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미‘ 옳다고 생각해 버린 일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양심에 찔린다. 그래서 혹자가 말하듯, 귀찮고 힘들고 실패가 눈에 뻔히 보일지라도 내 양심을 지켜나갈 것이다. 나는 과정주의자()이다.

그람시가 그랬던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7-20
084237 

 

병장 양동훈 
  주황색이었다면... 
리얼리스트인가...킬킬... 
아마 맞는거 같은데... 
정경대라는 호칭이 있는게 딴 대학도 있던가.. 
06학번인가요 2009-07-06
150916
  

 

상병 이해광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2009-07-06
151910
  

 

상병 진수유 
  잘 읽었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우리 모두 괴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구요. 히히. 2009-07-06
152528
  

 

상병 이기범 
  동훈 
리얼리스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06학번은 맞습니다만 
정경대라는 호칭은 꽤 많이 있지 않나요 2009-07-06
153216
  

 

병장 김지호 
  저흰 그쪽 조직이 약간 거시기한터라... (저 스스론 썩은 빨xx라고 하지만..) 
그쪽계열에 대한 관심 자체를 아예 1학기때 거두었습니다. 

대신 스스로를 마구 파고들면서 개척해 나갔지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오히려 더 늘어나더라구요. 

썩은 현실정치판이나 거기나 똑같다고 판단하고나니 가뿐했어요. 
내 할 일은 역시 내가 파고 가야 할 일입니다.(으응) 2009-07-06
155650
  

 

병장 양동훈 
  기범 
정경대 
삭발사건 
'주황색 빛깔' 
까지를 보고 고대를 추측했는데 말이죠... 
아닌건가... 2009-07-06
165643
  

 

일병 오학준 
  주황빛깔이래서 저는 민주노X당이라고 생각했어요... 2009-07-06
180820
  

 

일병 박정민 
  총학에서 선본부장까지 했던 1人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초큼 부질없던데 말이죠. 
물론 전 눈치는 보지 않았습니다. 3년차때 동아리 회장이랑 4년차때 고교동문회 회장한다고 정신없었거든요... 저는 그럼 삼다리인가요(웃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세 집단 사이에서 균형잡기는 실패했구요. 남는건 후회였던것 같군요. 그리 추천해주고픈 길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운동하시다가 지금은 판사 검사하시는 선배분들도 계시지만, 서른이 넘어서 민노당 지부장하거나 공무원시험 준비하면서 힘들게 생활하는 선배들보면 대단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더라구요. 
후회없는 선택을 하시길. 2009-07-07
101654
  

 

일병 이승진 
  동훈님아마 맞지 않을까 싶은데요. 행진은 이제 정식 발족 되었다죠. 
-라고 말하면서 왠지 안주거리가 되어버리는 스포츠 이야기들에 유감을. 

정민님이시대의 스포츠맨들의 초상입니다. 졸업반 쯤 되었을 때, '취업'이라는 강요같은 선택지를 받아보는 여타의 대학생들과 실상 다를 바 없는 게 씁쓸하죠. 하지만 '추천하고픈'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까닭은 그 준비된 선택지 모두가 어떤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고민은 선택지라는 프레임을 타고 넘어서 경계 밖으로. 

그리고 기범님과 같은 맥락의 좌절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하네요. '브레이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이도저도' 아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준비를 했으면 좋겠네요. 무슨 이유에선지 가지로 가버린 제 글은 사실 그런 고민을 해소하고 싶은 꿈을 기술해 놓은 건데. 이야기를 던졌으나 아무도 응답이 없어서 되려 당황했어요 하하. 2009-07-07
102018
  

 

병장 차종기 
  아웃사이더라길래, 속사포를 발사하는 그 놈인지 알았더니. 
아니었군요. 후후. 
아무튼 제목은 틀린 것 같네요. 오만하진 않은 것 같으니까. 2009-07-07
153152
  

 

병장 유요문 
  주류와 비주류.. 어느 공동체집단에 속해도 흑백은 갈리더군요.. 
이게 현실이죠.. 차갑고 냉혹한.. 
어느날 아버지가 한잔 드시고 한 말씀이 생각나네요. 
'네가 주류가 되든 비주류가 되든. 낙오자는 되지말라고.. 포기는 하지말라고..' 
모두가 무슨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고 되도록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포기하기엔 젊은 나이니까요. 2009-07-07
161600
  

 

상병 김소망 
  주황색을 선택한 그대는 진정한 리얼리스트 2009-07-07
204121
  

 

병장 송원호 
  음.. 지식조차 없는 저에게는 그저.. 
한쪽눈으로 보고 다른 한쪽눈으로 흘리는 격.. 
하지만.. 
브레이크는 더 속도를 내기 위한 거겠죠 2009-07-07
22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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