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내일은 오늘로, 오늘은 어제로, 어제가 다시 내일에 안녕을 고하며.  
병장 김무준   2009-06-03 14:33:06, 조회: 104, 추천:0 

1.
비는 그쳤다. 쇳물처럼 가슴에 내려앉던 비는. 그쳤다. 먹먹한. 햇살조각처럼 날카로운 감정의 편린이, 비 그친 가슴에 흩날린다. 뜨겁게 따갑게 떨어지던 비는. 그쳤다. 젖은 모래는 발아래 성겼다. 점점. 식어가는 빗물을 파도가 바람과 같이 쓸어낸다. 떠나기를. 이제 비 그친 자신을 뒤로하고 떠나주기를, 바다는 속삭이고 있다. 깊은 밤. 어둠에 일렁이는 바다가 눈물을 훔친다. 돌아서려하나. 발 떼려하나. 이제 걸음을 옮기려하나. 하나. 둘. 속으로 숫자를 세어보지만 바다를. 떠날 수 없다. 떠나면. 아름다운 슬픔이. 심해를 유영하는 상어의 잃어버린 비늘처럼. 저 쓸려간 빗물과 함께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쓸쓸히 쓰러질까봐. 내 앞에 펼쳐진 먹빛 바다와, 깔려진 쇳빛 모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추억을 머금고 바다 깊은 곳으로 사라질까봐. 돌아서지 않는다. 돌아서지 못한다.

0.
해가 솟는다. 수평선 위로 새벽을 사르는 해가. 솟는다. 이제는 떠나야한다. 떠나간 어제와, 쪽빛 바다와, 갈대빛 모래사장을 뒤로하고서. 젖은 머리를 털어내고 타오를 오늘을 맞이하며. 걸음을 옮긴다. 내일로. 찬란한 어둠을 맞이하며. 다시 비가 오길 기도하며.





09.05.23 







뱀발. 하루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나머지 네 편은

<하루는 오늘로, 오늘은 어제로, 그리고 내일 하루가>  
<이 순간 하루의 조각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 해도>
<순간의 기억일지라도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려 애쓴다.>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

입니다. 링크는 귀찮아서 패-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5:15 

 

병장 차종기 
  왜 전역인사 같은 느낌이. 허허헛, 2009-06-03
14:38:47
  

 

병장 김무준 
  전역인사는 책마당에 있습니다. 이건 하루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니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위의 텍스트들은 연애 혹은 아픔 따위와 관련된 서정문이랍니다. 2009-06-03
14:45:09
  

 

상병 김태완 
  하루 시리즈를 연재하고 계셨군요. 큭 
궁생활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의 하루구나라는 생각이 물씬 들게 만드는 글이군요. 2009-06-03
17:20:11
  

 

상병 이재원 
  무준씨의 하루Set!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ff&keyword=하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620 (나의 하루를 팝니다.)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ff&keyword=하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302 (하루는 오늘로, 오늘은 어제로, 그리고 내일 하루가)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ff&keyword=하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806 (이 순간 하루의 조각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 해도)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ff&keyword=하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009 (순간의 기억일지라도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려 애쓴다.) 
http://26.1.1.40:2007/bbs/zboard.php?id=02191&page=1&sn1=&divpage=1&category=9&sn=off&ss=on&sc=off&keyword=하루&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595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 
헥헥. 맨위에껀 아닌데. 그냥 나오길래.. 
 [일상이야기]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사바나의 미어캣이 좋아졌어요.  
병장 김무준   2009-06-05 22:50:58, 조회: 93, 추천:0 

하지 못한 게 무척이나 많습니다. 칼럼의 마지막 편을 작성해야하는데 자료가 집에 있는 관계로 작성을 못했습니다. 나들이 때 할 수 있을지……. 눈뜬 자들의 도시 공부모임에 참여한대놓고 아직 한 자도 쓰질 못했습니다. 당장 내일 오전에 마지막 나들이를 출발하는데,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나가지 못하는듯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놉시스만 짜놓고 미처 다 쓰지 못한 단편 텍스트들과 몇 개의 잡담 등등.

<구회 말 투아웃>의 누락된 부분들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못 다한 고백도 했고, 장르소설과 관련한 마지막 텍스트도 썼습니다. 그간 A4 600페이지 가량의 텍스트를 쏟아놓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고,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언제나 내 욕심에 꽉 차는 텍스트를 던져놓지는 못했었지만 원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십 개월이 넘는 시간을 책마을에서 보내면서, 왜 텍스트를 생산하는가에 대해 “자기만족과 심심함 때문”이라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텍스트를 썼던 겁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발버둥. 그 결과물이 단어와 문장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오는 책마을과 명예의 전당에 남은 수많은 글들을 통해, 우리는 김현진이나 박수영 혹은 황민우와 같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발견했습니다. 텍스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네들이 지구에 존재하는 걸 알 수 있었을까요? 전역한 괴수들은 그들이 남겨놓은 텍스트 덕분에, 그들이 실존하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증명했습니다. 집에 간 변태 푸 이동석이나, 어설픈 김민종인 주해성, 막장 꼽창 정명훈 김민규 등이 책마을에 있었다는 것도, 모두 이 양반들이 써 놓은 텍스트 덕에 알 수 있는 거죠. 모두는 그렇게,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 것 아닐까요.

그리고

다들 외로웠던 겁니다. 사회와의 단절, 지식의 황폐화, 소통의 상실 따위와 같은 이유로 다들 외로웠던 거예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서. 나 여기 모니터 너머라 할지라도 정말 살아 있소. 나 여기 있소. 외롭게 한 자 한 자를 써나갔던 겁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타인의 눈을 피해가며, 웹에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외로웠기에 소통할 수 있었고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온 이들은 다시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많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이제 곧 나도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다시는 이곳을 찾아오지 못하겠죠. 그래도 누군가는 나의 텍스트를 읽고, 웃고, 울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인상도 쓰면서 내가,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사무치게 외로웠다는 걸 알게 되겠죠. 내가 그런 것처럼. 저마다 가슴에 책마을이라는 두 번째 고향을 품에 안고서 떠났겠죠. 나도 가슴에 사람 냄새나는 고향을 품고, 평생을 그리워하겠죠.

우리는, 우리 세대는, 우리 젊은이들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이솔넷이라는 새로운 소통의 장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다들 외롭잖아요. 홀로 살아간다 해서 외로움이 익숙해지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 모두가 좀 덜 외로워지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돈과 현실과 이념과 나이와 같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 찾아온 수많은 이들은 아마도. 외로워서 사람 사는 곳을 찾아온 거 아닐까요? 서로가 살아있다는 걸. 모니터 너머 볼 수 없는 곳에 있어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외롭다는 걸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외롭다 외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이 외로운지 모르는 거니까요.

더 많은 이들이 대화하는 곳이 되었으면. 조금 덜 외로운 책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제 다시 외로워지러 갑니다. 당신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우리는 모두 외롭잖아요.





뱀발. 혹시라도 6월 6일~10일 사이에 정모에 관한 질문 혹은 참석의사를 말씀해주실 분들은 010-5651-5114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에 있습니다.
뱀발 둘. 아마도 이게 마지막 잡담이 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뱀발 셋. 최선을 다해 주해성과 문두환을 협박, 정모에 참여토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뱀발 넷. 이동석이 참가하는 장편독립영화 제작에 의상팀원으로 참여하려 이빨을 까는 중입니다.
뱀발 다섯. 다음에 꼭 책으로 만나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6:01 

 

병장 정근영 
  이 양반 드디어 솔직해지는군요. 
글에서는 그렇게 시니컬하고 완벽하고 제멋대로였던 김무준이, 
드디어 자신의 헛점을 드러내는군요. 

예전 김무준의 글도 좋았지만, 
이걸 기점으로 당신이 더 성장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난 항상 그대로인 것 같은데 말이죠. 

아아, 젠장. 
빌어먹을.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것 뿐이군요. 

가지로- 2009-06-05
23:02:25
  

 

상병 이재원 
  ......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외로웠군요. 저도, 여기있는 모든분들도. 
그러고보니 무준님 정말 정곡을 찌르신것 같아요. 2009-06-05
23:08:29
  

 

상병 김예찬 
  이제야 고백하자면 저는 두세 편의 단편을 제외하면 무준님의 글을 좋아해본 적이, 그리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어떤 모습으로든지 '소통'을 피하려하지 않는 무준님의 모습은 참 좋아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래도 무준님이 있어서 제 외로움이 좀 덜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2009-06-05
23:21:14
  

 

상병 김태완 
  뭔가 날카로운 것이 몸을 관통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곡을 찔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이겠죠. 

표범보다 미어캣을 더 좋아한다는 속 밑바닥에 있는 진심을 내비침과 동시에 저의 속마음을 참 여실히도 까발려 버리셨군요. 아마 많은 주민들이 이 글에 찔리겠죠. 

자신이 환생한다는 해방적 만족감에 취해 환생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이들을 이렇게도 무자비하게 찔러버리시다니. 동반자해를 상대의 동의 없이 마구 저질러 버리신 당신은 역시 잔인한 사람이었어요. 우린 아직 여기서 몇날 몇달을 더 살아야 한다구요. 
하. 드러난 상처를 꽉 부여잡고 버티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겠군요. 

진실로 외롭습니다. 무준님의 마지막이란 말이 저를 더 외롭게 만듭니다.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보다 외롭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뭔가 손해본 느낌이 듭니다. 허전해지네요. 예찬님의 '순간을 믿어요.'에서의 순간의 사랑이 절실해지는 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지나가겠죠. 
(제 투덜거림을 떠나는 이가 통상적으로 가지는 너그러운 마음가짐으로 용서해 주시길.) 

수고했어요. 지킬 앤 하이드 무준님. 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9-06-06
02:02:50
  

 

상병 양동훈 
  낄낄낄 다 그런 겝니다. 

글쟁이의 애환이겠죠... 
왜 글쟁이가 글을 쓰느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이곳은 또다른 느낌이 있죠 
나에게 떨어지는 1g의 관심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모두가 그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