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나의 하루를 팝니다.  
병장 김무준   2009-05-01 08:03:51, 조회: 287, 추천:0 

1.
비가 내렸다. 사월의 끄트머리에서 비는 힘없이 늘어졌다. 어둠이 가득 찬 거리에 부슬비가 흩날렸다. 가로등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거렸고 곧게 뻗은 건물 사이로 고요가 비집고 들어왔다. 노란 불빛이 스치는 시멘트벽은 회색빛으로 젖었다. 바람이 외롭게 슬픔을 실어 날랐다. 조용했다. 도시는 침묵 그 자체였다.

노란 불빛 아래로 그림자가 깜빡깜빡 적막을 사르며 걸어갔다. 텅 빈 도시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곤 가로등의 불빛과 그림자 밖에 없었다. 그림자는 긴 머리카락을 흔들어댔다. 우우웅. 정적을 깨고 그림자로부터 묵직한 진동음이 새어나왔다.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우웅. 전화는 계속해서 몸을 흔들었다. 여자는 전화를 들었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여자는 또 라고 짧게 중얼거렸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인터넷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그러신가요. 내일 쯤 시간이 될까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토요일입니다. 그럼 괜찮겠네요.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아홉시까지 가능하신지……? 예, 괜찮아요. 열두 시간에 팔만 원 가능할까요. 그건 좀 적지 않나 싶은데요? 죄송합니다. 대신 모든 금액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여자는 잠깐 답을 하지 않았다. 가로등이 꺼졌다. 어스름한 달빛만이 거리에 물들었다. 멈추었던 걸음을 옮기며 여자는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 일당이 적기는 하지만 요즘은 일거리가 없으니까.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기분 전환이라 여기자.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빠르게 불 꺼진 거리를 거닐었다.

2.
서면 지하철 백화점 앞 분수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남자는 오전 일곱시 이십일분에 문자를 보내왔다. 어떤 옷을 입고 있겠다는 설명도, 어떻게 꾸미고 와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문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료했으며 예의가 있었다. 여자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며 쟈스민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같은 향의 비누로 몸을 씻었다. 옅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곱게 빗었다. 검은색 물결무늬의 하늘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흰색 와이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걸쳤다. 고동색 가죽 가방을 등에 매고 베르사체 향수를 뿌렸다. 은은하게 쟈스민 향기가 흘렀다.

여자는 미인이었다. 지하철을 타거나 역 안을 돌아다닐 때면 으레 남자들의 시선이 고정되곤 했다. 여자는 그런 남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일을 하러갈 뿐이었다. 남자들에게 관심을 끌거나 적당한 수컷을 사냥해보려 치장을 한 게 아니었다.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고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도착했어요. 어떤 옷을 입고 계시죠?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입니다. 그렇게 입은 사람이 너무 많네요. 이브 생 로랑 티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아 보이네요.

남자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었다. 보수는 정확히 오후 아홉시에 주겠다며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묻는 말에만 대답할 것. 둘째, 그 외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 셋째, 자신에게서 오 미터이상 떨어지지 말 것. 여자는 마지막 조건을 들으며, 보일 듯 말 듯 잠깐 미간을 좁혔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3.
여자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일 미터쯤 떨어져서 걸었다. 여자에게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 따위는 설명하지 않았다. 남자는 지하철을 탔고 여자는 뒤를 따랐다. 시청, 온천장을 지나 부산대 역에 다다랐을 때 남자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여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하철역을 벗어나 넘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갔다. 남자는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리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선남선녀가 길 한가운데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 곁을 지나는 사람들이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십분쯤 지나자 모두가 그렇듯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을 지나쳤다. 남자는 한 시간이 다되어가도록 그렇게 서있었다. 여자는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지 말라는 조건은 있었지만 한숨 쉬지 말라는 조건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지하철역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지겹습니까? 좀 그렇네요. 나름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프라이드는 갖고 있는데. 무슨 말이죠? 데이트로 돈을 버니까, 데이트를 하면서 최대한 상대가 즐거울 수 있도록 배려하거든요. 저는 즐겁습니다만. 말 뒤에 당신은 어떤가요? 라고 물었다고 생각하고 답할게요. 별로 썩 좋지는 않아요. 이럴 시간에 집에 있었다면 푹 자기라도 할 텐데. 이건 보통사람들의 데이트 방식은 아니니까요.

남자는 씩 웃고는 더 이상 묻질 않았다. 여자도 답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하얗게 깔렸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월 말. 대학가는 파랗게 싹트는 청춘으로 넘쳐났다.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싹들이 자라있었고 드문드문 커다란 나무들도 보였다. 나무들은 대나무처럼 하늘로 뻗어있기도, 늙은 소나무처럼 뒤틀려 자라있기도, 담쟁이 덩굴마냥 줄기를 배배 꼬아있기도 했다. 여자는 눈을 비볐다. 숲이 보였다. 부대 앞 골목골목에 오색의 숲과 들이 펼쳐졌다.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열한시 삼십칠분까지 우두커니 서있다 걸음을 옮겼고, 여자의 눈앞에 펼쳐진 숲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오십 센티쯤 떨어져서 걸었다.

4.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다시 서면으로 돌아왔다. 근사한 데이트가 이어졌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서너 가지의 와인을 마셨다. 남자는 허영심 많은 사람들처럼 지겨운 와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지만, 테이블에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고 철저하게 매너를 지켰다. 음식을 주문할 때를 제외하면 단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으나 여자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식사 후에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남자는 여자가 진짜 자신의 애인인 것처럼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를 신기고, 프라다의 원피스를 입혀보고, 까르띠에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안나 수이의 향수를 사주었다. 남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썼다. 또한 여자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토록 바래왔던 구찌의 핸드백을 사줄 때는 잠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쇼핑이 끝나고 남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람보르기니 한 대가 도착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집 주소를 물었고 람보르기니의 운전자에게 짐을 가져다놓으라 명령했다. 여자는 당신의 정체가 무어냐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두 사람은 지하철을 탔다. 이호선 해운대역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는 달렸다.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남자를 i았다. 지하철역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남자를 놓치고야 말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체 어디 가는 거예요. 택시라도 붙잡고 해수욕장 입구에서 내리시길 바랍니다. 알았어요. 잠시만요. 택시 탔어요. 왜 그렇게 뛰어간 거죠? 조건을 잊었습니까. 질문하지 말 것.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남자는 여자의 손을 낚아챘다. 남자는 화단으로 여자를 이끌었다. 남자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단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멍하니 서있었다. 길게 수평선이 어지럽게 늘어졌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태양이 떨어져 붉게 타올랐다. 무섭도록 아름다운 석양이 바다를 적셨다. 뉘엿뉘엿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몸을 숨겼고 바다는 다시 파랗게 가라앉았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5.
남자는 편의점에 들러 삼각 김밥 몇 개와 음료수 두 개를 샀다. 백사장에 앉아 두 사람은 저녁을 해결했다. 남자는 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의 말하질 않았다. 오후 여덟시 삼십오분이 되어서야 당신은 세 가지 조건 모두를 어겼노라고 말했다. 여자는 할 말이 없었다. 보수를 줄 수 없다 말했을 때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여덟시 오십칠분이 되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즐거우셨습니까. 네.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고요.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남자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망설임 없이 바다로 걸었다. 신발과 바지가 물에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는 깊이, 점점 더 깊이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여자가 뒤늦게 남자의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남자의 몸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바닷물에 잠긴 손끝에 남자의 티셔츠가 닿았다. 남은 것이라고는 셔츠 뿐이었다.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6.
여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열리고, 내리고, 문 앞에 섰다.

문 앞에는 구찌마크가 커다랗게 반짝이는 핸드백 하나와, 한 낮의 나무처럼 옻칠이 되어있는 이젤 하나가 놓여있었다. 

어제 죽은 첫사랑의 사진과 함께.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3:49 

 

병장 김형태 
  람보르기니와 삼각김밥이라. 으음. 2009-05-01
08:09:58
  

 

병장 김상윤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 
일단, 여자가 남자를 첫사랑으로 사랑하게 된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남자는 왜 자살한 거죠. 
음. 죽은사람과 닮아서 마지막으로 하루를 보내고 자살한 건가요? .. 2009-05-01
09:41:23
  

 

상병 한영빈 
  저도 잘 이해가... 2009-05-01
13:18:50
  

 

병장 김무준 
  지나치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시는 군요. 쩝. 앞에 숲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만- 2009-05-01
13:33:17
  

 

상병 정근영 
  이거 뭔가 굉장히 느낌이 좋기는 한데 약간의 의아함이 남기는 하는군요, 으음 
람보르기니 운전자는 왜 시키지도 않은 사진을 갖다 놓았는지. 아니, 그 남자가 이미 말해둔 것일까요. 

그래도, 돈을 받고 데이트를 하는 행위에 대한 일반적 편견을 날려버리는 글이군요. '천일야화'라든지 '리얼스토리 묘'에서 봤을 때는 너무 그릇되고 퇴폐적인 욕망만을 부각시키는 듯 했는데, 백분의 하나 정도는 위와 같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깊숙한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니까요. 2009-05-01
13:33:45
  

 

일병 오효섭 
  흐음,. 
잘읽었습니다. 
'나의 하루를 팝니다.' ,. 2009-05-01
14:01:57
  

 

병장 김무준 
  깽깽이의 이야기는 대부분 타인의 상상을 존중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열심히 고민을 해 보시길. 물론 깽깽이가 생각해놓은 이야기는 있지만,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은 다양한 사고를 하는데에 있고- 깽깽이는 타인의 의견을 보며 낄낄거리는 변태라는 것. 

생략하기는 단점일수도, 장점일수도 있지만 장점이라 주장하렵니다. 하암. 2009-05-01
14:03:06
  

 

상병 윤영석 
  첫사랑으로 죽은 남자가 일하는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면서 죽지않았을까요. 
여자가 대행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알고.. 

아닌가...(삐질) 2009-05-01
14:47:12
  

 

상병 김태완 
  환상.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꿈에서 깨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환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모든것은 환상이었다.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가 온 것부터 환상은 시작된다. 
첫사랑은 여자가 보는 앞에서 바다에 빠져 죽었다. 
'또'라는 표현을 통해 여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자주 남자가 돌아온 듯한 환상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상은 전화가 온 순간부터 계속 이어진다. 
지하철을 타고, 예전 좋았던 추억들이 실세계와 오버랩된다. 
지하철 여행, 쇼핑 후 만난 람보르기니와 운전기사를 본 것, 해수욕장의 수평선 모두 한번씩 겪었던 일들이다. 
여자는 추억이 있는 장소를 혼자가 아닌 홀로 다닌다. 
그녀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남자 즉, 첫사랑의 환상과 함께 예전에 했던 데이트를 반복해서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온 여자는 오버랩 되어 있던 추억에서 벗어나자 그가 사준 구찌 핸드백을 털석 떨어뜨리고 주저앉아 한없이 운다. 
그녀의 맘을 아는 지 모르는지 이젤에 걸린 첫사랑은 그저 웃고만 있다. 

(제 나름의 해석이니 뒤에 내용의 덧붙임 정도는 눈감아 주시길) 2009-05-01
18:46:16
  

 

병장 김무준 
  오오! 2009-05-02
02:40:16
  

 

상병 조민석 
  오우.... 2009-05-02
18:13:55
  

 

일병 이선목 
  김태완님 해석대로 글을 다시보니 새로운 글을 보는 것 같네요 
[독서후기] 송기화 전집  
병장 김무준   2009-05-03 14:31:52, 조회: 175, 추천:1 

심심했다. 칼럼을 마무리하려 관련서적을 찾아도 대체 어딜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어 펴놓은 노트를 접고 말았다. 미루고 미뤘던 잡지 스크랩도 다 끝냈겠다, 공모전 네 곳에 텍스트를 보낸 데다 당분간 공모전도 없고,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역인사나 미리 써둘까 하다 하품을 찍찍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송기화의 텍스트가 생각났다.

깽깽이에 필적하는 다작의 달인. 물론 깽깽이보다는 더 적은 텍스트를 썼다 해도 단편만 놓고 보면 깽깽이보다 훨씬 손가락을 많이 놀린 양반이다. 깽깽이와 비슷한 시기인 작년 구월 중순부터 책마을에 출몰하여 특유의 상상력과 반전, 사고의 전환을 늘어놓는 글쟁이.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깽깽이는 송기화의 텍스트를 그다지 읽어보지 않았다. 시간이나 때울 겸 해서 일상이야기를 제외한 송기화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보았다.

송기화가 본격적으로 책마을에 굴러다닌 시월 말부터 십이월까지의 텍스트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큰 키워드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다. <공룡>, <재판>, <뻐꾸기>, <전염병>, <응답>, <선택>, <택시>, <인연>, <날개>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인류의 이기적 특질을 늘어놓는다. 직접적으로 인류가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환경을 파괴했고 그에 따른 단죄를 받고야 말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는 <전염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텍스트 내에서 인류는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다 광합성이 가능해지는 전염병에 걸린다. 북반구의 인류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다 마침내 버섯이 되고 남반구의 인류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택시에 탄 생물학자는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우리의 세계로 방문한다. <뻐꾸기>에서도 뻐꾸기는 인간의 환경파괴를 보고 폭력적 특성을 찾아 새끼뻐꾸기에게 강력한 속성을 부여하고자 우리 세계에 자신의 새끼를 놓아둔다. 집에 간 정영목이 생태에 관심을 갖고 환경운동에 힘쓰듯 송기화는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송기화는 다양한 텍스트로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할 결과를 표현하고 경고한다.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이 뿔뿔이 흩어지듯. 전염병으로 인간이 종말을 맞이하듯. 사고의 전환과 이해가 없는 발전은 파괴를 낳을 뿐이라고.

작년에 쓴 송기화의 텍스트는 다분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다. 톡톡 튀는 발상의 전환과 특유의 상상력으로 일반적 현상이나 기존의 가치통념을 뒤집어 놓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이를 여성적이면서도 깔끔하게 텍스트로 그려내지만 메시지 자체는 암울하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상실이다. <선택>에서 보여 지듯 송기화가 생각하는 인간은 세계를 깨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변화의 상실이다. <인연>에서의 남자는 사랑을 위해 여자를 구속하며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해의 상실이다. <눈물받이>의 주인공은 눈물마저 잃는다. 텍스트 속 인간은 적지 않은 것들을 잃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룡>부터 <날개>로 이어지는 작년의 텍스트가 생산되기 직전에 연재물 <314씨 시리즈>가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는 일본의 <사신 치바>와 비슷한 형태의 장편으로, 314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사신(의 일종)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후세계와 윤회를 소재로 다른 세계를 위트 있게 묘사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삶과 개인의 존재, 그리고 삶의 본질에 자신의 생각을 섞어놓는다. 텍스트의 메시지는 ‘현재를 현명하게 소비하고 더 나은 삶을 살라’다. <314씨 시리즈>가 시월 이십삼일에 끝났고, 이십사일부터 <공룡>을 비롯한 많은 텍스트가 생산되었다는 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십이월 삼십일부터 일월 십이일에 걸쳐 작성된 <대장장이>부터 다시 키워드는 바뀐다. 텍스트를 설명하려면 이와 연계된 <칼>을 언급해야한다. 이영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송기화는 한국적인 모습으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상을 실현시키는 칼과 칼을 만들어주는 대장장이, 그리고 그 칼을 가진 이들의 에피소드를 엮은 텍스트에서 송기화는 희망과 변화, 투쟁이라는 진보적 키워드를 집어넣었다. 이전의 텍스트가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판에서 머물렀다면 한걸음 나아가 변화를 문학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태도도 변화를 맞는다. 과거의 텍스트들이 단순한 상실에서 끝났다면, 최근의 텍스트에서는 회복을 말한다. <방해꾼>에서는 잃어버린 자아의 발현을 제안하고, <책>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을 극복해 희망을 노래하자며 술잔을 기울인다.   

시간이 흐르며 송기화의 텍스트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송기화식 상상과 잔잔한 표현은 여전하지만 메시지는 한층 부드럽다. 명예의 전당에 있는 김지민식 글쓰기를 하는 듯 보여 진다. 지난해의 송기화가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같았다면 지금은 유리구슬로 변한 느낌을 받는다. 맑고 영롱하게 현상이라는 빛을 삼키고, 자신만의 색깔로 현상을 새롭게 해석해 늘어놓는다. 마구로 이동슥은 누군가 송기화를 채찍질해 한국문학의 희망으로 키웠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기화라는 이름을 보면 으레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사고의 전환과 상상이다. 수많은 텍스트를 통해 송기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버금가는 상상을 보여줬다.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를 마무리하는 능력은 이제까지 깽깽이가 접한 많은 글쟁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여긴다.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소재를 뒤집고, 미시적 세계와 현상을 해석해놓은 텍스트는 놀랍고 또 놀랍다.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일상을 비틀어놓는 상상에 비해, 미시적 세계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사후세계 역시 우리네 회사와 마찬가지로 부서가 나뉘어 있고, 쳇바퀴 굴러가듯 돌아간다. 신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세계를 관리하는 세계장들이 있고 이 세계장들은 다양한 세계를 관리한다. 외계인은 택시를 탄다. 저 너머에 있는 미지의 것들이 우리네 삶과 별 다를 것 없는 형태로 묘사된다. 인간적일지언정 그 이상의 것은 찾을 수 없다. 이는 베르나르의 경우와 같이, 송기화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송기화는 텍스트를 쓰며 많은 반전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상상과 반전에 열광했다. 최근의 뉴웨이브 문학과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을 맛깔스럽게 보여준 덕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기대 때문인지, 지난 텍스트들은 지나치게 반전을 그리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해가 바뀌며 송기화는 한걸음 나아간다. <만남>과 <만담>, <방해꾼> 등으로 반전을 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고 세계를 해석해냈다. 이월 중순에 쓴 <편지>에서 다시 반전은 등장하나, 이후의 텍스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삼월 십-팔일에 게시된 <유리>를 마지막으로 송기화의 텍스트는 한 달 보름가량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의아한 점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며 잔잔하고도 밝은 이야기로 돌아오던 송기화가, 비교적 최근 생산된 세 편의 텍스트 <애완동물>, <기억>, <유리>에서는 다시금 어두운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들지 않으며, 꿈은 유리처럼 깨어지고 만다.

꿈은 유리와도 같다.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나지만 잠에서 깨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송기화는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이 대화하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송기화 본인만이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잔잔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송기화의 상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텍스트를 기다려본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지만, 꿈을 꾸니까. 비록 유리구슬과 같을지라도.




뱀발.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음.
뱀발 둘. 많은 이들이 기화씨의 텍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특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텍스트를 통해 상실의 회복을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함.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사니까.
뱀발 셋. 그런 의미에서 책마을이 기화씨를 잃는다면 골 때릴 것임.
뱀발 넷. 냠냠. 아마도 마지막 독서후기.
뱀발 다섯. <뻐꾸기>와 <인연>, <유리>는 가지로 가야 함. 소사분들 참고바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3:59 

 

일병 김태건 
  짝짝짝 

기화씨는 멋진분 

무준씨도 멋진분 2009-05-03
20:46:43
  

 

병장 김형태 
  제목을 보고, 푸하하 웃었다 클릭하고선 멍때리고 있습니다. 

기화씨의 '책'은 정말 잊기 힘든 것입니다. 제가 책마을에 거주한 이후 본 정말 어마어마한 추천과 가지로가 달렸기에 아직도 선명합니다. 무엇보다 내용때문이었겠죠. 기화씨의 글이 뜸-해지면 저도모르게 애탄답니다. 보고싶습니다 기화씨의 글을 더더더더더 2009-05-04
07:32:49
  

 

상병 송기화 
  어휴. 뭐 이런 부끄러운... 어휴. 2009-05-15
14:27:57
  

 

상병 진수유 
  재밌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9-05-15
14:33:52
  

 

병장 차종기 
  이것도 가지로 가죠, 가지로 2009-05-18
09:27:14
  

 

상병 황호상 
  그저 할 말을 잃은. ... 2009-05-18
13:21:58
  

 

병장 이지훈 
  멋지군요. 책마을다운 독서후기 중 하나가 아닐런지요. 

가지로 갑시다 쿵쿵 2009-05-18
22:26:34
  

 

병장 김호균 
  잘 읽었습니다. 
 [일상이야기] 우리집 강아지 깽깽 - 개소리  
병장 김무준   2009-05-03 23:09:57, 조회: 110, 추천:0 

1.
내일부터 깽깽이는 동료들과의 친목도모와 체력단련을 위한 사박 오일의 메이저급 투어에 참가합니다. 여름에 입사를 하여 저주를 받았는지 이번이 세 번째로군요. 그래도 공사에서 갖는 마지막 투어인지라 해탈의 경지에 오른 채 다녀올 생각입니다. 하암. 사라지는 것 같던 감기가 약이 다 떨어져서인지 재발하고 있어서, 혹여 투어를 가서 뻗는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

2.
시간도 좀 지났겠다, 독서후기의 형태로 작성하려던 이야기를 늘어놓겠습니다. <유에프오를 믿으시나요?>와 <이번에도 당신입니까?>는 한 텍스트입니다. 그리고 <푸른 봄>, <나의 하루를 팝니다.> 이렇게 총 세 텍스트는 모두 ‘청춘’에 대한 텍스트입니다. 

<유에프오->는 나름 자전적인 텍스트에요. 공모전 투고용으로 작성하면서 최근의 트렌드가 ‘안드로메다 너머로’인 것을 깨닫고 아스트랄하게 꾸며봤습니다. 주인공이 일상에서 비일상을 맞이하며 비일상을 통한 변화의 수용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을 좀 아리송하게 마무리하기는 했습니다만. 주인공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하다 사라진 누님으로부터 (아마도 안드로메다에서 날아왔을) 문자를 받습니다. 나름 이 장면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부분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뜬금없으면서도 어이없거나 혹은 절망적으로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절대 미친 것이 아니며, 내일을 살아가야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표현이 모자라 이게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푸른 봄>은 제목과 등장인물의 예명에서 알 수 있듯 대놓고 청춘을 깔아놓은 텍스트입니다. 생략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푸름은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꿈을 품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른 길을 택하나, 다시금 절망합니다. 오크여대생(응?)과 에스대 학생회장과 푸름 모두 청춘을 상실하고 현실에 다가서려는 우리 세대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푸름과 겨울(작중 의뢰인)은 추상적으로 청춘을 상징하며, 주인공 김전일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택했다는 점에서 마지막 남은 청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푸름은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생략되었으나) 김전일에게 탐정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기회를 주고자 자살을 택했고, 김전일은 푸름의 뜻을 모르고 분노의 추리를 시작한다는- 장편으로 늘어놓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텍스트입니다. 전체적인 주제는 그러니까 우리 좀 빡세게 살아보자는 거죠. 더럽게도 생략해놓은 것들이 많은데다 푸름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끝에도 일러두었듯, 추리형식을 띠고 있으니 읽는 이들이 한 번 추리를 해보라는 거였어요. 냐암.

<나의 하루를 팝니다.>는 애인대행이라는 신종 아르바이트를 소재로 한 텍스트입니다. 김태완씨가 깽깽이가 잡아놓은 이야기에 상당히 근접했고, 신선한 풀이이기도 했지만 깽깽이가 만든 시놉시스는 조금 다릅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건 맞습니다. 대학로 앞에서 여자가 본 것들, 그리고 백화점에서 무수히 많은 물건을 샀음에도 정작 집에 도착한 것은 여자가 그토록 바라던 핸드백 밖에 없었으니까요. 여자가 처음에 비를 맞으며 어두운 거리를 걸어간 이유는 첫사랑의 장례식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좀 더 쉽게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미모를 이용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만의 긍지Dignity는 있죠. 첫사랑은 죽은 뒤 여자에게 청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여자를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끌어냅니다. 대학로 앞에서 기묘한 숲을 보여주죠. 숲은 마찬가지로 청춘을 상징합니다. 청춘, 봄, 새싹, 식물 뭐 이런 이미지 도출을 통해 끄집어낸 거예요. 여자가 애인대행을 하는 이유는 구찌 핸드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소비를 하기 위해서였죠. 첫사랑은 여자의 소망을 알았고, 그러한 물질적 욕구가 결코 온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 합니다. 그래서 점심 무렵에 근사한 식사와 함께 백화점을 들쑤셨으면서 저녁에 삼각 김밥과 음료수 따위를 내민 거고요. 남자는 여자에게 무엇도 알려주지 않고, 바다로 돌아갑니다. 이것도 <푸른 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살과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첫사랑은 본디 어제 죽은 사람이고, 사라지는 거죠.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남자가 입은 티, 이브 생 로랑의 수장이었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씨는 얼마 전 타계했습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널리 알려진 건 아닌지라 전달이 안 된 모양입니다. 무튼 마지막에 이젤과 구찌 핸드백이 나란히 놓여 있는 건, 여자에게 그림을 그렸던 과거 즉 꿈이 있어서였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꿈이냐 욕망이냐를 선택하라고 질문하는 거죠. 하암.

많은 것들을 생략해버린 건 깽깽이가 극도로 게으른 생명체라서가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구회 말 투아웃>이 그랬던 것 처럼요. 깽깽이 나름의 시놉시스와 상징을 풀이해놓았습니다만, 김태완씨처럼 다양한 그림을 본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텍스트는 생산되고 타인 앞에 내던져진 이후- 읽는 이를 통해 재해석되고 새로이 창조된다는 겁니다. 당신들이 보고 새롭게 그려낸 이야기가, 당신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거예요. 문학적 텍스트에는 이런 재생성의 즐거움과 그 여지가 있어야한다고 믿습니다. 깽깽이가 구구절절이 설명을 늘어놓은 건 심심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깽깽이는 많은 이들이 깽깽이의 텍스트를 읽고 이런 창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고로 불친절한 텍스트 생산은 계속되겠죠.

3.
이제 약 십분 후면 금요일까지 깽깽이는 사라집니다. 깽깽이의 다른 텍스트들이 궁금하신 최근 입주민들은 ‘김무준’이라는 단어로 이름 검색을 해보시면, [책마당], [내글/후기], [연재], [칼럼], [책가지]에 있는 약 A4 500페이지 분량의 텍스트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네에. 나름 신비주의전략에서 거품을 빼 약간의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깽깽이는 곧 집에 가는 말뱀이지만, 깽깽이의 텍스트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고, 사고하며, 사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텍스트의 독서는 깽깽이와 당신을 잇는 소통의 과정이 되는 거죠. 비록 그것이 깽깽이에게서 당신으로 향하는 일방적 소통일지는 모르나, 당신이 다시 텍스트를 생산하며 또 다른 이에게 일방적 소통을 이어가며, 그 소통이 돌고 돌아 모두가 대화하는 광장이 열릴 것이라 믿기에, 깽깽이는 소망합니다. 왈왈.

4.
전역인사는 아니에요. 깽깽이는 유월에 집에 간답니다. 이번 투어가 끝나면 한동안은 뒹굴 거리겠죠. 흐아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4:09 

 

병장 김무준 
  깽깽이는 병장 김무준과 상병 김무준의 두 형태로 책마을에 거주하기에 
공통 키워드 '김무준'을 이름으로 검색하셔야 모든 텍스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멍멍. 2009-05-03
23:11:18
  

 

상병 이재원 
  깨갱-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글쓰는건 참말로 즐거운것 같네요. 내공이 달려서 저런거 읽고나서야 아, 그렇게도 설명이 가능하구나, 나는 뭐라고 생각했지? 라는거 밖에 떠오르지 않으니 이런.. 
나머지 텍스트들이나 더 후르륵 쩝쩝 하러 가야겠군요. 
 [일상이야기] 글과 잡담  
병장 김무준   2009-05-22 08:15:17, 조회: 207, 추천:0 

일주일 동안 한 자도 쓰질 못했습니다. 짜놓은 몇 개의 단편 시놉시스와 잡담들을 써보려 무진장 애를 썼는데, 두세 시간씩 붙잡고 있다가도 싹 날려버리는 짓거리를 반복했습니다. 이유가 참 재미있는 게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습니다. 흐아암. 출판사 및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구회 말 투아웃>에 대해 문장이 좀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내렸거든요. 독서량을 조금 늘리면서 한국현대문학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구효서의 <명두> 등 수 편의 소설들, 수십 편의 수필과 시 따위를 보고 있으니, 깽깽이의 텍스트에 문장력이 딸린다는 생각이 팍팍 들더군요. 쩝. 자격지심이랄까.

문학에서 말하는 가장 좋은 문장이 가장 짧은 문장이라는 건 몇 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나름 고민하고 고민해서 끙끙거리다 전역인사를 써냈는데, 쓰는 내내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게 김무준 스타일인가.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깽깽이가 주로 쓰는 문장이란 ‘불라불라 나불나불, 어쩌고 저쩌고, 비비고 지지고 볶고, 삶아먹었다.’ 따위인데. 문장을 반에 반 토막 내려니까 참 힘들었습니다.

요즘 문장을 다듬는 중이에요. 번역 투를 자제하고 동일 명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적절하게 문장을 맺고 끊고. 짧으면서도 색깔 있는 문장을 쓰려하는데… 어렵습니다. 엉엉. 으레 문장이란 게 그렇지만, 짧게 단어를 조합해서 나만의 스타일을 끌어낸다는 게 마음처럼 잘 풀리질 않습니다. 뭐 모든 텍스트를 그렇게 쓰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단편이라 부르고 싶은 것들은 최대한 깔끔하게 써보려고요.

예술가에게는 각자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가 있죠. 사진가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담고, 화가는 붓과 연필로 그려내고, 음악가는 멜로디와 악기로 소리를 만들고. 작가는 문장으로 마음을 써내야하는데. 그걸 잘 알고 있는데 아는 만큼 실천하지를 못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예술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몇 년 동안 나는 글이 아닌 텍스트에 가까운 무엇을 생산해냈습니다. 나는 단순히 즐거운 텍스트를 생산하고 타인이 텍스트를 해석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관점이었거든요. 텍스트에 쉽게 글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소설가나 비평가, 작가라는 말은 더더욱 하질 않았고요. 그렇게 지내다가 집에 갈 날이 얼마 남질 않으니까, 토해놓았던 텍스트를 하나씩 읽어보았습니다. 징하게도 많이 뿌려놨더군요. <구회 말 투아웃>을 보고 그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무언가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간만에 눈물을 쏟았다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 부족하기만한 나의 텍스트를 읽고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구나. 내가 타인에게 텍스트라는 매체를 통해서 어떤 뜨겁고 차가운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글을 써가는 중이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함이 많아 내가 생산해놓은 모든 텍스트에 글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부끄럽습니다. 나는 부족한 텍스트를 읽은 수많은 이들과, 앞으로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구회 말 투아웃>을 책으로 내어보고자 합니다. 부족한 텍스트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중입니다. 비평을 가르쳐준 형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텍스트가 명작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만큼의 퇴고를 거쳤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팔십만 자가 넘는 텍스트를 쏟아놓았습니다. 언제나 당당했던 건 아니었어요. 부끄러운 텍스트도 더러 있고, 글이라 부르고픈 텍스트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텍스트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느냐. 아직은 명확하게 답할 수가 없어요. 글을 쓰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내가 글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글을 쓰려고요. 모자란 텍스트를 읽고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전달하려던 어떤 것을 받았지만, 그 텍스트들이 완벽에 가까운 건 아니었거든요. 뭐랄까, 읽는 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으려합니다. 예전처럼 주구장창 텍스트를 뱉지는 못하겠지만, 더 단정하고 더 아름다운- 진짜 글을 쓸 수 있도록.

언젠가는 내가 깽깽이가 아닌 글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가장 부족한 문장부터 다듬어야겠죠. 아움. 어렵네요. 글쓰기.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4:24 

 

병장 차종기 
  짧고 간결한 문장이 좋긴 하지만, 
자신의 색깔이 희미해 진다면, 그건, 좀,,, 
저는 무준씨 문장이 좋던데. 흐응- 2009-05-22
09:28:01
  

 

상병 손근애 
  정말 쓰면 쓸쓰록 어려운게 글쓰기인것 같습니다. 
저도 글을 쓰면 하염없이 늘어지는 스타일이라서 쓰다가 중간중간 정신을 차리고 의식적으로 끊어쓰곤 하죠. 끊으면서 내 느낌을 살리고자 무진 애를 쓰고요. 

짧은 문장안에 많은 것을 쉽게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또, 그런 문장들이 모여서 공통된 하나의 정서를 담아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노력중이지만, 그렇다고 제 스타일을 버리고 싶진 않아서 참 많이 고민합니다. 
더 많은 것들을 짧게 담아낼수 있도록, 그리고 그 문장들을 읽었을때 누구나 저의 글인것을 알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개념들을 머릿속에 넣으며, 더 많은 글을 써야겠지요. 후후. 2009-05-22
14:08:06
  

 

병장 김범수 
  글은 간결하고 명확할 수록 좋습니다. 뭐 자신의 색깔이 희미해진다나 그런 소리는 자신만의 문체가 만들어졌을때야 하는 소리인데, 지금 일종의 '견습생'인 상황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은 조금 '오버'스러운 생각이네요. 문체라는게 몇 년 쓰고 몇 년 살아가면서 생기는게 아니니깐 말이에요. 그리고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형식을 탈피한 문체가 나온답니다.(아주 대단한 경우죠) 저도 뭐, 무준씨의 구회말~ 을 안 읽은 것은 아닙니다. 비록 모니터로 읽는 습관이 없어서 제대로 읽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준씨 글을 보면 몇 특정 현재 작가의 글체와 많이 흡사합니다(비하하려는 생각은 아닙니다. 그렇게 느낀 것 뿐 입니다) 2009-05-22
14:37:03
  

 

병장 차종기 
  언제나 글은 간결하고 명활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죠. 2009-05-22
14:39:49
  

 

병장 김범수 
  무준씨가 글을 괜찮게 쓰긴 합니다. 소재도 독특하고,,그건 저도 느낀 바 입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대적인 기준' 입니다. 아직 작가들로 따지면 견습생인 사람이 벌써부터 지나친 욕심이나 혹은 자만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는 것 입니다. 무준씨 글을 재밌게 보고 있고, 또 다음글도 기대하고 있는데 곧 전역하신다는 말에 약간이나마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무준씨 같은 분의 글은, 글을 쓰면 쓸 수록 더 나아진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9-05-22
14:42:16
  

 

상병 박원익 
  문체나 사람의 말버릇이 일종의 저마다의 '틱'이듯이, 정말 고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자신이 보기에도 좋은 문장을 쓰는 건 정말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일생일대의 소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를 계속 갈고 닦아야만 이유는, 아마 언어라는 게 일종의 질병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신경증 환자가 자신의 신경증에 대해 아무리 잘 알고 고치려 노력해도 백약이 무효듯, 언어 역시 곱씹고 또 되씹을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미궁이 되어 버리는 것 같네요. 고민하는 바가 무척 공감이 갑니다. 2009-05-22
14:43:31
  

 

병장 김범수 
  무엇보다도, 무준씨 본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기대됩니다. 어서 빨리 무준씨가 등단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집니다. 특히 [더 단정하고 더 아름다운- 진짜 글을 쓸 수 있도록] 이 글귀는 저 스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되 새길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5-22
14:43:33
  

 

병장 김범수 
  병장 차종기/ 글은 간결하고 명확할수록 좋은 것이랍니다. 자신이 정말 실력있는 '프로'가 아닌 이상, 괜한 미사여구로 겉멋에만 충실하다면 그건 발전이 없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기본이 되지 않고 발전은 없습니다. 간결 명확하게 쓰는것은 글쓰기의 기본입니다. 명심하세요. 글이란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하는건데, 자신만 알고 있는 암호 비스무리 두루뭉실 뜬구름 글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는 걸요. 아무리 좋은 글이면 뭐합니까. 읽혀야지. 2009-05-22
14:45:10
  

 

병장 김형태 
  무준씨가 어렵다면, 나는 어렵다의 어자도 못꺼내겠습니다. 위에 해성씨의 글 제목 보이시죠? 2009-05-22
14:46:38
  

 

상병 김태완 
  범수 / 허허 자위행위라. 
흥분하신듯 하군요. 진정해요. 2009-05-22
14:59:41
  

 

병장 이동열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늘 호흡이라든지, 자연스러운 연결들이 늘 걱정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쉽사리 쉬 나아지지가 않더라구요. 이러한 걱정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데 드는 안도감과 이를 통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으리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나저나 무준씨 집에 아직 안 갔나요?(웃음) 2009-05-22
15:13:13
  

 

병장 김형태 
  범수/ 
글은 본인의 문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맞지 않나 싶어요. 꼭 간결하고 명확할 필요는 2009-05-22
15:38:16
  

 

상병 양동훈 
  범수// 웃긴 얘기지만, 가끔은 명확하지 않고 간결하지 않은 글이 그 목적성을 달성할 때도 있죠. 그리고 그 글이 그 글만의 맛이 있을 수도 있구요. 물론 그런 때는 대부분이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게 하겠다'라는 목적성으로 넘어가기는 어렵겠지만 말이에요.(웃음) 

저는 진심으로 쓸데없이 어려운 글을 써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쓰는 것이 더욱더 어렵더군요. 모 인터넷 카페에서 토론을 하다가 도저히 말과 논리로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길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근거와 사료제시로만 가득찬 글을 써놓고 그 글을 이해 못한다는 이유로 '이것도 모르세요'라고 완전히 속된 말로 '밟아' 버렸죠. 

그 당시에는 그걸 조금은 즐긴거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뭐 완전 초딩같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하네요.(웃음) 

역시나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싶은 말은 태완씨의 말처럼 진정하시라는거(웃음) 2009-05-22
15:42:47
  

 

병장 김범수 
  저는 충분히 진정하고 있어요. 싱긋, 조금 입보다는 손가락이 거칠은 것은 고쳐야할 문제지만요. 항상, 그렇듯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는 본인의 마음이니깐요. 그저 저는 제 의견을 말한 것일 뿐이니깐요. 물론, 제가 논술이나 기사 처럼 간결하게 쓰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학에 맞는 간결한 글을 쓰라는 것이니깐요. 2009-05-22
15:49:38
  

 

상병 양동훈 
  범수// 저는 손가락보다 입이 더 거칠어서 문제인데... 차라리 손가락이 거친게 낫지 않을까요(웃음) 2009-05-22
15:52:29
  

 

병장 김범수 
  동훈 // 손이 거친것은 비열해보여서, 차라리 솔직한 입이 낫다고 생각해요. 2009-05-22
15:58:06
  

 

병장 이웅재 
  남들 의견에 의해서 많이 변하시지 않으셨음 하네요. 당당하게 . 예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던 말 자격지심같지 말고 일단 쓰고보라는 그 말 전 기억하고 있는데 하핫. 
어찌되었든간에 난 무준씨가 책 내면 꼭 살게요 낄낄. 2009-05-22
20:26:30
  

 

병장 김무준 
  마지막 탈출까지는 보름 쯤 남았습니다. 다만 공사의 일정 때문에 진득하게 앉아 주절댈 시간이 없어서요. 

문학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등단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꿈은 패션디자이너지, 작가가 목표는 아닌지라. 

이게 참 큰 딜레마입니다. 똑같은 의미를 담은 문장일지라도,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어놓은 문장보다는 짧고 간결하면서 특유의 빛을 내는 문장이 더 맛깔스럽거든요. 하지만 아직까지 긴 호흡의 문장을 뽑아내는데 익숙해서 이를 간결하게 줄이는 게 참 힘듭니다. 사실 문장의 아름다움이란 기준도 기존의 할배들에 의해 관습 혹은 통념화가 되어버렸죠. 무조건 짧은 문장이 최고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최근 들어 손가락을 못 놀리는 게, 문장론에 관한 지식과 가치 그리고 감성이 부딪히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부담 없는 텍스트를 뽑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단어선택에 있어서 가급적 보편적인 놈들을 골라 긴 호흡이라도 거부감 없이 넘어가는 문장을 그리려 해요. 어떻게 보면 퇴고의 습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구회 말 투아웃> 퇴고를 하면서 계속 손을 대는 부분이 주로 문장이에요. 구성이나 진행에 있어서는 그렇게 고칠 점이 없다고 보거든요. 근데 전체적으로 텍스트를 살피다보면 걸리는 게 참 많습니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것, ~게와 같은 녀석들이 특히. 되도록 종결어미로 문장을 마무리하려 애쓰는데 그렇지 못한 곳도 눈에 보여요. 퇴고를 거치면 이런 놈들이 토막 나거나 호흡이 짧아집니다. 제일 어려운 건 각 인물마다 다른 문체를 적용시키는 건데, 아무래도 공부가 모자라 마음만큼 잘 풀리질 않네요. 

다른 텍스트를 수정할 때도 비슷합니다. 종종 백업한 텍스트를 블로그에 옮기면서 퇴고를 거치는데, 손대야할 문장이 너무 많아요. 게으른 탓이 제일 크겠죠. 그렇다고 던져놓은 텍스트에 열심히 칼질을 하기에는 엄청나게 게을러서, 그럼 처음 텍스트를 뽑을 때부터 일정 퀄리티 이상을 유지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하는 게, ‘엄청나게 뽑아내면서도 일정 퀄리티 이상을 유지한다.’는 건데,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스스로에게는 늘 성에차지 않거든요. 

가장 좋아하는 문체는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에 사용한 문체입니다. 문장으로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를 이어나가고, 적절한 호흡으로 끊어내는. 이게 제일 나다운 문체라고 생각하고요. 문제는 언제나 이런 문체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거죠. 텍스트에 장르를 나누고 형식을 맞추는 건 죽어라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떤 장르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여기저기 적용시키다보면 뜻하지도 않게 시니컬하다거나 차가워 보인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그래도 의도치 않은 이미지의 왜곡을 떠나, 잡담이 아닌 텍스트를 쓸 때는 지금처럼 긴 호흡의 문장보다는 짧은 호흡으로 이어나가고 싶은데, 선호하는 문체에 맞춰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한 정통 문학도도, 등단을 목표로 하는 작가지망생도 아닙니다. 기존 문단에 엿이나 먹여주겠다는 심보로 취미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죠. 취미생활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컨텐츠의 공급자 혹은 텍스트의 생산자로서 도리를 다하고자합니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보이는 이상 텍스트의 창조자가 가져야할 최대한의 예의가 있으니까요. ((참조)책가지/[내글내생각] 글쓰기의 도의 - 병장 문두환) 내게 있어 최대한의 예의는 애프터서비스를 하지 않는 텍스트입니다. 게으름과 욕구 사이의 갭에 배패해 항상 던져놓기 일쑤지만.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중이고요. 노력하다보니 계속 문장의 미에 관한 딜레마와 스타일 사이에서 왔다갔다 서성입니다. 글을 쓰기로 결정했으니까, 글다운 글을 써야죠. 나는 나만의 색깔이 있다고 믿어요. 이게 총천연색은 아니라도 꽤나 많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뚜렷하게 한 색을 내비치지 않아 일정치 않게 보일 뿐이지. 꼭 집어서 말하자면 회색빛이랄까. 무튼 글다운 글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야 하기에, 무채색의 명암을 조절하고 표현기법을 다양화하는 식으로 갈고 닦는 중입니다. 

전체를 그려내고 소묘하듯이 내부로 접근한 다음, 다시 전체를 그려내는 게 내 문장의 집합입니다. 하암. 그렇지만 칼질을 거듭해 해 조각을 깎기보다는, 한 칼에 텍스트를 베어내고픈 욕심을 품다보니 깊은 수렁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수련의 늪이죠. 

밤은 깊어만 가네요. 뭔가를 좀 ‘써봐야’하는데……. 2009-05-23
00:53:01
  

 

병장 김무준 
  여담이지만, 누구 닮았다- 비슷하다- 는 말을 듣기 싫어서 문학을 정독하지 않는 편인데, 요 몇달새 책을 좀 많이 읽었더니 부작용이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쩝. 2009-05-23
00:56:45
  

 

병장 김요셉 
  음음. 최근에 출간된 이응준 선생님의 '국가의 사생활', 문장에 유의하며 읽어보세요. 배울 점 많은 문장이더라구요. 2009-05-26
16:13:09
  

 

병장 김요셉 
  쓴 글의 문체가 읽은 글의 문체를 따라가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도 다독과 다작을 통해 해결될 일이라 생각해요. 읽고 쓰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수없이 '새로' 하다 보면요. 2009-05-26
16:14:53
  

 

병장 김우현 
  아직 안가셨습니까? 저녁 드신줄 알았는데 무준님의 이름이 있길래 깜짝 (웃음) 2009-05-26
19:09:38
  

 

병장 곽상민 
  늦은감있지만 끄적거립니다. 

그런생각 하신 자체가 이미 진화하고 계신거겠지요(웃음) 

부럽습니다. 
[전역인사] 終  
병장 김무준   2009-05-17 01:18:51, 조회: 497, 추천:0 

발을 옮긴다. 철커덕. 발이 걸린다. 역사와, 이념이 만든 족쇄가 흔들린다. 다시 발을 옮긴다. 차락. 법과 제도로 이어진 쇠사슬이 어지럽다. 그그긍. 돈으로 된 철구가 구른다. 무겁다. 사내에게, 세상 그 무엇이, 발에 잠긴 족쇄보다 무거울 수 있으랴. 시간의 모래밭에서 걸음을 옮긴다. 지나온 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걸어온 자욱들은 옛 바람에 모두 지워졌다. 살아온 흔적과 사랑한 추억이 사내의 사막에 비처럼 내리건만. 모래는 젖지 않는다. 비는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적막히 바스라진다. 긴 긴 밤은 까맣게 타오르고 사내는 그래도 발을 옮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치열한 삶이 고통이 햇살 같이 온 몸을 때려대지만. 사내는 걷는다. 힘겹게. 다시 한 걸음.

죄를 지었나. 사내는. 아니. 무슨 죄를 지었나. 발아래 으깨어진 시간이 소리를 지른다. 사내는 사막에 두 발을 내딛으며, 원죄를 부여받았노라고. 어둠에 섞인 죽음이 귓가에 속삭인다. 사내는 삶에 이끌렸기에, 死의 방문을 예고 받았노라고. 사내는 대꾸하지 않는다. 시간의 목소리에도, 죽음의 속삭임에도. 듣지 못하는 저 존재의 반대편, 無처럼 대꾸하지 않는다. 존재자체가 사내의 죄라도 혹은 사내의 죄가 아니라도. 사내는 시간의 모래밭을 속죄하며 걸었으리라. 발에 채이는 쇠사슬이 없었더라도. 사내는 죄인처럼 사막을 걸었으리라.

왜?

사내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위에서서, 저 멀리 반짝이는 자유로의 탈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보았다. 사막 어딘가에 빛나는 희망의 오아시스에서, 꿈으로 가득 찬 영롱한 단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다면, 창공을 가르는 한 마리 새가되어,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하늘을 질러, 자유로, 자유로, 자유로 날게 되리라. 사내는 믿었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는다. 불현듯 사랑이 심장을 찢으며 가슴을 관통하더라도. 극한의 통고가 칼날이 되어 날아들어도. 자유를 향한 걸음을 내딛었다.

사내는 말했다.

살아서는 새가 되고, 죽어서는 비가 되겠소. 내 새가 되어, 그대 세상 어디에 있던 날아가. 그대 발아래 앉겠소. 내 비가 되어, 그대 세상 어디에 있던 떨어져. 그대 발아래 머물겠소. 내 영혼을 태워 그대의 앞을 밝히고, 내 심장을 내어 그대의 앞을 닦겠소. 그대여. 내 가진 전부를 내어드릴 테니 부디 그 자리에만 있어주오. 그렇게 내 사랑하게 놓아두오.

사내는. 가슴에 품은 마지막 사랑을 위하여. 사내의 자유를 취하고, 주머니 가득 꿈을 담아, 사막을 건너, 사내의 情人 곁에 머무르고자 그렇게 사막을 걷고 또 걸었다.

사내의 죄는 곧 사랑이었으므로.

















- 안녕, 안녕히.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빛나는 시간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걸어가는 길에 아름다운 이가 함께 하기를.
 다시 바람은 부니,
 내일을 위하여 어제에 인사를 보내기를.

 Bye. By my yesterday.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24:44 

 

상병 양동훈 
  무준씨도 저녁먹으러 가시는군요... 
책마을에 온지는 아직 정말 쥐뿔도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저라는 사람의 존재도 잘 모르시겄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무준씨의 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진짜 진심으로 재밌었는데 말이죠(웃음 X 20000) 
건강하시길 바래요~! 2009-05-17
01:45:30
  

 

상병 이석재 
  저녁밥까지의 기간이 폭파기간이였던게 한이였군요. 떠나간 미소와 함께 마침내 행복하기를. 2009-05-17
07:04:51
  

 

상병 이재원 
  저도 들어온지 얼마안됫는데..무준님의 글을 섭취하고 우와!!! 
이런사람들이 모여있구나! 했었는데, 이곳을 구경한지 얼마나됫다고..흑흑.. 
지금쯤 무준씨는 미소를 머금고 밖으로- 밖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겟지요? 
구회말 투아웃 책으로 나오길 아니 서점에 진열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있겠습니다-! 2009-05-17
08:50:43
  

 

상병 손근애 
  무준씨.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셨나는 안부? 고생하셨다는 인사? 
그 어떤것도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무준씨의 저녁인사에 나 스스로는 참 많은 것을 아쉬워 하고 있는 듯 합니다. 

무준씨.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만나보고도 싶었어요. 이것저것, 쉽지않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계속해서 발목은 잡았던건, 이곳에 남겨졌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그중에서도 무준씨는 참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 시간으로 보내어야 하겠네요. 

고생하셨어요, 무준씨. 잊지 않고, 바깥에서 뵙겠습니다. 
평안하시길. 2009-05-17
09:23:45
  

 

병장 이지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고마워요. 나가서 꼭 뵙길. 2009-05-17
09:27:24
  

 

상병 김진홍 
  bye. 2009-05-17
09:55:54
  

 

상병 김예찬 
  정말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2009-05-17
14:02:56
  

 

병장 김우현 
  안녕히 가세요. 무준씨의 구회말 투아웃은 참 잘봤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잘 읽히더군요. 굉장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허. 
38일 뒤, 저의 족쇄가 풀리는 그날 시즌2에서 저 또한 무준씨의 글을 제가 읽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bye Mr. 2009-05-18
00:30:39
  

 

병장 김형태 
  또하나의 별이 지는군요. 하지만 가칭 '이솔'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계속 보길 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2009-05-18
07:21:23
  

 

상병 황호상 
  고마워요. ... 무슨 말을 해야될 지 모르겠네요. 

언젠가 제 스스로 충분한 역량과 용기를 갖추어,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고하시길-. 2009-05-18
08:27:08
  

 

상병 정근영 
  하아,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뱉고, 망설임없이 행하는 그대의 용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고생하셨어요. 2009-05-18
08:37:55
  

 

병장 이동열 
  좀 있다 봅시다. 후... 2009-05-18
09:03:19
  

 

병장 김무준 
  동훈/ 감사합니다. 동훈씨도 건강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석재/ 좋은 글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밖에서도 뵐 수 있기를. 

재원/ 조잡한 텍스트를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꼭 책으로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근애/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겠죠. 
부산에서 술 한 잔 사주시면 부산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웃음) 

지훈/ 감사합니다. 지훈씨도 다른 분들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셨으면합니다. 

진홍/ Adios. 

예찬/ 소사님 언제나 고생 많으십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우현/ 요즘따라 '문장'을 쓰는 게 많이 힘듭니다. 극복해내야겠죠. 

형태/ 별이라니요. 똥강아지 한마리 집에 가는 겁니다. 

호상/ 감사합니다. 함께 할 날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영/ 그냥 철이 없다는 걸로 해두죠. 낄낄낄낄. 

동열/ 그래요. 좀 있다 뵈요. 2009-05-18
20:08:54
  

 

병장 김동욱 
  수고많으셨어요. 축하드려요. 밖에 나가셔도 건필하시길. 2009-05-18
23:40:05
  

 

상병 이웅재 
  오랫동안 무준씨 글 많이 눈팅했는데 낄낄 . 굿바이 2009-05-19
04:43:58
  

 

병장 홍석기 
  으하, 잘 가요 귀여운 무준씨. 2009-05-19
16:01:01
  

 

일병 김태건 
  언제나 멋진글을 써주셨던... 

멋있는 분이 또 하나 가네요... 

그냥 덧으로 말하는 거지만 무준씨의 연애담이 저는 부러웠다는...(훌쩍) 

그냥 그렇다고요...(흑...) 

저녁 축하드립니다~! 2009-05-20
08:08:01
  

 

일병 송단아 
  고생하셨습니다. 저녁밥 축하드립니다. 2009-05-20
09:48:11
  

 

상병 이재익 
  라디오 듣다가 사연이 나오길래 깜짝 놀랐었는데 어느덧 가는군요 
바깥이 무시무시하다지만 그래도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예전에 댓글로 달아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차이점은 평생 잊지 못하는 한 문장이 될 듯 하네요 2009-05-20
22:42:08
  

 

상병 박원익 
  아, 얼마 안 되었지만, 이렇게 한 분 한 분 떠나가는 군요. 저녁밥 축하드리고, 하는 일마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2009-05-21
04:09:56
  

 

상병 김태완 
  하이드를 연상케한 무시무시한 스산함을 내뿜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었는데. 
이제 못보겠군요. 
민규님에 이어 다시한번 허전함을 느낍니다. 
수고하셨어요. 
잘가요. 2009-05-21
15:24:54
  

 

병장 김무준 
  동욱/ 옙써. 달달 볶아줄 깽깽이 하나가 사라져서 어떡합니까? 

웅재/ Adeus. 

석기/ 시끄럽소. 소심한 낯가림쟁이. 

태건/ 앞으로는 태건씨가 멋진 글을 써주세요. 

단아/ 책마을을 잘 지켜주세요. 

재익/ 엄머. 깽깽이의 개소리를 기억하시다니. 

원익/ 앞으로도 양질의 텍스트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완/ 깽깽이를 보고 싶으시면 시즌 투로 오세요. 2009-05-22
07:15:51
  

 

상병 권홍목 
  생각보다 빨리 가시는군요 
민규님에 이어 제가 책마을에 계속 들어오도록 만들었던 또 한분이 나가네요 
언젠가 서점에서, 혹은 패션을 말하는 TV프로에서 무준님의 이름석자를 보며 기분좋게 웃을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축하해요. 잘가요. 2009-05-27
10:47:09
  

 

병장 박정현 
  정말 생각보다 빨리 가시는군요. 
상병 김무준 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여태까지 좋은글들 잘 읽었습니다. 
안녕히가세요. 2009-05-28
06:38:11
  

 

일병 이선목 
  아쉽네요. 잘가요. 
책마을 잊지 말구요. 
여기에 당신 글이 남아있는 이상 책마을 주민들은 무준씨를 잊지 못할겁니다. 2009-05-28
07:48:34
  

 

하사 김대운 
  이게 뭡니까 
6월 12일 저녁먹는날 아니였나요? 2009-05-30
21:25:23
  

 

병장 김무준 
  홍목/ 엠넷에서 언젠가 출연을 해보겠사옵니다. 

정현/ 고맙습니다. 잘 갈게요. 

선목/ 나는 어쩌면, 기억되기 위해 발버둥 쳤는지도 몰라요. 

대운/ 이게 뭡니까. 결국 갈매기가 되셨군요. 초심 잃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