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나의 스물두 번째 생일  
상병 김민규  [Homepage]  2008-10-12 20:26:27, 조회: 294, 추천:1 

김민규(金旻奎)
86년 10월 11일. 이 세상에 던져지다.

어릴 적 생일은 축제였다.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 가슴을 의레 설레게 했고, -부모님은 이건 웬 적반하장이라고 감사해야 할 사람은 너이고 그 날의 주인공은 나라고 불평을 하셨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음식들을 준비하셨고 어디선가 신기하게 생긴 생크림 데코레이션 케익을 구해다가 놓으셨고 초가 그 위에 올라가 주위 친구들의 노래가 버무려졌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집에 남은 것은 메뚜기떼가 지나간 듯한 상과 모래 가득한 거실과 한켠에 쌓인 선물들. 지금 생각해보면 3000원짜리 샤프를 몇 개 받았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성패가 갈라졌던 것 같다. 어쩌다 5000원짜리 제도샤프라도 끼여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말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점점 이런 요란한 행사에는 시들해지고 어린이의 관심사는 이제 그날이기에 '요구'할 수 있는 용돈, 평소보다 느슨한 '일과', 그리고 외식 정도로 옮겨간다. 그나마도 입시라는 관문과 현실의 피로속에 점점 축소되고 작아져갔지만, 항상 내 마음의 포커스는 '어떻게 관심받고 조명받으며 특혜를 누려볼 것인가' 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10월 그날이면 항상 중간고사가 걸려 매번 시험중에 할 수 있는만큼 약식으로 쪼그라든 생일을 맞이해야 했다는 점이고 그래서 그런 날이 지나갈 때 마다 아쉬움을 남기며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갔다. 그땐 그랬다.

적어도 옆에 같이있을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제도샤프가 있었지만 배가 불렀다, 그 때의 나는.
울타리와 환대와 친절의 가면들이 떠다니는 허공을 휘저으면서 그 무중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의 행동반경과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이후에, 1년중 거의 1/3을 이곳이 아닌 바깥 나라를 돌아다니며 보냈지만, 그래도 생일은 집에서 보냈다. 이제 조금 학사력과 시간의 변화가 있어 더이상 시험중에 그 날을 보내는 일은 없어졌고, 뭐 비록 예전처럼 화려한 '잔치상'은 받지 않지만, 그냥 마음맞는 사람들과 밥 한끼 같이 하며 술 한잔 기울이고, 저녁이면 자축이건 뭐건 간에 케익 하나 쥐어들고 집에 들어가 불붙이면 이만이었다. 그건 일상이었지만 일상 밖이었고 소소하지만 황송한 행복임을 그땐 미처 알지 못한걸까. 아니, 여전히 그렇다. 그땐 모든 것이 그저 평온하게 흘러갔기에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보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차서 멍하니 있다 어쩔 수 없이 끌려왔고 불러주는 대로 번호를 받았고 그것이 여러개의 난수와 함께 소용돌이치며 돌아가 그곳까지 갔다. 일개 땅강아지로 나의 존재의미와 정체성이 대체되는 순간 나는 한없는 추락을 느꼈고 그것이 당분간은 바꿀수없는 현실임을 직시해야 했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전히 어린 감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성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임을 인정할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닥치는대로 살았다. 그러다 長의 신임을 받아 행정일을 하게 됐고, 참 힘든 여러 사람들이 있어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생소한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해야할지를 나날이 고민해야 했다. 썩 일찍 투신한 편은 아니라 그중 하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참 여러 의미에서 나의 인간됨을 시험하는 류의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나를 불러 자신은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는 앉아 어물쩡 서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어제 저녁 이후 그시간까지 내가 저지른 각종 만행을 브리핑한 후에, '내가 널 때려야겠냐?' 며 움츠려들게 하고는 그대로 남겨놓고 들어가는 식이었다. 이후 하루의 일과는 내 바쁜 일과에 더불어서, 그를 찾는 전화를 맞아 그를 찾아오고, 찾아온 이후에는 그가 찾는 종이와, 펜과, 키와, 사람을 찾는 것으로 가득찼다. 그동안 그는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감사및직업지시서를 응시하다가, 옆에 앉은 다른 선임들과 노가리를 까다, 헐레벌떡 내가 찾아온 펜을 받아들고 몇몇 글자를 끄적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를 물리치고 나면 나는 그곳에 10개밖에 없는 빗자루와 4개밖에 없는 쓰레받기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에 맞추어, 아니, 그보다 20분 일찍 뛰어갔다가, 4개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8개의 걸레를 빨았다. 그 사이에도 나를 찾는 저 위 어디선가에서의 전화를 계속되었고 그러면 잠시 내려놓고 다시 전화를 받고 그가 보내준 양식에 맞추어 이런저런 이상한 현황들을 파악하고,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면 역시나 그 '건'은 그 다음날의 브리핑에 추가되었다. '난 니가 니 일 하든 말든 관계없어. 빨다가 그냥 놓고 가면, 어쩌라고?' '아 그게.....' '말대꾸하냐?' '......죄송합니다.' 그나마 하다가 꼬인 경우라면 저 정도로 끝나겠지만, 혹여나 하나라도 빠트렸을 경우에 일어날 일은 당연히 상상할 수 없는 것.
모순이었던 것은 그 역시도 나와 불과 한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말하자면 막내 '급'에 속하는 이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 행정그룹으로 옮겨가지 않았다면 모두 그가 했어야 하는 일일텐데 그런 생각따위는 '빠질대로 빠져서 위아래도 없는' 나따위나 하는 것이었기에. 절대 도와준다거나 사정을 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야 느낀 것이지만 그는 나의 책임이 그에게로 전가되는 것이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자신은 ‘통제’를 잘 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그 윗 고참-나와는 약 6개월의 차이가 있는-이던 다른 분야 행정일을 하던 형이 내게는 극진했다. 그 역시도 나와 같은 모순속에 생활하고 있었고 한창 힘들어 지쳐 있을 때였기에, 동병상련이라고 나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친동생처럼 대해 주기 시작했다. 내게는 유일한 광명이었고 희망이었기에 나 역시도 그에게 최대한 맞추어가려고 애를 썼다. 찾아온 작년의 생일, 그는 나갔다 들어오는 이들에게 부탁을 하여 케익까지 준비를 해 한창 죽어있던 나의 풀을 살려주었다. 무어라 할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대하지 않은 상황을 맞는 느낌이란....

와중에 기회는 왔다. 신병 당시 면접을 봤던 기록이 있었는지 위에서 뭔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밖에서 관련된 일을 하다 온 나에 대한 내역이 필터링되었고 그렇게 ‘본점’으로 팔려가게 되었고, 그런 생활이 당시 불과 작대기 두 개였던 내게는 사실은 참 매력적인 것이었다. 일에 빠져 서너건의 일을 진행하며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돌아오니 돌아온 부대찌개집에서는 여러 판단 끝에 나를 주방에서 ‘홀’로 보내기로 이미 결정했단다. 이제 그 동생과 부딪칠 일도, 그리고 이제는 작대기가 세 개가 되어 막내를 탈출했기에 걸레 8개를 들고 씨름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홀 서빙 잘 하고, 돈 잘 받고, 밤이 되면 객장 정리하고 자는 것이 주 임무. 라고 생각했기에, 올해 생일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거니 하고 방심한 내 탓이었다.
시간은 더 흐르고 흘러 배터리 네칸을 목전에 두고 목요일, 이 됐는데, 소풍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한창 피곤해 씻고 쉬려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본점’에 다녀오란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잠시 가서 도와주고 오면 될줄로 생각했던 일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miner들과 밤을 새며 생일을 맞았고 다시 밤을 새며 떠나보내고 말았다. 나의 스물두 번째 축제를.

잘 피우지 않던, 아니 그래 나를 위해 변명하자면, 최근들어 늘었지만 다시 줄여가고 있던, 담배를 물어대며 커피 카페인에 의존해 그 날을 보냈다. 서운한건 나 뿐 누구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날,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간다. 서른살이 되고 생일을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이게 어른의 삶일까? 아직 나는 제도샤프를 바라는 어린애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miner들은 그저 자신의 업적에 심취하여 나를 채찍질하고, 홀 동료들은 전화하니 묻는다. 언제 오냐고.... 그래, 그래도 나의 빈자리를 서운해하며 챙겨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또다른 ‘형’들이 있어서 내가 살아가는구나. 그들마저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떨 것인가. 라고 위안하지만 어느새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그렇게 한 살을 먹어버렸다.
전화기를 들고, 심호흡을 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많은 자리수의 번호를 누른다. 카드번호와 우물정자를 눌러주세요.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해주세요. 상대방 전화번호와..... 띠.... 띠.... 여보세요. 엄마 나야. 그래, 아들 생일이라고 집에서 미역국 끓였는데 딸냄이가 자기 수시 면접 떨어지라고 그러는거냐고 툴툴거리네, 그러게 왜 그랬어, 나는 여기서 그냥 보냈는데. 그래도 그렇잖아. 너 언제 나온다고 그랬지? 다다음주에... 곧 나오네. 나오면 보자. 지금 국 올려놓고 왔어. 끓는다. 끊어. 네...... 뚜...뚜....
바람이 찬데 덥혀줄 저 햇살은 멀기만 해서 옷을 껴입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면 될 거야. 내년엔 이렇지 않겠지. 아, 어쩌면.... 미국에 있겠구나. 교환학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그러면 집에 없겠네? 음...

익숙해져가야 할 과정인지도 모른다. 무슨 대단한 날이라고 떠들썩하게 챙기고 설레발이를 쳐야 하는건지, 그래 그 말도 맞다. 그냥 나 자신에 대해서 한번더 감사하고, 그 날의 주인공을 내가 아닌 부모님으로 바꾸어 보고, 그정도면 충분한게 아닌가. 생일날 조금 바빠 일했다고 자조적으로 신세를 한탄할 건 뭔가. 어린애같은 투정임을 알고 있다. 있으나, 서운한것만은 어쩔 수 없었던 듯,
그래, 이제야 겨우 스물 셋이다. 아직 지나가야 할 날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제발 이제는 일상으로 조용히 돌아갈 날만을 그리고 바란다.
그냥 마음맞는 사람들과 밥 한끼 같이 하며, 술 한잔 기울이고, 저녁이면 자축이건 뭐건 간에 케익 하나 쥐어들고 집에 들어가 불붙일 수 있는 그 날을.

두환이 ‘형’ 고마워요.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0:12 

 

병장 정병훈 
  어제가 생일이였군요. 축하합니다! 

저는 방년 22살 87년 생이지만 생일이라고 특별히 챙기거나 하질 못했습니다. 저희집은 가난하거든요. 생일을 챙기고 할만큼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어릴적엔 말이죠. 거기에 저는 전학을 두번이나 다니는 바람에 친구들과도 크게 어울리지 못했네요. 거기에 친구를 별로 두고 싶어하지 않은 제 성격도 한몫한겁니다. 그래서 전 생일을 잊고 살곤 했습니다. 절 비롯해서 가족 모두가 그랬습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궂이 할 필요 없는 기념일 챙기기를 해야되나 식의 생각을 갖고 쉬쉬 하기 일수 였죠. 

20살이 되고 머리가 크고 돈도 벌고 해서 제 생일날 제가 제돈 주고 생일케익이라는걸 사봤습니다. 아버지는 일하셔서 밤늦게 들어오고 형은 공부하느라 독서실에 가있었죠. 물론 집안이 어려운 어머니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엄마, 나 오늘 생일이야(웃음). 케익이랑 먹을거좀 사왔는데 생일잔치하자~' 
'뭘 이런걸 다 사오냐' 식의 대화가 오갔죠. 
대단한건 없었습니다. 그냥 만원정도 하는 싸구려 케익에 4천원 하는 샴페인 한병, 그리고 치킨 한마리 정도 있던걸로 기억하네요. 
더 기억나는건 어머니의 미소? 정도 되겠네요. 어머니보단 엄마가 정감이 가네요 
엄마앞에서 생일축하(자축?하핫)노래도 부르고 불끄고 초에 불도 부쳐보고, 샴페인도 먹고 케익도 먹고 치킨도 먹고 하핫. 디지털 카메라가 있어서 그걸로 사진도 찍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후로 생일잔치가 너무 좋았던지 자주 챙기려고 노력하네요. 
변질된 생일잔치가 많은 시대인거 같습니다. 조금만 본색을 찾으면 많은사람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을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생일이란 얘기가 나와서 몇자 적었습니다 하핫... 2008-10-12
21:06:31
  

 

병장 이동석 
  음, 두환님이 친히 쪽지까지 보내서 책마을에 청약 1순위 받게 해주신, 그 분인가요. 허허. 2008-10-12
21:18:22
 

 

상병 전지민 
  사실 누구도 저를 첫 생일에 피구왕 통키마냥 내던지지는 않았지만- 
생일을 '이 세상에 던져졌던 날'이라고 하는건 저도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출생은 제 의지가 아니었던 만큼, 
큰 의미에서의 '내던져짐'이죠. 

하루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2008-10-12
21:28:56
  

 

병장 문두환 
  얼굴도장행사 끝나고 잠시 들어와 봤는데 웬걸, 낯 익은 이름에 왠지 뒤이어 이어질 이야기가 연상되는 제목이라니. 

지금도 열심히 맨땅에 헤딩하고 있으려나. 범민이가 왔다 간 날이라 마음은 더욱 싱숭생숭하네. 이틀만에 나타난 얼굴이 거의 난민수준이라 적잖이 놀랐다만. 흥. 돌아오기나 하렴. 2008-10-12
22:02:21
  

 

병장 박찬걸 
  조만간 저도 생일인데 그 때 느끼한 부대찌개 먹으러 가는데 흠... 어떨지... 2008-10-13
00:52:34
  

 

상병 선준수 
  365일중 그 날 하루만은 행복의 24시간을 꿈꿀 수 있다는 것... 

이 메릿트하나면 그닥 환경은 중요치 않은 것 같아요. 

밖에서 따뜻한 손길을 잡으며 맞이했으면 좋았겠지만.... 

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2008-10-13
06:43:30
  

 

병장 고은호 
  후후후~ 
생일이셨군요. 
축하합니다. 

저는 25번째 생일날. 
경사스럽게도 나라의 부름을 받아 입대했답니다. (웃음) 

하필이면 생일날 입대라니.. 
아침에 미역국도 안 넘어가고, 
그날 밤 아직 어색한 훈련병들끼리 모여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에 누우니~ 
잠도 안오더군요. 

제 생에 최고의 생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적어도 평생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하하~ 2008-10-13
10:07:19
  

 

상병 박병규 
  생일축하드려요. 

저도 생일이 10월이라 ... 

동질감이 느껴지내요 (웃음) 2008-10-13
12:18:49
  

 

상병 김민규 
  이제야 작업 마치고 들어와보니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웃음) 
좀 자러 가야지요. 오늘 하루는 땡 치려구요. 어질어질하네요. 2008-10-13
13:17:51
  

 

상병 최광준 
  저도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려요. 

가슴이 찡하네요. 2008-10-13
13:21:03
  

 

상병 이동열 
  저도 생일이 10월이랍니다- 저도 괜스레(웃음)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2008-10-13
13:32:04
  

 

병장 이동석 
  음, 누구나 겪었을 굴곡이라 그런지 유난히 울림이 크네요. 다시 읽으니 더욱 절절한. 2008-11-07
14:2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