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나를 쓰다  
상병 강수식   2008-07-06 20:53:56, 조회: 247, 추천:0 

예전에 써놨다가 보안감사를 위한 하드포멧의 영향으로 싸그리 날라갔었던
습작글입니다. 오늘 관물대 정리를 하다가 종이뭉텅이 사이에 껴있는 걸 발견했어요(야호!)
그래서 손 좀 보고 올려봅니다. 
음, 이 글은 쓰면서 뭐랄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글이라고나 할까요.(하하)

이제 주말도 끝이네요(울음) 그리고 여름의 시작이네요(땀땀)
모두 건강 챙기시구요, 내일도 식사 꼬박꼬박 챙겨드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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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외롭다. 몇 평 남짓한 울타리 안이 하루에 갈 수 있는 행동반경의 전부인 이 곳에서는 마음 넉넉하게 산책을 할 곳도,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 바깥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을 곳도, 여유도 없는 그런 곳이다. 더군다나 편안하게 마음을 터놓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내 보이며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하기사 계급별로 얽혀진 사회에서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이 아닌 상급자 또는 하급자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이면서도 혼자임을 느낀다. 그들은 나에게 선임이거나, 후임이고-그나마 몇 안되는 후임이지만-아니면 간부들이다. 따라서 일과가 끝난 후 여섯시 근무 투입 전, 저녁식사를 한 이후에 남는 이 몇십분의 자투리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애매한 시간이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그 언제보다 간절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면 나는 으레 내 피와 살 같았던 대학시절 동기들에게 전화를 하곤 한다. 오늘은 N양과 통화를 했다. 비록 여자였지만 반짝이는 스무살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기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편하게 속을 터놓을 수도 있고,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한다해도 털어놓았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채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친구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듣는 N양의 목소리였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친근했다. 그런데 N양과 통화를 하다보니, 문득 나는 늘 N양에게 전화를 하거나, 대학시절 동기들에게 전화를 하면 요즈음에 어떻게 지내는지 보다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겁 없던 시절, 아무것도 신경쓸 것 없이 그렇게 미친 듯이 놀았던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되짚는 얘기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절주절 N양과 그땐 그랬지, 로 시작해서 그때가 그리워, 라는 말로 끝맺는 늘 같은식의 전화를 끊고 찬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 근무투입 까지는 10여분의 시간이 남았기에 나는 담배를 꺼내물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모두들 밥을 먹으러 갔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고, 나무들이 몸을 부비며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번개처럼 무엇인가가 머리를 때린다. ‘언제까지 나는 뒤만 보며 살 것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문제였지만 어느 순간 뇌 속에서 스위치가 켜진 듯 드문 의문이었다. 때로는 삶이란게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던 순간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에게는 지금 이곳보다 혹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보다는 예전에 지나온 시간들이 중요한 걸까. 

그러고보니 나는 늘 추억속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물건들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고, 조그마한 물건 하나에도 의미룰 붙여가며 방 구석 가득히 쌓아놓는 사람이었다. 그래, 미래는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막막하기만한 것이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시간이, 어떻게 바뀌어 나란 사람을 흘러가게 할 것이지 몰랐게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것에 비해 내가 지나온 시간-내가 묻혀 살았던 추억은 언제나 좋은 기억들로 가득했다. 비록 그 때 그 시간에는 괴롭고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던 시절이었으나 항상 뒤돌아보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되고는 하는 것이다. 앞을 바라보기 보다 뒤를 보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불안한 나의 삶 속에서 어떠한 확실한 것, 또는 살아가는 이유였던 것이다. 미래속의 나는 늘 왜소하고 불안했으나 지나온 시간속에서 나는 늘 빛났고, 당찼으며 
포부에 가득찼고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고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볼때면 참을 수 없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글을 쓴다는 것, 시, 소설 혹은 수필을 쓴다는 것은 따지고보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기록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는 것은 책장을 넘겨 아름다운 문장들을 찾아내듯이 추억속에서 혹은 지나온 시간, 스쳐갔던 내 삶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가면서 아름다운 문장들을 찾아내어 적어내는 작업이다. 적어도 나는 글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글쓰기라는 것이 늘 외롭고, 아프며, 우울하게 다가오고는 한다. 아름다운 시절을 되짚어야 하고 때로는 아름답지만 아픈 기억들을 헤집어야 하며 끝 없는 자기만족을 느끼다가도, 한 없는 자기 혐오를 느껴야 하기 때문에.

스물 두 살의 나, 가장 뜨거운 여름을 이 곳 군대에서 보냈고-가장 아픈 시간을 이곳에서 맞았으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어떠한 기억들이 찾아와 우울하게 만드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열심히 달려가기만 하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하늘이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른 후에야 가득 눈 안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뜨거운 태양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잡초들이 갑자기 내리는 단비에 어느 순간 하나, 둘 고개를 드는 것처럼, 그렇게 나를 우울로 가득차게 하는 기억들은 내 몸 속 세포, 혈관 어느 곳에 숨어있다가 뜻하지 않은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고개를 쳐들어 나를 염세적으로 물들여버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글을 쓰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차곡차곡,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 가슴속에, 세포속에, 혈관속에 숨어있는 우울들을 하얀 종이 위에 글자로 적어내는 것이다.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방식으로. 더 이상 많은 것들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살아갈 수는 없기에.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아야 하기에. 쉽지는 않은 작업일 것이다. 말했듯이 글이라는 것이 뒤를 바라보며 하나, 둘 씩 아름다운 문장들을 찾아내고 아름답고, 아픈 기억들을 낱낱이 끄집어내는 것과 같기에. 이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나는 글과 같이 호흡하게 될 것이다. 즐거웠던 이야기를 쓸때는 즐거울 것이며 아픈 이야기를 쓸대면 다시 가슴이 메어질 듯 아플 것이다. 그러나,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가슴속에 남은 것이 없을 때까지,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낼 것이다. 그렇게 내 속에 남은 것이 없게 되는 날, 나는 어떻게 될까. 아직은 알지 못한다. 완성되지 않은 소설에 결말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다 쓰고나면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겠지. 그리고 알게 되겠지. 아니 조금은 더 확실해 지겠지. 내 지나온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어떤 문장인지를, 어떤 소설인지를. 내 앞에 남은 미래의 결말은 어떻게 써 갈 것인지를.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55:44 

 

병장 박준연 
  굉장히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저 역시 친구(혹은 선,후배)들과 전화통화를 할때면 '그땐 그랬지~' 식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면 서로 과거가, 젊음이, 청춘이 그리운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혹은 공유할 수 있는 소재가 과거밖에 없다는 점도 한몫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서로가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틀리니까요. 

우리가 예전과는 다른 위치라는 것을 인정하는 방법밖엔 없는 듯 보여요. 당장 우리는 점호나 청소를 해야하는데, 친구의 중간고사 넋두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2008-07-07
10:00:09
  

 

상병 강수식 
  맞는 말입니다. 너무 보고싶고 뭐, 그래서 친구들에게 전화하게 되면 
막상 할 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친구는 친구대로 중간고사 넋두리니, 취업이니 
얘기하고 저는 저대로 훈련이니, 짜증나는 선임이니 얘기하다가보면 
서로 촛점도 안맞고 그냥 주절주절 거리다 끊어버리게 되죠. 
(그래도 걔중에는 마음이 맞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군 생활 1년 조금 더 하고 깨달았어요. 보고 싶다고 무작정 전화하고 그러는건 
아니라는걸. 저는 군복을 입고 여기서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데 친구들이나, 동기들은 
벌써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가 있는거지요.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야 넌 언제까지 과거속에서 살꺼야? 어쨌든 같이 올라타서 앞으로 가야하지 않겠니?" 
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지곤 하죠. 

그래서 이제는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것보다 책을 더 읽게 되고, 운동을 하게 되고, 
전공서적을 읽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혼자서 무엇이든 해보게 됐습니다. 

뭐랄까, 내가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얼마 안되지만 모두들 앞으로 나가는만큼 
나도 앞으로 달려나간다?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뭐, 그런식으로. 한편으론 자기만족이랄 수도 있지요.(하하) 2008-07-07
10:34:06
  

 

병장 이동석 
  전화하던 친구들 하나 둘 잃어버리고 
이제는 받는 사람 이름은 비워두고 편지를 씁니다. 
쓰려면야 누구에게든 쓰고, 답장도 받기야 하겠지만, 
스물 서넛의 삶은 스물 두엇에서 멈춰버린 저한테는 가늠하기도 어려워서 
서로 공허한 잡담과 거리감만 또렷하게 드러나죠. 
그리고 나면 설탕먹으면서도 보기 어려워질까 
차라리 말을 맙니다. 

그건 그렇고 나 
왜 이렇게 센티멘탈한척 하지? 
똥이나 싸러가야지. (뿡뿡) 2008-07-07
12:54:01
 

 

병장 황인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저 역시도 계속 그랬었고, 또한 과거만 떠올리는 제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예전에 비해서 통화량을 훨씬 줄였답니다. 
서로가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만 피곤해지겠지요. 
위치가 어딘지 깨닫고, 그 위치에서 어디로 어떻게 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네요. 2008-07-07
13:19:40
  

 

병장 이태형 
  아주 잘 읽었습니다. 
과거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겠죠? 2008-07-07
15:18:18
  

 

병장 이태형 
  아참. 
가지로. 2008-07-07
15:37:19
  

 

상병 강수식 
  하지만 저는 아직도 과거에 사는게 나쁜건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과거를 '보는'방법에 따라서 과거에 사는게 좋은건지, 나쁜건지가 
갈리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좋은것, 나쁜것을 떠나서 서로 다른거 아니겠습니까? 

뭐랄까, 앞을 본다는 것이 취업이라든가 생활전선이라든가 우리 세대에 있어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에 타협하고 몸을 담그는 거라고 생각되어서 서글퍼지고는 해요. 
(비단 제가 군대에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하지만 저도 전역을 하고 막상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명목하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토익책을 펴고, 친구들과의 만남보다는 조모임을 우선하게 되며 
모험보다는 안정을 쫓게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어려서 그런가. 땀땀) 2008-07-07
16:10:19
  

 

병장 조인환 
  현재는 선물이라고도 하죠 
그나저나 혹시 흡연보행을....??(하하) 2008-07-07
19:28:52
  

 

상병 강수식 
  그.. 저녁시간이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막사 뒷길로 조심조심(하하) 2008-07-07
19:33:23
  

 

병장 정연홍 
  군대에서 전화로 나누던 대학교 1,2학년 때의 시간들.. 
군대니까.. 군대여서,, 그런,이런 이야기밖에 못하는 구나.. 

저녁밥을 먹고 복학을 하면 저앞에 있는 동기들,, 선배들,, 
후회안할려면 공부해라,, 영어공부해라,,그렇게 2,3년이 휘리릭..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다 밀려오는 일상들에 밀려.. 
친구들도 뒤에.. 시간도 뒤에.. 있을 즈음에.. 

간만에 만난 친구랑 술한잔 걸치면서.. 
안주거리로 늘어놓는 이야기는 그런, 이런이야기뿐이지요 허허허 
. 
. 
. 
. 

(참고로 저는 이제 23살) 2008-07-07
23:44:45
  

 

병장 이재민 
  저는 '비틀대던' 20살인데 
수식씨는 반짝였군요 2008-07-08
09:42:07
  

 

상병 강수식 
  아니요(웃음) 
저도 한참 비틀거렸답니다. 
그 때는 너무 비틀거리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또 아름답더라구요. 
어찌보면 비틀거려서 더 아름다운 것일 수도.. 

항상 아름다운 것들은 뒤에 있다. 
뭐 이런 표현도 있자나요?(웃음) 2008-07-08
10:26:23
  

 

일병 김세현 
  살아간다는건 다르게 말하면 경험을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포함한 기록을 한다는 행위가 매력적인 듯 합니다 (웃음) 삶 그자체니까요 2008-07-08
10:42:38
  

 

상병 강수식 
  예(웃음) 또 기억한다는 것과 기록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죠. 
지금 아무리 좋은 감정도, 혹은 나를 크게 해줬던 나쁜 감정도 지나가는 시간속에서 
잊고 지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록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문득 써놓은 것들을 펼쳐보면 
잊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마음도 다시 잡을 수 있고, 

또 아주 먼 시간이 흐른 후에 형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다고 하더라도, 기록은 남아서 아, 강 아무개란 이의 인생이 이러저러했다. 
라고 남아있겠지요. 그걸 생각하면 기쁩니다.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웃음) 2008-07-08
11: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