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깁스, 메추리알 그리고 스끼다시들  
병장 이동석  [Homepage]  2008-07-19 00:30:35, 조회: 252, 추천:1 

원제 :스끼다시 연대

지나치게 긴 쓸데없는 글을 쓴 양심상 한줄 요약 : 스끼다시 내 인생은 절룩거리네.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되니까 222타고 집에 간다.

-222는 재수학원과 집을 오가던 자그마치 일반버스보다 삼백원 비싼 좌석버스, 원 제목은 361타고 집에 간다.


그때 나는 대학 물을 약간 맛보았고, 티브이에서나 보던 중심부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기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저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고 나는 굴러왔던 길을 서성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재수학원으로 기어들어갔다. 전국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대성학원. 좁아터진 그곳엔 크게 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개토레이와 케이비에스와 닌자거북이와 송주오빠와 코끼리와 종심이와 재휘와 나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크게 되고 싶었다. 세상에 차지하는 면적이 푸짐한 횟상의 메추리 알 크기도 안된 다는걸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모여 낄낄댔고 기막힌 미래에 대해 상상했다. 그 미래는 너무나 진부하게 장밋빛이라 차라리 꿈이었으면 할 정도로 아찔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서로 알지도 못했던 우리는 도시의 분진이 밀려오는 대성학원 옥상에서 큰사람 되자고 큰머리들을 들이밀며 큰사발 하나를 노나먹으며 결의를 맺었다. 모두 서울로 가서 큰사람이 되는 거다. 연대는 공고해 보였고, 그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업을 째고 마쎄이를 찍거나 낙양으로 돌진하거나 전방 수류탄을 외치는 것까지 불사했다.

모의고사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보고 우리는 슬슬 서로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만나면 뭔가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하나 둘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도 더는 자리를 나서지 않았다. 나는 손이 부러져서 입원했다. 마지막으로 칠인의 사무라이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퇴원하고 학원으로 돌아오니 누구도 동맹을 맺거나 편을 먹거나 함께 밥을 먹지 않았다.

대학들의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닥쳤을 때 우리는 졸업하고 처음 보는 기숙사 녀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다시 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국엔 고연전인지 연고전인지 뭔 놈의 이름싸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응원을 하러 온 건지 그냥 술 먹으러 온 건지 염장질을 하려는 건지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자랑이 그리 하고 싶었는지 모를 연고전인지 고연전인지를 막 치르고 더워 죽겠는데도 굳이 학교 잠바를 입고 광주하고도 충장로하고도 밀러타임으로 온 녀석들의 쓸데없는 논쟁을 보면서 담배나 뻑뻑 피워댈 때면, 큰사람이 되건 말건 개토레이의 수학점수가 부러웠고, 코끼리의 영어점수가 부러웠다. 사실 연대는 애저녁에 이뤄질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었고 누구도 다른 게임으로 드라군을 보내주진 못했다. 난 바뀐 교육과정을 탓하기 시작했고, 심심하면 복학할 수 있을 거라고 지껄였다. 내가 때려 친 학교를 가고 싶어 안달 나있던 닌자거북이는 하필 내 쪽으로 저글링을 보냈고 나는 죽어나가는 프로브들을 보며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이 색기야 왜 하필 나야? 

신검을 받으러 가서 우리는 각자 대학에서 돌아온 녀석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난 떨어진 게 아니라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걸 강조하면서 뭔 말을 해도 1급을 주는 검사관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이 색기야 왜 하필 나야? 나는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는 녀석들을 뿌리치고 코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녹아가는 아스팔트를 짓이기면서 학원으로 걸어갔다. 학원은 왜 이렇게 가깝고 난리야. 주변 중에 주변에 살았던 때엔 잠을 잘까 담을 넘을까를 고민했었다. 이 알량한 시내는 신작영화도 한창 서울서 유행한다던 부비부비도 독일에서 직접 들여온 맥주도 음료수도 과자도 무한리필인 당구 다이도 벽 뒤에 숨은 저격수 머리칼도 보이는 최신 컴퓨터도 왜 이렇게 가깝고 난리야. 스끼다시로 나온 조그만 후라이를 삼키면서, 만만해 보여서 말 걸고 커피숍으로 끌고 온 학원 여자의 가슴을 보면서, 비타민 음료의 하나더 뚜껑을 주으면서 너도 메추리 알이냐? 스끼다시야?

우리는 이미 큰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2046의 ‘만년 후’에 코웃음 치면서 참치볶음밥 삼 인분가격의 커피를 마시면서 삼국통일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기어코 사수생과의 내기당구에서 자장면을 받아먹으면서 인근의 ‘지방대’축제를 비웃으면서는 정말이지 서로를 부둥켜안고 졸도라도 해버릴 듯이 미칠 것만 같았다. 이미 큰사람이 되 버렸는데 더 커서 오라는 사창가 여자에게 침이라도 뱉듯이 우리는 심심하면 술을 쳐먹고 개가 되어 짖어댔다. 도살장의 소처럼 끌려가면서도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알지도 못할 빌어먹을 외국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리는 서로의 병신 같은 모습이 우스워서 낄낄대면서.

송주오빠와 코끼리는 반을 옮겼다. 개토레이는 학원을 그만두었고, 종심이는 휴학한 학교로 돌아갔다. 케이비에스는 철학 책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답은 없었다. 닌자거북이는 캔커피와 방울토마토와 장미 한 송이로 구애를 하기 시작했지만, 쌍 귀걸이의 여자는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재휘는 또 다른 녀석들을 찾아 다니며 당구장을 다녔다. 결국 무리한 마쎄이로 인해 다이를 찢어버렸다. 학원비로 다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아예 당구장에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밥을 먹었다. 나이 스물에 학원으로 도시락을 싸오는 건 거지 같은 짓이다. 어무니가 싸준 식어빠진 돈까스를 삼키면서 어무니 왜 절 낳으셨냐고 중얼거렸다. 

이 지겨운 학원에는 점심시간마다 학생 중에 한 명씩 돌아가며 디제이랍시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맨 웃기는 노래나 트는 몹쓸 짓이 벌어지고 있었다. 혼자 밥을 먹게 되어 밖에도 안 나가고 잡담하지도 않으니 그 몹쓸 짓에라도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발랄한 목소리의 디제이는 분명 수업시간마다 이상한 소릴 짜증나는 음성으로 해대는 녀석이었다. 집어치우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러니까 극적이려고 그러는지 진즉부터 줄창 틀어제꼈는데 이제서야 귀에 들어온 건진 몰라도 ‘달빛요정만루역전홈런'인가 머시긴가 하는 가수의 이름만큼이나 기묘한 제목의 ‘스끼다시 내 인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갑자기 15년간 군만두만 먹어왔던 오대수가 드디어 자청룡장의 만두를 씹지도 않았는데 맞냐고 보채는 미도의 얼굴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킨 뒤 한입 베어 물고는 ‘그려 이 맛이여’ 라고 외치는 심정으로다가 마지막 돈까스를 입에 넣었다. 어머니가 있었고, 아버지가 있었고, 할머니도 등장했다가 외할머니도 나오고 옆집 순이 철수 바둑이가 뛰어오더니 갑자기 방파제에서는 파도가 철썩거렸다. 바다의 맛이었다.

아
생선가스였구나.

나는 바둑이처럼 굴다가 부러진 손을 부여잡고 깁스에 얼굴을 파묻었다. 
스끼다아시 내에 인새앵 스포츠 신문가아튼 나아에 노오래
언제쯤 사시미가 될수 이있을까?
스끼다시 내에 인새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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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미

얼개도 쓰고 병영무낙상도 쓰고 해야하는데 손 다쳐서 깁스하고 있습니다. 깁스했던 그 때가 또 떠올라 만사 제쳐두고 또 왜곡된 기억을 윤색해서 팔아먹고 있군요. 그나저나 간만에 후지지만 그래도 글을 써서 뿌듯하구만요. 흐흐. (자그마치 한손 독수리타법으로 완성한!)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48:18 

 

병장 이동석 
  이제 얼개 다시 써야지 후다닥. 2008-07-19
00:45:47
 

 

병장 장 원 
  1년 가까이 재수학원에서 썩어봤고 그 재수하던 시기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첫 EP앨범을 꽤 알려지기 이전에 접하여, 스스로 하나하나 직접 제작하고 번호까지 
매긴 후 모나미볼펜으로 싸인해서 배송까지 붙여주던 1000장 한정 초도반 중 111번을 
구입한 인간의 입장으로서 참 가슴에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2008-07-19
04:17:37
  

 

상병 권용성 
  결론은 고연전인겁니다(응?) 2008-07-21
04:21:36
  

 

병장 이동석 
  개인적으로 고대에 많은 추억이 있어서 그러는건 아니고 
전 여자친구가 연대라서 그러는건 아니고 

두음법칙이나 어감으로다가 볼때 년고전은 뭔가 아닙니다. 
연고로 만든 전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며 
연고주의를 조장하는 듯한 연고전은 버리시고 

그냥 가나다 순으로 가시죠. (웃음) 2008-07-21
08:48:57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원님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재수하셨군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초도반을 구입하지 못해 
달빛내리쬐는 밤에 
요정가려다 쫓겨나서 
역전에서 
만취해 
안타를 깠던 사람으로다가 부럽습니다. (웃음) 

어쨌거나 다시 금요일 오후나 야간에 글쓰나봐라. 크크. 2008-07-21
08:52:36
 

 

일병 이동열 
  결론은 고연전인겁니다(도망) 2008-07-21
10:27:59
  

 

병장 이재민 
  전 112번이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흘흘흘) 2008-07-21
10:42:15
  

 

상병 홍석기 
  잘 읽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달빛요정과 만나셨군요.저는 이 앨범과 <20세기 소년> 을 만난 뒤로 언젠가 통기타 하나 들고 길거리에 나가 보리라는 소박한 꿈을 갖게 되었답니다. 물론, 연습은 좀 하고 나가야 겠습니다만 (웃음) 

추천 한 방 날리고 가겠습니다. 2008-07-21
10:53:03
  

 

병장 이동석 
  의외로 연대분들이 안계신가요. 크크. 


저도 기타치며 거리에서 구따라라 스따라라 
그러나 의도한 오마쥬 느낌은 전혀 안나요. 흑흑. 2008-07-21
12:39:48
 

 

병장 이재민 
  석기// 흐흐 
20세기 소년 

얼핏 영화화 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2008-07-21
14:10:13
  

 

병장 이동석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긴 했는데요, 
예고편만 봐도 어쩐지 기대감이 뚝뚝 떨어지던데요. (울음) 

9월즈음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2008-07-21
15:5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