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글 읽기의 도의  
상병 김무준   2009-01-10 20:54:03, 조회: 161, 추천:0 

어쩌다보니 몇 달 간 손가락을 놀린 이후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가상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시니컬하고 쿨하고 시크한 도시남자의 이미지로 깽깽이가 기억되고 있었다. 뭥미? 이건 웬 듣보잡임? 깽깽이는 순박하고 부끄러움이 많으며 쿨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정열맨인데.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다들 뒤집어졌다. 나이도 안 되고 짬도 안 되고를 외치며 열심히 삼겹살을 자르는 깽깽이는 텍스트에서의 이미지를 아주 그냥 와장창 박살내주었다나.

사실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람을 웃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흥,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무거운 주제의 텍스트를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웃길 수 있겠나. 위트 넘치는 구절을 집어넣으면서도 흐름을 끊지 않고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명확한 주제를 던질 수 있다면. 아아. 어렵다. 생뚱맞게 어설픈 개그를 던지면 개그콘서트가 아니라 웃찾사가 되고 만다. 이런 지미 핸드릭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글을 잘 쓴다는 평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명확한 주제의식? 넘치는 통계자료? 빈틈없는 성처럼 견고하게 이루어진 논지? 그 기준이 무어든 간에 글 잘 쓰는 사람은 있다. 굇수는 무어고 외계인은 무어냐. 글 잘 쓰는 양반들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서 펜대를 잡고 나왔거나 키보드 자판을 들고 나왔을 게 틀림없다. 아니면 타고난 천재라서 뇌 구조가 일반인과는 달라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뽑아내는지도.

깽깽이는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텍스트를 쓰려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공분야인 비평을 재미있게 쓴다거나 신화이야기를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게 풀어나가기는 힘들다. 어디까지나 즐기기를 위해 텍스트를 생산하는데, 대체 왜 텍스트를 작성하며 대가리를 쥐어뜯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요즘 손가락 놀리기가 어렵다. 마니아층이라고 할 수도 있을 몇몇 사람들은 ‘깽깽이다운 글’을 쓰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양이다. 이게 강제적이건 강제적이지 않건 이들의 빛나는 눈을 못 본 척 하자니, 왠지 설날에 세배를 하고서 돈 한 푼 없는 날백수 삼촌에게 눈동자를 반짝이는 조카를 보는 것 같아 속이 쓰려온다. 얘들아, 삼촌은 돈이 없단다. 그러니 받고 싶지도 않은 절을 하고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지 말고, 저기 돈 많은 할아버지에게 가렴. 삼촌은 너희에게 절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늙지도 않았고, 절대 군인‘아저씨’가 아니란다. 제기랄. 이 삼촌은 모텔비 내기도 빠듯하단 말이다!

비평이 전공분야라고 갖다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깽깽이는 고졸 나부랭이에 불과한 이시대의 청년이다. 여차저차해서 이러쿵저러쿵한 사정으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 비평을 때려 치운지는 몇 년도 더 된데다, 학술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니 전공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 글을 쓸 시간에 사랑스런 타우렌 주수리를 가지고서 쿵쿵따를 밟아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음주와우를 했으니 망나니라면 망나니다. 손가락을 놀릴 시간에 얼라 아이들을 학살할 테야. 오덕오덕.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쯤이다. 대빵은 가방끈도 짧은 깽깽이에게 시나리오를 써오라는 말도 되질 않는 임무를 부여했다. 군복을 입고서 고속철의 복도를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거나, 서울역에서 캠코더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는 헛짓을 해야만 했다. 노력이 통했는지는 몰라도, 별두개가 머리만큼이나 반짝이는 대빵의 대빵에게 표창을 받았다. 대빵은 말했다. 자네는 이제 공사 홍보부 최고의 기자이니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게.

공사에서 원하는 텍스트는 진지하고 생산적인 텍스트다. 그러나 깽깽이는 개그를 사랑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선비를 동경해왔다. 그런 깽깽이에게 대빵은 매일같이 크리티컬 히트를 터뜨리며 싸다구를 좌우로 날려댔고 원고지 휘날리며 ‘님하 이걸 텍스트라고 가져왔나염. 즐쳐드삼.’을 외쳤다. 아아. 깽깽이를 키운 지옥훈련의 팔 할은 대빵의 퇴고명령이었다.

매에는 장사 있어도 갈굼에는 장사 없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야하니 까고 까고 또 깔 수밖에. 시간이 흐르면서 깽깽이의 욕구불만은 커져만 갔다.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절대장소를 찾아야해. 하악. 아냐, 넌 지금 놀고 있는 거야. 일을 해야해. 착한 깽깽이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닥쳐! 주인님도 이런 우리를 용서해 주실 거야. 절대장소를 찾자. 우리의 쌓인 욕구를 풀어야해. 킬킬킬.

나름 일정 선을 그어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위태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먼 훗날 후배 직원이 깽깽이처럼 심심함에 지쳐 떠돌다 이곳을 발견하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미친. 매일 하라는 작업은 하질 않고 구석에 짱박혀서 잠만 잤으면서 이런 쓸데없는 글을 언제 써 둔거야? 이런 시베리안 계산기. 면회 오기만 해봐라 강냉이를 와장창 털어버릴라.

아무리 독창적인 소재고, 통렬한 주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해도 재미가 없다면 읽히지 않는다. 이는 영화나 음악 같은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읽히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없다. 타협하는 수밖에. 외줄위에 올라 발을 삐끗해 파이어 에그가 작살나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픈 이야기를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한다.

깽깽이에게 있어 재미는 타협의 결과다. 특별히 깽깽이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생성하고 싶어서도, 피곤에 지친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어서도 아니다. 깽깽이의 텍스트는 다분히 자위적이다. 동석씨가 좋아하는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 자위(自慰) 즉 자기위안이라는 거다. 이 텍스트 역시도 자기만족을 위한 목적일 뿐이다. 왜냐고? 심심하잖아. 버리자니 아깝고, 올리자니 쪽팔리지만 그래도 텍스트를 게시한다. 이봐요, 여기 와서 이것 좀 봐요. 다들 심심하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기대는 적당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수는 없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에 더욱 인간다운 것이다. 재미있는 텍스트를 찾기는 쉽다. 하지만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기는 어렵다. 재미를 찾기 전에, 다양한 방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텍스트를 통해 고정된 이미지를 생성하지 말고, 좀 더 넓게 텍스트를 보는 법을 배우면,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그게 어렵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듯, 다양한 맛을 느끼다 보면 그만큼 맛있는 것도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니까. 재미있다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스크롤을 내리기 전에 일단 들여다보고 생각하자. 좀 더 열린 눈으로 텍스트를 즐기자. 이게 깽깽이가 생각하는 글 읽기의 도의다.



뱀발. 뭐지? 이 쓰레기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1:29 

 

일병 한성용 
  파이어 에그.......! 2009-01-10
21:03:50
  

 

병장 남동진 
  재미있는 텍스트를 찾기는 쉽다. 하지만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 있어 동감을 표하면서 한층 더 어려워진 글쓰기라는 분야에 자신감을 가지겠습니다. 

더불어 엄마 친구 아들과 같은 무준씨가 생각하는 텍스트의 관점 즉 즐기자라는 메시지는 

아주 잘 받겠습니다. 하하 2009-01-10
21:20:18
  

 

병장 정병훈 
  다들 무준씨의 글을 기다리며 눈을 부리부리 뜨고 있는게 사실 느껴지긴 합니다. 그러나, 언제 그런거 신경 쓰고 글썼나요? 제가 책마을 력(歷)을 못 딸아가는건지 변해버린 이 깽깽이라는 사람이 낯설군요. 요샌 정말 낯설어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글 읽기의 도의라고 하기보다 왠지 당신 글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마세요. 하는거 같은데요. 쩝- 곡해의 대명사 정막장이 읽을 땐 그렇다구요. 

그러거나 재밌게 잘 쓰는데요. 2009-01-10
21:24:07
  

 

상병 김무준 
  솔직히 말하면 뗑깡이죠. 깽깽이도 눈이 있는지라 주민들의 댓글이나, 책마을의 분위기를 보면 '임마 빨리 더 빨리 손가락을 놀리라고!'하는 것 같아서요. 처음에 텍스트를 생산할 때만 해도 이런게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손가락을 놀리곤 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무언의 요구가 점점 늘어나니 심심하기는 해도 부담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상주하는 시간이 많은지라 책마을에 게시되는 글의 반수 이상은 읽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면 충분히 재미있는 텍스트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편식을 하면서 투덜대는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글 쓰기에 도의가 있다면, 글 읽기에도 도의가 있죠. 그걸 잊고 사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2009-01-10
21:43:27
  

 

병장 김민규 
  병훈씨에게 보낸 쪽지로 저의 감상을 대신하겠습니다. 쪽지의 형태로 쓴 것이기에 다소 거칠고 막 썼는데, 그냥 감안하고 얘는 이렇구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병훈씨, 내가 쓴 거니까, 여기다 옮겨놔도 괜찮죠? 


넓은 의미에서 보아서, 지향성은 결국 '읽고싶고 쓰는것이 즐거운' 것이 아닐지요. 그 이상의 어떤, 말하자면 텍스트는 어때야 한다라든가, 이런 특질들이 우월한 것이다라든가, 이런게 규정되는게 영 어려운 것일테고 말이지요. 

글을 쓴다는게 작은 의미에서는 참 쉬워요. 두환님 말대로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요. 그런데 김훈 선생도 그랬죠. 한국어는 결국은 동어반복의 한계를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라고, 국어사전마저 한자어의 동어반복을 조사만 끼워넣어서 맞춰준 것에 불과하다라는 그런 인식이- 

같은 소리 구구절절하게 하는 것에는 지쳤어요. 학교 다니는 내내 죽도록 해온 일이거든요. 뻔히 다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부연하는것도 내키지 않아요. 주석을 달지만, 이게 '너는 모를거야' 라고 지레짐작하는것과 다름 아니기에 조심스러워요. 

그냥 저의 속내를 보고 다스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왜 내가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를 추적하면서 따라가는거겠죠. 근데 그게 세상에 내놓으니 공감이 되고 사람들과 나눠지면, 그야말로 목적성 아닌가요. 

다작에는 반대입니다. 써재끼고는 있지만, 자기를 고갈시킬 지경이 되어서는 곤란해요. 저는 제가 쓰고싶은 글만 쓰렵니다. 괜한 의무감이나 눈치때문에 속에 있지도 않은 소리를 끄집어내 포장하는 짓은 못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글들이 참 가벼워요. 그냥 대중적일수는 있을지 몰라도 - 무게의 측면에서, 주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마이너하죠 - 절대로 명예의 전당에서나 보던 그런 글은 되지 못할겁니다. 학술적이지도 못하고, 통계치나 자료를 인용하지도 못하고 - 사지방가서 찾아보면 되기야 할텐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알아서 쓴다면 몰라도 - 그렇다고 미문인 것도 아니고요. 근데 그게 딱 저인걸 어떡합니까. 

엄살-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사실 밖에 나가보면, 이정도 글쓰는 사람이야 쌔고 쌔지 않았던가요. 어떠한 차별점도 없는데, 그냥 그때부터야 너와 내가 만나는 그 접점, 거기에 기대야죠. 우리의 가치는 공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이만큼이나 잘 알아, 나 이렇게 잘 써, 하는 잘난척이 아니라요. 2009-01-10
22:23:45
  

 

병장 김민규 
  아참, 빼먹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옥같은 몇몇 글들이 선사하는 지적 자극은, 제게 있어서는 여전히 아주 유효한 요소입니다. 내가 그걸 따라가지 못할 뿐이죠. 마지막 단락은 스스로에 대한 비관에서 비롯된 나름의 노선 정립-으로 해 두겠습니다. 2009-01-10
22:45:43
  

 

병장 정병훈 
  아, 그 쪽지의 저작권은 민규씨에게 있지 않나요? 흐흐흐 제가 민규씨의 쪽지를 공개한 것이 아닌데 말이죠. 조심조심이군요. 저는 엄살이 아닌걸 알겠는걸요. 에헴- 2009-01-10
22:51:18
  

 

상병 이석재 
  잘봤습니다. 저도 김민규님이 말씀하신 '지적자극' 또한 마음에 들고, 저도 시니컬한 냉소적인 개그를 좋아합니다. 촌철살인이란 사자성어가 가장 마음에 들기도 하구요. 껄껄 2009-01-10
23:48:52
  

 

병장 이동석 
  사실 무준님 글중 몇개는 정말이지 놀랍기가 서울역에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준씨의 모든 글에 그런 잣대로, 어째 요새 전만 못하다-따위의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자그마치 경기도 오산입니다. 

무준씨는 재밌는 글을 쓰고 있고, 책마을에도 재밌는 글들 천지-입니다. 그런데 전 반도 다 따라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 글들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이번 주말은 게다가 이것저것 바쁘기 까지 해서, 주말에 몰아치기-도 힘들군요. 

즐겁게 씁시다. 그냥 부담없이, 누가 뭐라하건 말건, 반응이 없건 말건, 쓰고 싶은대로 씁시다. 갑자기 사이다가 먹고 싶네요. 텁텁-해요. 무준씨 글은 톡- 쏴서 사이다를 연상 시키는군요. 홍어의 쏘는거랑은 다른 청량감이 있어요. 이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2009-01-11
03:21:47
 

 

상병 김무준 
  대체 뭐가 놀랍다는 건지. 놀라운 텍스트를 생산한 적이 없는뎁쇼. 2009-01-11
11:19:55
  

 

병장 이동석 
  놀랍다-는 뭐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개인적이니까요. 제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면, 무준씨 마음에는 안차더라도 제가 보기엔 놀라운 글일테지요. 그리고 솔직히 얼음마녀 이야기는 솔직히 무준씨가 보기에도 마음에 들잖아요. (낄낄) 2009-01-11
15:36:44
 

 

상병 김무준 
  그건 어디까지나 시놉시스라니까요. 2009-01-11
1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