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그(H.I.S)의 뒤치다꺼리 - 스키피오, 한니발, 카이사르까지  
상병 이석재   2009-01-13 20:59:02, 조회: 96, 추천:1 

한니발 렉터 박….[퍽퍽]. 아닙니다. 한니발은 고대 카르타고의 장수였고, 스키피오는 로마의 장수였지요. 간단한 설명 아닙니까? 하지만 그 둘의 전쟁은 지금까지도 육사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속까지, 위대한 두 사람의 경쟁으로 남아있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 후, 한니발의 아버지는 카르타고의 패배 아래서 슬퍼합니다. 자신 또한 카르타고의 장수로서 로마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가문의 영지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을 경영함으로서 로마에 대한 복수를 꾀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아들인 한니발을 신전으로 데려가 신에게 로마를 생애동안 계속 미워하고, 증오하고, 용서하지 말라고 맹세하라고 했다더군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큰 한니발이였으니, 어찌보면 그의 로마에 대한 증오는 당연한거 같습니다. 원래 조기교육이 중요하잖아요.


한니발의 아버지가 죽은 후, 아들인 한니발은 가문의 영지인 에스파냐를 끊임없이 경영하면서 로마의 시야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합니다. 물론 로마 입장에서는 카르타고가 그짓을 하는걸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분없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하지 못했죠. 먼저 공격하면 대내외적으로 지탄을 받기 마련이였으니까요. 결국 카르타고와의 조약을 통해 로마의 동맹도시인 사군툼 이상을 넘어가지 말자고 협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준비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한니발은 결국 사군툼을 함락시켰고, 다시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제 2차 포에니 전쟁의 서막이였지요. 한니발은 에스파냐인, 골족, 카르타고인, 누미디아 인들이 혼합된 병력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었습니다. 로마군은 그들이 해안가를 따라 진격해 올 것이라 믿고 해안가를 따라 진격했지만, 오히려 한니발은 프랑스를 횡단하여 알프스를 넘어버립니다. 룰루랄라 프랑스의 동맹도시인 마르세유까지 갔던 로마군은… 닭 쫒던 개가 되버린 상황에서 바로 이탈리아로 회군합니다. 허겁지겁 회군해서 한니발군과 싸웠는데 이개 왠 개쪽, 포 강유역 근처에서 패배하더니 트라시메노 호수에서는 안개를 틈탄 한니발군의 포위로 인해 병사들이 떼죽음 당해버립니다.


이때 로마에서는 두 파로 나뉘었습니다. 속전속결을 주장하는 파와 장기전을 주장하는 파였지요. 결국 속전속결파가 우세하여 한니발군을 우세한 군사로 공격했지만, 한니발의 사선작전(주1)을 모방한 망치와 모루 전술로 수적우세의 로마군을 포위섬멸시켜버립니다. 어이쿠.


이제 로마는 바로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로마는 해군으로 한니발 군대에게 오는 보급을 끊어버리는 것이였지요. 이때부터 스키피오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스키피오는 스페인에서 건너오던 한니발의 형, 하스드루발을 격퇴시킨후 바로 스페인으로 진격, 한니발 가문의 영지를 모두 점령해 버립니다. 이탈리아 전역을 점령하고 로마 성문앞까지 진격했던 한니발로서는 눈물을 머금을 수 밖에 없었지요. 결국 보급이 힘든 북이탈리아를 포기하고 그나마 카르타고에 가까운 남이탈리아를 거점삼아 로마를 괴롭힙니다. 카르타고 쪽에서도 군대를 보냈지만 시칠리아가 로마편에 있는 이상 보급작전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 밖에 없었지요.


스키피오는 그렇게 갑자기 로마의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그때 로마에서도 남이탈리아에 짱박힌 한니발 군대를 축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아프리카를 정복한 스키피오)는 빠른속도로 아프리카로 넘어가 카르타고의 동맹국인 누미디아를 빠르게 제압하고, 수도인 카르타고를 노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한니발은, 로마가 아닌 본국을 구원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본국이 없으면 자신도 없는 셈이니까요. 결국 전 병력을 이끌고 카르타고로 복귀했지만 이미 그의 군대는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지친 병력이였을 뿐입니다. 아직 생생한 스키피오의 군대와 자마에서 부딛혔지만, 그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코끼리 부대는 로마가 준비한 온갖 악기들 때문에 오히려 열이 받쳐 자기 편을 받아버리지를 않나, 로마군을 포위할 만한 전력도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렇게 자마에서 패전하고, 결국 카르타고는 해외 식민지를 모두 포기하고 해군, 육군도 모두 날려버리는 선에서 로마와 휴전합니다. 휴전회담에 한니발도 참석하지만, 결국 카르타고를 떠나야만 했지요.


한니발은 그 뒤로 그리스를 거쳐 동방에 있던 한 나라에 객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삼국지의 여포랑 같았죠. 거기서 시리아와 싸워주긴 했지만, 로마의 확장은 동방에까지 지속되어 지금의 아나톨리아 서부지역이 로마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 자신의 나라에까지 로마의 압력이 미치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독약으로 자살합니다.


사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만난 적은 딱 두번입니다. 전쟁 후 휴전회담 중에, 한니발이 한창 유랑하던 중에 두번이였지요. 사실 스키피오도 전쟁의 승리 후 토사구팽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모든 권력을 내놓고 쉬던 참이였기 때문이지요. 그때 두 사람이 나눴던 대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기억나는 데로 쓰자면


“니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3명만 대봐.

“3위는 피로스(주2)요, 2위는 당신이고 1위는 바로 난데."

“아니, 당신은 깨졌잖아. 넥서스 깨진 녀석이 말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3위인 것이요. 내가 당신을 이겼다면 당신은 이 리스트에 없을지니. 메롱. 난 가을전어라서.”


이 말을 듣고 스키피오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스키피오보다는 작은 군세에서 여러 전술적인 승리를 거둔 한니발을 더 크게 칩니다만, 글쎄요. 그는 일부 전술적인 승리를 거뒀을지 몰라도 전체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전략에서는 패배했습네다. 누가 그랬지만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이기면 장땡이거든요. 아무리 앞마당 밀고 멀티 까고 그래도 결국 본진이 털렸는데 한니발이 뭘 하겠습니까. 


그렇게 로마는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중동에 이르는 영토를 장악합니다만, 저번에 말했던 대로 대지주가 점차 득세하기 시작했고, 마리우스나 술라 같은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마리우스는 병사들의 둔전제를 실시하여 앞으로 로마가 도시를 세우는데 한 몫을 거드는 ‘전역병’들을 도시 건설에 투입하는 방안을 시행하기 시작했고, 술라 같은 경우는 로마의 독재자로서 중동으로의 확장에 기여를 합니다. 두 사람 사이는 무지 안좋았지만, 결국 마리우스나 술라나 모두 제 생명을 다하고 죽었지요. 물론 그 두명에게서 나온 파들끼리 싸워 내전에 이르게 됬지만요.


그 틈을 타 새로운 장수들이 등장합니다.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같은 사람들이지요. 난세가 일어나면 특출난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폼페이우스는 지중해 곳곳에 산재했던 해적(주3)들을 일소하면서 단박에 사람들의 영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카이사르는 갈리아에 7년동안 있으면서 프랑스 전역을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킵니다. 사실 한명이 더 있었는데 누구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가물가물 가물치. 그렇게 세명이서 서로 권력을 노나먹자고 삼두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두 로마를 혼자서 독차지하려고 했으니 그게 맘처럼 되나요. 게다가 가물가물 가물치의 한명은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나, 해적을 일소한 폼페이우스보다 딸린다고 함부로 파르티아(지금의 이란지역에서 발흥한 나라입니다.)를 공략하러 갔다가 깨져서 죽어버립니다. 결국 이제 두 사람간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블 좀 굽신굽신”이러면서 먼저 남하하기 시작했지만 폼페이우스는 후퇴하여 자신의 본거지인 그리스로 도망쳐버립니다. 결국 쫒아온 카이사르와 격돌하지만, 결국 카이사르에게 패배하고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망쳤다가 배신자에 의해 죽어버립니다. 결국 로마를 차지할 사람은 카이사르만 남았던 거지요. –아, 여기서 나오는 우리 끌레오빠뜨려 얘기는 비워두도록 합시다. 다 아는 얘기잖아요?


하지만, 카이사르는 아직 로마에 남아있던 ‘공화파’세력에게 암살당하고, 로마는 다시 암흑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다시 무주공산이 되었던 것이지요. 결국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맞나?) 이 셋이서 제 2차 삼두정치를 벌이지만, 레피두스는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고, 중동을 기반으로 삼은 안토니우스와 서방을 기반으로 삼은 옥타비아누스가 마지막 로마를 가지고 격돌합니다.


사실, 옥타비아누스가 유리했던게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은 점, 로마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 안토니우스가 ‘이민족 여자’에게 빠져 있었다는 점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이득을 얻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상황에서 옥타비아누스는 군사적으로 우세한 안토니우스를 '명분'이라는 이름 하에 먼저 공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토니우스는 저항했지만, 애초부터 로마인들의 사랑을 잃은 로마인에게 지지기반이 그렇게 좋을 리가 없었지요. 결국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고 원로원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아 로마의 제정을 열어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제정’이라고는 하지만 ‘전제군주정’하고는 다른게, 로마의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제 1시민에 불과했고 독재 권력 또한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원로원에게서 나오는 것이였으니까요. 나중에 일어나는 군인 황제시대에는 군인의 추대에서도 황제의 권력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애초부터 황제의 권력은 시민을 기반으로 한 상황이였지요. 나중에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가 되서야 진정한 ‘전제군주정’ 즉, 황제의 권력은 신에게서 나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정치체제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본편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이제 좀 쉬어볼까요 하악하악.


주1-사선작전: 병사를 일렬이 아닌 대각선으로 병렬하는 작전입니다. 그렇다면 적과 먼저 만나는 부분이 있고, 나중에 만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지요. 먼저 만나는 부분이 최대한 시간을 끄는동안 나중에 만나는 부분은 수적 우세로 적을 격파한다음 바로 우회에서 포위공격하는 전술입니다. 그리스의 에피미논다스가 발전시킨 이 전술은 후에 한니발, 나폴레옹 등이 망치와 모루 전술로 크게 애용하게 됩니다.


주2-피로스 대왕: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국가였고 로마를 싫어하여 한니발과 함께 공동작전을 펼치려고 합니다만, 이탈리아 반도에서 축출당하게 됩니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적은 없지만 정작 너무 소모적인 전쟁을 이끌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퇴하게 된 것이지요. 전술적인 승리는 거뒀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커 2차적인 승리로 이어가지 못할 때, 결국 이기나 진거나 별 반 다를게 없을 때 이런 승리를 가르켜 피로스의 승리라고 합니다.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도 이 피로스 대왕을 지금까지도 국가의 시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3-해적: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던 카르타고가 멸망하고, 로마도 서로의 내전으로 인해 해상권이 약화되자 지중해 곳곳에 밀운반선등을 노리는 해적들이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해적이 많았던 곳은 일리리아 해안으로 불리는 지금의 아드리아해 동부해안이였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30:44 

 

병장 이동석 
  역시 석재님, 
제가 너무 귀찮게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표정은 전혀 죄송하지 않다?) 

이거 그냥 칼럼에다 올리셔도 되는데, 허허 
잘 읽었습니다. 2009-01-14
10:39:09
 

 

일병 송기화 
  키키키키키, 역사에 길이 남을 대화였군요.(응?) 
머릿속에 역사라는 칸이 생겨 차근차근 채워지고 있습니다. 휘리리릭! 2009-01-14
10:48:41
  

 

상병 이지훈 
  그 상황에서 옥타비아누스는 결국 군사적으로 우세했지만 안토니우스를 먼저 공격했던 것입니다. 

음? 뭔가 어색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흐흐 2009-01-14
12:49:06
  

 

상병 이석재 
  병장 이동석/ 낄. 저도 이제 귀찮게 해드려야지요[으흐흐] 
일병 송기화/ 오오, 저도 그런 칸이 좀 더 생겼으면.. 
상병 이지훈/ 수정했습니다. 낄 2009-01-14
15:32:19
  

 

병장 박찬걸 
  음 로마인 이야기인데요 완전. 크크 2009-01-15
10: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