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그 녀석
상병 박찬걸 [Homepage] 2008-09-07 02:42:30, 조회: 218, 추천:0
안그래도 필력이 후달려서 글 쓰면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데 밤새면서 글 쓰려니 더 힘드네요. 그냥 봐주세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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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봤을때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나는 그의 옆에 앉기를 원했고 결국 그 옆에 앉을 수 있었다. 그는 뭔가 친근해 보였다. 처음부터 오래된 친구마냥 친근했다. 꼭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나에게 다가왔다. 이상했다. 여지껏 그런 녀석은 없었다. 내가 일부러 다가가야 할것 같은 녀석, 이 녀석과 친해지지 않으면 나의 대학 생활이 힘들어질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수업도 맞춰볼려고 했다.
어찌되었건 OT에서 같은조였으니 함께 술자리를 같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장형도 동기끼리 놀으라고 모아주고, 동기중에서도 리더역을 맡은 나보다 나이 세살많은 형이 자주 불러내서 술을 마셨기에 친해질 기회는 많았으나, 워낙에 내가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인것은 아니지만 낯을 좀 가린다기 보다는 어쨌든 잘 어울리질 못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술이나 좀 마시고 게임이나 하면 게임 좀 하고 어쨌든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녀석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일단은 좀 잘 놀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야 그 녀석하고도 친해질 수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세살 많은 형과 열심히 친해지려 노력했다. 수업을 들을때에도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듣고 형과 술도 자주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형의 고민도 들어주고, 나의 고민도 털어놓고 그러면서 그 녀석도 형과 친했기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하루는 그 형과 그 녀석과 함께 셋이서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는 형이 마련했다. 형은 처음으로 셋이 먹는다면서 역시 술은 잔디에서 마셔야 잘 들어간다고 극찬하며 분위기를 주도했고, 나는 살짝 어색함을 느끼며 조용히 술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 녀석도 나와 별로 친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냥 형이 열심히 떠드는걸 듣기만 했다. 뭐 사실 그날 형을 우울하게 만든일이 있어서 모인거이긴 했지만 형은 그 일에 대해 열심히 얘기를 하면서 나와 그 녀석이 친하다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건지 그동안 형에게 얘기했던 속에 있는 얘기들을 나와 그 녀석에게 다 말해버렸다. 헉.당황해버렸다. 나도 그녀석도. 우린 서로 완전히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었다. 아 이건 뭐 형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더니 술을 진탕 먹고 그 형은 완전 맛이 가버렸다. 둘이 남은 그 녀석과 나. 일단 형을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그 녀석이 형이 자기와 가까운데 사니까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서 나더러 먼저 가란다. 그렇다고 먼저 갈 내가 아니지만 그 날 하필 저녁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버렸다.
그 후로 형과는 좀 더 가까워 졌지만 그 녀석과는 살짝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같은 수업에서도 그냥 인사나 좀 하고 수업만 듣고 헤어졌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냥 이러다 방학 되면 얼굴도 못보고 연락도 안되니 2학기때부터는 볼일도 없겠구나 싶었다. 같은 동아리이긴 했지만 알고 지내는 여자애 한명이 끼지 않는한 같은 술자리에 앉아서 노는것도 힘들었다.
그러다 1학기말이 되었다. 기말고사를 1주일 앞두고 그녀석과 함께 듣는 수업이 있는데 시간이 되도 나타나질 않았다. 또 다른 친구와 그 녀석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항상 나보다 먼저 와 있던 녀석이 시작해도 나타나질 않으니 일단 대리 출석을 해주고 올때까지 기다렸더니 수업이 1교시가 끝나서야 얼굴에 화를 잔뜩 머금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그냥 들어와서 엎어져 버리니 이거 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주도 그는 그렇게 나타났다. 시험이 다 끝나고, 나는 그에게 문자를 한통했다. 후문으로 나오라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마침 술이 마시고 싶었는지 그 녀석도 응했고, 나는 그와 그렇게 술집으로 향했다.
알고 싶었다. 그가 왜 그랬는지. 무슨일이 생긴건지. 술이 한 두잔 들어갈 수록 나와 그는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했다. 그 녀석은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어머니께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이름을 자신과 동생의 이름을 섞어서 지었다는 걸 어머니께 전화로 듣고 충격을 먹었다는 것이다. 하. 이럴수가. 이런 난감한 상황이 나에게 던져지면 나도 그랬을거 같다고 위로했다. 솔직히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그 녀석도 그랬다. 그런 말 하려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고 그냥 너무 답답한데 내가 편해보였다나 뭐래나. 어쨌든 그 뒤로 나와 그 녀석은 한 세시간 도안 서로 속 시원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 꿈, 가려는 학과, 그리고 야구. 서로 다른 팀을 응원했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우리는 야구인이었다.
곧 방학이 시작되었고 야구장을 같이 갔다. 잠실, 문학 가리지 않고 경기가 있고 돈이 있으면 닥치는대로 갔다. 외야, 내야 가리지 않고 야구를 봤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스키장으로 가버렸다. 요즘 스키장들은 여름 방학 시즌에도 개장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소개 시켜줘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강원도 평창으로 가버렸다. 가끔 전화도 하고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연락을 지속했고, 그러다 그 녀석 생일이 7월 31일인것도 알았다. 나는 아침에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를 했고, 그 녀석은 역시 너밖에 없다고 답장을 했다. 몇명이나 축하 문자를 보냈냐니까 내가 처음이란다. 쩝. 불쌍한 녀석 타지에서 친구도 못 만나고 10시간씩 일하는데 문자라도 많이 받으면 힘이라도 날거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 녀석 생일이니까 문자라도 좀 보내주라고 뿌렸다. 후에 그 녀석에게 들었는데 나와 문자가 끝나고 나서 조금 뒤에 다른 친구들에게서도 문자를 수십통 받았단다. 그때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고 감동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고 2학기가 되니까 살짝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사실 마음을 터놓고 지냈어도 실제로 본 것은 겨우 그 뒤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나와 그 녀석은 서로 노력을 했다. 술도 자주 마시고 자주 야구장도 가고 공부도 같이 하고ㅡ이건 얼마 안했다ㅡ술 먹으며 야구도 보고. 매번 수업이 끝나고 심심하다 싶으면 녀석을 불러내 술 마시거나 시간이 된다 싶으면 야구장 가는게 일이었다. 2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샌가 서로 많이 가까워져 있음을 느꼈다.
1학년때는 학부 생활을 했기 때문에 2학년이 되기 전에 학과를 정해야 했다. 우리 단과대는 행정학과, 부동산학과, 정치외교학과가 있었고, 나는 진즉에 행정학과를 바라보고 왔기 때문에 행정학과를 택했고, 그 녀석은 처음엔 행정학과였다가 부동산학과를 가려는 친구들과 함께 그 곳이 대세라며 부동산학과를 택해서 가버렸다. 어라, 처음엔 공무원이 된다고 하더니 이젠 감정평가사가 된댄다. 녀석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1학년 수업을 듣다보니 부동산쪽이 전망이 좋을거 같아서 가겠다는것이다. 뭐 심하게 말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공무원 하는게 어떻겠냐고 이래저래 말은 해봤지만 뭐 이미 정한이상 먹힐리는 없었다.
그렇게 겨울 방학이 왔고, 이번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짐을 나르는 아르바이트인데 출근 시각이 불규칙하고 쉬는날도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쉴때도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나는 입궁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친구들도 만나봐야 겠고, 일도 재미없고 지겨워서 입궁 한달전에 그만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친구들. 그 녀석도 만났다. 신림동에 살고 있기에 여러명을 한꺼번에 만나기 위해서 그 유명한 순대골목으로 갔다. 술 한잔 하면서 입궁한다고 하자 녀석들은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한 학기만 더 다니는게 낫지 않냐고. 하지만 뭐 일단 굳어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일단 궁은 빨리가서 빨리나와야 하는데라고 일단 빨리 가야한다고. 다른 애들은 몰라도 그 녀석만큼은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그게 좋을거 같다고.
그렇게 이래저래 지내다 3월이 되었고, 녀석은 오리엔테이션 가서 후배들 사귀었다며 한번 나와서 술이나 한잔하라고 권했다. 나는 어차피 좀 있으면 갈건데 뭐하러 그런데 가서 분위기 어색하게 만드냐며 사양했지만 녀석은 내가 궁에 가기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며 꼭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냥 못 이기는척 후배들 핑계대며 나가서 그 녀석과 술 한잔 하며 거기 나와있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2주후에 나는 입궁을 했다.
입궁을 하고 나서도 나는 그 녀석과 자주 연락했다. hundred 설탕때도 이틀이나 그 녀석을 만났고, 녀석은 내가 보고 싶다며 면회도 와주었다. 설탕때는 무조건 그 녀석을 하루라도 만나야 했다. 그러더니 이 녀석 갑자기 작년 10월쯤에 여자친구가 생겼다했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역시 사회인은 다르구나 싶었다. 나랑 같이 다닐때는 여자친구도 안 생길거 같더니만 내가 사라지자 그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거였다. 질투와 부러움이 교차했다.
그러더니 대뜸 올 7월에 입대를 한다고 연초에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출퇴근 궁인으로. 아니 뭐 이렇게 복받은 녀석이 다 있나 싶었다. 그래서 이 녀석도 볼겸 7월에 슈가를 나갔다가 일이 꼬이는 바람에 녀석을 배웅하지 못했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 녀석 미니홈피에 푸념어린 글을 남겼다. 저번달말 훈련을 끝내고 나온 녀석에게 전화했더니 나더러 대단하단다. 무슨수로 거기서 1년반을 있었냐고. 아니 이거 참. 다들 하는데 뭐가 대단하다는거지. 뭐 어찌되었건 그 녀석은 출퇴근 궁인으로 행정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녀석과의 인연은 6개월 가량이 전부다. 그 사이에 그 녀석과 모든 친분을 쌓은듯 하다. 마음이 잘 맞는 녀석은 그 녀석이 처음인 듯 하다. 누군가 그랬다. 대학 친구는 머리로 사귀는 친구라고.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가슴으로 친구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나는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친구가 한 사람 더 늘었으니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3:06:02
일병 김대경
이야... 좋은 추억, 굳게 맺어진 친구로군요. 소중한 인연을 얻으신것 같습니다.
저도 속마음도 털어놓을수 있는 진짜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동창들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에서도 그런 녀석이 한두명은 생기더군요.
누가 그랬더라...수년동안 만나면서 지내도 그저그렇게 남는 친구가 있고,
서로 안지 두세달만 되도 평생을 함께 하게되는 친구가 있다고.
이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머리와 가슴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이 됩니다. 2008-09-07
08:12:20
병장 정이연
대학 그 이전의 친구들도 좋지만, 대학때 동기들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대학 이전의 친구들과는 뭐랄까... 공통분모가 점점 사라져서... 대학친구들은
전공 특성상 공통분모도 많고 할 이야기가 더 많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여초학과지만 얼마 안되는 남자동기들이 특히 소중하게 느껴진달까요. 2008-09-07
08:12:24
병장 김태형
아무래도 대학에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속으로 대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뭐 속내로 대하는 친구들이 두셋 있지만.. 그 이상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려 (헐헐)
그렇게 그렇게,
보지 못해도 보는 듯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큰 보물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08-09-07
12:16:58
병장 이동석
음, 중간까지 전 '그 녀석'이 여자인줄...
어쨌거나 첫눈에 마음에 든 친구라니 부럽군요. 쿨럭. 2008-09-08
07:24:12
상병 박찬걸
참 웃겼던건 그 친구 녀석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같은 과 카페에서 제가 사이좋은친구 주소 올린거 보고 제 방명록에 글을 남겼더군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물론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흐흐 2008-09-08
09:00:05
상병 최광준
글을 읽으면서 저도 대학에서 진심으로 사귄 친구들이 계속 떠오르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2008-09-08
10:32:15
상병 이동열
저도 동석님처럼 그 녀석이 여자분인줄(땀)
새삼 대학동기들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여담이지만 저도 행정학과입니다(웃음) 2008-09-08
12:48:35
상병 박찬걸
음... 처음에 남자인걸 밝힐걸 그랬나요.
저번에 여자친구에 대해 써서 그런지 여파가 조금 남아있는듯... 흐흐
재미 없는 글 재밌게 읽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