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그대 정말 외롭지 않은가
상병 김형태 [Homepage] 2009-02-17 09:43:58, 조회: 304, 추천:1
외로운 겨울의 평일 정오, 빨간 좌석버스를 탄다. 다행히 붐비는 시간은 아니라 좌석버스임에 두자리를 넉넉히 차지할 수 있다. 마침 두자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창문도 열 수 있는 명당자리를 잡고 온몸이 축 늘어져라 의자에 몸을 담근다. 자리를 넉넉히 차지하고도 남은 곳에는 가방따위와 전화기를 올려놓는다. 스치는 창문을 바라보며 헤드폰을 쓴 채로 이 포근함이 지속되길 바라며 잠이라도 들길 바란다. 하지만 빨간좌석버스에는 한 두 명씩 승객이 올라탄다. 모두들 두자리를 한자리인냥 차지하고 있기에 누군가는 새로온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본연의 한자리로 써야한다. 옆자리로 오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을 졸이고 그들의 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척하며 인기척을 느끼려한다. 떡-하니 여전히 가방을 둔 채로 ‘여긴 앉지 마세요’ 라는 까탈스러운 얼굴을 하기도하고 그대로 자는 척에 빠지기도 한다. 옆에 있는 가방을 다시 내 무릎에 올리려면 귀찮기도 하고, 누구라도 옆에 앉는다면 갑자기 비좁아진 공간과 새로운 자리에서 어떻게 의자에 몸을 담그랴.
다행히 목적지까지 넉넉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이 많은 명동에 내린다. 사람들은 빠른 발걸음으로 걷는다. 두리번 두리번 높게 솟은 건물들을 보며 걷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천천히 걸으려 했지만 어느새 걸음이 빨라진다. 가야할 곳이 많기보다 그냥 빨리 걷는다. 어느새 헤드폰에서는 한바퀴를 돌아 다시 track1이 흘러나오고 문득 모자위에 헤드폰을 다시 조절한다. 고개를 드니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나 귀에 저마다 다른 소리를 듣고 있다. 헤드폰을 접어 가방 깊숙이 밀어넣는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혼자임을 느낀다.
건너편 편의점이 보인다. 옆면에는 멋진 남자의 휴대폰 광고가 있는 지하도를 내려간다. 익숙한 발소리가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하도를 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문고리를 맨손대신 팔로 밀며 들어간다. 문 끝에 달린 종소리가 들린다. 어서오세요. 다가오는 반가운 인사이지만, 말보로 레드 주세요. 라며 담배한갑을 받아 아무말없이 편의점을 나온다. 직원은 아무말이 없다. 익숙하게 담배갑을 거꾸로 들고 손바닥에 털어낸다. 탁 탁 탁 명쾌한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어떤가. 너무 외로워 그녀와의 추억이 가득한 버스종점이라도 돌며 함께한 시간들을 추억하지는 않는가. 그녀가 아닌 누군가라도 내 전화기를 끊임없이 울려주길 바라면서 하나하나의 대답에 귀찮음을 느끼고 그저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하지는 않는지, 그러면서 왜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 옆자리의 작은 짐을 옮기는 것이 어려워서 누군가 다가오기를 꺼려하고, (혹은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짐을 못 치운다거나) 단 몇 분 만에 익숙해질 낯간지러움 때문이라면 아직 덜 외로운 게 아닐까.
다시금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면 먼저 옆자리를 비우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나 'damien rice의 9crimes' 보다는 ‘travis의 closer’나 ‘CCR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듣자. 우리가 우울한 까닭은 거울을 봐야만 아는 얼굴의 단 몇 개의 여드름 자국이 아니라, 어느새 찾아온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 혹은 귀찮음 때문 아닐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09:02
병장 김민규
어떤 자에게는 고독은 병자의 도피다. 다른 자에 있어서는 고독은 병자들로부터의 도피다. - p29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사실은 그 자신이야말로 '병자'이면서, 가까이 오지 마, 무서워요, 다가오지마, 허우적대며 거리를 헤매는 것이 제 모습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의 용기로 나를 열고 그를 받아들이고자 했는데 그는 들어오는것이 두려운가 봐요. 병신같이, 병자로부터의 도피를 조장해놓고는 - 그를 까마득한 고독에 빠트려 놓고, 정작 나 자신은 도피하고야 마는 양 극단의 고독들의 생성,
미치겠군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붙잡고 늘어져 차라리 화를 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마저 불가능하니 까마득한 고독 안으로 빠져들고 있을 뿐입니다. 도망가야 하나요. 좀비같이 누군가를 물어 전염시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병자의 모습을 알아버렸으니, 순전한 인류인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망가야 하는 걸까요.
두렵습니다. 나 자신이 무섭고, 또 한없이 냉정해질 수 있는 그가 미치도록 무섭습니다. 2009-02-17
10:28:24
상병 김형태
민규//병자가 아닌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연애를 해도 고독과 외로움은 있는 것이고 가끔은 모든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을때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병자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면서 살아야겠어요. 용기를 자주내서 토닥토닥말이죠. 2009-02-17
12:10:34
병장 김민규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말았답니다. 그와 어떻게든 조우해서 이 불편한 침묵들을 깨트려 보아야 할텐데, 또한번 닿지 않는 기별에 가득한 자괴로 ex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어요. 전화통을 붙잡고 소리를 쳐가며 서운해, 섭섭해, 속상해를 읊어댔습니다. 어느새 저를 연민하는 ex는 좀 너무했다, 살짝 얄밉네, 허, 하며 같이 공분했지요. 그 압도적인 일체감에 본능적 방어심리마저 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느새 저도 그에게 분노하고있었는지도.
자기연민, 생채기에 대한 두려움, 오해, 물리력의 굴레, 그것들이 빚어낸 촌극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지혜롭지 않은 흔들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힘드네요. 마음 한켠이 끊이지 않고 아픈(정말로, 물리적으로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커피나 한 잔 타먹고 기분전환을 해볼까요. 2009-02-17
12:41:09
상병 김형태
커피한잔하시죠, 후루룹 소리도 내면서 경쾌하게.
한없이 냉정한 그에게 어쩔 수 없이 현명한 선택을 맞기게 榮摸, 그렇게 두도록 하는것도 방법인것같네요. 저는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답니다. 뭐 민규씨의 사정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속상한 마음, 서운한 마음을 나타내다보면 미움이 커지는 척하다가도 나와 같이 그를 탓해주던 사람이 미울정도로 그를 보호하게 되거든요. 결국엔 더 마음한켠이 아려온다구요.
현실을 탓하기 쉬운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지금은 그렇지 못해 후일, 차일로 미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답답하고 정말 물리적으로 심장에서 위액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더라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죠.
서두르지 않는다해도 조금 당긴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민규씨도 몇일뒤면 지금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겠고,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하겠죠. 몇일 늦춰진다고 사라질 인연이라면 처음부터 없던거라고 생각하는거에요. 그건 그대로 좋은거죠
만남은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제 마음속에 만날날을 꼽으면서 올해가 지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벌써 2년이 지났어요. 하지만 그와 저 사이에는 아직 무언가가 남아있기에, 수없이 오고간 대화속에서의 단 한마디라도 무언가를 남게 해주었기에 만남을 기다려봐요. 2009-02-17
12:55:56
병장 김민규
그의 현명함을 믿고,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두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가 봅니다. 믿음을 배반하는 조급한 심정이 자꾸만 그 고진함을 깨트리네요. 그래요 분명 하고싶은 말이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해 미루고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하면서, 한 템포 늦추어 나에게 또 그에게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건 ex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단절에 대한 오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나름의 부족함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6년을 떨어져 지내다가 결국은 친구로 돌아갔거든요. 우리가 할 수 있는거라곤 좀더 자주 전화하는것밖에는 없었는데, 그것에마저 불성실했던 스스로에 대한 후회감, 그리고 본질적으로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물리적 제약에 대한 오랜 피로감이 떠오릅니다.
한달여 후에 잠시간 그와 함께 지낼 수 있을테지만, 다시 8월이면 1년을 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미리부터 공포로 다가오고, 그래서 더 현재에 집착하는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예된 행복, 연착되는 기쁨들이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루고 참으며 지냈었는데, 요즘엔 그게 다 무언가, 하는 생각이 강해서 말이지요.
그냥 잠시라도 좋으니, 오늘 행복할 수는 없는걸까요. 꼭 모든 것이 정리되고 준비된 후에야만 그것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는걸까요. 2009-02-17
13:29:37
상병 김형태
‘냉정과 열정사이’에 준세이와 아오이는 오랜시간 떨어져 살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져도 (다른사람과 함께있어도) 가끔씩 서로를 그리워하고 꿈꾸죠. 저는 그런 미래를 가장 이상향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그와 같이 지내온 민규씨와의 시간들에 지금의 민규씨가 만들어졌다면 1년 이라는 시간에 조급할 필요가 없겠죠. 혹은 그래서도 안되고요. 한달 후 잠시동안의 시간과 그 후 1년이 전부가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조급한것도 당연하지만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든 선택을 받는 사람이었든 멀리서 자신과 그를 바라볼 여유가 필요할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지금처럼 아직 진행중이지만 그렇지 않고 이미 끝났다해도, 그때 조급했던 자신이 다시 생각됐을 거에요. 물론 지금도 그때 조금 더 멀리서 나를 바라볼 순 없었을지에 대한 생각이 들고요. 하지만 모든게 과정이라면 후회는 없습니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정리하는 중에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행복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그 과정도 행복하면 더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이렇게 덧글로 하루종일 씨름하는데에도 생각이 나는게 ‘아직도 내가 이렇구나’하며 행복하네요. 민규씨 덕분에 하루종일 이랬습니다. 반면에는 제가 고민거리를 더 만든건지 모르겠네요. 신촌바닥에서 소주한잔하면서 끝나지 않은얘길 나눴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02-17
16:29:43
병장 김민규
며칠전 후배가 그러더라구요. '생각할 시간을 줘서는 안된'다구요. 사바넷에 떠도는 각종 정석류의 연애지침서에도 보면, yes/no보다는 A, or B? 식으로 물어봐 상대방의 선택의 여지를 줄이고 어떤 경우든 yes를 할수밖에 없게 만드는 식의 대화법을 권하고 있구요. 아마도 그것이 전략적이고 성공률 높은 무언가로 인식되는 요즘인 듯 합니다.
그러나 후배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슬퍼졌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인형이 아닐진대, 어떻게든 내 생각과 의도에 끌고오는 것에만 급급하여 그가 자신의 진심을 갖추고 돌아보는것조차 잘라버리는 것은 아닌지,
관성이 있기에 아직은 주도하는 편이 편하게 느껴지겠지만, 형태씨 말을 들으면서 다시한번, 그의 영역을 인정하고 바라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직까지도 저의 마음을 내보인 것에 대한 후회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문제는 - 간극을 조율해가는 과정 그 자체의 스릴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주한잔 하십시다. 제가 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