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권위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병장 정영목   2008-07-04 01:19:08, 조회: 246, 추천:0 

자유방임 경제에서 허약한 공장들이 무너지는 것은 자연 법칙과 신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록펠러


--------------------------------------------------------------------------------


전 반권위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편입니다. 권위주의란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고 하는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뜻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겁니다. 소극적인 무권위주의자와는 다소 다르지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그런 제가 그나마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와 대화할 때 종종 직면하게 되는 '권위의 당위성'이란 주제입니다. 이는 매 경우마다 거의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 중의 하나인데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건 자연의 법칙일진데 왜 그걸 딴지거느냐는 질문에서부터, 당신이 말하는 반권위주의적인 생각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다는 단정에 이르기까지 꽤 다양합니다.

그러나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이들의 공격은 사실 간단하게 막힙니다. 그들에게 '자연주의의 오류'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됩니다. 자연주의의 오류란 '존재'로부터 '당위'를 추론해 내는 모든 사유에 대한 논리적 허점을 지적한 화두로서, 1903년 철학자 무어(G. E. Moore)가 주창한 이래, 수많은 사상가들의 지적 결과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괴물 같은 녀석입니다.

뭐... 저도 그랬다고만 알고 있고, 자세한 내막은 잘 모릅니다. 대체 어떤 논리를 전개했길래 그런 막강한 포스를 발휘한 걸까요? 설명을 드릴만큼 명확히 알고 있는 게 아니므로 함구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찾아보세요. 저도 조만간 관련 서적을 탐독할 예정입니다.

일단 여기선 이와 논지가 비슷하면서도 조금 쉬운 주장인 존 스튜어트 밀을 인용하겠습니다. 그의 논지는 대략 이렇습니다.

"올바른 행위에 대한 길잡이로서 자연을 이용하려는 시도, 곧 자연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신의 가치가 구현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컨데, 신이 자비롭지 않다면, 왜 신의 가치들을 존중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신이 자비롭지만 전능하지 않다면, 왜 신이 자연 속에 자신의 가치들을 정확히 새겨 놓았으리라고 생각해야만 하는가? 그러므로 자연이 맹목적으로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자연을 자비롭고 전능한 신의 수공품으로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을 야생 동물의 먹이로 내던지고, 불에 태워 죽이며, 기아로 굶겨 죽이고, 추위로 얼어 죽이고, 자신이 내놓은 독물로 순식간에 혹은 서서히 독살시킨다. 거기다 또 다른 수백 가지의 소름끼치는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 만일 자연과 인간이 모두 완전히 선한 존재의 작품이라면, 그 존재는 자연을 인간이 모방해야 할 것으로가 아니라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설계하고자 했을 것이다."{1:483-484}

쉬운 얘깁니다. 자연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에서 어떤 가치를 찾는 건 '자비롭고 전능한 신'이란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라는 거죠. 아직 신이라는 존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1860년대 당시 서양 사람들로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얘기였을 겁니다. 다윈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말을 했어요.

"나는 남들이 보는 만큼,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디자인의 증거와 우리 주위의 은혜를 명확히 볼 수가 없습니다. 내게는 너무도 많은 고통이 세계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자비심 많고 전능한 신이, 살아 있는 쐐기벌레의 몸에서 먹이를 구하도록 기생하는 말벌을 고의로 창조했다거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1:485}

여기까지, 자연으로부터 어떤 가치를 끌어온다는 게 항상 옳은 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님을 이해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세계관은 무언가를 주장할 때 이 자연주의의 오류를 너무도 많이 저지릅니다. 권위 강화라는 정치적 이상과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현실이 너무도 비슷해서 우상화의 유혹이 강한 걸까요?

권위에 대한 그들의 논리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전제. 자연의 법칙은 옳다.

1. 적자생존은 자연의 법칙이다.
2. 적자생존은 강자와 약자를 나눔.
3. 강자는 법칙에 따라 합당하게 발생한 것.
4. 그러므로 강자의 권위는 당연하다.

허나 자연 법칙과 신의 법칙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꼭 지켜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연의 모델 중 하나인 벌 사회를 본떠 만들었다면, 미혼 여성들은 오빠나 남동생을 죽이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들은 번식력 있는 딸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며, 그 누구도 이런 행위에 간섭하려고 하지 않을텐데{2:73}, 어떻습니까? 여기서도 존재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낼 껀가요? 일관성 있어서 좋군요. 혹시라도 만약,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자연은 절대선이 아니게 되니 조심하는 게 좋아요.

앞으로,

'권위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으면 친절히 설명해주세요. 그거 오류라고.


--------------------------------------------------------------------------------


REFERENCES.

{1}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사이언스북스, 2003.
{2} Charles Darwin,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LICENSE.

2008. Gaiahead. Published by Creative Common License. Attribution-Noncommercial-No Derivative Works.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0:12 

 

병장 이동석 
  무기 하나를 장착한 느낌인데요. 하하. 

사바세계에서 맞딱드리면 신나게 사용할텐데 
부대찌개집에서는 설탕 뺏기려나 

그런데 자연주의의 오류에는 절감합니다만, 뭔가 오롯한 논거를 제시하기엔 스튜어트 밀의 예시는 무신론적 권위주의자들에게는 먹잇감만 될것 같은 느낌이. 

무신론적이면서 자연의 권위를 따르는 사람들은 애초에 논거의 모순을 권위의 이름으로 합리화 시키죠. 또 그들은 보통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구요. 그러니까 어떤 논리를 내세워도 어지간하면 '권위와 서열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치 않겠다'고 우리를 무찔러 주시니 여간 상대하기 까다롭단 말이죠. 

뭐 꼭 이겨먹자는건 아닌데, 권위주위만큼 상대하기 어려운게 있나 싶어서 넋두리. 2008-07-04
06:47:59
 

 

병장 정영목 
  반대로 말하면, 밀의 예시는 종교적 권위주의자에게 효험이 좋습니다. 
젤 좋은 방법은 역시나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한 무어의 논증을 익히는 것. 

권위와 서열을 가지지 못한 젊은 이가 '권위의 당위성' 운운하는 경우가 있으면 써먹어 주세요. 저도 주로 그럴때 쓴 답니다. 2008-07-04
07:20:34
  

 

병장 이태형 
  그런 엄청난 녀석이 존재한다니 대단한걸요. 
무어라!? 
꼭 기억하고 훗날 감탄해야겠군요. 2008-07-04
07:22:51
  

 

상병 양순호 
  저 역시, 부대찌게집가서는 쉽사리 메뉴판을 고르지 못할 그런거네요. 
무시무시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은 세계가 한번 바뀌면 그 세계에 
적응하여 살아야 하고, 다시 세계가 바뀌면 그 세계에 또 적응해야 하죠. 

자기 자신의 뚜렷한 관념이나 이념, 생각, 마음가짐이야 좋다만. 
주변에 적응하고 살 수 있어야 하는 카멜레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을 보고. 주변을 살피어 행동하는 모습 하나 하나 말이죠. 2008-07-04
08:33:50
  

 

병장 황인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훗날 감탄하기 위해 기억을 해두어야 겠군요. 

그나저나 자연법칙이 그렇다고 해서 따를 이유가 없다라, 
간단한 문제였군요!(왜 생각을 못했던 건지..) 2008-07-04
08:35:13
  

 

병장 이동석 
  끙 역시나 완고한 꼰대를 제낄수 있는건 논리가 아니라 짱돌일까요? 
아니면 짱돌로 대등한 위치를 만든 뒤에 논리로 맞짱뜨기? 

부대찌개집 뿐 아니더라도 
사바세계 전반에 깔린 권위주의의 내음에 질식할것 같을때마다 
산소호흡기라도 쥐는 심정으로 

그 철학자 무어의 논리를 복용해야 할듯. 

무어라? 
하며 뒷목 잡는 완고한 꼰대의 미장센을 보기 위해서라도? 
(왠지 악마같다?) 2008-07-04
11:43:23
 

 

일병 이동열 
  잘 읽었습니다! 

가슴속에 꼭 갈무리 해두어야겠군요(웃음) 2008-07-04
12:27:38
  

 

병장 정영목 
  양순호 님// 답은 간단합니다. 

주위 환경에 맞춰 자신을 적절히 바꿀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지킬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라도 잘 못하면, 회색분자가 되거나 고집불통이 되겠지요. 2008-07-05
21:10:04
  

 

병장 이동석 
  저는 고집불통 콜! 2008-07-07
18: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