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고양이영토.  
병장 전승원   2008-09-08 11:32:30, 조회: 272, 추천:3 


  다른 사람과 달리 내가 가진 특별한 능력 중의 하나를 꺼내보라고 하면, 나는 정말 우습게도 이렇게 얘기한다. " 아, 난 고양이들의 영토를 볼 줄 알아. "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보인다. 이 들고양이의 영토가 어디인지 녀석을 몇번 마주치기만 하면 대략적인 영토의 분석이 가능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건물이 포함된 영토의 주인은 [ 깡똥꼬리 검은 줄무늬 고양이 ]다. 녀석은 꼬리가 李, 끝이 뭉특한게 사고라도 당한 것같다. 대게 꼬리가 짧은 녀석들은 험한 부류에 속한다. 영토 확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녀석들이 대게 꼬리가 짧았다. 원래 이 영토의 주인은 [ 황갈색 줄무늬 암코양이 ]였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그 녀석은 이 건물 지하와 건물 주변을 독식했었다. 건물 옆에 식당이 있어, 음식을 구하기도 쉽고 건물 지하는 기온이 일정해 살기도 좋았다. 그리고 10월 말, 겨울이 되기전 녀석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녀석을 꼭닮았다. 색깔도 줄무늬만 봐도 누구 자식인지 다 알만큼 쏙 닮았다. 그렇게 겨울이 되고, 녀석들은 눈에 띄지도 않게 건물 지하에서 겨울을 보냈다. 덕분에 영토의 주인이 바뀌게 榮. 원래 깡똥꼬리는 어린 숫코양이로, 길 건너 산 속에서 살던 녀석이였다. 지난 해까지 힘이 없던 녀석이 겨울동안 덩치를 키운 것이다. 식당 뒤쪽 산 속에서 머물다가 영토의 주인이 없는 틈을 노려서 굶주린 배를 채우던, 그야말로 미천한 녀석이였다. 그런 녀석이 겨울 동안 거친 산 속에서 꼬리가 짧아지는 가혹한 수련을 거친 것이다. 녀석은 정말로 강해졌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을만큼이나 자신의 힘에대한 신뢰가 두꺼웠다.

  그리고 봄이 시작하려는 2월 경. 드디어 영토의 소유권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시작은 깡똥꼬리의 건물지하 습격이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건물 지하로 드나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몇달간 두 고양이 간의 세력싸움이 계속되었다. 고양이들간의 싸움은 단순히 힘으로 싸우는게 아니다. 거점쟁탈전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누가 먼저, 누가 오래 영토를 결정짓는 거점에 있는가에 따라 주인이 결정된다. 황갈색 고양이가 따끈한 지하에서 나태한 겨울을 보낼동안, 깡똥꼬리는 차가운 눈 속에서 자신의 몸을 단련한 녀석이다. 덕분에 황갈색 고양이 모녀는 깡똥꼬리 검은 줄무늬 고양이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그리고 상당히 멀리까지 녀석들은 도망을 갔다. 내가 관측이 불가할 정도로 멀리 떠나버렸다. 아니면 건물 지하에서 정통적인 고양이 전쟁이 아닌, 힘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있는 이 건물과 옆의 식당 건물 그리고 그 이상까지 지금은 이 [ 깡똥꼬리 검은 줄무늬 고양이 ]의 발 밑에 들어와 있다. 녀석은 날이 좋은 날이면 주차장에 누워, 태연하게 잠을 자고 있다. 사람이 몇이 지나가든 옆으로 편하게 누워 그냥 자고 있다. 배짱도 두둑하고, 녀석은 고양이 특유의 나태함을 보이지 않았다. 틈틈이 영토를 순찰하며 다른 고양이들로 부터 영토를 방어했다. 최근 그의 영토에서 다른 고양이를 본 적이 없었다. 침범할 만한 개체의 수가 줄어서인지, 그만한 힘을 가진 녀석이 없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 겨울을 깡똥꼬리 고양이가 어떻게 보내는 것에 따라, 영토의 주인이 바뀌게 될 것이다. 황갈색 고양이가 새끼를 돌보기 위해 겨울기간 동안 순찰을 게을리 한 덕에, 깡똥꼬리가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처럼 녀석이 얼마나 순찰을 자주 도는가에 따라 영토 방어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욕으로 길 건너편 까지 노리다가는 오히려 녀석은 차에 치여 죽거나, 넓어진 영토의 순찰을 다 하지 못해서 오히려 다른 고양이에게 쉽게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수년간 집 근처 고양이들의 영토를 관찰해 본 내 생각에 녀석은 몇년간 영토를 지켜낼 것이다. 지금 충분한 힘도 있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 배짱좋고, 낮잠을 즐기는 깡똥꼬리 고양이가 좋다. 녀석은 언제나 자부심이 넘쳐보인다. 사람이 달려들면 도망가기도 하지만, 결코 꽁지빠지게 도망가지 않는다. " 네녀석이 덩치가 커서 내가 피하지만, 결코 무서워서 도망가는건 아니라구 " 라는 식으로 사람 손이 닿기 힘든 곳까지만 도망간다. 그리고 사람이 없어지기가 무섭게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하는 짓도 귀엽고, 부지런한 이 깡똥꼬리가 올해 겨울까지도 이 건물의 주인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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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고양이의 영토를 분석하는 방법.

  1. 고양이들의 영토는 하나의 대륙에 존재하며, 대륙은 도로를 경계로 구성된다. 도로에 둘러쌓인 하나의 지역을 고양이 대륙으로 설정한다.
  2. 고양이 대륙을 각자의 고양이들이 영토로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성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밭이 필요하다. 그 성과 밭의 수가 많을 수록 대륙에 포함된 고양이들의 수가 결정된다.
  3.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고양이 밭의 경우는 시간대를 달리하여 고양이들 간의 공유는 가능하나, 몸을 숨길 수 있는 고양이 성의 경우는 절대 공유가 불가능하다.
  4. 고양의 성의 소유권을 갖기 위해서는 성을 자주 침략하여, 성에 최대한 많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쪽이 성의 주인이 된다. 대부분이 이런 형태로 소유권 분쟁이 이루어지나, 간혹 힘으로 성을 강탈하기도 한다.
  5. 소유하고 있는 고양이 성의 수가 많은 수록 영토의 크기는 커진다. 하지만 고양이 밭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순찰 빈도가 떨어져, 다른 고양이에 의해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6. 아무리 넓은 영토라 해도, 고양이 성이 없거나 고양이 밭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 경우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무리한 영토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영토 관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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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巳足 : 좀 특이한 내용인데, 말머리에 [내글내생각]이라 적어야 할지, [일상이야기]라고 적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려울거 같아 일단 [내글내생각]이라고 적었습니다. [일상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보기 흉할 것 같아서 어거지로 [내글내생각]을 달기도 했지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36:19 

 

상병 정병훈 
  일상이야기라고 하기엔 제 일상과는... 2008-09-08
11:35:48
  

 

상병 정병훈 
  글의 짜임도 좋고 재밌네요... 부럽습니다 ~ 이런 필력 2008-09-08
11:37:17
  

 

상병 고동기 
  다작인데도 매번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면… 2008-09-08
11:39:57
  

 

병장 전승원 
  매번 좋은 글이라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2008-09-08
11:55:17
  

 

상병 이동열 
  일상속의 소재로 좋은 글 써주셨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웃음) 2008-09-08
12:34:58
  

 

이병 장봉수 
  재미있네요~~ 2008-09-08
12:41:27
  

 

병장 황인준 
  일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좋은 글을 많이 쓰시네요. 
재미도 있고요!(웃음) 

덕분에 한 지역에서 같은 고양이를 항상 보는 이유를 깨달았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다작하시면 더욱 좋고요! 2008-09-08
13:00:39
  

 

병장 윤형주 
  巳足 이 아니라 蛇足 아닌가요? (땀) 2008-09-08
14:12:55
  

 

병장 전승원 
  어려운 한자를 싫어해서, 일단 그렇게 씁니다. 다음부터는 수정토록 하지요, 2008-09-08
14:30:57
  

 

병장 정영목 
  재밌게 읽었습니다~! 2008-09-08
14:56:17
  

 

병장 윤형주 
  나쓰메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생각나네요 2008-09-08
15:02:02
  

 

상병 박찬걸 
  저희도 고양이 한마리가 있는데 
저번에 불침번 서다가 행정반에 잠깐 들어갔더니 
광부님 의자에서 곤히 자고 있더군요. 
불 키니까 왜 짜증나게 불 키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라구요. 
아니 뭐 이런 고양이가 다 있지 싶었는데 
웃긴게 맨날 사람들 옆에 붙어다니면서 장난치고 놀고 
먹을거 주면 좋아라 하니 이런 고양이는 또 처음봤어요. 
누가 키우다 버린건지... 2008-09-08
15:19:15
  

 

병장 전승원 
  흔히들 말하는 짬타이거들은 사람이 헤칠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닮은 듯 싶습니다. 
놀래키려고 i아가면 녀석은 당당하게 공격할 자세를 잡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2008-09-08
15:56:52
  

 

병장 강문석 
  저희 쪽에서는 절 보기만 하면 도망치던데.. 한번 만져보고 싶어도 틈을 안 줘요. 
먹을 게 풍족한 부대찌게집인데도 불구하고. 2008-09-08
22:24:39
  

 

병장 조현식 
  박찬걸 상병님... 보기드문 개냥이를 구하셨군요..(고양이인데 개의 습성을 가진...) 
냥이와 같이 산다는건, 날리는 털들과 같이 산다는것과 동일한 의미죠. 

갑자기 집에서 제가 부대찌개집에 들어오고나서 친척집으로 트레이드한 우리 고양이(성이 고, 이름이 양이...) 보고싶어지네요. 2008-09-09
08:45:53
  

 

병장 이동석 
  저는 코지로가 보고 싶어요. 코오 지로오~ 2008-09-09
13:25:58
 

 

병장 이동석 
  이혼한뒤로 양육권을 빼앗긴 오츠도 보고싶군요. 오오오츠으~ 

주인들이 갈라섰다고 고양이도 갈라섰어요. 2008-09-09
13:27:44
 

 

병장 이태형 
  개냥이라니..(땀)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시 승원님 글은 언제봐도 읽고 싶어져요. 2008-09-10
15:47:27
  

 

병장 배상혁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길렀으나 
어머니께서 잠시 상경하심과 동시에 사라진 저의 고양이 
미정이도 보고 싶군요..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미정.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 이쁘게 지었다고 하더군요 허허 

어머니의 한마디. 
"고양이는 요물이야!" 
수업 다녀왔더니 없어져있었습니다....... 

미정아!!! 2008-09-10
19: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