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거미가 말했다.  
병장 윤영돈   2008-10-30 17:19:16, 조회: 153, 추천:0 

연등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천성적으로 뒤에 누가 있으면 집중이 안되는 성격이라서 구석자리를 애용한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지정석이 되어버린 자리에 앉아 준비하고 있는 계획의 자료를 정리했다. 그간 있었던 자료정리와 더불어 반정도 마쳐가고 있는 가운데 갈증을 느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벽에 닿아 틈이 벌어진 사이로 갑작스레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거미를 보았다.

아, 이런 곳에 거미줄이 있었구나. 녀석은 벽에 밀려 벌어진 장판사이와 앞마당에 거미줄을 치고 자신의 서식지를 만들어 두고 있었건 것이다. 나는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며 다시 안나올려나 하고 지켜보고 있다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길래 다시 일어서려고 의자를 끌었다.

갑작!

스레. 튀어나온 녀석은 다시 장판 틈으로 들어가고 나는 엉거주춤한 상태 그대로 녀석의 서식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은 없다. 조심스레 앉은 나는 내 움직임이 거미줄에 반응하여 녀석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라 머릿속으로 가정하고 유심히 거미줄을 노려보았다.

사실. 생각해볼 마음도, 이해할 마음도 없었지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가정했기에 녀석의 움직임에 대해 가정했다. 단지 이렇게 뛰쳐나와 먹이를 잡는 거미는 TV에서 밖에 보지 못했기에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악취미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행할 먹이가 없었기에 악취미적인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취침중에는 아직도 존재하는 슈퍼모기따위는 보이지 않고 그 흔한 파리 한마리도 모두 겨울잠에 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쓸 땐 없다고 말한다면 개를 구해야겠지. 지우개를 꺼내 책상을 힘껏 문질렀다. 그 옛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했던 것처럼, 화장실에서 문질렀을 때처럼.

콩 한쪽도 나눠먹을 때 나오는 콩 한쪽만한 지우개똥이 만들어진 뒤 나는 무궁화호를 처음 발사할 때의 마음으로 3. 2. 1을 속으로 외치며 지우개똥 1호를 거미줄을 향해 발사했다.

갑작!

스레. 덥석
했으면 좋겠지만 녀석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로 틈안으로 들어가 얼굴이라고 추정되는 것만 내밀고 지우개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녀석 지우개 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나는 지우개똥 2호를 만들어 발사시켰다. 자 나아가라 드넓은 우주를 향해. 3. 2. 1.

덥석!

녀석이 지우개똥을 물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책상에 엎드려 낄낄거렸다.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신경쓰지 않고 혹시나 하고 버린 바나나 껍찔에 넘어진 슬립스틱코미디를 본 것마냥 어깨를 들썩거리며 소리죽여 웃었다. 실컷 녀석을 비웃고 난 뒤 거미줄을 보았을 때 그 곳에는 물고 들어갔던 지우개똥 1호가 밖에 버려져 있었다.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그러니까 그건 녀석이 틈 밖으로 튀어나올 때 만큼이나, 그리고  뒤가 급해 화장실로 미친듯이 달려갔는데 방귀만 나올 때만큼이나 황당하게 녀석과 세상 사람들이 오버랩됐다. 뭐야 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그러나 이미 거미줄 안에서만 생활하며 단순히 먹고 살기위해 작은 틈새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이 현대인들과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는 아마 평생토록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며 그곳에 틀어박혀 있겠지. 

'너도 똑같잖아. 먹고 살기에만 급급한 현대인중에 한명이 바로 너잖아.'

'야, 갑자기 말을 하면 현실감이 떨어지잖아. 어쨌건 그 현대인들 중에도 급급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먹고 살기만을 생각하기엔 세상은 너무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한 소리에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때쯤 녀석은 밖으로 나와 지우개똥으로 더러워진 거미줄을 청소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무슨 소리야.'

'너가 먹고살기 급급한 현대인이라고 지칭한 사람중에 과연 속으로 '난 먹고 살기 급급한 현대인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같아? 다들 나는 내 나름대로 노력중이란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다고.'

'...'

그러네. 정말로.
다들 자신의 가슴속에는 꿈이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오랜 싸움과 고난, 챗바퀴로 인해 빛이 바래 회색빛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총천연색으로 꺼내 놓을 수 있을만큼 분명하고 선명하게 가슴속에 그려져 있다. 단지 가슴에만 그려져 있어 옆의 사람은 그 그림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나는 먹고살기 급급한 현대인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모여 먹고살기 급급한 현대인 그룹을 만드는 거니까. 말하자면 그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조차 자신은 구성원이 아니라고 외치는 세상안에 모여살며 이미 모모의 회색빛 정장을 입은 남자들로 변하여 살고 있다. 회색 담배를 쭉쭉 빨아가며.

난 아직 20대니까 아니라고 강렬하게 부정할 수 있겠지만 40대가 되버린 후에 다시 이런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20년 동안 챗바퀴 한번 돌아볼래?

챗바퀴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과학과 제도는 좀 더 널리 편하게 살아보자 하고 만들었는데 왜 결과물은 챗바퀴가 탄생한 것일까. 다수행복의 원칙이란 챗바퀴가 최선책이었단 말인가. 거대한 챗바퀴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여유를 지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했을까.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운이 좋아서? 생각의 힘?

아무도 모른다. 의견은 제시할 수 있지만 정확한 정답은 없다. 나는 바닥을 발로 찬다.

갑작!

스레'왜 자꾸 귀찮게 해'

'야, 뭐좀 묻자. 어떻게 하면 급급하지 않을 수 있냐?'

'병신, 그걸 내가 알면 네 발소리에 튀어나왔겠냐?'

'... ...'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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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근 한달간 못들어 온것 같네요.

설탕이니, 행사니 뭐니, 대빵은 괴롭히고 랭보도 괴롭히고.

저번에도 한번 쓴것 같은데 새로운 분들도 많고 잘 보이지 않는 분도 계시고.

이제 바쁠 일도 없을 것 같으니 차근차근 좋은 글도 읽어봐야 겠네요.

이야기는 연등중 발견한 거미를 보고 생각한 걸 썼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7:58 

 

병장 이동석 
  거미가 말했다- 
친구라도 될걸 그랬어- 2008-10-30
17:59:37
 

 

병장 문두환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흐흐. '먹고 살기에 급급'하지 않으려고 나름 쿨-한 척, 꿈을 따라 가는 척 해 보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에 문득 한번씩 멈칫 할 때가 있더라죠. 푸휴휴- 

아무도 모를 일이죠. 2008-10-30
18:05:28
  

 

병장 허종웅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여유로움을 즐긴다는건 
급급한 사회생활로 인한 결과없이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2008-10-31
09:31:50
  

 

병장 이태형 
  알 수 없죠. 
저도 급급한 현대인이 아닙니다! 2008-11-10
1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