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가난한 병장의 하늘을 나는 꿈
병장 김형태 [Homepage] 2009-06-01 21:43:21, 조회: 145, 추천:0
가난한 병장의 하늘을 나는 꿈
1. 하늘을 나는 꿈을 꾼 것이 어제의 첫 경험은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에서는 아니었지만 난 하늘을 날았다. 아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뛰어난 점프력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하던, 1인칭 슈팅게임인 카운터스트라이크에서 중력을 0으로 만들고 스페이스바를 눌러 점프를 하면 아주 높이 날아, 내려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하늘을 나는 듯 가슴 벅찬 허공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이런 꿈을 꾼 것은 2개월 전, 이 꿈을 꾸고 있을 때 나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하늘을 날수 있음)에 충실했다. 모피어스가 네오를 매트릭스로 안내 후 높은 빌딩사이의 공간을 단지 ‘믿음’으로 건너가라 시킨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땅을 박차고 올라 하늘로 올랐더니 역시- 아주 높이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높이 올라 빌딩과 빌딩사이에서 점프를 했을 때 아래를 보고 ‘이거 떨어지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난 추락하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했던가. 떨어질 때의 느낌은 자이로드롭의 꼭대기에 올라 빙빙 돌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떨어지고 있는 나는 심장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 내 귀 옆에서 뛰고 있어 박동소리가 요란했고, 발 디딜 곳 없다는 현실이 나를 더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떨어지는 중,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점프 후 낙하 중에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음을 믿는다면, 네오가 그러했듯 나도 ‘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힘차게 발을 모았다. 수영의 접영에 해당 한다고 할까. 쉽게 얘기해 개헤엄에서의 발동작을 했다.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아마 밑에서 보았다면 아주 우스웠을 것이다) 그리곤 다시 떠올랐다. 곧 허공은 허공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아래에 있는 스파이더맨의 공간은 이제 내가 날(헤엄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비록 한군데 머무를 수 없는 허공이었지만 나는 계속 떠오름으로 스쳐지나가는 바람의 온기를 느꼈다. 계속 날고 싶었다.
2. 빈부격차는 흔히 ‘밖’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매월 10일이면 들어오는 97,500원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처하며 살아야하는 나는, 여유롭지 못하다.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철판에 오른 밥을 입에 넣으면서도 이후 매점으로 향할 나와 후배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긴 한숨을 내쉬는 나는 가난한 병장이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는 금고의 마음으로 모든 이의 사랑을 받겠다는 각오는 애초 갖지도 않았지만, 꿈꾸지도 않는 이유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멋진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가끔 철없는 동기 녀석이 나에게 ‘왜 돈을 안 써? 형 왜 그렇게 돈이 없어?’ 라고 후배들 앞에서 말해버릴 때면 비참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입으로만 들어가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며, 생각하고 위로하고 그 치욕스러운 시간을 버틴다.
넉넉하지 않아서 불행하지는 않다. 다만 많은 이들에게 짤랑거리는 지폐의 넉넉함이 아닌 마음의 넉넉함으로 대하자니 넉넉하지 못한 내 가슴이 미울 뿐이다. 악과 폐가 어디에나 습관처럼 존재하듯 이곳도 마음 편히 피해가지는 못한다. 또한 나는 특별히 악과 폐라 칭하지 않아도 그들의 어리석음과 무책임함에 대처하는 많은 방법들은 그들에게 악과 폐로 보일 수도 있기에 나는 세상 어느 곳 보다, 이곳에서 조심스럽고 더 현명해야 하는 것이다.
3. 자유롭게 나는 허공속의 새들로부터 ‘날다’를 배웠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도 끝에 선대인들의 놀라운 능력을 빌려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은 분명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날아오름을 몸으로 체감하는 방법도 한정되어 있다. 그 흔한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나 하다못해 소형 관람차, 가평의 어느 곳- 이승기가 뛰어내리지 못해 김씨가 대신 뛰어내렸다는- 번지점프가 있다 해도, 이는 일상일 수 없고 또 날아오름이 아닌 어디까지나 낙하의 즐거움이기에 ‘난다’라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생각해본다. 물리적으로 하늘로 날아올라 내 몸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어떻게 이 평범한 생활의 기쁨과 기억의 즐거움에서 하늘을 느낄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날고 싶은데 말이다.
4. 축구는 즐겁다. 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과의 축구는 더 즐겁다. 유명한 축구 감독이 말했다던가.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이다” 그래. 좀 더 세밀한 터치가 부족한 실수가 있기에 인터셉트를 시작으로 골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골대 앞에서 조금 더 집중하지 못해 공의 아랫부분을 건드려 위로 떠오르는 일들이 있으니 우리는 완벽하지 못한 매력의 축구를 즐거워하지 않는가 싶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나도 그러했을 것이고 나를 혼내던 내 선배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몇 일전, 계급이 다른 후배둘이 싸웠다. 선 후배간의 싸움은 존재할 수 없는 곳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싸웠다. 더 어린후배가 나에게 다가와 싸운 사실을 얘기했다. 나는 “그래, 그래, 그래” 라고 얘기는 했지만 그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최대한 침착하게 다른 후배를 불렀다.
“왜 싸운 거니?”, 그리고 “그래, 그래, 그래.” 그들은 신세대였다.
아니, 딱히 얘기하자면 다른 후배들까지도 요샌 모두 신세대다.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지만 자기것 이외에는 받으려 하지 않고 유연한 융통성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칠 때면 필요한 아집일 뿐이다. 고민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나도 신세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라고 다를 바 없었다. 내가 화를 내야하는 이유는 한 가족끼리 싸운다는 큰형의 마음보다는 선후배간의 마찰을 먼저 탓했을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더 비틀어진 그들의 마음을 타파하고자 요목조목 따지며 물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똑같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같이 날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이들과 함께 날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이들이 내 손을 잡아줄까. 또, 내게 그럴만한 여유가 있을까.
정말 난 함께 날고 싶은 걸까.
5. 한번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넓-게 빛나는 초록 잔디가 벌려져 있고, 비가와도 개의치 않고 공을 찰 수 있는 운동장을 꿈꿀 것이다. 그 곳에서 공을 잡고, 현란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드리블도 해보고, 비록 멀리 떨어져 골대를 옮겨야 할 것만 같은 슛을 한 대도 그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게다가 출렁이는 그물과 내 이름을 불러주는 관중들, 또 어깨를 나란히 할 나의 동료들이 있는 그 곳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이 그곳이 창공이다.
늦게까지 첼시와 에버튼의 FA컵 결승전을 봤다.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문뜩 떠올랐다.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처럼 늦게까지 축구를 봤을 곳으로 전화를 하고 축구시합을 잡았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따듯한 날씨에 감사하며 다 같이 물을 뜨고, 파란색, 노란색 조끼도 챙겨보고, 다치지는 않을까 낯부끄럽게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구호를 맞춰가며 매일하는 아침체조도 해봤다. 구호를 돌려가면서 붙이게 했더니 다들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패스, 패스’, ‘여기, 여기’ 우리는 첼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각지세인 에버튼도 못된다.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 가끔 실수도 하고 서로 격려도 하며, 골을 넣은 사람도, 골을 먹은 사람도 모두 웃었다. 행복했다.
이날 우린 첼시였다. 2 : 1. 깨끗하지는 않지만 이겼다. 에버튼이 되었다 해도 우린 웃었을 것이다.
우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잔디와 최고의 배수시설, 4만 5천 2백 22명을 수용할 수 있는 런던의 스탠포드 브릿지 경기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흙먼지 가득하고 운동장의 반쯤 덮이다만 잡초가 무성한 맨땅이 우리의 홈구장 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공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 서로의 눈빛을 기다리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이따금씩 넘어져도 툭 툭 털고 다시 일어설 때 이곳이 우리의 스탠포드가 아니었던가. 하늘을 가르는 행복을 느끼지 않았던가. 또, 우리가 ‘파이팅’ 이라고 외칠 때 등까지 저려오는 전율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6.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기로 했다. 개헤엄이라 해도 아등바등 움직여보고 더 많이 느끼기로 했다. 의심 따윈 뒷켠에 묻어두고, 내가 느낀 조그만 희열을 나뿐만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는 오늘밤도 그렇게 이들과 날고 싶다.
발버둥 쳐보자. 모습이 초라하다 해도,
날아보자. 꿈에서 깨어진다 해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10:11:18
상병 진수유
제가 있는 곳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형태님, 참 좋은 선배님이십니다. 2009-06-02
08:44:10
상병 서지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오, 극락이로다. 뭐 이런 비슷한 말이 있지 않았나요?(웃음)
자기가 있는 곳에 만족하고 즐길 줄 아는 형태님은 어디로든 날아가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슈퍼맨도 저리가라 겠네요. 부럽습니다. 2009-06-02
09:57:09
상병 선해성
역시 하늘을 날고 싶다면 땅을 목표로 몸을 내던지되 그 목표물을 놓치는 것 이였던가요, 아니면 오른발을 땅에서 떼고, 왼발을 오른발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떼는 것을 반복하는 것 이였던가요, 어쨋든 '난다' 라는 것은 인간의 오랜 소원이자, 이제 여러 도구들을 이용해 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인간의 희망, 같은 것이 되어버렸죠.
글쎄, 저는 어째서인지 꿈에서 조차 자력으로 날지 못하고 도구를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하늘을 나는 자동차, 라든가... 2009-06-02
10:09:07
상병 김태완
날고 싶어서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던가요.
해성님의 말씀처럼 답답한 현실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은 희망의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거겠죠.
아무 구속없는 하늘에서 둥둥떠다니며 내가 속해있던 세상아래를 보며 자조섞인 웃음을 짓는 일이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갈망의 욕구가 샘솟는군요. 2009-06-02
11:52:56
병장 이동열
언제부터이던가, 이곳에서의 꿈은 잊어버린채, 아니 잃어버린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건 분명 저의 잘못이겠지요. 형태님은 꾸준히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