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秘夢, 보다는 非夢
상병 이우중 [Homepage] 2008-10-26 08:25:35, 조회: 151, 추천:0
영화 '비몽' 과 관계된 내용인 줄 알고 들어오신 분께는 죄송합니다.
제목으로 낚는 거냐구요? 네. 그렇습니다.
요 밑에 밑에 '사인'글을 보고 저도 문득 떠올라서요.
꿈. 나의 꿈.
머릿속에서는 온갖 미사여구가 춤을 추는데 막상 종이 위에 옮겨 놓는 것은 쓰레기 분리수거장 ‘폐지’류에 쌓여 있는 날짜 지난 신문지만의 가치도 되지 못함이 안타깝다. 기표가 기의보다 상위에 놓여 있다고 소쉬르가 그랬던가. 제기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꿈은 무엇인가. 이것 역시 ‘모르겠다’가 정답일 듯하나 한 번 끄적거려 보자.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할 그 무렵 쯤, 김03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한창 김03 김03 거릴 때-가령, 멸치가 어떻고 서울대 철학과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03’이라고 써 붙여 놨다고 하더란다.
학구열 높으신 부모님들이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의 재발견 혹은 실례를 통한 재증명이라도 되는 듯 힘주어 내게 말씀하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때부터 한동안 나의 꿈은 ‘미래의 대통령’이었다. 다행이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 이우중’이라고 써 붙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이 가졌을 만한 꿈, 다시 말하면 연예인, 축구 선수, 경찰관, 소방관, 과학자, 간호사, 의사 등등. 나도 역시나 당시에는 그 중에서 그나마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과학자를 골라서 자기소개용 ‘나의 꿈’에 등재했었으나 무엇의 영향인지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교지에 실릴 표지그림을 내가 그려서-물론 내가 그렸다고는 했지만 밑그림만 내가 그리고 색칠은 아랫집에 살던 4학년 여자아이가 해 줬다. 하지만 이 대작代作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대와 한병태와의 관계와는 그 맥을 달리 하는 것이라 미리 말하고 싶다. 당시 아랫집과 우리 집은 우애가 매우 좋았고, 대가성 있는 일체의 것도 오고 가지 않았으니, 내 미진한 그림 실력을 어떻게든 포장하여 교지에 실어 주고 싶은 아랫집 식구들의 깊은 마음이 담긴 것이었으리라- 속표지에 나의 약력과 사진이 실리게 되었는데 그 때 선생님이 내게 꿈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당연히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선생님은 말이 되는 걸로-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면 선생께는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이런 뉘앙스였다- 하나 더 말해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기억의 저편에 있던 과학자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교지에는 그렇게 실렸다.
그 이후로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만나는 어른들마다 ‘넌 꿈이 뭐니’ 같은 질문보다는 반에서 몇등이니, 어머 그럼 전교에서는 몇등이니에서부터 전국의 학생들이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게 되어 점수 하나로 모두를 잔인하게 일렬종대로 세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밟고 있을 때는 이번 모의고사는 몇점이니, 그 정도면 어디까지 노려볼 만하니 같은 류의 질문들을 했었기 때문에 ‘나의 꿈’에 등재할 (현실적인)단어를 굳이 마련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인가. 자기소개용 ‘나의 꿈’란 말고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릴 때와 같이 대통령인가, 아니면 고등학교 때 잠깐 미친X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줄기차게 꿈꾸었던 영화감독인가.
역시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결론을 내린 것이 있다면 나는 아직 어리다는 것, 그것 하나다.
그래서, 이젠 사람들이 물어볼 때도 나의 꿈은 ‘아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지는 않지만 아직 꿈도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자세를 갖추려 한다. 내게는 당장 내일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가 있기에.
라고는 하지만 이제 아무도 저에게 꿈 따위는 물어보지 않는군요. 어제는 책마을 경고게시판에 '상병 이우중님, 경고 1회입니다'가 한 페이지 가득 올라와 있는 꿈을 꾸었어요. 하지만 꿈 속의 나는 예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스쳐지나간 컴퓨터 화면 따위야 쿨하게 비웃어 줄 수 있었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꿈 이야기가 아니군요 지금.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5:46:29
병장 문두환
이제 꿈이 아니라, 어디에 취업할지를 물어보지는 않나요? 2008-10-26
08:40:18
상병 양순호
전 게임 개발자를 꿈꾸었고, 게임 개발자를 했었으며, 게임 개발자를 서브테크로 타고 있으며,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이고, 게임 개발자를 했었을겁니다.
아. 여기서 지금 저의 인생에서부터 서른다섯살때까지의 길이 나오네요. 맙소사. 2008-10-26
12:12:35
이병 이세종
넌 꿈이 뭐니.
몇등이니, 시험 점수는 몇점이니?
꿈보다 점수, 전공보다 대학. 적성보다 연봉.
겨자맛 사탕마냥 눈물나는 현실이군요 2008-10-26
13:37:19
이병 김광현
꿈 참 좋은 말인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뭔가 씁씁할 의미로 부담되는 의미로 와닿는
것 같아서 울적하네요.
그래도 현실에 타협하기 보다는 꿈 하나만 붙잡고 나아가고 싶지만
아직도 그 꿈이라는 것을 찾지 못해 말하기 부끄럽습니다. 2008-10-26
14:30:45
상병 김무준
세계정복이요! 음... 요새는 우주정복으로 스케일을 키워볼까 고민중이에요. 2008-10-26
22:29:20
상병 김남우
제 꿈은 아티스트. 2008-10-27
09:25:05
병장 이동석
그래, 자네 꿈은 뭔가. 2008-10-27
13:28:15
상병 박정택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란 사바넷에 돌던 짤방이 떠오르네요 2008-10-27
13:3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