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한 걸음 내딛으며 - 스스로와 마주하다  
상병 정근영   2008-12-01 09:21:33, 조회: 104, 추천:0 

나 자신을 감동시키고 가슴 벅차게 만드는 글을 읽는다는 건 물론 매우 기쁘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때마다 나는 항상 1%의 아쉬움을 느끼고는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쉬움은 작품과 나 사이에 존재했던 순수한 교감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쓰지 못하는 그런 글을 쓰는 작가에 대한 한없는 선망과 질투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타인과의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왜 우리나라에도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간은 타인과의 교감과 이로 인해 싹트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통해 힘든 가운데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고, 슬픈 와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해가면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인간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기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1차적 매개체인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생각과 언어의 괴리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잘못 쓰여진 글은 오해를 낳았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은 상처가 되었다. 나의 고민은 바로 이 '언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생겨났다.

이 점은 미숙한 글재주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섣불리 나의 감정과 생각을 토해 놓았다가는, 자칫 나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던 감동이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퇴색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글이 나의 사상과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때로는 왜곡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은 나에게 그보다 더한 좌절감만을 느끼게 해 줄 뿐이었다. 때문에 입궁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나는 나의 부끄러운 배설물들을 아무도 보지 않는 나의 일기장 속에 숨겨두었고, 감히 다른 사람들 앞에 꺼내어 놓을 수가 없었다. 5월즈음에 책마을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시덥지 않은 몇몇 글들이나 토해놓았을 뿐, 나의 언어를 쏟아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푸념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만이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혼자 끙끙 앓으며 싸매고 있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타인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100%의 이해는 불가능할지언정 진정한 이해에 한 걸음씩 도달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여태까지 내가 타인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단지 내게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며, 예전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비록 서툴고 미숙한 솜씨나마 펜을 놀려 감히 당신들과의 소통을 기대한다.
당신들의 가슴 속에 나의 감정들이 거짓없이 다가가 스며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좋은 글은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진심이 담긴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3.1.44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4:01 

 

병장 강석훈 
48.2.113.27   제가 쓰고자 했던 말을 정리해서 표현한다면 딱 이런 모양이었겠군요. 다만 근영씨와 다른 부분이라면, 전 아직도 거울을 제대로 보질 못한다는 겁니다. 결국 용기가 부족하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