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택시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14 13:30:51, 조회: 209, 추천:0 

자, 오늘도 신나는 일상의 시작이다. 나의 직업은 택시기사.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태워다 드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지금은 회사에 묶여있지만 언젠가는 내 개인택시를 갖는 것이 꿈이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을 모시고 어느 곳을 가게될까?

"OOO로 가주세요."
손님이 타자마자 행선지를 얘기한다. 성격이 급한 손님인 것 같다. 그나저나 OOO라니. 어디지? 네비게이션에 OOO를 적는다. 맙소사, 까마득히 먼 곳이다. 이런 촌구석에는 무슨 일이지.
"OOO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거에요?"
"아, 예. 일 때문에요."
"특별한 일 하시나봐요, OOO는 개발도 아직 거의 안된 곳이라 그리로 가시는 분은 거의 안계신데요."
"아하하, 그래요? 예, 생태계조사 때문에요. 변경에 미개척지역을 돌면서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 먹이사슬은 어떤지, 조사하러 가거든요."
"저도 오랜만에 멀리로 나가는거라 드라이브 하는 기분이네요."
사실 거짓말이다. OOO는 좀 지나칠 정도로 외진 곳이라 돌아올 때는 아마 빈 차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듣기로는 OOO에서는 손님을 태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내가 뭐 손님을 가리는 편은 아니라서 사실 동물이 태워달라고 해도 태워주겠지만, 주행하는 내내 운전기사에게 시비를 걸고, 소란을 피우는 것 뿐만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요금을 제대로 낼 줄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멀기도 무지막지 먼 곳이라 까딱하다가는 오늘을 통채로 공칠 가능성도 있다. 사실 한숨을 쉬고싶다.
"그건 그렇고, 이 차, 처음 보는 모델인데요?"
"예, 저희 회사에서 새로 도입했거든요."
"승차감이 상당히 좋은데요? 소음도 적고."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델은 매끈한 라인과 멀리서도 확 눈에 보이는 반짝거림이 예술이거든요."
"그럼 거기 그 네비게이션도 기본사양인가요?"
"아뇨, 이건 회사측에서 달아준거에요. 지금처럼 멀리 나갈때를 대비해서요."
"하긴, OOO가 좀 멀긴 하죠. 괜히 죄송해지네요."
"아뇨, 아뇨, 저도 다 돈받고 하는 일인데요. 그저 OOO같은 경우는 너무 외진곳이라 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어서, 까딱하다간 길에서 벗어나버리거든요. 네비게이션 없이 다니다가 벌금 물면 아깝잖아요."
"하하, 하긴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딱지끊는 양반들은 꼭 어디에 숨어있더라구요."
성격만 급한 손님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 통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먼 길이기는 하지만 심심할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렇고, 왜 하필 OOO에요? 다른 곳도 많을텐데."
"정확한 정보는 아닌데 OOO쪽 생태계에 좀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특이하다고요?"
"예. 한 생물종이 갑자기 개체수가 늘어나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나요?"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는 뭐 이제는 익숙한데요."
"그런데 그게 이상한게, 아시다시피 OOO는 아직 개발이 안됐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는데 생태계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는 흔치않거든요. 학계에선 이 조사결과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헤에, 그렇군요."
사실은 별로 관심없다. 지금 나의 관심은 열심히 올라가고있는 가격표시창의 숫자뿐이다. 뿌듯할 정도로 휙휙 올라가고 있는 숫자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나 달렸을가, 시끄럽게 떠들던 손님이 잠잠하다. 잠을 자는 모양이다. 하긴 시간이 상당히 지났으니 지루하기도 했겠지. 주변에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게 된 지도 오래고, 제대로 가고있는 지 아닌지도 네비게이션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된 상태이다. 나도 모처럼의 장거리주행에 졸음이 오지만 가끔 창밖으로 보이는 신기한 별들을 보며 졸음을 쫓는다.

"손님, 손님. OOO에 다와가는데요."
"으음, 벌써 그렇게 됐어요?"
"벌써라니요, 오래 주무셨어요. 어디쯤에 내려드리면 될까요?"
"으음, 아무래도 좀 생명체들이 많은 쪽이 좋겠네요. 예, 저쪽으로요. 예, 예. 내려주세요."
"좋은 발견 하시길 바랄게요."
"예,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운전하세요."
요금을 받고나니 뿌듯하다. 돌아갈 길이 막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운 좋으면 중간쯤에서 다른 손님을 만날 수도 있겠지. 자, 돌아가보자.



-뉴스속보입니다. 오늘 낮 3:28경 서울 명동 상공에 UFO로 추정되는 미확인 비행물체가 출현했습니다. 정부측은 적국의 신종무기실험이라는 일설을 적극 부인하고 있으며....


덧.UFO가 미확인비행물체지만, 우리나라 뉴스라면 저렇게 말할 것 같지 않아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8:38 

 

상병 김상윤 
  까딱하다간 길에서 벗어나버리거든요. 네비게이션 없이 다니다가 벌금 물면 아깝잖아요." 
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렇게 멋진 반전이라니 재밌네요. 
그리고 설마 아무리 우리나라 뉴스라도 역전앞같은 유명한 오류를 또 범하겠어요? 하하 2008-11-14
13:50:09
  

 

병장 김기태 
  언제나 신선한 반전. 

송기화님 소설에 반전이 안나오면 그것도 대단한 반전일듯(키키) 2008-11-14
15:05:27
  

 

상병 이지훈 
  기태님 말씀에 기화님이 다음 글 쓰시다가 보시고 움찔하시면 어쩌죠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인데 허허 파장이 대단하겠는데요? 

그나저나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즐거워요 2008-11-14
23:52:52
  

 

일병 송기화 
  저 반전에 목메고 있지 않아요 
쓰다보니 그렇게 되는거죠.....(울먹) 2008-11-15
09:41:49
  

 

병장 이동석 
  아니, 이건 '반전이야기'이라기 보단, 일종의 꽁트죠. 꽁트라는 장르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2008-11-18
18:3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