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탑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15 10:47:12, 조회: 166, 추천:0
인간들이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간으로써 던질 수 있는 가장 오만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신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장소, 즉 하늘을 향해 거대하고도 거대한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바벨탑이라고 명명된 그 탑을 통하여 신이 기거하고있는 저 하늘까지 올라가 신이 되리라, 그리고 신을 뛰어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탑의 준공을 위해 모여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일이 하늘에 도전하는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모두가 협의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했다. 일을 총괄적으로 지휘할 자들을 뽑았고,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자재를 구할 사람, 옮길 사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식량을 구할 사람, 그 식량을 분배할 사람, 요리할 사람 등등 많은 역할을 세부적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줄 위대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일을 했고 자재의 운반이나 공사속도 또한 예상보다 빨랐다. 워낙 거대하기에 눈에 보일 정도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공사를 하고있는 사람들은 보급이나 기타 임무를 맡고있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힘을합쳐 세우고 있는 이 위대한 건축의 진행상황과 그들이 주는 도움의 고마움을 열심히 설명해주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또다시 단합하고 힘을 내어 일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공사는 눈에 보이게 진행되었다. 처음엔 그저 땅에 커다란 원을 그리는 것 처럼 보였던 탑은 어느새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탑보다도 높아졌다. 인부들도 교체되었다. 나이가 들어 더이상 공사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른 일로 바꾸고, 새로 건강한 사람들로 인부를 뽑았다. 이미 이 거대한 공사는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하루 탑은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작은 장난일 뿐이었다. 장난의 시작은 본 작업장과는 거리가 있는 한 밭에서였다. 어느덧 먼곳에 있는 그들에게도 탑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공사현장과는 달리 그들은 지루했다. 그들은 일상에서의 사소한 재미를 얻기위해 한가지 장난을 계획했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약간의 은어였다.
-응? 그게 무슨말이야?
-그런 게 있어.
그것은 그 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동질감을, 그리고 그 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배신감을 주었다.
-저쪽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쓴다는데?
-왜?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해볼까?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은 또 다른 은어를,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은어를 낳았다.
-OO어때?
-OO? 무슨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OO말야.
-아, XX?
-그게 왜 XX야?
-그러면 그게 왜 OO냐?
단합되던 그들은 서로에게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질감이 번지는 것 만큼이나 다양한 은어들이 번져나갔다.
결국 그것은 퍼지고 퍼져 본 공사장에까지 도달했고, 그무렵에는 이미 장난이 아닌 편가르기가 되어있었다. 같은 은어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편이었고, 이 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적이었다. 위대한 계획을 위해 하나로 뭉쳤던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패를 찾아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신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미워하여 내린 천벌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막상 신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잘 살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8:52
병장 김민규
푸하하하. 유쾌합니다. 마지막 두 줄이 시원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2008-11-15
10:53:55
상병 이강석
엇! 이글은! 언어의 분화가 바벨탑 공사때부터 일어났다는 성경의 구절을 배경으로 새로 쓰신 글 같은데 아닌가요? 그냥 그 구절을 읽을때는 이해가 잘 안됐는데 이렇게 읽으니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8-11-15
11:37:46
병장 정병훈
이게 누구십니까?
다작(多作) 송기화 선생님? 2008-11-15
12:09:10
병장 박장욱
갑자기 요즘 네이놈에서 연재되는 멀티 웹툰 N의 등대가 생각나는건 저뿐인가요? 2008-11-15
12:11:44
일병 송기화
어, 음, 저, 그냥, 아, 그러니까, 다투지 말고 정해진 말만 쓰자고요(...)
후다닥 2008-11-15
13:03:01
상병 이지훈
역시 재미있군요! 허허 마지막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항상 보게 되는군요 이러면 안되는데... 2008-11-15
22:18:20
병장 이동석
허허허, 미묘하게 다른 스타일이군요. 그럼요, 기화님에겐 반전만 있는게 아닙니다. 2008-11-19
15:4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