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조난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26 16:50:34, 조회: 128, 추천:1
음,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한다면 음, 그러니까 조난과 불시착과 표류를 적절하게 섞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정확할 것이다. 이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난 수십년전에 이 행성에 불시착하여 조난당한 상태이다. 복잡하고 길게 설명한다면, 그러니까 옛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수십년 전에, 드디어, 생명체가 살고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행성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 태양계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한 이 행성은 놀랄만큼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NASA에서 발표한 '이 행성에 우리와 다른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약 97%이다.'라는 발표는 그야말로 온 지구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그때부터 이 지구라는 별에는 우주시대가 열렸다. 모든것이 우주와 연관되던 시기였다. 지난 수십년간 이루어 온 발전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루어낸 발전이 몇 배는 컸고, 어제와 오늘의 기술력이 다를 정도였다. 게다가 우주선의 기술력이 벌전되자 모든 분야의 기술력 또한 엄청나게 발전했다. 모든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던 시대였다. 온세상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뭉쳤고 세상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세상에 잔뜩있던 악당들조차 우주에 정신이 팔려 나쁜짓을 잊은 것 같았다. 결국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까지는 아니지만, 빛의 속도에 매우 근접한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이건 내 자랑같아서 짧게 말하겠는데, 그 우주선의 탑승자는 전 세계 인구에서 추리고 추려서 뽑아낸 최고의 인재였다.
'발견'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프로젝트의 시작-우주선 발사-이 계획될 무렵에는 정말 온갖 부분과 연관된 초거대 프로젝트가 되어있었다. 이 우주선에 사용된 프로그램의 개발사들과 몸체에 사용된 소재를 발명한 연구소는 기본이고, 생물학계는 물론, 스포츠웨어, 각종 식료품회사, 심지어는 부동산시장까지도 이 프로젝트의 진행 소식에 들썩였다.
'발견자'라고 명명된 우주선이 발사되어 지구가 멀어질 때의 느낌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묘했다. 가끔 우리 나라에서 해외로 떠나왔을 때도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태어난 별에서 멀리 떠나는 느낌은 그것보다 몇십배는 묘했다. 발견자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지만 그 별은 너무 멀리 있었고, 발견자의 속도는 너무 빠르기에 지구와의 교신은 불가능하여 이쪽 상황을 정기적으로 지구쪽으로 쏠 뿐이었다. 이럴 때를 위해 냉동수면기가 이미 개발되어 있었기에-사실 주 용도는 우리가 목표하는 별에 사는 생물들을 살아있는 상태로 지구까지 가져가기 위한 것이기에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나는 정기교신 시기가 아닐 때에는 대부분을 자면서 보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외로운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깨어있는 시간을 공상을 하며 보냈다. 어떤 존재가 살고있을까? 공격적인 성향이라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미개한 세상이라면? 반대로 우리보다 몇 배는 고등하고 지적인 종족은? 식물만 살고있다면? 그때 한 상상들만 가지고 책을 쓴다고 해도 몇백 권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는 한동안 운동에 빠져 살았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운동이 어떤 건지 잊을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에는 지난 날을 추억하며 지냈다. 함께 지내던 이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사랑하던 이를, 친구들을, 만나본 사람들을 그리워하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쓰던 칫솔, 내가 신던 신발까지도 그리워졌다. 결국 나는 냉동수면기의 타이머를 도착예상 일주일 전으로 맞춰놓고, 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이었다. 정말,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발견자에 가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런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속도에 변화가 일어났을테지만 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고, 컴퓨터를 조사해보려고 해도 지금 이 발견자는 고장난 상태이다. 완전히 고철덩어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움직일 수가 없으니 같은 크기의 섬이라고 취급해도 될 것이다. 아, 섬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곳이 바다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 가속도 때문에 내가 냉동수면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이 별에 돌입하기 하루 전이었고,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발견자가 박살나지 않을 정도로 진입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한계였다. 다행히도 겉보기에 이 별에는 대기는 물론이고 물도 풍족한 것 같았다. 출발하기 전에 교육받으면서 많이 보았지만 정말 지구와 똑같이 생긴 별이었다. 아니, 지구와 비슷하지만 지구보다 훨씬 맑고 깨끗해 보였다. 착륙지점을 바다-지구와 너무 비슷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로 잡고 돌입각도를 조절한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에 감속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충격이 크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면 버티리라. 계획은 반만 들어맞았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내부가 폭삭 망가진 듯 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여 물에 뜨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과 기본적인 발전시설과 냉동수면기가 작동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우주선을 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탐사고 발견이고 돌아갈 수 없다면 큰일아닌가. 만일 중요한 칩이라도 하나 망가졌다면 내 능력으로 수리는 불가능이었다. 이 신 저 신을 찾아가며 기도한 덕분인지 조사결과 내 능력으로도 수리가 가능한 상태였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듯 했다. 다만 자재와 부품들이 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몇 가지 기능을 포기하고 그쪽에서 부품을 떼와서 수리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엔진소리같았다. 도대체 뭐지? 하며 바깥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것은, 배였다. 지구의 그것보다는 상당히 뒤쳐진 것으로 보였지만 저것은 틀림없는 배였다. 맙소사, 생명체가 있는 것 만으로도 놀라웠지만 게다가 문명이 발달된 별이었다.
이 별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흡사하게 생겼다. 아니, 이 정도면 황인종과 백인종의 차이와 비슷하니 외모만으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바다에 떠있는 우주선을 보고 호기심에 다가왔다가 나를 보고 조난자라고 생각해서 구해주러 온 것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을 더하자 대강 뜻이 통했다. 이정도면 외계인이 아니고 외국인이다.
그들은 우주선에 관심을 보였다. 지구의 발전된 기술을 탐내는 눈치였다. 위협이 느껴졌다.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나를 제압하고 우주선을 가져가려는 눈치였다. 최악의 경우 나를 헤하려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수적으로는 내가 불리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침착함과 꾀였다. 난 그들을 속여 냉동수면기에 들어가게 한 후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들의 배를 가라앉혀버렸다. 우리에게는 그저 공구일 뿐인 레이저 용접기도 이쪽 별에서는 엄청난 무기로 쓰여질 듯 싶었다. 나는 나의 존재가 발각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얼마 후 내 눈에 보인것은 비행기였다. 떨어트려버렸다. 배가 지나간다. 가라앉혔다. 떨어트린다, 가라앉힌다, 파괴한다. 얼마나 그와 같은 생활을 했을까. 어떻게 소문이 난건지 이제 이곳을 찾는 이는 없다. 이제 느긋하게 우주선을 수리하면 된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있었던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것의 비밀은 이런 것 아니었을까?
덧. 비몽사몽하며 쓰다보니 생각보다 훠얼씬 이상해진 A와 B가 하던 이야기(..)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00:02
병장 정병훈
일단 도장.
그리고 소리질러-
꺅
기화님의 재림 2008-11-26
16:55:01
일병 송기화
어머, 병훈님!
재림이라니요(부끄럼)
저, 이제, 밥먹고, 밤산책 다녀올게요.(부들부들부들부들) 2008-11-26
17:01:12
상병 양 현
세계관이 중복되는건지,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고장난거인지.
아니면 항로이상인지. 맙소사. 복잡하군요. 으하하. 2008-11-26
18:25:00
상병 이지훈
고장으로 타임머신이 돼버린 건 아닐까요?
흐흐 재밌군요 역시 2008-11-26
22:08:40
병장 김민규
역시 솔깃합니다. 2008-11-27
07:28:41
병장 이동석
우어, 쫄깃쫄깃- 2008-12-13
18:5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