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전염병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04 15:13:53, 조회: 283, 추천:0 

인구는 쉬는 일 없이 꾸준히 늘어났고 필요한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식량난은 점차 먼 미래의 일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축은 커녕 먹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잡초나 나무껍질까지 부족해지자 세계 곳곳에서 식량의 부족으로 인한 분쟁이 일어났고 결국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일부 선진국들조차 식량을 국가통제를 통해 분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류가 아직 이성을 가지고 통제에 따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느껴질 때, 인류역사상 최악의 기아에 의해 인구변동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하향선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그때, 식량난에 대한 예상치 못한 해결책이 나타났다. 그 해결책이란, 신종 전염병이었다.
'녹화증'이라고 명명된 이 질병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북반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고되었다. 어째서 북반구에서만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안그래도 기아에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역사상 최초로 보고된 이 전염병은 생존에 대한 희망을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신체의 일부분이 곰팡이가 핀 것처럼 녹색으로 변하는 감염 후 최초증상부터 몸 전체가 녹색으로 변한 다음 의식을 잃는 최종증상까지는 1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격리조치가 소용없을 정도로 전염속도 또한 빨랐다. 간신히 인류를 이끌어나가던 국제연합단체조차 희망을 버리려고 할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최초로 감염이 확인됐던 환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보고였다. 예외는 없었다. 개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정신을 잃은 지 72시간 정도가 지나면 모든 환자들이 깨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더이상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곧 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밀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결과, 이것은 질병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식물의 공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직 발견된 기록이 없는 어떤 신종 식물의 포자가 인간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자가 발아해서 온 몸에 퍼진 후 72시간동안 의식을 잃는 것은 이 식물이 인간의 신체기능을 상당히 저하시킨 후 신체와 융합하는 과정이었다. 이 식물의 번식이 북반구에서만 일어난 것도 이 질병이 식물에 의한 것이고 식물은 포자를 뿌리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인간과 식물의 융합 결과, 인간은 광합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제 웃을 수 있었다. 어차피 막을 방법도 없었기에 이미 인류의 상당수가 감염되어 있었고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후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감염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반년이 지나 남반구에서도 이 식물의 번식이 이루어질 무렵에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몸에 엽록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몸에서 이 포자를 받아들이지 못해 녹화증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기에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식량의 양이 대폭 줄어들었다. 이젠 물과 햇볕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은 다시 평화로워지는 듯 했다.
북반구가 다시 이 식물의 번식기를 맞자, 인류는 다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식물이 일종의 동충하초로써, 인간의 몸에 기생해있던 이 식물이 번식기를 맞자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장해 숙주로 삼고있던 인간의 몸을 커다란 버섯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미친듯이 노력했지만, 북반구에 살아있는 인간이 거의 없어질 무렵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이 반년 뿐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7:02 

 

병장 윤기현 
  순간 1부인가 생각하고 말았어요. 

어째든 제가 고등학교때 식물을 부러워했던게 광합성이었는데.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편하잖아요, 
다만 히키코모리들은 힘들어지겠군요. 2008-11-04
15:20:00
  

 

병장 정영목 
  늘 그랬듯 송기화 님만의 기발함이 엿보이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2008-11-04
15:20:44
  

 

병장 정병훈 
  역시 기화님은 꾸준하시네요.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거 같기도 한데요 말이죠. 

광합성을 하기 위해선, 산소, 이산화탄소, 물 햇빛이 필요하지요. 
저녁에는 산소를 먹는다나요? 히히 2008-11-04
16:01:56
  

 

일병 송기화 
  기현님/ 광합성은 다들 부러워하나봐요. 저도 그랬거든요. 
영목님/머신즈~가 훨씬 기발하죠. 최신편(?) 잘 읽었습니다. 
병훈님/산소를 먹는 건 호흡이랬어요. 생물선생님이.(억지) 
그리고 저도 이런 얘기 두 번째 쓴 거 같아요. 근데 그때는 예쁘게 단풍들고 끝났던 거 같은데....... 음... 2008-11-04
16:06:22
  

 

병장 이동석 
  카프카가 지금 시대 한국에 태어나 SF의 영향을 받고 영내 생활중이라면, 이런 글을 썼을것 같군요. 허허- 

그리고 전 결말이 참 마음에 드는군요. 허허허 2008-11-04
16:18:43
 

 

병장 고동기 
  운명론에 빠진 남반구의 모습을 보고싶네요. 2008-11-04
16:45:59
  

 

병장 윤기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되는 거 잖아요 
그럼 조금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을테니까. 

특히 고등학교 시절 입시로 지친 학생들에게는 부럽죠 2008-11-04
16:46:29
  

 

상병 황성근 
  호,, 재밌습니다, 
잘 읽었어요 (웃음) 2008-11-05
08:10:28
  

 

병장 고은호 
  하... 동충하초.. 생각도 못한 반전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웃음) 2008-11-05
16:52:50